[3월 칼럼]발음하기와 바느질하기_별

 

 
발음하기와 바느질하기
 

성매매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겪는 부침들이 있다.
 
머릿속을 휘젓고 사라지는 이미지들, 표정들, 불빛들이 있다.

 

1
 
어디에서 일하냐는 가족들, 친구들의 물음에 여성인권단체라고 했다가 좀 뜸을 들여서 성매매 현장의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후자는 굳이 그냥 말 안할 때도 있다. 

 

2
 
이태원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네트워킹 파티, 그리고 트랜스젠더 인권활동모임에서 주최한 캠프에 각각 참여하였다. 그곳에서 ‘반성매매’라는 단어를 발음하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성적인 해방의 메카로 여겨지는 이태원 한복판, 퀴어 인권을 지지하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성판매경험자들 앞에서 반성매매라고 발음할 때 어떤 효과를 낳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이룸의 반성매매라는 단어의 함축이 일방적인 타자화나 피해자화가 아니며 현장경험 그리고 지금 여기의 성매매라는 정세판단을 녹여 내려함을 잘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3
 
스스로를 성노동자로 정체화 하는 친구를 만나서 이룸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여성들에게 자원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폭력 피해 여성에게 제공되는 지원이 여성운동의 성과이고 적절히 이용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둘 다 동의했다. 그러나 간통죄가 위헌판결을 받고 성매매특별법이 위헌 제청을 앞둔 시점에서 왜 성구매가 불법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근거에 관한 물음, 집결지 폐쇄와 단속강화 등 반성매매 단체의 활동 등을 언급하며 그건 손님이 줄어든다는 건데 결국 성매매를 하지 말라는 혹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윤리적이고 일방적인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관한 대화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4
 
지역의 아동‧청소년 교육기관으로부터 네트워킹을 위한 설명회에 초대받아서 반갑게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몇 번의 전화통화를 거치면서 파악한 바, 해당 업무자들의 소통 과정에서 이룸은 쉼터와 그룹홈을 운영하는 기관으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나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라는 명칭 없이 그냥 이룸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담당자는 지역에서 연계된 아동‧청소년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이룸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지 재차 확인했고 결국 행정 업무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소개책자에서는 이룸의 이름이 빠지는 대신 활동가/상담원이 직접 기관을 소개하고 홍보하기로 갈음을 했다. 그러다보니 그 네트워킹에 가정폭력, 아동학대 지원 기관은 있지만 성매매, 성폭력 기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짐작컨대 학교 관계자들 앞에서 ‘성매매’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성매매 혹은 성적인 것과 십대를 연관 짓기, 성매매 현장에 십대를 위치시키기가 어른들을 난처하게 했던 것 아닐까.

 

성매매라는 단어를 발음하며 이런 저런 상황들과 마주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머릿속을 채웠던 이미지들 위에 엎드려서 나의 몸으로 직접 경험한 이미지들을 하나씩 덧대어 꿰매 나간다. 그건 동료가 전해주는 언니들의 소식, 전화기 속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임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공동의 납득, 어떤 답답함과 속상함일 때도 있고 사랑스러움일 때도 있다. 그건 의도치 않은 몰이해나 말줄임이기도 하고, 제주로 이주한 언니가 보내준 입속이 황홀해지는 천혜향의 맛, 스캔들과 루머와 에피소드와 미담들, 길을 가다가 그와 닮은 사람이 지나갈 때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냥 다 부럽다’하는 짧은 한마디가 생각나서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일 때도 있다. 그 순간 나는 그가 되어가고 싶다. 그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싶다. 무조건적인 행복이나 기쁨으로 회상될 수는 없는, 그러나 엄연히 도사리고 있는 어떤 기억들을 넘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고 전달하고 싶다. 나는 그래서 이룸 활동이 좋으다. 이루머들이 좋고 이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