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칼럼]모든 것은 점을 빼면서 시작되었다._기용


모든 것은 점을 빼면서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 오랜 숙원이었던 점을 뺐다. 검색을 하다하다 지쳐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왠지 홈페이지가 맘에 든 신촌의 ‘OO피부과/성형외과’를 찾아갔다.
반짝반짝한 병원과 곱게 화장한 실장님 앞에 서니 왠지 더욱 내 행색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내가 돈을 내잖아, 내가 소비자잖아!!’ 자신감을 갖기위해 스스로 주문을 외워보았다. 접수대에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자마자 곱게 화장한 실장님은 내 얼굴에 나도 몰랐던 점까지 쏙쏙 찾아내어 펜으로 표시해주었다. 덕지덕지 얼굴의 잡티를 지적당한 채 대기하고 있으려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 건 왜일까.

점을 뺀 자리에는 꼭 선크림을 발라주라 했다. 점은 빼고나서의 관리가 더욱 중요하단다. 레이저로 살을 태워놓은 자리에 새살이 돋기도 전에 색소침착이 되어버리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올OOO에 가서 여름에도 바르지 않던 선크림을 구입했다. 선크림만 살 생각이었는데 클렌징 폼이 보인다. 모공보다 작은, 일반 버블 1/10 크기의 미세한 마이크로 버블이 모공 속까지 침투해 각질, 메이크업 잔여물, 선크림까지 확실하게 지워준단다. 집에 클렌징 폼이 한참 남아있지만 난 이제 선크림을 발라야하니까 이 아이는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그 옆에는 묵은 각질을 제거해 매끈한 피부로 거듭나게 해준다는 각질 제거제도 보인다. 요즘 내 피부가 꺼실꺼실한 것은 묵은 각질을 관리해주지 않아서였구나! 이 아이도 데려가기로 한다.
 
선크림을 바르고 다니니 문제가 생겼다. 안 하던 한꺼풀이 덧대져서인지 왠지 더 건조하게 느껴진다.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퇴근길에 OOOO리를 들렀다. 유수분 밸런스를 맞춰야한다. 가게 점원은 내게 중복합성 피부라는 진단을 내려주었고 추천받은 수분 크림을 구매했다. 마침 클렌징폼 1+1 행사를 한다. 무슨무슨 천연추출 성분이 모공 속까지 침투하여 블랙헤드 제거에 효과적이라는 폼과 또 다른 뭔 오일 성분이 트러블을 진정시켜 맑은 피부로 가꿔주는 폼을 선택했다. 집에 아직 폼이 남아있지만… 이건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다. 왜냐면 나는 블랙헤드도 있고 트러블도 있는 피부니까!

눈코입이 대충 생긴 것은 해결이 난망하니 일단 접어두더라도 피부 트러블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지난주에 짠 여드름 자국 하나 없어질 만 하면 또 여기 생기고 저기 생긴다. 연예인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피부과에서 주기적인 관리를 받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관리를 하면 할수록 거울을 더 들여다보게 되고 그럴수록 확인하게 되는 건 나의 ‘못생김’ 뿐이다. 내 얼굴은 결점투성이고 나는 자꾸 화장품 회사에 돈을 갖다주고 있다. 이미 그저 ‘기초’ 화장품 정도에 쓴 돈은 10만원이 훌쩍 넘었다. 광고임이 분명한 수많은 후기들을 밤을 새서 찾아 읽어본다. 이건 다 상술이야! 싶다가도 매끈하게, 탄력있게, 촉촉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화장품 회사의 거짓말을 믿고 싶다. 아마 다음 달 할인행사를 한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모공에 흡착해 피지를 관리해주는 워시오프 타입의 마스크팩과 여드름 후유증을 리커버해주는 에센스를 구입할 것이다.
화장품 회사에 겨우 돈 몇푼 갖다준 것으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자아존중감을 위해서라면 거울따위 집어던지고 내적으로 충만한 삶을 꾸리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일테다. 근데 그건 뭐 쉬운 일인가. 외모에 신경쓰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으려는 손쉬운,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을 택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