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칼럼]칼럼인지 일기인지 모를 이야기_숨

1.
요즘 나는 집안에 큰 사건이 있어서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있다. 어차피 대출로 다니는 학교라 금전적인 이유는 아니다. 턱없이 부족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가는 시간, 날마다 공부할 시간, 주말에 과제할 시간을 줄인 것이다. 그러고보니 학업에 집중하던 시간의 양이 어마어마 했다는 걸 이제야 알아챈다. 매일같이 부모님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데도 가끔씩 짬을 내서 공연이나 전시도 가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항상 사무실의 할 일이나 공부에 쫓겨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표현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은 어디에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어져서 그렇게 하게되는데, 그로 인해 새롭게 체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 거다. 지난 몇 년 동안 트위터나 온라인 뉴스로 정보를 접하고 그것으로 연대하고 관심있는 영화마저 숙제하듯 해치웠던 것 같은데, 그보다 최근에 사람들을 통해 직접 추천받아 접하는 작품이나 활동이 그 수는 적지만 더 가슴에 생생하고 오래 남는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게 영화 <다이빙벨>을 만났고 예술가들의 행동 <시크릿액션>을 만났다. 기지촌 성매매를 경험한 할머니들의 연극 <숙자이야기>도 그렇고 연극<당신보다>도 그렇게 만날 수 있었다. 감사한 시간이다. 요즘은 새록새록 고마움을 자꾸 느끼고 있다.
 
2.
며칠 전에 본 <당신보다>라는 연극은 통합예술교육공동체 포이에시스의 작품인데 이 공동체는 예술이 삶의 성장과 치유의 자원으로 쓰이도록 연구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이 연극의 부제는 ‘우리 삶에 스며있는 ‘비교’와 ‘경쟁’에 대한 이야기’이고 형식은 관객이 참여하는 실험연극이다.
한 시간이 채 못되게 준비된 연극은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경쟁과 비교를 다루었다. 큰 역사적 사건이나 치열한 정치적 싸움은 없지만 관객들은 대체로 공감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좋은 성적과 별점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아이들, 학벌과 경제적 능력과 번듯한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한탄과 비교를 듣는 딸들의 모습이 나온다.
나의 경우는 집으로부터 그런 종류의 압박과 추궁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내 이야기로 확 와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특별해지고 싶고 유능하려하고 조바심이 나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됐다.
사실 가족관계에서 언니/오빠와 경쟁하려는 마음이 없이 살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혹은 형제들과 경쟁하지 않고 비교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들로부터 초연해지려는 마음은 정말 자유로운 마음일까. 공부나 돈 버는 능력을 가지고 형제들을 줄세우고 비교하는 부모는 아니었지만, 인간의 본능으로서 더 사랑받기 위해 부모 눈에 들만한 요소들을 채우거나 반항하며 알듯 모를듯 스스로를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했을지도 모른다.
 
3.
사실 이 연극에서 경쟁과 비교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기는 하지만 실제 관객의 참여로 드러난 것은 가족이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누고자 하는 욕구들이다. 무대에 나온 관객들은 자식들을 줄 세우거나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라고 하는 엄마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고 싶어했고, 성적의 압박을 느끼는 자식으로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잠깐 경이롭기도 했던가, 눈물도 났던가. 암튼 다시 나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었나? 그러지 못했다. 어떤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어떤 감정은 억압되기도 했고 부적절하게 표현되기도 했으며 부모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 표현에 대해서는 나 또한 서툴었던 것 같다. 내가 감추고 억눌렀던 감정들이 무엇인지 몰랐다면 이제라도 아기처럼 새로 알아차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그래, 윤숙아~!" 순간 울컥하고 올라오는 내 감정에 스스로 너무 놀랐다. 아버지에게 평생 그토록 바랐던 게 고작 이거였다니.. 나도 처음으로 "아빠~"라고 '막내딸(!)'답게 화답했다. 처음으로 손도 잡아 본다. 순간순간이 새롭다. 아빠도 나도 아기가 되었다. 

– 숨s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