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코로나19로 4개월 여만에 이태원 아웃리치를 다녀왔습니다. 이번달 물품으로는 추석 기념으로 준비한 홍삼을 전달하였고,  이브에서 콘돔과 젤을 후원해주셔서 함께 전달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이번달 아웃리치에는 불량언니작업장 운영에 함께하고 있는 판이가  동행하였고, 정성스러운 후기를 남겨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10.15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_판이 

 

지난해부터 불량언니작업장을 통해 언니들과 이룸을 가까이 접하고 부대끼며 지낸다. 사실 내게 불량언니작업장 분들은 그저 ‘언니’(또는 참여자)라 부르는 사람으로 만났기에, 어떤 범주화를 할 일도 없다- 고 여겼다. 그런데 함께하는 프로그램 때 필요한 간식이나 물품을 나눠드리다가, 누군가 내 보기에 지나친 요구를 한다 싶었을 때 순간 욱하는 감정이 솟은 순간을 생각하며, 난 범주화하지 않은 게 전혀 아니며 이 태도도 시혜적인 건 아닐까, 검열도 생겼다.

이태원은 친구 따라 소비자로 놀러만 가본 동네다. 클럽 가서 춤추고, 여러 피부색과 성별이 편안히 어울리는 분위기에서 해외여행이라도 온 기분으로 해방감을 누리며 내가 춤추기도 놀기도 좋아하는구나! 흥이 많네- 하며 신나 노는 곳. 화려한 포장으로 다 못 덮는 허름한 오랜 골목이 정감과 운치로 다가오는 곳. 여기에 아웃리치라는 것도, 말로만 듣던 언덕을 속속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다녀 보기도 처음이다. 나는 어쩌면 범주화를 않기는커녕 아주 크게 (사실 매우 정교하게) 나뉜 구획에 따라 어떤 세계는 외면만 하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준비와 출발

사무실에는 아웃리치 며칠 전부터 물품과 제작 완료된 <별별신문>이 속속 도착했고, 우리는 물품을 포장하며 ‘코로나 블루’ 설명과 상담 소개가 담긴 신문을 길벗체의 트랜스젠더 인권 실태 조사 설문과 QR코드가 눈에 잘 띄게 접고 오랜만의 추석 이후 방문이라며 홍삼액, 콘돔, 젤 등을 챙겨 넣었다. 평소 사무실에 가끔 보이던 이런저런 물품 – 비타민, 녹차 캔, 숙취환 등 – 이 이렇게 아웃리치를 다녀온 것들이구나. 물품 포장이 끝나고 짬을 내 첫 아웃리치 오리엔테이션으로 차차가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해준다(길치로서 흰 데는 종이요 검은 데는 길인가 하면서도; 나름 열심히 파악하려 해보았다). 저녁을 먹고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여기서 이렇게 언덕을 올라가 돌고, 딴 팀은 저쪽으로 간다. 각자 돌고 여기서 만나 평가회의를 하고 헤어진단다. 나는 기지촌 역사가 묻은 좀 더 오랜 쪽을 택했다. ‘후커힐’ ‘양키바’들이라 했다.

 

정신이 하나 없는 낯섦, 왜일까

영등포 롯데백화점 뒤쪽에 살던 때, 낮엔 분명 철물점 같은 가게였던 곳들에서 밤에는 하나둘씩 붉은 등을 켜놓고 추운데 나와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언니들을 보고 놀라고 낯설어서 피해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어쨌든 그뿐이었고, 최근엔 ‘유흥업소가 치킨집보다 많아? 아니 잠깐만?’ 하며 새삼 매번 남 얘기처럼 듣던 게 전부다. 평소 불량언니작업장 언니들과는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뭔가를 만들거나 배우기만도 바빠서, 그들의 말에서 가끔 옛 얘기나 서로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삶의 다른 영역들을 주워 듣는 정도였을 뿐이다. 성매매라는 영역 자체가 이미 매우 넓은 범위에 미치니, 그 방대한 내용을 모두 될수록 외면하고 피하며 살아온 듯하다. 나를 강제추행한 출판계 선배가 허물없는 지인에게 ‘정말, 취해서 진짜 기억이 안 나. 목격자가 그렇다니 인정한 건데. 아마 어디 룸이라 착각하고 나도 모르게 그랬을진 모르지’라 남 말하듯한 얘길 전해 듣고서도. 그렇게 성매매 사회가 공기, 물, ‘치킨’처럼 내 몸을 들락거리고 피부에 저온화상 입히듯 켜켜이 생채기를 새겨 왔는데도.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되는 건 그만큼 이날의 기억이 강렬하게 낯설었기 때문이다. ‘후커힐’ ‘양키바’를 돌며 겪은 얼떨떨함, 정신이 한 개도 없는 이 낯섦은 성산업 현장에 있는 당사자를 직접 가까이 한꺼번에 만나서였을까, ‘일반인’과 다른 외모 꾸밈 때문인가, 아니면 평소 둘레선 잘 못 보던, 특정 방식으로 드러난 어떤 ‘퀴어함’에 대한 문화적 낯섦이었을까? 그 모두일까? 이 물음이 남아 있다.

낯가림과 긴장에 나도 모르게, 그리고 한편 아무튼 일하고 있는 그들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도, 왠지 모를 존경심과 거리감에 정중하게 꾸벅꾸벅 인사만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다 마침 정중히 허리를 숙인 대상 중엔 가게 문을 막 나서던 구매자도 있던 듯하지만(또는 웨이터였는지도, 또는 조금 다른 외모, 복장, 꾸밈의 종사자인가?! 당최 누가 무슨 역할(?)인지 전혀 모르겠기도 하다…). ‘언니’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는진 몰라도 ‘잘돼야 할 텐데- 아무리 나라에서 돈 준대도 그게 뭐 얼마나 나오겠어’ 하시는데, 서로가 서로를 짠하게 여기며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구매자에게까지 잘 보이려 한 걸까 싶기도 하다.

처음이니 당연히 낯설겠지만, 왜 이렇게 얼떨떨할지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내 머릿속 ‘아웃리치’의 상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집결지 같은 구조(오피스텔 같은 덴 이런 형태의 아웃리치는 할 수 없을 테니? 무작정 찾아갈 수 있다는 자체가 일종의 집결지 구조라 상상한 듯하다)에서, 업주/포주/삼촌/마담 눈을 피해 ‘이런 데가 있다’(속닥속닥)고 상담소를 소개하거나 몰래 슬슬 친해지는 모양을 상상했나 싶다. 그러고 보면 잠깐만 생각해봐도 이렇게 삼삼오오 모여 선물 짐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서로 긴밀히 대화하고 한쪽에서 계속 받아 기록하고…; 이런 집단이 더구나 눈치 빤한 업주들의 눈길을 피한다는 상상은 애초 말도 안 됐다. 아무튼 실제 보고 겪은 일은, 작은 가게들은 영세자영업자(1인출판사처럼)로 기껏해야 두엇 고용한 정도고, 중간 작은 덴 동네 사랑방같이 다들 모여 손님 없이도 서로 챙기고 차 마시며 얘기 나누고 쉬는 곳이었고, 아예 큰 곳은 번쩍거리는 외양으로 임대 유지비나 그로 인한 종사자에 대한 압박이 엄청날 것만 같은 곳이었다. 어떤 형태든 누군가의 눈을 피해 상담소 활동가들과 말이나 눈짓이라도 섞는다거나 친해진다는 건 더욱 어려워 보였다. 아니 업주와 종사자 사이의 구분도 점점 더 모호할 것이다(이미 여러 다른 산업의 사업장들이 그렇듯). 결국 활동가들 설명처럼 업주를 통해야 ‘언니’들을 처음 접하고 만날 수 있는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다.

 

시공간, 문화, 정치 겹겹의 결 어디쯤에 길을 잃은 듯한데, 그래도 함께

활동가들은 직접 만나 대화한 사람, 가게에 있던 인원과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선물을 드리고, 나는 그 사이 두리번거리며 따닥따닥 붙은 이 가게가 저 가게 같고, 저 언니가 이 언니 같고, 우리를 알아보고 여기도 오라며 부르러 나온 언니가 다른 가게에서 나왔다고 착각하고(우기고;;), 당최 정신을 못 차리겠어서 오늘은 그저 수레나 열심히 끌자 싶었다. 활동가들은 이렇게 만난 언니들 중에서 연결된 경우 이후 상담을 진행하고 의료나 법률 지원을 위해 동행도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지원받는 데 여러모로 불안하거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의 걱정과 번복도 그들의 상담 맥락과 함께 얹혀 오는 것이었다. 그날 잠시나마 목격한 그들의 표정, 그 표정들이 움직이는 가게, 그 가게들이 놓인 언덕길 골목, 그 골목이 놓인 이태원, 그 일대가 그렇게 겹겹의 모양들이 쌓인 곳으로 다르게 보였다.

코로나로 영업시간이 짧아진 카페에 둘러앉아 주어진 시간에 급 평가회의로 그날의 일을 나누고 다들 나와 둘러서서 난 얼떨떨한 채 소감을 얘기하고, 남은 이 두엇이 나머지 큰 가게에 들렀는데, 언니들 반응이 폭발적이라 놀랐다. 그 언니들 중에도 ‘막내’ 같은, 이 가게에 온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낯섦이 티 나는 언니가 있고, 자기 공간처럼 편안히 활개 치는 언니가 있다. 언덕 위에서 우리에게 커피 마시고 가라며 불러앉혀 출근 간식 바나나를 건네는 왕언니가 있고, 미세한 끄덕임과 단답형 외엔 한마디도 먼저 입 열어 말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언니가 있었듯이. 저들 사이 관계는 아마도 고용-피고용 아니면 을이 일해 번 돈을 갑이 자리세 또는 관리비로 걷는 관계겠지(그 갑도 또 다른 갑을 위치에선 다를 수 있고).

이 산업을 구조적으로 비판하고 바꾸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활동하는 것과 이들이 생계를 위한 노동과 생활 속에서 ‘코로나블루가 그런 거구나, 손님 없어 우울하지 뭐’, ‘손님이 와야 콘돔을 쓰지!’라 하는 말에 공감하는 그 사이 어딘가쯤, 그리고 이 장면이 일어나는 언덕 위의 허름한 가게들과 언덕 아래 화려한 네온사인 빛과 큰 음악소리를 뿜는 가게들, 그리고 내가 불금이라며 친구랑 놀러 갔던 클럽과 커다란 공사장의 가림막과 거기 붙은 ‘클린 이태원’이라는 말과, 검색으로 그 말이 코로나 방역에 관한 얘기라는 걸 알게 되기 직전까지 마치 ‘성매매’나 ‘유해 업소’를 ‘청소’하듯 갈아엎겠다는 뜻은 아닌가 멈칫했던 나(는 유해 업소 지정 골목, 18시 이후 청소년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한복판의 중학교를 나왔다). 이 사이 어딘가에서 마음이 떠돌며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붕 뜬 채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 마음을 들여다보려, 사람들과 헤어지고도 삼십 분 넘게 근처를 서성였다. 여전히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그 가게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 낯선 우리가 커피 마시고 나가기를 기다리는 듯, 넉살 좋은 마담(왕언니)과 눈 마주치지 않던 ‘언니’의 마음도 그랬을까? 손님도 아닌 것이 돈 벌어다 주지도 않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적응중인 일터에 불쑥 노크해 고용주의 환대와 알은척부터 받으며, 준비되지 않은 ‘낯섦’을 던져놓고 마음을 부대끼거나 귀찮게 하고 나온 역할이 된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을 감당하면서 꾸준히 지속하는 아웃리치라는 건 그래도 어떤 상황과 시점에서인가는 한번쯤 떠올리고 노크할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고 이어지는 것이겠지?

당사자가 있는 현장에 찾아가 만난다 함은 그의 세계 – 지리, 역사, 정치, 문화적 맥락 – 속에 놓인 그를 만나는 일이구나. 거기엔 놓을 수 없는 끈 같은 동료, 반려동물, 손님(구매자, 잠재적 구매자), 아주 밀착된 고용주가 함께 있으며, 그들이 함께 엮어 만드는 흐름과 변수들이 있다. 그 흐름의 한 물살을 가르고 들어가 또 다른 흐름과 변수를, 웃으며, 원칙대로 꿋꿋이 하나씩 나눠주고 설명하고 인사하고 잊지 않고 안부 묻고 거듭 당부하고 물음에 답하고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가 사라지지 않고 다음에 올 때까지 남아 있길 바라며, 맘을 전하고 놓고 오는 일. 그게 처음 한번 함께한 이로서 어렴풋이 느끼는 아웃리치의 의미였던 듯하다.

 

작은 언덕 골목 아래 거대 공사장 현장에 붙은 지자체 측의 축제 홍보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 말하는 어르신에 불량언니작업장 언니들과 같은 사람은 안들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