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 3탄_“쉬워 보이는 사람들만 쉽게 처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_역사 연구자 장원아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현실을 참을 수 없다! 뭐라도 해보자!” 는 마음으로 2020년 4월, 성매매 여성 불처벌 팀은 만났습니다. 불처벌팀은 3개의 팀으로 나누어 팀마다 논의를 발전시켜나갔고, 팀에서 발굴한 쟁점은 다시 전체 토론으로 풍성해졌습니다. 1팀은 <여성 처벌의 역사>를, 2팀은 <성판매 여성이 사법적/사회적으로 처벌받는 현실>을, 3팀은 <국내 논의 정리 및 해외 사례 비교분석>을 주제로 자료를 읽고, 쓰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매매 여성 불처벌은 무척 많은 쟁점을 안고 있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법에 대해 고민하되, 사유의 범위를 법으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룸은 최대한 넓게 펼친 문제의식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10월부터 매달 1편씩 발행되는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는 성매매 여성 불처벌을 고민할 때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통해 더 많은 분과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읽은 후, 또는 읽기 전 <불처벌: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선언>(휴머니스트, 2022)책을 같이 읽는다면 인터뷰와 책의 내용이 더욱 풍성하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성매매 여성 불처벌을 향한 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성매매 여성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 3탄_“쉬워 보이는 사람들만 쉽게 처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이: 장원아(역사문제연구소)

인터뷰어: 이룸

역사문제연구소와 이룸의 인연을 만들어준 장본인! 핵심인물! 바로 원아님 입니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역사문제연구소의 동네 역사 탐방 사업을 하면서, 청량리 집결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다는 문제의식으로 이룸에 손을 건네주었지요. 그렇게 만나 우리는 <청량리>라는 소중한 책을 함께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룸은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면 성매매 여성을 처벌해온 지금까지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르딕 모델’은 한국의 성매매 산업 역사와 전혀 다른, 북유럽 국가의 성매매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모델이지요. 그렇다면 한국식, 한국적인 성매매 법정책을 어떻게 고안해야 할까요? 원아님은 인터뷰를 하며 국경 안의 산업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성매매 산업의 흐름 안에서 한국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성매매의 흐름을 함께 볼 필요를 중요하게 제기해주었습니다.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워서 더 많은 자리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심화된 이야기를 나누어야하겠지만 한국 성매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창/사창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민도 살짝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같이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네요. 이 복잡한 세계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순서]

1. 배제된 역사에 대한 관심

2. 성매매문제를 한국의 맥락에서 역사적으로 본다는 것

3. 위안부, 기지촌, 성매매

4. 코리안 모델을 찾아서: 현지화 혹은 내셔널리즘

5. 불처벌 세미나: 회색지대는 중요한 입장

6. ‘우리’는 누구인가?

1. 배제된 역사에 대한 관심

장원아: 저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룸과 만난, 한국근대사 전공자입니다. 현재는 근대 인신매매를 둘러싼 제도와 담론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어요.

이룸: 석사 논문부터(1920년대 보천교(普天敎)의 활동과 조선사회의 대응, 장원아, 2013)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해오셨는데, 현재 성매매나 인신매매 문제 쪽으로 틀어서 보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장원아: 계기는 <청량리>(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회, 2019) 작업인 것 같아요. 그 전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이걸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 고민도 되었고요.  깊게 들어갈수록 어려운 길이라는 걸 깨닫는 중입니다. 저는 일제 식민지 시기를 전공하고 있는데요, 근현대사를 거쳐 사실 지금 한국 사회에 식민지기에 그렇게나 비판했던 일종의 ‘제국’의 권력구조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이주자 문제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공동체에서 한국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상상해나가게 될까 질문하는 중이에요.

그 질문과 연결해서 지금까지 역사라고 이야기해왔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계속 관심을 갖고 있어요.

어떻게 이룸과 만나게 되었나부터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역사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시절에 일하기 시작하자마자 2016년에 제기동 답사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연구소가 제기동으로 몇 년 전에 이사했거든요. 답사는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살펴보는 건데, 역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기도 해요. 그래서 새로 이사온 제기동 주변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선농단도 있고 근현대사로 보면 구 성동역, 약령시, 청계천 지류에 늘어섰던 판잣집이나 주택사업 등등과 함께 당연히 바로 옆의 청량리 시장과 성매매집결지가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청량리는 답사에서는 빠졌어요. 행정구역이 제기동이 아니기 때문이죠. 제기동의 경계선이 청량리 집결지 딱 바로 건너편으로 지나가서 동이 갈려요. 그런데 사실 그 경계는 행정적으로 그은 것이잖아요. 실제 생활에서는 바로 부대끼는 공간이죠. 어찌보면 국가가, 권력이 그은 행정구역 선인데, 그걸 기준으로 분리해서 역사를 생각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죠. 그래서 그 때 청량리집결지가 제기동이 아니어서 고려를 안해도 되니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웃음) 제기동이었으면 어땠을까? 이걸 답사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나? 안 다루는 것도 문제고 쉽게 다루는 것도 문제다 라는 고민을 했어요. 바로 곁의 공간인데 분리된 공간. 공간에 대한 역사화의 기준. 그런 문제의식에 관심을 가졌어요. 나중에 불처벌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좀 들어갔죠.

그때 <일다>에 실린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관련 기사를 봤어요. (https://www.ildaro.com/7587) 정말 실시간으로 재개발 진행이 되고 있던거죠. 그래서 간담회를 기획해서 이룸에 강연을 부탁드렸습니다.

<이룸과 처음 만난 2017년 인권간담회 포스터>

그후에는 이룸에서 손을 내밀어주셨던 것 같아요. <청량리> 구술작업 들어가기 전의 일인데요. 이룸에서 불량언니 작업장 언니들과 <아이캔스피크> 영화를 보고 역사문제연구소에 와서, 제게 따로 일본군 ‘위안부’ 관련해서 설명을 해달라고 하셨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냥 개괄적인 설명을 준비했었는데요. 그때 언니 중 한 분이 “우리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 갖지 않을거야”라고 하셨어요. 그때 제가 처음으로 제 전공과 관련해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갖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위안부’문제가 도드라져 있는데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요.

이룸: 원아님의 문제 의식이 이어지는 거 같아요. 역사라고 불리는 큰 물줄기 속에서 어떤 경험들이 이야기되지 않거나 누락되어 왔는가, 누락된 존재, 경험을 하나하나 발굴하시는 느낌?

장원아: 역사라고 이야기해왔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크게 연결이 되긴 해요. 사이비종교라고 욕 먹었던 사람들도 그렇고, 성매매 관련 이슈도 그렇고요.

이룸: <청량리>에서는 청량리집결지의 행위자들, 주변공간이라 여겨지는 파트를 쓰셨는데 그 과정이 어떤 경험이었나요?

장원아: 같이 글을 쓰고 검토한다는게 연구자들에게도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왜냐면 공동연구를 하더라도 각자의 글은 자기 것이고 자기가 지고가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터치를 안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각자 몫이니까. 어떻게 보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게 있는데, 이 작업을 할 때는 넷이서 아주 뜨겁게 (웃음) 아니, 학계에 아마 80년대나 90년대 초까지는 토론하고 싸우는 문화가 있었던 거 같은데, 21세기를 사는 제가 이렇게 싸우다니 80년대인가? 이러면서 썼거든요.(웃음) 이렇게 공동작업을 하는구나. 연구자들이 서로 터치를 못하는 현실이 있는데 이룸 활동가들과 함께 공동작업물로 책을 쓰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연루가 되고 서로 비판하고 싸우고 설득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좋았어요. (웃음)

<청량리>에서 주변공간에 대해서 볼 때 그 일대가 성산업 경제로 굴러간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꼭 성매매여성이나 업주가 아니라도 주변의 구멍가게들도 전부 연결이 되잖아요. 주로 1960, 70년대 이후가 대상이 되니까 근대사 전공인 저로서는 당연히 과거가 궁금해졌고, 아쉬웠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충분히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2018년 11월 청량리 북토크>

2. 성매매를 한국의 맥락에서 역사적으로 본다는 것

이룸: 성매매문제를 역사적으로 본다는 것이 이룸 불처벌 팀의 특징이기도 했는데,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원아: 성매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성매매여성은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라는 식의 설명이 많은데요. 그런 식의 설명은 성매매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만든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근현대사 연구자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근대국가가 성매매에 개입해서 정책적으로 제도화를 시켰다는 것의 의미를 잘 의식하고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현재의 성매매 문제는, 유사 이래 늘 있던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 현재까지 이어오는 법제도의 문제라는 것으로 구분해서 들어가야 하구요.

저는 역사와 역사학을 구분을 해서, 역사를 다루는 것은 모든 학문의 공통분모이고 모든 연구에서 당연히 배경으로 다루죠. 그런데 여성학이나 사회과학 연구에서 역사는 주로 전사로 들어가고 서구 주로 영미권의 이론틀을 가져와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고 한국의 맥락과 상황에 적용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런 접근법도 유용하지만, 성매매 문제의 경우 19세기말부터 층층이 쌓여있어서, 진득하게 짚어보며 한국의 맥락을 살피는 작업이 문제를 인식할 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00년대에 호주제 폐지가 되었잖아요. 가족법 개정운동. 그때도 역사적으로 쭉 얼키고 쌓인 것들을 보는 접근방식이 중요했는데 그때는 고려 조선시대부터 역사를 짚으면서 들어갔어요. 한국사회가 워낙 빨리 바뀌고 새로 생겨난 문제가 워낙 많다보니 다른 이슈들, 여성 문제 같은 경우에 그런 역사를 짚는 접근방식이 오히려 낯설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역사학적 특징이라면 당대에 대한 최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강조하는데, 성매매문제만 따로 떼어 볼 수도 없는 거죠. 당시 시대를 아우르는 제반 구조들과의 연결지점을 보는데 좀더 도움이 된다면 좋겠구요.

특히 성매매문제에서는 법제나 담론이나 현상도 계속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역사를 보는게 다시 중요해질 텐데요. 그리고 그 시작지점에 문제의 일제 하 공창제가 있지요. 그런데 보통 일제시기 성매매 하면 공창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그 시기에 사창이 훨씬 더 많았거든요. 지금 제가 글을 쓰면서는 전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부러 성산업이라는 표현으로 아우르려 하고 있어요. 물론 기존 연구자들도 공창과 사창을 함께 이야기했지만, 공창제가 강조되니까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크게 남는 효과가 발생한 거 아닌가 생각을 해요.

인신매매와 공창제, 성매매 문제를 함께 보는 이유는, 근대 공창제를 실시하면서 인신매매를 금지한다고 한 정책 및 제도의 모순 때문인데요. 19세기 말에 일본 정부에서 ‘창기해방령’을 공포해서 에도시대부터 있었던 창기를 해방하고 인신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인신매매는 금지했는데 전차금, 즉 부채를 변제할 의무는 계속 있다, 그 빚을 갚기 전까지는 인신을 구속할 있다, 라는 모순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대체 인신매매를 무엇이라고 정의했던 것이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이런 방식이 그 후에도 이어지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당시 일본정부가 인신매매는 없다고 주장한 것이지만 실제로 공창이든 사창이든 간에 빚을 매개로 해서 여성이 유입되는 방식은 있었던 것이고요. 여기에 대해서 당시에도 국제사회 기준이라던가 여러가지 비판이나 운동이 일어났어요.

인신매매는 없다고 하지만, 공창 및 국가가 묵인하는 사창은 있고, 그게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었고, 일본 본국 및 조선과 같은 식민지에서 시행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해방 후에 공창제는 일제가 남긴 폐습으로 상징적으로 가장 크게 비판을 받으면서 폐지가 되었지만, 공창제라는 것만 사라졌을 뿐, 성매매가 그 후에 사라졌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가 모두 개혁이 되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잖아요. 한국현대사의 이른바 발전 도상에서, 그리고 그 안의 가족의 생존을 위해 여성들이 맺는 관계 속에서 성산업이라는게 기능을 해왔고 그 유산 이래 현재가 있는데요.

성산업이 한국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나. 냉전을 겪으면서 기지촌 경제가 수행한 역할, 그게 사실 한국 경제의 기반에서 하나의 역할을 한 것이잖아요. 지금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랑하는 상황인데 거기에는 과연 어떤 역할들이 있었고 그게 언급되지 않았나. 성매매 관련 경제는 어떻게 현재와 연결되어 있나. 식민지 역사와 그 후의 역사, 현재까지가 이렇게 연결이 된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성매매 현상의 맥락을 파악, 직시하는데 시작일 것 같아요.

이룸: 식민지나 전쟁을 경험한 나라의 성매매라는 것, 식민지였던 곳의 성매매는 어떤 식으로 역사적인 걸 밟아온 걸까요. 태국이나 베트남처럼 전쟁을 겪고 그 속에서 여성이 거래되는 양상이 있었던 나라와 한국이 유사하지 않을까요?

장원아: 연구주제를 주시는데요(웃음). 지금 이야기되는 노르딕모델의 역사적 배경을 거슬러올라가보면 20세기 초반에 백인여성의 국제적 인신매매가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것이 있는데요. 그런데 이때 처음에 백인 여성만 문제를 삼았어요. 백인이 아닌, 식민지였던 지역의 여성은 보호대상이 아니었던 거죠. 그러니까 이런 식민지 경험의 문제와 인종의 문제도 좀더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유럽이나 영미권의 경험과 다른 맥락이 있기 때문에요.

특히 탈식민 후에도 전쟁을 겪고 군사기지가 존재한 경우는 성매매는 정책적으로 관리대상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런 배경들을 짚어나갈 필요가 있을 거예요. 세계대전 이후에 직접 전쟁을 겪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차이도 그렇고요. 전쟁의 작동 원리 자체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나누고 위계화하는 성차별주의가 자리하고 있는 분석(베티 리어든, 황미요조 옮김,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나무연필, 2020)이 생각이 나는데요. 군사주의와 전쟁을 수행하는 이른바 비장애 남성 주체의 형성 속에서 그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장치로서의 성매매 산업이 정당화되는 논리가 만들어져 왔고 현재도 그러한 거 같아요. 미군기지의 존재 경우는 태국이나 필리핀, 오키나와 등의 기지촌 성매매도 많이 연구가 되는 거 같구요.

3. 위안부, 기지촌, 성매매

이룸: 최근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성매매 문제와는 어떻게 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장원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부터 문제제기되었는데 역사학 안에서는 학제 안에서 잘 다루지 않았어요. 사실 역사를 전공하면서 여성사 관련해서는 수업으로 배운 일이 없고, 오히려 교양과목에서는 다루지만 전공수업에서는 할게 너무 많으니까 부차화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요즘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랬구요. 아무튼 제가 수료 후에 강의를 운좋게 하게 되면서,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엄청나게 복잡한 연구영역인 거예요.

위안부 이슈가 2015년 말에 한일 합의1 때문에 대중적으로 지지를 받는 운동이 됐었잖아요. 그러면서 대중의 지지를 많이 받는 운동이라는 생각에, 나까지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2020년에 위안부 운동이 두들겨 맞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쟁점도 참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후 ‘위안부’는 성매매 여성이었다고 주장한 램지어 사태가 있었잖아요. 2. 여성의 자발적 선택,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주장과 그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이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중의 지지를 좀더 얘기해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지지에는 2015년 이후의 상황은 특히 여성에게는 여성문제로서 동일성의 정치학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가는. 그게 어떤 성격일까 고민이 되었는데, 제가 그때 여대에서 여성사 수업을 강의한적 있었는데 그 때 ‘위안부’ 주제에 수강생들이 가장 엄청 집중해서 듣는 거예요. 이렇게 관심을 적극적으로 갖는 이유는 뭘까 하고 물으니까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들었어요.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고요. 그런데 저는 학생들이 ‘위안부’ 이슈를 자기 이야기로서 생각하는 것에 일견 공감이 가면서도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에 ‘위안부 여성들이 성매매여성이었다고 한다면, 이 동일시가 이어질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실제로 위안부 문제를 사소화시키는데 그런 전략이 들어가고 있잖아요.

사실 성산업 종사 여성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본국의 책임은 희석되지 않아요. 동원하고 이송하고 관리운영한 국가 제도의 책임, 위안소 내 폭력도 그렇고 그 문제가 핵심이 아닌데, 그럼에도 동의의 문제 여부에 따라서 마치 문제가 문제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여성을 피해자다운 피해자와 자발적 선택자로 구분짓고 있는거죠. 피해자 중에 기생이었던 경우도 있고, 해방 후에 요정에서 일한다거나 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아예 못하게 되어버리는 거예요. 최근에야 조금씩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방식 속에서 구성된 사회적 지지의 성격은, 여성을 동일한 선상에 놓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구분짓고 위계를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걸 알아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다른 분들이 작년부터 하고 계신 거 같아요. 많은 연구자가 하고 계시고, 저도 생각할 점이 많았어요.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내 딸, 누이로 호명하는 민족주의적인 사고를 하다가 ‘성판매 여성이었다’ 라고 한다면 다른 관점을 갖게되는 것 같은 흐름들이 있는 거 같아요.

이룸: 이게 나와 상관없는 과거 문제라고 볼 때와, 이 과거문제를 현재와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할 때 반응이 달라질 거 같아요. 동시대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자기가 갖고 있는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니까.

장원아: 저는 ‘위안부’ 강의를 할 때 일본군‘위안부’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운영한 한국군‘위안부’, 그리고 미군 기지촌 여성,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학살과 성폭력 문제, 최근의 이주여성 성매매 등까지 같이 짜서 수업을 하곤 했는데요. 토론을 같이 하는데, 강의실이 또다른 전쟁터였어요. 특히 남녀공학 강의실은요. 한국전쟁 때 한국군‘위안부’경우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고 충격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긴 한데, 기지촌 여성의 경우는 성판매이고 돈을 그렇게 벌었으니 우리가 굳이 공부하고 연구하거나 국가가 배상할 이유가 있느냐는 토론도 나오고. 불처벌팀에서 이야기했던, ‘동의’의 문제가 핵심 같다는 생각도 강의실 토론을 통해서 고민하게 되었던 건데, ‘자발적 선택이다’, ‘동의’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더라고요.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에 실린 글,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전 문제의 접점>

이룸: 그러면 학생들이 일본군‘위안부’과 기지촌 여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장원아: 네. 기지촌여성은 성판매 여성이니까 피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거죠. 아무리 국가에서 배상3을 해도, 그건 가까운 과거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혹은 한국, 한국사회가 피해자 입장만이 아니라 가해에 책임이 있다는 것에 대한 반발감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토론 그룹에 따라서는 성매매가 불법인게 이상하다, 합법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난 적도 있는데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미 성매매가 사회에 만연하고 주변에서 보고들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매매가 불법인데 왜 만연해 있지? 왜 이런 기만이 당연한 거지? 그러면 양성화, 합법화하자’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거죠. 그래서 지금처럼 사회가 성매매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이걸 세대를 거듭해서 당연시하는게, 앞으로 또 어떤 문제로 이어질까 고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4. 코리안 모델을 찾아서: 현지화 혹은 내셔널리즘

이룸: 성매매여성불처벌 팀에서 이룸이 ‘코리안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단어를 듣고 어땠어요?

장원아: 제가 민족주의 비판 논쟁을 접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세대거든요. 그래서 코리안 모델 하면 민족주의적인데? K-모델? 국뽕? 이런 생각이 자동으로 드는 거예요. (웃음) 이룸에서 한국적 맥락을 말씀하시는게 신기하기도 했어요. 근데 최근에는 너무 답습적으로 처음 공부 시작할 때 접한대로 내셔널리즘 비판을 해왔던거 아닌가 요새 생각을 해서. 외국 상황을 적용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거니까 지금 여기 맥락에서 역사와 구체적 변천과, 결코 짧지 않았던 논쟁과, 치열했던 고민들을 배경으로 코리안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디 출마하는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한국의 성매매가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점을 더 많이 나누고, 심화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성매매여성 불처벌이 실행되고, 한국에서 성구매하기 어려우면, 사실 원정 성구매하면 되잖아요. 전세계가 연결되어 있고 한국에서 얼마든지 이미 나가고 또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민들도 같이 하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너무 오랫동안 한국이라는 경계 속에서만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런 시선의 고민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리안 모델이라는 말을 쓸거면 그 이야기를 안 하면 안될 거라고 생각해요. 코리안 모델이라면 한국의 정책변화가 목표가 될텐데 성매매여성을 시민으로 호출한다고 할 때, 대한민국 시민이 아닌 이들은, 예컨대 이주여성은, ‘불법’으로 불려지는 자들은, 어떻게 포괄할 수 있을지 한국사회는 어떤 책임이 있는지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흠… 해외 성구매.. 홈페이지.. 너무 쉽게 찾아졌어요>

5. 불처벌 세미나: 회색지대는 중요한 입장

이룸: 불처벌팀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토론도 했는데요. 어떠셨어요?

장원아: 같이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어요. 성매매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으니까  관련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았죠. 그리고 <청량리> 작업 때 남아있던 아쉬움을 돌파를 하고 싶었어요. 성매매와 성노동에 대해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양자의 경합 중에서도 나의 포지션이 뭘까 생각했어요. 이 상황을 좀 돌파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성매매를 고민하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 좋겠다는 기대를 했죠.

불처벌팀에서 공부하면서 제가 일단 한가지 중심을 잡았던 점은 성산업에 대한 입장이었어요. 성산업이 만들어내는 남성성 및 성구매 문화의 문제점, 현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 전제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불처벌팀 안에서 다른 의견 지점들을 볼 수 있었던 여성 불처벌 MBTI(불처벌세미나 참여자들은 “여성불처벌 MBTI”라는 주제로 각자 성매매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정치적 입장, 고민을 정리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시간 역시 기억에 남는데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다들 고민하고 있고 이렇게 고민이 다양하구나. 어느 한쪽으로 답을 내릴 필요가 없겠구나. 답은 양쪽 중 하나에 있는게 아니라, 다른 지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루머들이 이룸이 성매매 인식의 회색지대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회색으로 있는 상태로 고민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이룸: 이룸의 정치와 활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에서 ‘회색지대’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저는 회색지대라는 말이 중요한 입장이라고 이해했어요. 아마도 그 배경에는 제가 한국근대사 연구자라는 경험이 있는 거 같아요.

일제 식민지기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회색지대’라는 입장이 나온 책(윤해동, <식민지의 회색지대>, 역사비평사, 2003)과 논쟁이 있거든요. 이런 설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짧게 말씀드리면 (웃음) 식민지기 역사의 해석방식에 대해, 식민지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양 입장이 오랫동안 각축하면서 논쟁이 되어왔어요. 식민지수탈론은 식민지를 피해와 수탈의 역사로, 식민지근대화론은 식민지를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한 역사로 이해하자고 주장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 둘 다다. 어느 한쪽만 아니라 둘 다 같이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게, 식민지성과 근대성 양자를 함께 보자는게 식민지근대성론이라고 20년 전에 나왔어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식민지 역사에 수탈과 근대화가 섞여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식민지 인식의 회색지대와 같은 분석 등이 2000년대 들어 식민지근대성론을 통해 나오면서, 여기에는 근대성이나 근대화라는 것을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아무튼 논쟁이 학문적으로는 정리가 되고 담론이 전환이 되면서, 그후에 여러 전공에서 수많은 연구가 분출한 거죠.

그래서 저는 제 공부 베이스에서 그 회색지대 이야기를 너무 계속 많이 듣고 고민해 왔기에, 이룸이 ‘성매매 인식의 회색지대’라는 걸 긍정적으로 중요하게 생각을 했어요. (웃음) 저만 그런 건가, 아마 이건 제가 한국근대사 전공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꺼예요. 아무튼 이룸의 회색지대론(?)도 이 논쟁을 어떻게든 정리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입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양극단으로 갈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 어느 하나만 정답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극단을 해소하면서 담론을 전개해나간 논쟁의 역사가 있어 왔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해요.

6. ‘우리’는 누구인가?

이룸: 많은 경우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면, 성매매 여성에게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사회는 모두에게 좋은 사회이지 않을까요?

장원아: 제가 고민하는 질문 중 하나가 과연 ‘우리’가 ‘우리’를 상상할 수가 있을까? 어떤 ‘우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예요. 여러 활동의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예를들어 여성운동은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가 같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공동의 문제로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문제제기를 해왔다고 생각해요. 우리 안의 차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시끄러워질 것은 아마 당연하겠죠. 그런데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낙인과 처벌을 기반으로 해서 사회 공동체가 유지되고 돌아간다면, 성매매 여성과 성매매여성이 아닌 여성 간의 차이를 만들어야 유지가 되는 공동체라면, ‘우리’는 공동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구별과 위계를 만들고 누군가 하등한 존재로 만들고 낙인찍음으로써 유지되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인데, 물론 굳이 ‘우리’라는 집단의 상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겠죠.

잘못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하는게 어떤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성매매 여성이 과연 제일 잘못한 사람일까요?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정말 잘못한 자들은 현재 감춰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이익을 취하면서 처벌도 받지 않고 있는가? 여성을 처벌하는게 아니라 성매매라는 사회적 현상의 배경에서 그 구조를 쥐고 있는, 그걸 만들어내는 이들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나? 알선자 처벌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이 산업을 통해서 이익을 얻고 있는 자들에 대한 책임 묻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딱 쉬워 보이는 사람들만 쉽게 처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1. 2015년 한일외교장관회담을 통해 진행된 한일 ‘위안부’합의.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지원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107억원)을 출연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하기로 합의한 사건으로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합의 내용으로 인해 거센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참고: https://www.ildaro.com/7334[]
  2. 2021년 2월, 하버드 대학교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한 논문이 게재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됐다. 참고: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83611.html , <“무엇을 더 숨길 게 있나”-‘위안부’망언의 본질주의를 넘어>, 김주희,「여성과 역사」34, 2021.6[]
  3. 2014년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에 종사한 ‘위안부’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1심, 2심을 거쳐 2022년 9월 29일 대법원은 “국가의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및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행위는 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권존중의무 등 마땅히 준수되어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이다. 원고들은 국가의 위법행위로 인해 인격권 내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인정, 원고들에게 각 300만~700만원씩 지급하도록 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참고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708.html, 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이제 떳떳하게 살 거야” , 신지민 기자, 한겨레21,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