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독자기고글

  이 글은 현정(가명)님께서 기고하신 글입니다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여차저차해서 생긴 빚들에 치이고 있었고, ‘선불금’이라는 존재를 알았을 때는 조마조마하면서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로 생각될 지경이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천 언니집에 얹혀 살기 시작한 이틀째부터 인터넷을 검색했다.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량에 놀랐는데, 모두들 한결같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 아가씨 편의를 봐준다고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었다.

별로 예쁘고 날씬하지 않은 20대 후반이라는 내 주제를 알기에 —;; 언감생심 강남 쪽은 클릭도 하지 않고 강북만 둘러보고 대략 시청 쪽에 있는 룸으로 낙점했다. 유리방, 3, 방석집 이런 거 저런 것도 몰랐던 나는, 고작해야 술집에서 옆에 앉아 기분 맞춰 주는 일을 할 뿐인데도, 준다는 선불금이 얼마나 될까 고민하며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몇살인지만 물어보고 가게로 와보라고 해서 화장이랍시고 이것저것 좀 찍어 바른 다음에 익숙하지도 않은 길을 물어물어 찾아갔다.통화가 끝나고 나서부터 계속 마음이 조마조마한 것은 왜였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인터넷 사이트 소개사진에는 가게가 샤방샤방해 보였
는데
, 완전 싸구려 재질과 조악한 디자인의 가게를 마주하고서야 내가 진짜 ‘유흥업소’라는 곳에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저 돈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인지 ◯부장과 함께 룸에서 면접 비스무리한 것을 보면서도 자꾸 위축이 됐다. 내가 예쁘지 않으니까, 내가 어리지 않으니까 그냥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오늘부터 일을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하는 ◯부장의 말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신기하게도 이름도 묻지 않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이름을 물어보면 본명을 얘기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는데, 일을 하는데 어떤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이 희한하기만 했다. 선불금은 친구보증이 있어야만 해준다는 말에 며칠 일해보고 받자 라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다.

 

 

저녁 7시쯤 면접을 보고 문 열 때까지 쉬라면서 대기실로 데려다줬다. 벽에 걸려있는 홀복, 굴러다니는 굽 높은 구두, 가게에서 쓰는 물건들이 쌓여있었고, 지저분하긴 해도 꽤 넓은 곳이었다. 어색하고 뻘쭘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앉아 있긴 했는데, 도무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초조한 마음이었다. 조금 있다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예쁘지는 않아도 제법 귀엽고 매력적인 얼굴이다. 일 시작한지 일주일이 안 되었다며, 여자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룸에서 쓰는 가명이 분명한) 뉴질랜드에서 공부하다가 한국 들어와서 알바하는 거라는,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 그러냐고 대꾸했지만 나는 정말 그 여자가 뉴질랜드에서 공부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지금까지도 진짜였다고 믿지도 않는다. 가게 문을 여는 8시가 다가오자 다시 4~5명의 17~19살로 보이는 여자들이 대기실로 우르르 들어왔다. 다들 친구사이 같아 보였고 소위 ‘까졌다’고 부르는 10대 여자애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화장을 하며 수다를 떨다가 이들은 이내 밖에 나가서 가게홍보 전단을 뿌린다고 ◯부장과 함께 나갔다. 나는 오늘 처음이라서 제외인가 보다. 얼굴 까고 밖에서 저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 걱정이다. 내가 거부할 수는 있는 건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대기실에 모인 여자들은 다들 나보다 어리고 예뻤다. 자신감이 점점점 없어졌다. 전단지 돌린 애들이 들어오고 대기실에 있는데, 누군가 대기실에 찾아왔다. 홀복을 파는 방문판매원이였다. 벽에 걸려있는 홀복은 주인이 있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 골라 입거나 새것을 사라고 했다. 벽에 걸려있는 주인 없는 홀복은 너무 노출이 많고 더럽기도 해서 새 홀복 하나를 골랐다.(이놈의 신상욕심!) 현금이 없었는데 오늘 계산에서 뺄 수 있다는 친절한 말에 욕심을 부렸다. 화장을 고치고 홀복을 입고 앉아있으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가게는 순번과 지명이 결합된 형태였는데 출근한 순서대로 순번이 매겨지고 테이블에서 필요한 여성 수에 한 두 명이 더 가서 지명을 받는 방식이었다.

내가 초짜라 그런지 첫 손님이 들어올 때는 날 제외했다. 다음 손님은 단체손님으로 8명 정도가 들어왔다. 지명이랄 것도 없이 나를 포함한 모든 아가씨가 들어갔는데 번듯한 옷차림들을 한 직장인 같아 보였다. 내 코가 예쁘다는 말을 하길래 그래도 ‘못난 얼굴은 아닌가보다’라는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담배를 가져오라고 해서 룸 밖으로 나와 카운터에서 담배를 사서 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웨이터가 나를 가로막았다. ‘담배 저 주세요. 안 들어와도 된대요.’ ! 진짜 초라하고 비참한 기분이었다. 내가 별로라는데 뭘 어쩌겠냐 싶지만, 오늘 산 홀복값이며 돈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데 이게 뭔가 싶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12시를 넘기자 초조함에 바닥까지 갔는데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또 단체손님이 왔고 다행히도 두 시간을 끊었다. 오늘 공은 안쳤다는 안도감에 음치라고 소문난 내가 노래까지 하나 불렀다. 직장에서 왔음직한 단체 손님 중 부장이라는 사람은 난리가 났다. 10대로 보였던 아가씨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가슴이 수박’이라면서 실실거리고 자꾸 껴안고 치마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한다. 시선을 돌리고 10년 동안 안 피웠던 담배도 꺼내 물었다. 내 옆에 앉았던 남자는 참 점잖은 사람이었다. 내 몸을 전혀 만지지도 않았고 이름이 뭔지, 왜 이 일을 하는지 물어봤다. 내가 했던 질문의 답은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이름은 그냥 둘러댔다.

신고식이라는 것도 없고 질펀하게 주물러보려는 진상도 없던, 그런 하루가 끝나고 카운터 언니한테 내가 받은 돈은 홀복비 4만원을 제하고 4만원 남짓이었던 것 같다.

신촌에 있는 친구집에서 자기로 했기에 신촌까지 택시를 타고 갔는데 친구집에 도저히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몸을 씻고 수면방에 누웠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그날 택시비와 찜질방비를 제외하고 26,000정도를  손에 쥐고서 하루를 곱씹어보자니 나는 정말이지 다른 세계에서 이동한 것 같았다.

벌써 10년이 다되어가는,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한 하루는 그렇게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