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아웃리치 후기

4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_ 노랑조아

 

4월의 아웃리치. 이번으로 세 번 째 이태원 아웃리치를 나왔다. 첫날에는 동료 활동가 뒤에 서서 물품을 전달하고 열심히 걸어다니며 모두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면, 두 번 째 왔을 때는 이제야 조금 눈에 들어오는 가게 이름과 길을 익히며 열심히 물품을 들고 걸었다. 그러는 동안 이태원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었다. 11월 즈음에는 10.29 참사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거리가 착 내려앉아 있는 것 같았다. 무섭고 슬프다며 안타깝다는 말을 연신 하던 분, 손님이 없어도 어쩔 수가 없다며 가게에 그냥 나와있었다는 분도 만났다. 요즘의 이태원은 그 때에 비하면 제법 활력을 되찾은 듯 한데, 우리가 간 날은 그중에서도 4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이었다. 가게마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꽤 북적였다. 

 

나는 경기도 부천에서 나고 자랐다. 마트는 멀고 시장은 가까운 구시가지에서 살았던지라, 집에서부터 학교를 오가는 길목에 초원, 약속, 스카이 같은 술집들이 많았다. 우리집에는 술 문화가 아예 없어서, 나는 음주인들이 가는 치킨 호프집과 창문 없는 술집의 차이를 잘 몰랐다. 어느 날엔가 나를 보러 동네에 왔던 친구가 골목에 즐비한 모텔이나 고만고만한 술집을 보고는 “너희 동네 좀 이상하다”고 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우리 동네의 ‘이상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 때까지 한 번도 그 작은 가게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차라리 그 가게들은 늘 있는 풍경 같았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서 두부며 콩나물, 오뎅 같은 반찬거리를 사들고 지나오던 거리에 늘 있던 가게들. 그 가게는 동네 사람들의 일상에 섞여 자연스럽게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 동시에 빛 샐 틈 없이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똑똑똑) 계세요? 이룸입니다.” 동료 활동가를 따라 이제는 나도 업소의 문을 두드린다. 활짝 문을 열어젖히지는 못해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온 여성이 우리를 알아보면 안심이 된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이룸이에요. 오늘 언니 몇 명 계셔요?” “오늘 세 명이에요.” “세 명~ 여기 세 개에요. 이번에는 저희 불량언니 작업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비누를 넣었어요. 저희 비누 엄청 좋거든요. 성분이 좋아 피부에 좋을테니 써보시고 별별신문도 꼭 읽어보세요!” “아휴, 고마워요. 이것 좀 마셔!” 자꾸만 생수나 헛개 음료를 챙겨주시는 통에 어떨 때는 사양하고 어떨 때는 못이겨 받아들고 나온다. 한참 오픈을 준비하는 시간인지라 길게 얘기를 나누지는 못해도 인사를 하고 물품을 주고 받는 짧은 순간에 무언가가 오간다. 이 무언가가 쌓이면, 관계가 될까. 아웃리치를 다녀오면 이따금 “그 때 우리 가게에 오셨다”며 상담 전화가 걸려 온다.  상담소의 존재와 역할을 알리는 접촉점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루머로서 이태원에서 이어가고 있는 만남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동네와 이태원은 아주 다르고 유흥업소의 업태도 다르지만, 한 때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가게 문을 두들겨 열어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아직 관계가 되지 못하고 조금씩 쌓여가는 시간을 긍정해 본다. 이룸 상담소는 알아도 나는 몰라서 낯설어들 하시니 자꾸만 얼굴을 들이밀어 친근함이라도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사람 대하는 일을 힘들어하는 기질을 부러 거스르는 게 고단하기도 하다. 성매매산업은 너무도 거대하고 우리의 고민과 활동이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득해지니까, 그저 하루하루의 일에, 조금씩 쌓여가는 관계에 정성스러우려고 한다. 그 안에서 생기는 역동과 경험을 귀하게 여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