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① 반성매매 운동과 혐오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① 반성매매 운동과 혐오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탐욕스러운 자본은 성매매종사자가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착취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은 사회가 낙인찍고 배제해 빈곤으로 내몰린, 부당함을 아무리 호소해도 개인의 책임으로만 귀결되는, 비난받아 마땅한 특정 집단을 만들어내고 이 차별을 유지하는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낙인, 차별, 혐오가 유지되어야만 착취와 폭력이 정당화•사소화되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먹고 성매매 산업은 몸집을 키웁니다.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은 성매매산업을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핵심입니다.

따라서 성매매에 반대하는 활동은 착취와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권력관계에 반대하는 활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성매매는 반대하면서 이 끔찍하게 탐욕스러운 ‘혐오의 시대’에 편승하고 있습니까? 왜 자본에게 힘을 실어주는지요? 언제부터 반성매매운동이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선별할 권한을 주장했습니까? “피해자와 꽃뱀을 구별해 전자는 보호하고 후자는 처벌하겠다”는 가부장사회에 철퇴를 가하는 운동, 그것이 반성매매 운동 아닙니까?

“누가 누구의 성을 살까요?

다수가 소수의 성을, 남성이 여성의 성을,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의 성을,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이 없는 사람의 성을,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더 적은 사람의 성을, 사회적 힘이 있는 사람이 사회적 힘이 없는 사람의 성을, 사회적 자원이 많은 사람이 사회적 자원이 없는 사람의 성을…

성산업의 뿌리는 성차별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권력관계”

이룸 강의안의 한 부분입니다.

이룸은 성매매가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이자 착취이기 때문에 성매매에 반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반성매매 활동은 사람을 상품으로 환원하는 촘촘하고 복합적인 권력관계의 역동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고리를 끊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트랜스젠더여성에 대한 배제는 혐오와 차별일 뿐입니다. 혐오 그만하고, 운동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