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사건에 부쳐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사건에 부쳐

– 페이를 지불하고 찍는 남성과 페이를 받고 찍히는 여성의 관계에 대해

혜진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한 사진 커뮤니티에 올라온 촬영회 사진에 달린 댓글들. 흔히 사진사들이 담고자 하는 것이 사회의 규범 상의 ‘여성스러움’ 임을, 그 시선으로 모델을 평가함을 보여준다.

갖은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사진을 찍는 것은 즐거운 취미였다. 취미를 즐기면서, 모델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너무 좋은 아르바이트다!’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모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업종은 쇼핑몰 피팅모델이었는데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출사모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쇼핑몰 피팅촬영은 옷을 예쁘게 보이는 사진을 목적으로 쇼핑몰에서 모델과 사진사를 고용해서 찍는 사진이라고 하면, 출사촬영은 사진사들의 인물사진촬영을 목적으로 사진사 혹은 스튜디오가 모델을 고용하여 찍는 사진이다. 사진사 개인이나 사진 동호회에서 페이를 지급하고 모델을 고용하기도 하고,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고용해서 참가 사진사들에게 참가비를 받기도 한다.

지난 5월, 한 유튜버의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공론화가 화제가 되었다.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여러 컨셉의 촬영을 하게 될 것이다’는 정도의 안내를 받고 계약서를 작성했고, 촬영 당일이 되자 문이 잠긴 상태에서 20여명의 남성들에게 둘러 쌓여 협의되지 않은 포르노와 다름없는 노출촬영을 하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그 촬영물이 유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위협을 받으며 느꼈던 공포와,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면 받을 손가락질에 대한 걱정과, 가해자들의 지시에 의해 행동해야 했던 상황에 대한 절망감 같은 감정들이 꾹꾹 눌려있는 전문은,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해지는 폭로였다. 한구석에 치워두고 있었던 내 경험과 감정들이 폭로된 사건과 연결 지어져 하나둘 떠올랐다. 마음 아픈 폭로였지만, 너무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에,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공론화된 사건을 보며 떠올렸던 나의 촬영회 모델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공론화된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과 나의 경험은 분명 다른 사건이고 다른 맥락이 있지만, 연결된 지점 또한 있다.

 

페이를 지불하고 찍는 남성과 페이를 받고 찍히는 여성의 관계

페이 지불관계 없이 모델과 사진사가 촬영을 기획할 때에는 다양하게 서로가 원하는 컨셉과 이를 위한 의상과 연출에 대해서 의논하고 협의하게 되지만, 페이를 받고 모델로서 고용될 때 협의하게 되는 사진의 컨셉은 ‘일반(캐쥬얼, 청순)/섹시/세미누드/누드’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다. 내가 접한 대부분의 사진사와 사진 관련 커뮤니티의 구성원은 남성이었고, 대부분의 모델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사진사들이 여성 모델을 찍음으로서 사진에 담고자 하는 것, 여성 모델이 표현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게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슴․허리 라인과 각선미가 드러나는 의상과 포즈, 혹은 침대에 누워 애정을 구하는 듯한 눈빛과 표정, 혹은 귀여움, 청순함과 단아함 같은 것들 말이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남성의 기준으로 형성된) 이 사회가 인정하는 예쁜 여성이 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았다. 많은 사진사들이 선호하는, ‘잘 팔리는’ 모델이 되고자 했던 욕구는 이의 연장선상인 동시에, 여기에 ‘돈을 더 벌고 싶다’라는 실질적 이해가 더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 다이어트를 했고, 외모를 꾸몄고, 그들의 욕망을 잘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욕망을 연구했다.

그럼에도 내가 출사모델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불쾌감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불쾌감, 얼마나 ‘원하는 전형’에 부합하는 모델인지를 평가받는 위치가 되면서 느끼는 ‘무시당한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메커니즘 안에서 의상이나 화장에 대해 지적받고, 사진의 퀄리티를 이유로 노출이 더한 의상과 포즈를 요구받고, 포즈교정을 이유로 터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협의되지 않은 노출 촬영, 촬영장에서의 포즈교정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성추행, 혹은 작정하고 이루어지는 성폭행과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관련 구인․구직을 하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여러 차례의 고발이 이루어진다. 이를 없애기 위해 범죄자의 정보를 공개하며 해당 사진사와 촬영을 하지 않을 것을 공지한다던가, 터치 없는 ‘매너있는’ 촬영을 할 것을 권고한다던가 하는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한다. 범죄행위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만으로 내가 느꼈던 불쾌감을 발생시키는, 범죄행위들을 발생시키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끔 하는 그 구조는 흔들릴 수 있을까. 평가받는 위치가 됨으로 인한 불쾌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의 열등감, 을의 위치이기에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 거절할 수 없는 무력감, 갑의 위치이기에 권리로 여겨지는 ‘부당한 요구’ 그 자체. 이러한 것들은 나의 몸을 매개로 타인의 욕망(남성중심적 구조에서 만들어진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페이를 지급 받는 일에서 없어질 수 있을까.

 

대국민사기극? 제발 자발/비자발이 아닌 권력관계를 사유하자

공론화가 있고 얼마 후, 실장과 모델이 대화를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되면서,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촬영을 어쩔 수없이 해야했다’는 기존의 공론화 내용과 다르다며,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자의 눈물은 믿을 수 없다’(지긋지긋하게 여성을 괴롭히는 꽃뱀논리)는 등의 말들이 주를 이뤘다. 해당 사건이 ‘문제’가 되기 위해서 ‘자발적이지 않은 것’, ‘강제에 의한 것’이 중요한 요건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에는 단순히 결과적 ‘자발/비자발’, ‘물리적 강제의 유/무’로는 판단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개입한다. 위계를 장악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협감, 위협감을 느끼는 관계에서의 순응과 내재화 같은 것들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물리적 강제 없이도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적 맥락으로 인해 한다.

그렇기에 ‘문제’가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결과적 ‘자발/비자발’, ‘물리적 강제의 유/무’ 따위가 아니라, 폭력행위를 가능케 하는, 심리적 강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그 안과 밖의 권력관계이다. 해당 사건에서 협의되지 않은 촬영을 강제할 수 있도록 실장이 모델에게 행했던 위압과 그로 인한 그 안의 위계관계, 사진이 유포되었을 때 사진 속 여성만이 비난받는 밖의 위계관계 말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같은 의도적 위압 없이도 위계관계를 형성하는, 여성의 몸을 매개로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페이를 지급 받는 ‘일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진 일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남성의 욕망을 여성의 몸으로 표현하는, 많은 유료 촬영회에서의 여성인물사진에 대한 얘기다.

어떤 면에서는 성판매와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몸을 매개로 타인의 욕망을 실현시킨다는 것, 성적대상화의 대상이 됨으로서 느껴지는 불쾌감과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각, 성추행․폭행이 그 안에서는 당연하고 이를 감내하는 것이 프로페셔널한 것이 된다는 면에서. 한 사진 커뮤니티에 올라온 촬영회 사진에 달린 댓글들. 흔히 사진사들이 담고자 하는 것이 사회의 규범 상의 ‘여성스러움’ 임을, 그 시선으로 모델을 평가함을 보여준다.

 

 

논평성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