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인연의 틈새에서






 


2008년, 그녀는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청첩장을 받아들고‘내가 가도 될까, 그녀는 나를 남편에게 뭐라고 소개할까, 나를 소개할 때
그녀는 남편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까’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녀의 새로운 삶에 축복을 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그녀의 과거를 들춰내는
존재이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난 왜 이렇게 그녀의 과거가 걱정이 되었을까.


 


 


그녀와의 인연


2005년, 그녀가 A집결지에서 아가씨로 일하고 있을 때 우린 처음 만났다. 난 일주일에 한번씩 A집결지를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었다. 빨간불빛이 새어나오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나와 그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
는 듯 했다. 난 항상 그 유리문을 두드렸지만, 그녀는 내게 냉랭했고 무섭게 유리문을 닫아버렸다. 눈을 마주하지 않았고, 왜 왔
냐고 퉁명스럽게 귀찮은 듯, 일하는데 방해된다고 밀쳐냈다. “절대로 너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 거야! 니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
아? 무엇을 해 줄 수 있겠어?”라는 모진 눈빛을 받으면서도 내가 할 수 일이라곤 매주 같은 시간 가게에 들러 멋쩍은 인사를 건네
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초조한 목소리로 일하는 중에 임신이 되어 수술을 하러 가야하는데 같이 가 줄 수 있냐는 전화를 해 왔
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 취해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보면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일을 시작하여 사람들 틈에서 악착같이 살아
남아야 했던 그녀의 시간들을 상상해 보았다.‘ 돈을 벌어 힘든 가정을 돌보면서 부모 대신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그녀의 무거운
짐들이 얼마나 버거웠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난, 그녀의 삶 앞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내가 들어갈 틈을 내어주고 있었다.


 


다른 방식의 삶, 그 길목에서 다르게 만나기


2011년 어느 날, 자식 둘을 낳아서 엄마의 역할로 바쁜 그녀는, 불쑥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녀의 결혼 후에 우린 서로의 삶
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주 가끔씩은 ‘결혼 생활은 잘 하고 있을까, 남편은 잘해 줄까, 남편은 때리지는 않을까, 시댁에서는
잘 해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전에도 A집결지에서 만나 친하게 지낸 여성들 중에 결혼한 여성들은 몇몇 있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과 함께 한 켠에는 조심스러움과 걱정이 있다. ‘나만 궁금한 게 아닐까?
그녀들도 나를 반가워해줄까? 아님 나라는 존재는 그녀들에게 있어‘과거를 들춰내는 사람’으로서 단지 잊고 싶은 존재일까?’
복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나는 그녀의 삶을 지지하고 싶고, 나 역시 그녀를 통해 지지 받으면서 삶을 살아가는 친구이고 싶다. 누
구나 험하고 외로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지 않은가.
떨리는 마음으로 우린 다시 만났다. 그녀의 아기를 보면서 이제는 나와 그녀 둘만의 관계를 넘어 그녀의 아기들까지 관계가 확장
이 되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과거 우리의 대화는 이모, 삼촌, 가게 아가씨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현재 우리의 대화의 주
제는 다양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하고 있는 심리상담, 우리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결혼, 남자, 살림과 육아, 부모님과 가족관계
에서 겪는 일상적인 일들… 일상의 소소한 꺼리들이 우리들의 수다 주제였다. 그녀는 편안해보였다.‘ 남편의일이잘될까, 아이
들은 어떻게 교육시킬까’하는 등의 일상의 걱정들은 눈앞에 있지만 그 일상이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처럼 느껴졌다. 앞으로도
그녀와 나는 인생의 고된 숙제들을 앞에 두고 끙끙대며 어떻게 해야 할지 발을 동동 구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렇게
만나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힘을 주고, 인생의 숙제를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인생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친구
하나를 얻었는데 뭐가 걱정일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