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31 이룸공부방 기획간담회 첫번째, 현우 예진 라라 소윤의 후기!

 

박정미 선생님과 함께 한 공부방 간담회 첫번째, 후기 모음입니다!
당일 현장에 오지 못하셨더라도, 이 기록을 읽은 누군가들의 후기를 더 읽을 수 있기를 바라요

 

현우의 후기

 

지난 5월 30일, 이룸 회원공부방이 기획한 첫 번째 간담회가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에서 열렸습니다. 강의실을 가득 매운 청중들 사이에서 간담회를 준비했던 공부방 멤버라는 사실도 잊은 채 몰입했던 시간이었는데요.

이번 간담회를 기획한 회원공부방은 약 1년 전 만들어진 모임으로 지금까지 이룸이 발간한 자료를 읽고 활동가의 경험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2기를 맞이하며 회원공부방 멤버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지난 1기에서 길어 올린 질문을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공유하는 간담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성매매 정책을 연구하고 계신 박정미 선생님을 모시고 청량리와 강남이라는 이질적이면서도 연속적인 두 공간을 주제로 한 간담회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간담회는 이룸의 활동가 별님의 발제와 두 명의 공부방 멤버가 정리한 질문, 그리고 박정미 선생님의 토론과 청중의 질의응답 순으로 이어졌는데요. 당일 간담회에서 기억에 남은 부분과 필기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후기를 적어보았습니다.

사실 공부방 멤버들이 첫 간담회의 주제이자 매개로 작년에 이룸이 발간한 <청량리>를 선택한 건 책 자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와 같은 책이 나오는 데 있어서 박정미 선생님의 논문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박정미 선생님은 논문에서 박정희의 중앙집권정부가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의 금지, 즉 ‘단속’을 통한 치안질서의 확보와 보건행정상의 관리라는 이중구조로 식민지와 미군정에 대한 지배, 내전 등을 거치며 확대된 한국의 성매매 문제를 타협적으로 제도화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는 성산업에 대한 국가차원의 ‘묵인-관리체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룸은 발제에서도 말한 것처럼 청량리 집결지 기록화를 통해 “정부가 금지의 명분과 관리의 실질을 동시에 취하는 가운데, 성매매 집결지는 ‘관리’를 담은 하위의 명령·규칙·조례가 ‘금지’를 명문화한 상위의 법률·헌법의 규정력을 압도하는 공간으로 거듭났”고 나아가 “국가의 정책이 명시적인 허용도 금지도 아닌 이중적인 얼굴을 갖게 됨에 따라, 집결지 내에는 공식적인 억압 기구인 경찰 외에도 다양한 지배의 주체들이 생겨났”음을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집결지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을 통제하거나 또는 그들에 의해 구성되는 집결지의 사회경제적 조건, 때로는 너무 허술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집요하기 짝이 없는 법과 제도는 집결지를 마주하는 이들을 막막하게 합니다. 단순히 폐쇄 또는 존치라는 선택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공간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고 싶다는 망설임이 뒤따라옵니다.

발제자가 방점을 찍은 것처럼 “자국영토의 한 공간이 공공성의 공백상태로 존재하는, 어떤 논의의 장으로도 포섭되지 않고 아무런 대안이 상상되지 않는 곳”으로 남겨 두지 않기 위해선 그 공간의 생성과 해체, 부흥과 몰락의 원인과 배후를 찾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룸의 청량리 기록화가 사회적 맥락을 찾는 과정이란 데 공감했습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청량리’와 ‘강남’이라는 어찌 보면 동떨어진 공간을 연결 지은 건 이들이 만들어진 역사적, 사회경제적 배경과 더불어 “어디에서 일을 했을 때”로 표현되는 당사자의 성산업 공간에 대한 경험이 다른 듯 하면서도 유사한, 일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 얽혀 있는 두 공간의 연속과 단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899년 대한제국 최초, 아시아에서는 교토 이후 두 번째로 전차가 지나다닌 이래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 했던 청량리와 바로 인근에 묵인-관리되었던 집결지의 형성 그 이후 부동산 재개발로 인한 몰락, 다른 한편으로 국가 주도의 강남개발정책과 맞물려 금융화를 등에 업은 유흥업소와 성형대출의 결합, 최근의 클럽형 유흥문화까지. 막상 간담회가 진행되다 보니 2시간이란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또 아쉬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담회를 기획하며 공부방 멤버들이 준비한 질문에 대해 어떤 맥락에서 답하기가 어렵다거나 또는 같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본인의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 말씀해주신 박정미 선생님 덕분에 더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자리를 만들어서 채워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당일 간담회에서 느꼈던, 다시 발제문을 보면서 든 생각으로 후기를 마무리 하려 합니다. 박정미 선생님이 간담회 토론문에 남긴 여러 코멘트들 중에 Donde Voy?란 글이 있었습니다. 뭔가 싶어 검색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당일 발제에선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결국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물음에서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가, 즉 자신이 바라보고자 하는,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복잡다단한 현실의 순간순간에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고 ‘망설이는 용기’만큼이나 함께 망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첫 이룸 회원공부방 모임에서 이러한 모임이 이룸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했던 이루머의 말이 새삼 떠올랐고요.

공부방과 함께 한 1년의 시간 동안 저 역시 다른 공간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삶을 구술기록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떤 판단이나 분석에 들이는 노력만큼이나 내 앞의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느꼈고 그 고민에 이룸의 활동이 큰 힘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이룸의 활동가, 회원공부방과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며 망설이면서도 지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며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예진의 후기

 

5월 31일에 했던 이룸 간담회를 다녀왔어요. 청량리 그리고 버닝썬 사태가 잘 갈무리된 별님의 발제와 이룸공부방의 현미샘 소윤샘의 질문 길어올리기 그리고 박정미 선생님의 답변이 잘 어우러진 좋은 발제였습니다. 청량리를 읽고 오신 많은 분들과 질문대답 시간도 가졌구요. 개인적으로는 박정미 선생님께서 암호처럼 써내려가신 짧은 글들을 풀어 현장에서 듣는 것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청량리를 읽고 나서 들었던 나름의 질문들도 나름대로 해결된, 그리고 해결되지 않아도 그에 더해 같이 고민할 거리를 찾아본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고민할 거리들이 상세화되고 나름의 형태와 자취를 찾아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 이룸의 공부방 모임 혹은 간담회가 더욱 기대돼요!

 

라라의 후기

 

어제는 이룸회원공부방에서 준비한 기획간담회. ‘연속과 단절, 청량리에서 강남까지’ 에 다녀왔다. 청량리와 강남을 연결시킨 것도 문제의식도 모든 얘기들, 모신 분들도 만들어진 자리도 소중하지만 마음에 담긴 말은. “우리는 인연이 생겼기 때문에 오늘부터 같이 고민하고 망설이며 함께 갈 수 있길 기원해봅니다.” 이거. 아무리 좋은 문제의식이 있어도? 그걸 감당하고 가져나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야. 서로를 연루시키고 고민을 나누며 그 과정을 함께 길게 놓지 말자고 나눌 수 있는 게 참 두근거렸어.

집결지를 철거하라고 할 수도 없고 철거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선명한 구호를 말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단단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 무너져도 가슴 속에 서려있는 노래들을 잊지 않는다면 어느 길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는 게 넘 소중해.

 

소윤의 후기

 

#토론회_끝나구_체력이_완전히_방전되어서_이제야_남기는_기록
5월의 첫번째날과 마지막 날을 이룸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답답하고 복잡하고 어렵고 예민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날 토론회에 정말 많은 청중분들이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든든했다.

작년에 대학원 자소서 제출할때에도 쓴 말이지만,
“나는 나를 믿는게 너무 어렵다.”
정말로 너무 어렵다. 왜 그렇게 어려웠을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내가 틀릴까봐, 나의 생각이나 말들이 틀릴까봐, 잘못된걸까봐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틀릴까봐,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너무 무서우니까, 나를 온전히 믿기 보단, 의심하고 검열하는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토론시간에 박정미 선생님이 이룸의 “망설이는 용기(김주희)”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셨다. 모른다는 것,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확실한 정답보단 불확실한 망설임을 선택하는 용기.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불분명한 경계에서 쉽게 ‘나는 다 알았다’고 선언하지도 않고 명확한 ‘정답’을 단정 짓지도 않는 이룸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룸공부방의 회원으로 함께한지 벌써 일년이 되었다.
일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변화를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이룸의 곁에 서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앞에서 얘기한 “망설임”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모른다는 것,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드러낸다는 것은
말하는자 스스로를 계속해서 불확실함 속을 밀어넣는다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용기로 불가능하기에 상호의존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룸이 지켜왔던 미덕이 빛난다고 믿는다.

여성주의, 여성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너무 어렵다.
그래서 더 신중하고 엄격하려고 노력할수록 필요이상으로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는 나를 발견하고 놀랄때도 있다.
이룸공부방에서 일년동안 사람들과 함께하며 위로받은게 있다면
서로의 부족함과 서투름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의 한계와 실수를 드러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온전하게 서로를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래야만하기 때문에.

이룸공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