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6 이룸공부방 1기 6회차 후기 by.소윤

지난 5월, 이룸 회원 파니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룸 공부방 1기가 총 6회의 모임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치열하고 따뜻한 시간이었어요.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여름에는 모기가 겨울에는 추위가 기다리는 이룸 사무실로 모여들어 이룸의 울타리가 되어준 회원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예정된 시간을 넘겨 세미나를 마치고도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홀짝이며 심란한 세상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대화를 나누었지요.

우리는 집결지 재개발/폐쇄 현안에 내재한 딜레마를 풀 수 있을, 젠더인 동시에 사회일 모종의 것에 대한 인식욕으로 부풀었습니다.
성형대출상품을 창안하기에 성공한 성산업과 금융, 몸관리산업의 공모 구조를 해부할 땐 써지컬스틸 메스처럼 차갑고 정밀해지고 싶었고요.
성판매여성의 차별과 안전을 의제화하는 과정이 야기하는 쟁점들을 오직 소수자의 입장에서 선언적인 언어로, 못의 머리가 나무를 부숴버리게 망치를 두드리듯 외치고 싶어했을 뿐더러
‘여성’과 ‘남성’의 규범을 자연화하거나 ‘퀴어’를 탈정치화 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산업을 굴러가게 하는 성적 권력관계에 도전할 것을 예감하고
구조와 개인을 이분하는 빈 말들을 살아있는 현장의 정치로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원했습니다.
청량리 불량언니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울고 웃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이룸의 글들을 읽었고, 12월 송년회에서는 각자가 왜 공부방에 왔는지 지금은 어떠한지를 담은 글을 낭독했어요.
그 중 한 편의 글을 송년회 후기로 갈음하려 합니다.

우연히 시작된 이룸 공부방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어요.
올해 계속될 이룸 공부방 2기가 기대됩니다.

 

 

 

2018 이룸 공부방에 오면서 풀고 싶었던 나의 성매매에 대한 질문과 1기를 마친 지금 그 질문에 대해 갖게 된 생각

by. 소윤

 

내 경우, 질문이 먼저 존재해서 이룸에 왔다기보단 이룸에 온게 먼저고, 그 이후에 질문이 계속해서 불어났다. 4월달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때 (어쩌다보니) 후기를 작성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부터 계속 이룸 공부방에 참여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해결되지 않았던 나의 질문들을 텍스트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집결지가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당장 없애버리면 언니들의 삶은 누가 책임지나? 언니들이 집결지 내부의 관계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곧 ‘집결지 폐쇄 반대’라는 결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집결지가 아닌 공간에서의 언니들의 생존 가능성’이라는 문제는 ‘집결지 폐쇄 찬성/반대’ 중 하나의 입장으로 환원될 수 없는데도 이걸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ex: 철거민투쟁의 맥락)에서 자꾸만 이분법이 강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니들이 집결지에 대해 말을 할수록 집결지가 아닌 공간으로부터 고립되는 이중억압 혹은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집결지라는 공간과 관련된 여성들의 ‘말하기(언어화, 폭로, 고발)’가 임파워먼트로 연결되기 너무나 어려운 모순적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산업-성형산업-대부업 공모관계: 성산업의 규모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까? ‘프로듀스101’처럼 성구매자들의 ‘초이스’문화를 ‘문자투표’라는 방식으로 대중화해서 여성들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체계적이고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상품화하는 아이돌 산업의 경우 성산업의 일부 혹은 확장으로 볼 수 있을까? 10대,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이 개인 단위의 소비자 불매운동을 넘어서 (좀더 성형산업-성산업-대부업의 공모관계로 인해) 여성의 몸 자체가 담보화되는 현실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제기로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즉, ‘외모중심주의’와 ‘성상품화’, ‘꾸밈노동’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방식이 지극히 개인화된 차원의 ‘해방감’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차별-안전포럼: 성매매와 성폭력의 개념을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피해자다움을 강화하고자하는 욕망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가도, 성산업 전반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착취형태를 성폭력으로 규정하거나 광의의 성폭력 개념으로 확장해서 말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성매매와 성폭력의 공통원인으로서 강간문화를 없애기 위한 운동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데,이걸 강조할 경우 ‘성판매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혹은 낙인)’에 대한 문제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 한편으로, 반성폭력운동과 반성매매운동의 공통의 질문으로서 ‘피해자화-당사자성의 정치’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는 것 같다. 또한, 페미니스트들 내부에서 ‘성노동/탈성매매’라는 구도가 굉장히 확고한 상황에서 성판매여성의 안전권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작업이 어떻게 가능할지? (안전권이라는게 성판매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만’을 의미하는가? 혹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지켜지면 해결된다-는 규범적인 주장과 동일한 것인가?)

 

퀴어+성매매: 성판매자의 거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성구매자의 거의 대부분은 (이성애자) 남성인 한국사회에서 성구매자가 시스젠더-이성애자 남성이 아닐때 그들이 구매를 통해 실현하고자하는 욕망의 내용 및 성판매자의 협상력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일반)성매매/소수자성매매’라는 경계가 은연중에 성판매자로서 성소수자의 경험을 ‘특수한 것’, ‘예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성판매자로서 성소수자 내부에서 발견되는 경험의 차이(ex: 게이 성매매 / MTF트랜스젠더의 성판매)와 이질성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특히 MTF트랜스젠더 성판매자의 서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복합차별과 취약한 생존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트랜스젠더 혐오하는 일부 시헤녀들+렏펨+워마드 트랜스젠더들 때문에 여성혐오가 강화된다(트랜스젠더가 여성성을 수행하는 방식이 탈코에 방해되기 때문)는 이상한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지만 과연 성차별을 해결하고 젠더폭력 없애는 일이랑 트랜스젠더 인권을 보장하는 일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인지?

 

젠더폭력으로서 성매매+세계화와 성매매: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다른 종류의 착취-대상화-폭력과 어떤 방식으로 연장선(성역할 -> 성별화된 자원을 기반으로 한 이성애 -> 이성애 관계의 제도화 -> 성매매(거대한 성산업)->성폭력->인신매매)상에 있는지 밝히는 일은 왜 어려울까? 성매매를 이야기할 때 계급을 은폐하지도 않고(중산층 여성중심의 성폭력 담론), 젠더를 삭제하지도 않으려면(남성중심적 노동개념(공적영역에서의 임금노동의 교환가치)을 반복하는 성노동 담론) 어떤식으로 논의를 전환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때 한국사회에서 성판매는 오히려 국가와 법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자본에 의해 대규모로 산업화됨으로써 노동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성판매도 노동이다!’라는 주장을 하거나 ‘성노동에 찬성하느냐?’라고 묻는 것이 도대체 어떤 담론적인 효과가 있는가? (당신이 성노동에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와 무관하게 언제나 이미 성판매가 노동이었고 모두가 ‘성산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청량리기록화 작업 북토크: 성판매여성들을 마냥 피해자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삶을 ‘낭만화’하지도 않고 언니들과 온전히 만난다는 것. 머리에 힘을 빡 주지 않고선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너무 어려운 일 같다. 이룸이 지금까지 지켜온 어떤 섬세한 균형감은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북토크를 들으면서 ‘반성매매’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곱씹으면서 내 나름대로의 잠정적인 정의를 내려보기도 했다. 성매매에 반대한다는 의미는, 언니들의 삶의 선택지를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한 운동이고 언니들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경험한 세계를 최대한 온전하게 보여주고 기록하는 실천이라는 것. 그 과정에서 (성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무한긍정(?)으로 현재의 유일하고 강요된 선택지를 낭만화하지도 않으며, (탈성매매를 해야한다는 사람들처럼) ‘지금 당장 관두지 않으면 안 괜찮다’는 말로 언니들에게 자기부정을 통해 ‘정상적인’ 시민이 될 것을 요구하지도 않겠다는 것. 관두고 싶은데 관둘 수 없는 현실, 너무 힘든데 너무 익숙해진 일상, 벗어나려고 했을때는 벗어날 수 없었는데 막상 없어진다니까 어딘가 자꾸 생각나고 말하고 싶어지는 공간으로서 집결지. 이렇게 기가 막히는 모순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이룸이 회색지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내가 이룸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이룸 공부방 2기에서 같이 읽어보고 싶은 텍스트 혹은 천착해보고 싶은 질문

 

현미쌤이 제안하신 영어논문(Overcoming objectification) 읽는거 좋아요!

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구술생애사, 상호교차성, 임파워먼트 이외에도 청소년인권이 있는데요, ‘청소년인권과 성매매-성산업을 과연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최근에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탈학교청소년들, 그리고 그 중에서 십대여성들의 경우 (십대남성들에 비해 압도적인 비율로) 성산업으로 진입하게 되거나 성매매에 노출된다는 점. 그리고 법에서는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를 굉장히 보호해야할 무언가로, (나이듦에 따른 판단)능력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십대여성들의 몸은 현실에서 이미 온갖 방식으로 과잉성애화 되고 있으며 가정과 학교 밖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원인 상황.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다보니까 성산업-성매매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청소년, 십대여성들의 경험에 대한 연구를 같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페미니즘의 주체가 이십대-비장애인-시스젠더 여성으로 과잉대표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나이들고 가난한 여성의 몸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연구/운동을 하고 있거나 임파워먼트를 실천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사례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룸에서 노년성판매여성의 삶을 기록화하는 작업과 교차하는 지점도 있을 것 같고, 더 다양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되게 의미있을 것 같아요.

 

내년에 나는 이룸과 무엇을 하고 싶은가

 

영화제 좋아요!

사실 제가 당장 내년에 어떻게 살고 있을지 잘 상상이 안 가서 뭐라고 확실한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말하기 어렵지만, 공부방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결과물로 만들 수 있는 작업이라면 뭐든 함께 참여하고 싶어요! (꼭 오프라인형태의 책이나 발간물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