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에는 아주 멋진 우리의 동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신성연이 님의 석사논문 <여캠담론과 인터넷 개인방송 여성 bj의 노동경험 > 발표회가 있었어요. 한사성 동료들은 아주 고맙게도 이 자리에 이루머를 초대해 주었어요. 이루머 나나도 이 자리의 토론자로 제안을 받아 토론을 하고 왔답니다. 나나의 토론문을 공유합니다 🙂
여캠/벗방 BJ 여성주의 불처벌의 정치학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나나
신성연이 님의 발제에 따르면, 미디어에서 여캠이 다뤄지는 방식은 (돈을 많이 버는) “성적 볼거리, 성산업 노동자, 나락인생(발제문 3p)”으로 여겨지며, 여성bj는 시청자 공동체에 의해 ‘여캠화’가 집행된다고 분석한다. 즉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아가씨 노동(황유나, 2022)’을 하길 요구되며, 쉽게 돈을 버는, ‘음란’한 여성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여성이 캠을 켰다’는 ‘자발성’은 사회적 처벌의 마땅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는 ‘타고난 차이(몸)를 조건으로 미래의 수익을 발생시키는 불공정한 불로소득자(김주희, 2023)’라는 감각에 기인한다. 방시혁과 함께 해외에서 사진이 찍힌 여성 BJ와 유명 여캠 그룹 대중가수 데뷔에서의 비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미니스트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조차,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지 말라는 비난을 일삼는다. 세상 사람들의 이러한 비난은 반성매매 활동을 하는 나에게 너무 익숙한 정서이다. 이 언설들은 ‘창녀 혐오’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캠을 켰다’는 ‘자발성’이 사회적 처벌의 마땅한 근거로 번역되는 현실에서 실제 여성 BJ는 자신의 노동을 어떻게 정체화하고 있고, 어떤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지를 들리지 않게 한다. 여성BJ의 경험과 노동, 피해는 오직 낙인 속에서 주조된다.
발제자는 성별성이 만연한 온라인 공간에서 여캠 BJ 노동이 어떻게 주조되는지를 아주 분명한 시선으로 살핀다. 발제자는 자신의 연구 논문에서 여성 BJ는 성별 속성에 따라 여캠이라 불리고, 미디어에서의 여캠 담론은 ‘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신체 부위를 중심으로 강조된다는 점에서 ‘여캠’은 여성혐오적 멸칭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여성 BJ를 성적 대상화 함으로써 산업이 흥하고 있는 현상은 여성혐오 현상이라고 말한다(신성연이, 2024). 나는 이와 같은 발제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원화하는 여성을 불처벌의 정치학 관점으로 사유하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제안을 나누고자 한다.
# 1
한국 사회 성매매는 법률적으로 삽입 성교와 유사 성교 행위를 의미하고, 명시적으로 ‘불법’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는 ‘묵인-관리체제’로 그 명맥이 공식적으로 유지되었다. 여성을 사고, 팔 수 있고, 여성을 통해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여성을 ‘매춘화’해 온 발전주의 국가 체제로부터 기인한 것이고, 국가 권력에 힘입어 여성을 사서 ‘흥겨움’을 얻는 ‘놀이 문화’는 남성 연대 속에 견고해졌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자원화하여 더 나은 삶을 살기를 희망하고, 남성은 여성의 몸을 통해 이윤과 권력을 착복하며 ‘남자-되기’를 실행해 왔다. 이는 돈을 버는 방식과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방식 자체가 성별화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이 불평등이 극대화된 결과가 바로 성산업이다. 즉 성산업은 원인보다 결과로서 우리에게 목격되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성산업은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온라인으로 이전·확장되었는데, 그 현상을 가장 적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산업 중 하나가 ‘벗방’ 산업이다. 다만 벗방산업은 유흥업소와 같은 공식적인 시장의 영역에서 성장해 왔다기보다, 디지털 성폭력과의 관계 속에서 성공적으로 안착되었다(황유나, 2024).
여캠과 벗방은 각기 다른 컨텐츠를 활용하여 노동하고, ‘여캠’과 ‘벗방’이라는 분명한 섹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을 조각조각 무엇과 무엇이 다르다고 비교하는 게 아닌, ‘여캠화’라는 단어를 통해 캠을 켠 ‘모든 여성들’이 마땅히 무릅써야 하는 무엇이 있다는 시선, 이는 가장 극단에 놓인 여성들의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벗방에 관한 문제의식도 이야기하고 싶다.
# 2
유흥업소 종사여성 커뮤니티에 요즘과 같이 돈이 안 도는 ‘불경기’에 여캠과 벗방이 그나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업종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직을 고민하고 실제로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많이 벌더라도 여캠과 벗방을 ‘선호’하지 않는다. 불법 포르노 사이트나 온라인 공간에서 영원히 ‘박제’되기 때문이다. 또한 문신이 있어서 시청자들이 선호하지 않고, 시청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유흥업보다 더 고된 일이라고 여긴다. 캠과 모니터를 경유하는 디지털 섹슈얼리티 시장인 여캠과 벗방 산업에서 시청자 시선에 따른 소위 ‘먹히는’ 얼굴과 몸매, 태도가 있다. 이것이 발제자가 반복적으로 지적한 ‘여캠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여캠과 벗방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정서와 대조적으로 ‘여혐·극우’남초 커뮤니티는 “요즘 룸싸롱에 에이스가 없는 이유”가 ‘예쁜 여자들은 죄다 벗방 bj, 여캠으로 갈아탔’기 때문이라한다. 여성들과 남성들이 느끼는 정서가 이렇듯 극명하게 다른 것은 무엇일까. 여성에게는 신원이 ‘박제’될 안전 문제를 감수하면서 돈을 벌기 위한 기회의 노동이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한 노동이다. 반면에 그저 남성들에게는 수많은 콘텐츠와 즐길 거리일 뿐이다. 남성들은 유흥업소 생태계를 잘 알고 있다고 우쭐거리면서 유흥업소와 디지털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동일한 여성이라는 (진실과 무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빈곤을 타개하는 방식, 생존을 모색하는 방식, 심지어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느끼지 않는 방식, 즐거움을 좇는 방식이 성별화되어 있다.
조금 더 얘기해 보고 싶은 점은 여성 BJ들의 방송 전략(욕하기, 괄괄한 성격 드러내기, 고민 들어주기)은 다양하다. 시청자 공동체 또한 실제 여성 BJ가 엔터사나 플랫폼사로부터 억울함이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는 관계적 복합성과 여캠 시청자와 벗방 시청자의 행동 양식이 다르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 발제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
# 3
이룸은 벗방을 성산업 네트워크 측면에서 문제 제기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고, 올해부터 벗방 모니터링을 진행하였다. 온라인 공간 안에서의 ‘박제’는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여캠과 벗방을 한다면 ‘감수’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방송 플랫폼은 방송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워터마크로 시청자 아이디가 뜨게 하는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워터마크란 여성 비제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플랫폼의 콘텐츠의 도덕성을 홍보하고, 동시에 남성 시청자를 더 많이 유입시키는 전략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어느 한 BJ는 “OO(플랫폼)에 BJ를 대상으로 댄스를 가르쳐 주는 곳이 있는데, 저는 춤을 못 춰서 벗방을 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렇듯 한 명의 여성 BJ의 얼굴과 ‘몸’을 모니터 앞으로 데려다 놓기 위해, 여성을 수없이 품평하고 적재적소(라 여겨지는 장)에 배치함으로써 여성의 ‘몸’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는 수많은 산업 네트워크가 있다.
엔터사와 플랫폼도 여기에 속한다. 수십 개의 엔터사는 자체적인 변호인단이 있고, 여성 BJ가 경험하는 부당함과 피해를 대응한다. 한 엔터사에서 부당함이 생기면, 다른 엔터사에서 이를 즉각적으로 해결한다. 이는 돈이 되는 여성의 ‘몸’을 섭외하고 몰수하기 위한 네트워크 공동 전략 중 하나이다. 신자유주의화 된 엔터사와 플랫폼사에 의해 여성 BJ가 경험하는 어려움은 무화되며 드러나지 않는다.
# 4
한 명의 여성 BJ, 그의 몸을 통해 이윤을 취하는 수많은 존재는 가리워진 채 여성 BJ는 홀로 ‘창녀’라는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여초·남초 사이트에서 거론되는 여캠과 벗방 담론을 살펴봤다. 어떤 때에는 ‘걔네 어차피 다 창녀’라고 통칭하여 멸시하였고, 또 어떤 때에는 ‘여캠은 그래도 가슴은 안 깐다’라고 비교함으로써 우위를 메기고자 하였다.
‘음란’한 ‘창녀’는 허구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이며 여성을 긴장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여캠화’라는 개념은 이러한 여성 BJ를 품평하는 남성 커뮤니티의 권력을 드러내며, ‘음란’의 문제를 여성의 몸에 고정시키는 부정의함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성차별을 옹호하는 담론에 대항하기 위한 여성주의적 언어를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시청자를 시청자이게끔, 여성 BJ를 ‘여성’이게끔 하는 여캠·벗방 산업 방송 플랫폼의 메커니즘을 함께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 산업의 주축인 방송 플랫폼, 여성 BJ와 시청자를 권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플랫폼의 역할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여성주의 불처벌의 정치학은 여성이 성을 판매하겠다는 ‘자발성’을 ‘처벌’하면서 성산업을 유지하는 현실을 드러냈다. 다시 말해 여성 처벌이 성산업을 작동시키는 연료가 되는 부정의함을 폭로한 것이다. 여성주의 불처벌의 정치학을 통해 여캠을 켰다는 ‘자발성’을 비난하며(‘여캠화’) 확대 재생산되는 온라인 플랫폼과 미디어 자본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적 비난과 사회적 처벌을 방치하고 나아가 장려하는 행위는 그다음 희생자를 예비하지만, 미디어 자본은 결코 잃는 것이 없다.
현재 여캠 혹은 벗방을 하는(했던) 여성의 경험을 듣는 게 선결 과제라고 생각한다. 아직 드러나지 않는 여캠 BJ와 벗방 BJ 노동에 대한 수많은 논의와 질문이 필요하다. 작년 유명 시사프로에서 벗방 피해자에 대한 구조적 착취 문제를 다루었고, 벗방공지단이 꾸려졌다. 안타까운 점은 피해자로부터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듣고, 이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저 ‘음란’한 여성, 돈만 ‘밝히는’ 여성으로만 읽히는 것이 아닌, BJ 여성들에게 ‘많은 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성 BJ의 자본주의 사회 속 생존 전략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여성 BJ에게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끔 하는 플랫폼 방송 산업의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BJ의 여성들의 ‘동의’와 ‘자발’을 빌미로 폭력을 지속시키는 현실에 개입하는 게 필요하다. 이러한 조사와 청취, 연대를 기반으로 여성 처벌을 통해 비대해지는 한국 디지털 산업과 자본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