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라고 딱지 붙여진 현상에서 무엇이 삭제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구조 속에서 삭제되고, 축소되고, 오해되고, 과장되는 여성들이 어떤 위치에 몰아세워지는지 반성매매 인권운동을 펼치는 이룸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두 번의 모임으로 <불처벌>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불처벌>에게 읽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불처벌을 둘러싼 이야기를 함께 하는 과정은 자기고백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성녀가 되고 싶고 정상의 몸과 통제받지 않는 몸을 욕망하는 내 안의 차별, 그러면서도 불온함과 쾌락에 대한 잣대에 분노하는 혼종의 나를 직면하는 분명히 혼란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이주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저의 궁금증과 활동의 맥락도 불처벌을 감각으로 경험하는 나를 직면하는 과정과 닮아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제가 <불처벌> 읽기에 끌렸던 건 선주민 여성 활동가로서 이주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나의 불안정한 정체성에 대한 자기고백과 성찰을 위함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불처벌’은 당사자의 언어일 수 있어 좋습니다. 당사자 운동의 언어로 외칠 수 있어 든든함이 느껴집니다. ‘불처벌’과 같은 용기와 연대의 언어를 만드는 투쟁들로 반성매매 운동이 힘을 받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존재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여성의 언어가, 성매매 당사자의 언어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 때론 여성들에게 맡겨진 ‘언어를 만드는 것, 설명하는 것, 변화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 무겁고 지치는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고민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언어도 있고(더 많아질 것이고), 🔥이룸도 있어서🔥지치더라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든든함이 있습니다. 이룸, 그리고 이룸과 함께하는 이들의 고민과 움직임처럼, 아니 그 큰 역동의 보폭이 아니더라도 움찔움찔 세상이 반응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세상을 째려보겠습니다!
(이)제는 좀 (룸)움직여라 세상아!
– 2024년 겨울(?), 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