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크레딧> 책읽기 모임 참여 후기_조이

<레이디 크레딧> 모임 후기

11/12, 11/18, 11/26 3차례 진행 / 2024. 12. 10. 조이 후기 작성.

 

 

지난 10월에는 <불처벌>을 함께 읽는 스터디에 참여했어요. 마지막 모임이 끝나고,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늦은 저녁을 함께 하던 뒷풀이 자리에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나누고 있었죠. 그러던 중 새롬님이 언뜻 흘린 한 마디, “<레이디 크레딧>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후속 모임이 호다닥 결성되었습니다!

역시 책은 함께 읽었을 때 끝까지 읽을 원동력도 생기고,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아요. 이루머들과 나눈 수다를 더듬어가다 보면 책 내용도 다시 기억이 나더라고요. 한참을 웃고, 분노하고, 한숨과 정적이 이어지기도 하다가, 엉뚱한 농담에 또다시 웃음보를 터뜨렸던 모임의 순간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을 두 개 정도 골라보자면, 하나는 ‘성매매 문제는 언제나 경제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성매매 진입을 도덕적 타락의 문제로 보는 사회의 편견이 여전히 견고합니다. 그렇지만 그 ‘선택’은 ‘경제 주체’로서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인 건 아닐까요? ‘월급만으로는 노후를 대비하기 어렵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 시대입니다. 별도의 재테크 없이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보는 인식도 있습니다. 순수한 노동 자본만 믿지 않고, 미래의 담보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돈을 벌자는 생각은 오늘날 경제인으로서의 또 다른 도덕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성매매 산업을 유지하는 또 다른 장치는 도덕적 장치’라는 말입니다.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성산업에 진입하는 요인은 도덕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장치의 작동이란 것이죠. 돈을 갚는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애를 쓰는 언니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여성과 도덕에 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왜 여자들은 이토록 도덕적인가…?”)

“… 성매매 산업에 진입하는 것이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에 의거한 실천임을 보여준다. 그들처럼 민주적으로 확대된 신용을 활용하여 자신의 빈곤 문제를 스스로 타개하고 경제주체로 거듭나는 것만큼 시대의 강렬한 도덕률은 없어 보인다. (270쪽)”

성매매 산업의 부채 관계는 이자 부과의 강제적 장치 외에도 다양한 도덕적 장치를 통해 여성들 스스로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 … ‘호의’와 ‘신뢰’는 성매매에서의 부채 관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이로 인해 여성들은 스스로 부채 관계에 도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120-121쪽)”

한국 경제와 성매매 산업은 함께 발달해 왔다는 것을 앞서 <불처벌>을 읽으면서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가 주도하여 성매매 산업을 장려했고,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해왔지요. 공생하며 자란 성산업은 오늘날 어디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것일까? 그 현주소를 <레이디 크레딧>을 읽으며 확인하게 되었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흥업소 창업 대출 사례는 특히 충격적이었어요. 대출 대상은 유흥업소를 창업하려는 이들이었고, 대출 기준 중 하나는 유흥업소에서 일할 ‘부녀자’를 일정 수 확보하고 이들에게 선불금을 지급해 채권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고 해요. 이 모든 대출이 금융권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었다니요! 심지어 이와 관련한 사건이 재판대에 올랐을 때에도 대출 자체의 합법성은 당연하게 인정되었고요. “매춘 여성들의 선불금 차용증이 시중 은행에서 대출의 근거, 위험 회피의 수단이 되는 현실은 이 시대 자본축적 방식이 여성들의 매춘화와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책의 구절에 십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성의 몸을 자원화하는 것과 자본의 축적은 비단 한국의 성산업만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제3세계 여성들을 노린 대출 사업은 꽤나 성공률(채권 회수율)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육아와 ‘여성의 몸’이라는 위험에 발이 묶여 도망을 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여성의 대출 상환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점을 활용한 상품도 많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사례들, 여성 전용 대출상품이나 작업대출 사건 등을 이야기하며, 여성이 금융화된 사회에서 자원을 융통하는 지렛대로 활용되고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없었어요. 갚을 능력이 없음에도 무차별적으로 대출하고, 그 대출을 기반으로 위기를 넘기는 자본주의 사회는 얼마나 착취적인가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2016년에 이룸에서 “왜 나한테 빌려줬어요?” 캠페인을 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적절한 캠페인이지요! 그러게요, 왜 빌려줬을까요? 여성이기만 하면 경제적 상환 능력과 관계 없이 일단 무조건 대출을 해주는 여성대출은 왜 계속 효과를 거두는 걸까요?

책 말미에서는 ‘파산 불가능한 몸’을 다룹니다. 대출로 얽힌 여성의 몸은 파산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 계속 착취될 수 있도록 이동되고 지속됩니다. 파산할 자유가 없다는 말은 곱씹을수록 무섭게 다가옵니다. 파산할 자유와 굶어죽을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 파산하지 않을 자유나 배불리 먹을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보다 더 가혹하고 근본적이지 않은가요.

자본주의는 여성(그리고 여성의 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착취하여 구성된 것이고, 그렇기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여성 착취를 통한 자본 축적 방식 중의 하나이자, 한국에서 이미 너무 거대하고 정교해져버린 것이 바로 성산업이고요. 성매매 산업이 이토록 우리의 경제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산업이 없는 경제 구조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요? 파산할 자유조차 없는 이 구조에서 벗어나는 공간을 찾을 수 있긴 한 걸까요?

이 거대한 흐름에 어떻게 맞서면 좋을까요? 이에 맞서는 여성주의적인 언어와 시각을 어떻게 확보해나가면 좋을까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은 아닐까요? 매번 이런 모임은 한숨과 통탄으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어떡하지?” “정말 어떡하지? 답이 없는데?” 답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만 확인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모임이 항상 우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웃은 기억이 훨씬 더 많네요. 웃다보니 배가 너무 아파서 부여잡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그 내용을 담기에는 너무 삼천포로 빠진 얘기이기도 하고, 좀 거시기 하니까 오프 더 레코드로 하겠습니다만, 진짜 웃겼어요. 길을 잃은 동료끼리 머리를 맞대고 한숨을 쉬다가 또 깔깔 웃다 보면, 이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을 계속 해나갈 동력을 얻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이 아닐까?

사회는 계속 불안을 종용합니다. 노후는 어쩔거야? 집세는 어쩔거야? 좀 더 불안해해라, 미래를 통제하려고 애써봐라!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생존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 번에 읽을 책도 기대가 됩니다! 좋은 사람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뜻깊었던 2024년의 가을 끝자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