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0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떠나지 못한 사람, 떠나지 않는 사람 ‘이태원’ : 이태원 유흥업소 종사 여성 6인 구술 인터뷰 자료집> 을 발간했습니다. 가지각색 6인 여성의 인터뷰 내용을 짧막하게 소개합니다.
📝들어가며
용산구 이태원 우사단로의 오래된 유흥업소들(일명 후커힐, 업소 수 27개, 종사 여성 약 150명)은 재건축을 통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진다면 이곳에서 종사하던 여성들은 일터와 삶터를 동시에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룸은 2015년부터 10년째 이태원 유흥업소지역에서 현장방문상담(아웃리치, outreach)을 꾸준하게 이어오며 종사 여성들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해마다 조금씩 바뀌어가는 이태원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우리가 아는 이 공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룸이 만나온 청량리 성매매집결지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어느새 사라졌기에 이태원이 더 변하기 전에 지금쯤 기록을 해두어야 한다는 절박감도 있었다. 이룸이 만나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얽힌 삶의 이야기와 기억을 들려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흔쾌히 나눠주신 6명의 바다, 말자, 혜선, 켈리, 윤정, 예진 여섯 분에게 감사드리며,
1️⃣“몸 파는 것밖에 안 되는 건 난 싫었어” 바다의 이야기
‘여기는 테이블 차지(charge) 이런 게 없고 그냥 반잔 술로 여기 있는 아가씨들이랑 노는 거’라고. 그러면서 아가씨들한테 술이랑 대화를 사는 거야. 처음에는 일을 하려고 이태원에 들어왔지. 이태원 들어오다 보니까, 딴 데는 못 가겠는 거야. 옛말에 우물 안 개구리라고, 여기서 누구 특별히 아는 사람도 없어. 만나는 사람도 없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이번에 내가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거든. 재개발돼가지고. 근데 또 이사를 한 게 이태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자유로웠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말자의 이야기
주로 외국 사람들. 가끔가다가 한국 사람도 받는데 주로 외국 사람들, 그때 정말 바빴어. 내가 생각하는 이태원 공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덕분에 영어도 알게 됐고 (웃음) 짧은 영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로 돌아가라고 그러면 안 돌아가고 싶어. 지금은 후회돼, 돈도 없고,
3️⃣“그 언니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혜선의 이야기
사실 H(업소명) 가게 닫았을 때 여러 생각이 들었거든요. 거기가 가게 간판도 되게 크고 그 불빛이, ‘그래도 아직 저기는 남아있네’ 그런 느낌이었는데 문 닫는 거 보고 ‘아 나는 진짜 사양 산업에 종사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중략) 여기 있던 다른 가게들, 이미 헐려서 사라진 가게들, ‘그 언니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어디 갔을까요?….
4️⃣“나는 진짜, 이 세계가 그냥 좋았어” 켈리의 이야기
그때는 이런 트랜스바가 활성화되고 그런 게 아니라 아는 사람만 왔던 곳이야, (중략) 그때부터 일했는데 막 술도 먹고 그때에는 막 일본 가라오케가 한참 붐일 때라서 일본 노래가 나오고 그래요. 새로운 세계인 거야, 선배들은 쇼도 하고. 나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어, 꽃처럼 이렇게,
5️⃣“이태원, 나를 만들어 준 곳” 윤정의 이야기
들어갈 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데 얼마나 버티냐 그게 문제였던 거 같아, 얼마나 버티냐 그게 문제였죠. 하루 만에 그만두는 막내들도 되게 많았어요, 들어왔을 때. 저는 하리수를 보고 저런 사람은 저 사람이랑 나 이렇게 세상에 둘만 있는 줄 알았어요. (중략) 확실히 이태원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건 맞아요. 지금 약간 청담동처럼 무슨 구찌 사옥이 막 들어오고 입생로랑 매장이 곧 들어올 예정이고. 그리고 건물들도 주변 바깥에 건물들도 많이 깨끗해지고. 3구역에서 재개발 구역에서 이사하는 사람, 애들이, 말을 들어보면 방을 알아보려고 해도 방이 없대요. 지금 이태원에,
6️⃣“하드코어로 일 시작해서 배운 그 마지막 세대가 내가 아니었을까” 예진의 이야기
여기 작년에 그냥 완전히 대규모 엑소더스였어요. 다들 나가라고 그래가지고. 20대 때는 그냥 뭣모르고 달려야 돼요. 그 돈 벌면 족족 예뻐지는 데 돈 쓰고 성형하고 막 이런 데 돈 쓰고, 이제 제 나이가 딱 되면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버는 돈을 어떻게 할 건지를 잘 생각하지 않으면은, 노후가, 이 일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중략) 특히 또 내가 언제까지 건강할지도 모르는 거고. 이 일 건강하지 않으면 못해요.
📝나가는 말
2016년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에 따라 반잔바의 소멸은 가속화되고 있고, 이 자리에 트랜스젠더바가 들어서면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반성매매’ 단체인 이룸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반잔바와 트랜스젠더바를 같은 선상에 놓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같은 선상에서 본다면, 이곳에서 거래되는 것은 무엇일까. 다르게 본다면 반잔바와 트랜스젠더바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성성’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사고 팔리는’ 역학이 무엇일까, 머릿속에서 돌고 도는 고민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이 구술집은 이와 같은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첫발을 뗀 시도이다.
‘한남뉴타운’이 들어서면 이태원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우리는 어떻게 이태원을 기억하게 될까. 변화된 이태원에서 밀려나는 존재는 누구이고, 이윤을 보게 되는 존재는 누구일까. 밀려나는 존재들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이룸은 ‘그 언니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