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우리가 이태원에 빚진 것_영화 <이태원> 을 보고

우리가 이태원에 빚진 것
– 영화<이태원>을 보고

완두

 
 
   이태원, 참 심플한 제목이다. 그만큼 이태원에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 가능한 그 곳만의 풍경과 역사가 있다. 하지만 그것 그대로 영화 제목이 될 때는 이제까지 알았던 혹은 알고 있다고 믿었던 풍경에 균열을 예고한다. 누군가의 증언과 기록은 각자의 풍경이 서로의 경험과 기억에 빚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내 존재 안팎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구체적인 소리와, 냄새와, 맛과, 온기로 실감한다. 내게 이 영화가 그랬다.

   이태원은 여러 인종과 종교, 문화, 정체성이 뒤섞여 있는 동시에 이태원하면 살인을 먼저 떠올릴 만큼 위험한 지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뉴타운으로 지정된 후 10년 넘게 재개발이 늦춰져 방치되면서 저렴한 임대료를 보고 모인 청년, 예술가들에 의해 활기를 띠더니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맛집, 서점이 들어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핫’해진 이곳을 [이룸]은 2015년 5월부터 <이태원>의 강유가람 감독과 함께 성매매를 경험하는 트랜스젠더/외국인/이주/여성을 만나기 위해 소방서 뒤편 유흥업소 밀집지역인 우사단길 일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태원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용산을 비롯한 전국 요지에 설치된 미군기지를 상대로 유흥업이 팽창한 지역 중 하나다. 지금은 당시 역사에 관심 있는 언론과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졌듯 기지촌은 미군의 원조가 절대적이었던 시기 여성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정부의 적극적인 기획에서 설치‧운영되었다.
 


▲ 이태원 우사단로14길 일명 '후커힐'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평가받는다. “이태원에 있는 클럽에서 일한 여자들은 이 나라의 국보로 생각해야 돼. 쌍말로 말해 ‘엉덩이 국보’라고. 여자들이 보면 가족들이 셋 넷이 딸려있어. 안 딸려 있는 사람이 없어.” 라고 말하는 영화 속 나키의 증언은 이태원 클럽에서 일한 여성들이 성장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 여성들과 이태원은 ‘성장’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을까?
 

   주인공 삼숙, 영화, 나키는 40년 넘게 이태원에 뿌리내리고 사는 노년여성이다. 세 여성은 세간의 편견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계를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당시를 회고한다. 반백년 넘게 살아온 이들의 삶은 실상 폭력, 빈곤, 외로움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태원은 그 세월을 함께 겪어낸 이웃과 김치를 나눠먹고, 가장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 가족을 부양하고 또 잃어버린 형제를 기다리며 남은 인생을 살아내는 공간이다. 카메라는 세 여성이 이태원에서 일하고, 먹고, 관계 맺고, 노후한 주택으로 불편을 겪는 일상들을 쫓으며 관객에게 ‘지금-여기’의 이태원을 목격하길 청한다.
 

   성매매 경험 여성들은 주로 언론과 유흥업소 후기 사이트에서 오직 ‘몸’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남대문을 가도 다시 이태원 입구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는 이곳에 대한 나키의 애착과, 손수 준비한 음식들로 운영하던 업소의 40주년 파티를 열며 5년 더 장사를 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치는 삼숙의 바람은 그들을 이태원 지역 주민으로서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곧, “여기 재개발 안 될 거야. 말만 그러지 안 돼. 여기 못사는 사람들 많은데 어디로 가라고 갈 데 없는데 씨발 돈 있는 사람이야 팍팍 사서 가겠지만” 이라는 영화의 말이 무색하게도 보류됐던 재개발이 재개 된다는 소식과 함께 이웃의 건물이 팔리고 철거된다. 나키는 낯선 인파속을 걸으며 “사람이 너무 많아 이태원이 꺼지겠다” 며 자본의 필요가 재촉하는 변화에 조용히 시름한다.
 

   근래 이태원에 정착한 청년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초기 값싼 월세로 흘러들어와 공방과 가게를 오픈한 청년들은 이태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 공간을 꾸미거나 ‘계단장’, ‘마을투어’를 기획했다. 이들은 이곳만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면서 쇠퇴한 이태원에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꿈꿨다. 하지만 도리어 이들의 활동으로 이태원에 사람들의 발길이 늘자 투자자들의 욕망으로 상권이 형성되면서 부동산과 월세가 폭등해 청년들이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이태원은 현재 대표적인 유흥, 소비 공간으로 부상했다. 그 사이 이곳을 아끼고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의 주거와 생계는 개발과 성장으로 위장된 자본권력에 의해 내몰리게 됐다. 세대는 다르지만 기지촌 출신 노년여성들과 청년의 상황은 ‘지금-여기’ 공통의 위기를 공유한다. 그들의 상황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삶과 공간이 이처럼 반복적으로 지워졌고 또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정당화 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2010년 한국 사회의 ‘화대’는 7조원. 같은 해 영화 산업 매출 1조2천억의 5배를 넘는다(<은밀한 호황>, 김기태, 하어영, p.58). 하지만 여성에게 성매매를 시작하고, 지속하고, 중단하는 과정에서 빈곤은 떼놓을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이제까지 성매매집결지 폐쇄는 재개발, 도시정화, 성산업축소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 기업, 땅주인, 업주, 주변 상권과 지역주민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의 이익을 셈하는 목소리가 뒤섞였다. 누구의 손에 더 큰 이익이 떨어지는지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그곳에 왜 성매매집결지가 형성됐고 누구의 필요에 의해 지금까지 유지되었는지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곳을 생계유지의 공간이자 '창녀'라는 편견어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의미화 해온 여성들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보상과 계획, 이를 위한 다각적인 논의는 공론화 되지 못했다. 지금 사회는 이유가 뭐였든 성매매여성의 존재와 공간이 없어져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어떤 공간의 변화를 이야기 할 땐 그 공간에 누가 사는지를 비롯해 그 공간이기 때문에 알아야 하는 역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태원과 더불어 [이룸]이 10년 넘게 아웃리치를 가고 있는 청량리 역시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빈곤, 건강, 주거 등의 생존 문제를 오직 자본의 흐름에 의지해 스스로를 전시해온, 그렇게 거주해온 이들의 공간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진다.
 

   최근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가 지역에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자 친구의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게 네가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일까?” 언제든 내쫓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지금-여기’에서 우리 역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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