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현장지원센터 :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우리 마음은 지지 않았다

 

예정된 자활지원사업 종결

이룸은 20093.8여성대회에 선전물과 장미꽃을 들고 나갔다. 열악한 지위에 처한 여성노동자와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 목소리를 높이고 차별에 저항하며 기념되는 여성의날. 이날을 축하하며 만나는 이들에게 장미꽃을 건넸다. ‘여성의 날을 축하해요우리는 웃으면서 꽃을 내밀었고, 누구든지 웃음으로 화답하며 꽃을 받았다. 그리고 함께 건넨 선전물의 제목은 우리 마음은 지지 않았다.’로 시작한다.

<3.8여성대회 거리 캠페인 참여선전물 보기 >

 

그달 31일에는 이룸이 여성부의 위탁을 받아 운영했던 청량리자활지원센터 종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20064월부터 청량리집결지에 자활지원센터를 개설하여 사업을 시작했고, 처음부터 3년간의 한계적 지원이었지만 사업지침 상 이룸의 자활지원센터 종료는 20091230일까지였다. 이때는 집결지 자활지원사업의 3년이라는 기간이 성매매여성들의 인권보호와 권리증진, 폭력피해를 완화시키기에는 한시적이라 다른 방향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한다는 고민이 계속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전국 집결지자활지원사업위원회(집사위)에서도 사업 종결 이후의 지원과 정책적 방향이 늘 이야기되곤 했었다.

 

여성들의 정보를 요구하는 여성부

이런 시점에서 9개월이나 서둘러서 사업이 종결된 것은 여성부가 보낸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생계지원금 지급자 명단제출 요구 라는 한 장의 공문 때문이었다. 20081228일 팩스로 들어 온 공문은 시행 기한을 20081231일로 명시한 통보였다.

 

당시 집결지자활지원사업에서는 집결지 성매매여성의 탈성매매를 유도하면서 기초생계비 수준의 생계지원금을 6개월 동안 지급하였다. 6개월 동안 매주 1회의 정기 상담, 2회 이상의 직업훈련 프로그램 참여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40여만 원을 생계지원금으로 받았고, 이는 탈성매매를 위한 과정에서 지급되는 보조 금원이었다. 그런데 이 생계지원금을 받는 여성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요구하는 공문이 온 것이다.

 

 심지어 명단제출을 거부할 때는 집결지자활지원사업을 종료한다는 의사로 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성매매피해여성의 권리를 위한 한 줌 같은 정책인 성매매방지법이 오히려 지원금을 빌미로 보호해야할 여성의 인권을 개인정보를 집적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거라는 예고는 애초의 법 취지를 한참이나 벗어난 뜨악함 그 자체였다.

 

여성들과의 신뢰가 무너지는 소리

집결지 현장 지원단체는 3년 여 동안 현장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볼온한 눈초리와 낙인 때문에 어디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기 곤란해 하는 여성들이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센터를 찾아오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원을 받으면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정부에 넘겨서 기록이 남기 때문에 취업이나 결혼 시에 성매매 했던 일을 모두가 알게 하는 것이라고 업주들은 여성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익명성을 담보하는 지원이야말로 현장 단체에서 최우선으로 삼은 철칙 같은 것이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삶의 특수성을 이유로 익명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지원단체는 더욱 엄격하게 대상을 필터링하고 지속적이고 꼼꼼한 대면상담 진행을 통해 지원을 신중히 할 수 밖에 없다.

 

활동의 발목을 잡는 표적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매매여성에 대한 정부정책과 현장지원단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집결지 업주모임인 한터를 주축으로 집결지 자활지원사업의 투명성을 계속 문제를 삼았다. 결국 이들의 집결지 자활지원사업 감사청구가 국민감사청구형식으로 20086월 신청이 되었고, 좋은 먹잇감처럼 언론에서도 집결지 지원사업의 지원금이 줄줄 샌다는 식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 당시 청구된 감사 청구 9건 중 표적감사 논란이 일었던 KBS 감사 청구와 집결지자활지원사업 감사 청구 단 두건만이 감사 실시 결정이 되고 7건은 기각 또는 각하처리 되었다. 업주모임인 한터가 주축이 된 사적 권리관계인 청구였는데도 말이다.

<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의 성매매 집결지자활지원사업 감사 결정에 대한 성매매없는세상 [이룸]’의 입장 보기>

 

지원금과 바꿀 수 없는 개인정보

감사원 감사 결정 후 이룸은 의료지원과 직업훈련 지원 등으로 지출 증빙 서류에 첨부 된 여성들의 실명, 주민번호,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삭제했다. “관리책임자가 잡혀 들어가면 사식 넣어줄게. 꼬박꼬박 면회 갈게. 아예 센터에 불을 질러 버리자!” 라면서 농담을 치기도 했지만 이보다 절박할 수는 없었다. 3년여에 걸쳐 쌓은 여성들과의 신뢰와 성매매여성 지원의 철칙인 신변보호를 지원금과 맞바꿀 수 없었다.

 

 

성매매여성 지원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오롯이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했기 때문이다. 폭력상황에서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과 선불금 독촉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인감과 주민등록등본과 가족의 전화번호를 빌미삼아 끊임없는 협박으로 매시간이 불안한 상태를 종식시키는 것 등의 지원이 모두 그랬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지원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고, 불안에서 벗어나 법과 정책과 관계에 기댈 수 있다고 끊임없이 안심을 시키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계지원금 수령자의 개인정보 수집을 요구했을 때 그럴 수 없다고 결의할 수 있었다.

 

언니들과 함께 결정한 반납

궁금한 것은 당사자인 성매매여성들의 의사였다. 이룸은 내부적으로 여성부 지침에 대한 거부와 집결지자활지원사업 반납까지 고려하면서 청량리 여성들과 3차례의 반상회를 가졌다. ‘복작복작반상회를 통해 여성부의 요구와 이룸의 고민을 나누고 여성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 어떤 시간보다도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미래의 계획이 모두가 불확실한데 그렇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더욱 줄 수 없다는 여성,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지원이 아니겠냐며 위험을 감수하고 개인정보를 주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여성,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의견을 듣고 설득하기도 하고 수긍하기도 하면서 내린 결정은 개인정보 수집에 반대한다였다.

 

무겁지만 후련한 이야기들이였다. 결정 이후 그럼 어떻게 만나고 지속할 수 있을까를 역시나 <복작복작반상회>를 통해 결정했다. 지원사업 시 이룸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의무적으로 참석했을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모임의 이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반장도 뽑았다. 우리들의 만남은 정부지원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아 이렇게도 만날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주는 시간들이였다.

 

그래도 만날 수 있다

20093월 중순 청량리 센터 짐을 다 빼고 텅 빈 공간에서 일본군 위안부송신도 할머니의 법정 투쟁 다큐멘터리를 공동체상영으로 여성들과 함께 보았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법정소송에서 패소하고 송신도 할머니는 예의 그 활기참으로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부의 불합리성을 규탄하는 성명서와 성매매지원사업 몰이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준비했지만 어떤 종류의 무기력함이었는지, 주변 상황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게 조용히 사업을 종결했다. 또한 정부지원과 현장거점이 없어도 청량리 여성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별별다방>을 준비했던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여성들은 다른 지역의 집결지로 가거나 업주가 되거나 연락이 끊기거나 청량리에서 한두 명을 만나서 인사를 하거나 하는 정도가 되기도 했다.

 

제도 안에서 유용하게 여성들과 경험을 나누고 제도 밖에서 다양한 계획들을 세운 시간들을 지나 조용히 이야기해본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은 지지 않았다이 주문은 계속 유효하리라.

 

<청량리 기록화 사업: 천일야화 소개 보기>

 

 

이룸10년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