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공감[친밀성과 통제: 장애여성 피해 경험 재해석] 에서 발표한 이룸의 토론문

장애여성공감에서 주관한 [친밀성과 통제: 장애여성 피해 경험 재해석] 자리에 이룸이 토론자로 참석하였습니다.

장애여성의 경험과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가부장제의 여성통제에 있음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보호와 자발 사이에서 우리가 말해야하는 수없이 많은 경험과 해석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고진달래

 

이 발제문에서 인상적인 것은 장애여성들의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들이다.보호라는 미명아래 사생활까지도 허락을 받아야하는 가정, 일자리조차 나의 주체성을 인정받는 과정이 아닌 부족한 한 인간으로 배워야하고 동등한 임금으로 인정해주지 않은 사회안에서,장애여성들은 나로 온전히 인정받는 감각이 결핍될수 밖에 없다. 이런 작동 안에서 장애여성은 타인과의 관계안에서 친밀함을 어떻게 발현시키는지, 또 그 친밀함을 이용하는 자는 누구인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고 했을 때, 상호 의존/상호보안의 만남의 과정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왜곡이 여성들에게 어떤 경험을 남기는지에 대한 맥락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지난 장공감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확인한 것은, 성매매 여성과 장애여성들이 경험하는 많은 부분들이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자원이 부족한 여성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가족은 여성을 진정으로 ‘보호’한 적이 있었는가.

우선, 장애여성들이 경험한 것과 비슷하게 성매매를 한 여성들은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이나 정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경제적인 도움을 줘야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거나 가정을 빨리 떠나서 독립하는 것이 자신이 살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느끼는 부양에 대한 부담은 크다. 여성들이 부모 뿐 아니라 형제 자매, 자녀 그리고 남편을 책임져야하는 생계부양자인 경우가 많다. 가족 자원 없이 자신의 생계, 빚, 교육 등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많은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일을 기본적으로 자신이 응당 해야하는 의무인 것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아마도 어려서부터 가져온 믿음이었다.

(사례)
•자신의 수술비용 뿐 아니라 매월 부모에게 생계비를 보내야한다는 책임감으로 계속 업소 일을 하는 여성.
가족과 경계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의 어려움.  지금 있는 관계마저 끊으면 결국 혼자가 되거나 버림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여성은 결국 도리를 지키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다고 했다.
많은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충분한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내면 깊이 하는 것 같다.

•부모 뿐 아니라 형제, 조카까지도 부양하는 경우는 흔하게 볼수 있다. 오빠와 다른 형제가 있었음에도 한번 가족의 생활비를 책임지게 되면 다른 가족들은 당연히 여성이 져야된다고 생각한다.
오빠들의 공부와 결혼, 조카들의 공부까지 책임지는 것을 당연히 해야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성들은 언젠가 ‘가족들이 고마워하겠지, 나를 인정해주겠지’ 생각하면서 가족 안에서 나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싶다는 믿음은 결국 깨지고 지금에 와서 남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생략….

…셀수 없이 많은 사례들.. 가정폭력, 친족성폭력, 카드빚, 빈곤…

 

그렇다고 하면 여성들이 이렇게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가족들을 돌보아왔는데, 가족 안에서 인정받고 대우받고 원하는 위치를 얻었을까. 가족은 늘 희생자가 필요하고 그 역할을 여성이 맡게 된다. 이것이 친밀함을 기반으로 한 폭력이다. 어려서부터 경제를 책임지거나 집안 일을 도맡아하지만 집안 구성원으로서의 중요도는 돈을 대줄때만 인정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늘 서열에서 밀려나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친밀함의 문제는 연인관계를 맺을 때 여성들에게도 드러나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연인은 구매자일 경우가 높다. 낮과 밤이 바뀌는 상황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성매매 일을 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했을 때 안도감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다. 여성들은 연애를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감과 함께 경제적인 부담이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본 한국 남성들의 수준을 보면 여성들이 바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만큼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성과 경제적인 능력을 겸비하는 사람은 사실 만나기 어렵다. 여성들은 연인 관계에서도 ‘성매매를 한 여성’ 이라는 이유로 정신적/신체적 학대상황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내면화된 낙인은 여성들의 자존감에 심각한 외상을 남기고 스스로도 ‘이 일을 알고는 나를 사랑할리 없다’고 믿게 된다. 안정적인 관계와 사랑을 바라지만 연애와 결혼이란 주제는 여성들을 늘 부대끼게한다. 성매매를 했다는 것을 숨기고 결혼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실이 들킬까봐 두렵고 그리고 내가 너무 큰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딜레마 속에서 여성들은 한동안 갈등을 겪는다.

 

몸을 둘러싼 통제와 섹슈얼리티에 관하여

빈곤한 자원을 가지고 살아내야하는 여성들에게 몸은 자원이 된다. 이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자원은 몸으로만 환원이 될 뿐이다. 여성들의 몸은 어디에서나 위계가 나뉘어져 있고 이 사회가 선호하는 몸을 가지면 취업을 할 때도, 결혼시장에서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유리하게 작용이 된다. 여성의 몸은 남성과 견주어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자화되고 남성들의 욕망으로만 쉽게 대상화된다. 욕망되는 몸과 쓸모 없는 몸의 기준은 남자들의 시선에 따라 평가되고 결정된다.성매매를 하는 여성들도 역시 끊임없이 “잘 팔리는” 몸이 되기 위해서 다이어트 약을 수시로 복용해야하고, 수면제와 다이어트 약을 함께 복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여 여성의 몸에 직접적인 부작용을 남긴다.
초이스 과정에서 살이 찌는 것은 곧 혐오스러운 몸이라는 평가를 받는 순간이 되고 여성들은 어떻게서든지 몸을 변형시켜야한다. 업소에서 성형대출을 권유하고, 초이스가 곧 수입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잘 팔리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한다. 잘 “팔리지 않았을 때”는 경제적인 타격을 받고 그것이 곧 여성들의 자존심에 영향을 주고 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말은 몸 외에 어떠한 자원도 여성들에게는 쉽게 쥐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택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 관계는 장애여성의 ‘의존한다’는 생각과 다르게 명의도용을 통한 부채형성, 수급비 수탈등과 같은 경제적인 착취 등의 대가를 지불토록한다.

그러나 애정이라는 친밀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관계는 장애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해석되어진다’ (발제문 중)

성매매 담론에서도 마찬가지로, 성폭력 담론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피해 경험을 말할 때 오직 두 가지 잣대가 경합한다. 어떤 경험을 해석을 할 때, 그 경험은 사회적인 맥락을 담고 있을수 밖에 없는데,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오직 강제에 의한 피해였는지, 아니면 네가 선택한 일이었는지에 대한 해석뿐이다.

우리에게 내 삶을 결정할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어 있는가. 인간성을 훼손되지 않은 선에서 노동을 하고, 나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수 있는 일들이 과연 있기는 있는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식당에서 일 하는 여성들은 밤에 오는 술 손님의 성적 농담을 받아야하고 집을 방문하며 가스를 점검하는 여성들은 성폭력의 위험을 감당해야하고, 마사지를 하는 태국 여성들은 성매매를 제안받는 것이 여성들이 몸 담고 있는 노동시장의 성격이다. 성매매 여성들, 장애 여성들, 이주여성들, 홈리스 여성들…이 사회가 끊임없이 정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밖으로 밀어내고자 하는 존재들이 겪는 문제들은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와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가 재개발이 되고, 집결지가 없어지면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중장년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었다. 다른 지역으로, 집결지로, 룸으로, 안마로 선택지를 갖고 있었던 젊은 여성들과 또 다르게 30~40년을 성매매를 업으로 살아가야하는 나이든 여성들의 빈곤을 보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나의 임금으로 오롯이 교육과 의료, 생계, 노후대책등을 책임져야한다. 가족과 단절되고, 자신을 돌봐주는 자녀가 없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을 스스로 건사해 나가야했다. 어디 하나 기댈곳 없는 여성들은 성매매로 일당을 벌어서 하루 생활비를 사용하고 그 적은 비용 안에서도 월세, 병원비와 핸드폰 비용을 마련해 놔야했다. 이 사회가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지켜내야하는 복지에 대한 철학과 정책이 부실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계속 빈곤하게 만들고, 자원 하나를 쉽게 주지 않는다. 그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노동에 인간성을 팔아야하거나, 남성들에게 복무하게 하는, 이 두 가지의 선택권만이 내 손에 쥐어졌다. 여성의 삶을 결핍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놓고 몸을 자원삼아 살아가라고 말한다. 이 발제문을 보면서 여성들의 몸을 관통하는 폭력의 근원이 가부장제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경험을 통해서 공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