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영자의 전성시대>, 도대체 누구의 전성시대?

몹시 후기  

영자의 전성시대’, 도대체 누구의 전성시대?

 

가루


(스포일러 매우 많습니다)


 

몹시 세미나에서 ‘영자의 전성시대’를 함께 보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다. 나는 이 영화가 성매매에 관한 것인지 모르고 ‘얄개 시리즈’처럼 철없는 10대의 연애담에 관한 옛날 영화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전성시대’라는 단어가 그런 혼란을 가져왔던 것 같다. 성매매하면서 고생한 시절을 ‘전성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룸’에서 노년 성매매 연구 관련해서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 때문에 이 영화가 그다지 무겁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성매매를 선정적인 소재로 활용했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이 영화가 굉장히 유명한 영화이고 개봉되었던 1975년 당시에 엄청난 흥행을 했던 작품이기에 더욱 그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무거운 영화면 흥행을 했겠어? 성매매 여성의 암울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보려고 했겠어?’
 
나의 이러한 기대는 영화 시작 10분 만에 깨졌다. 시골 가난한 집의 장녀로 밑에 줄줄이 동생을 달고 있던 영자가 도시로 올라와 돈을 많이 벌어 집에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한 부잣집의 식모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집 아들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쫓겨난다. 아니, 이건 너무 리얼하잖아? 그러나 영자의 고난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공장에서 봉제일을 해보지만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장시간의 고된 노동을 한 달간 견디고 월급을 받아 손에 쥐었을 때, 영자는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곧 “하하하” 배꼽을 잡고 방바닥을 구르며 히스테리컬하게 웃는다. 영자에게 잘 곳을 제공해 주던 고향 언니는 술집을 다니고 있었고 영자에게 줄곧 “술집에서 일하라”고 조언을 했던 터라, 이 언니도 영자와 함께 배꼽을 잡고 웃는다. 영화는 이 상황의 희극성을 놓치지 않고 극적으로 잡아냈다. 식모살이를 해도 어차피 성폭력을 당해서 몸 버리고, 공장 일을 하면 건강 상하면서 죽어라고 일 해봤자 버는 돈은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할 정도이지 시골에 돈을 보내줄 수도 없는데, 몸 귀하게 여겨 뭐하겠다고 술집 일을 마다하고 이 고생을 했나? 술집에서 일하면 똑같이 몸은 버리겠지만 그래도 방이라도 하나 얻고 집에 적은 돈이라도 좀 부쳐줄 수 있었을 텐데. 이 돈을 받겠다고 이 일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의미의 자조적인 웃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영자는 술집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나 잘 못 마시는 술을 마셔가며 남자손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고, 영자는 마음을 다잡고 택시운전기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일단 버스차장으로 취업을 한다. 버스차장 일은 엄청 위험하다. 꽉 찬 버스에 승객들을 밀어넣고, 달리는 버스의 열린 차 문에 매달려 앞뒤 교통 상황을 파악한다. “오라이! 오라이!”를 외치며 열심히 일하던 영자는 어느 날 열려 있는 차 문에 노출된 팔이 지나가던 차량에 부딪히면서 팔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 육체노동만이 살 길이었던 영자는 절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까지도 영자는 몸을 누일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팔을 잃었으니 식모 일도, 공장 일도, 버스차장 일도, 택시기사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낙인이 심한 사회에서 도시에서 기댈 사람 하나 없던 영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영자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거액은 고향에 다 보낸다. 난 영자가 죽어 버리려나 싶었다. 아직도 지낼 곳이 없었던 영자는 어느 날 잘 곳이 없을 때 종종 가던 여인숙에 간다. 이 여인숙은 전에도 영자가 왔을 때 주인이 “쯧쯧쯧. 혼자 온 남자손님 하나 있는데 연결해줄까?”라고 선심 쓰듯 성매매를 제안했던 곳이다. 추운 겨울 날 몸 누일 곳이 없어 불구가 된 몸으로 이 여인숙에 온 영자는 지친 목소리로 “남자 손님 방에 넣어주세요. 돈 안 주셔도 돼요. 안아주시기만 하면 돼요.”라고 주인에게 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영자의 마음에 너무나 공감이 갔다. 의지할 사람 없는 큰 도시에서 추운 겨울에 불구의 몸으로 몸 누일 곳도 없는 신세. 따뜻한 방에서 체온을 나누어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성구매자든 누구든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이렇게 영자는 성매매 일을 하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110분인데 영화 시작하고 반도 지나지 않아서 영자는 이미 성매매 일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도 너무 끔찍한데 나머지 한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더 일어나려는 거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십 분 쉬고 봅시다! 제발!” 이라고 외쳤다. 도대체 영자의 전성시대는 언제 나오나?
 
영화의 후반부도 제목처럼 발랄하지는 않다. 영화는 영자를 짝사랑하는 순박한 청년인 창수의 시각에서 전개되는데, 그는 영자를 매우 좋아하지만 월남전에 갔다 온 후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기 때문에 집한 칸 마련할 돈도 없고, 그래서 영자에게 선뜻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영자의 성매매업소로 가끔 찾아가 돈을 지불하고 밤을 보내며 영자가 쉴 시간을 줄 따름이다. 영자는 점점 더 몸과 마음이 망가져간다. 성병에 걸리고, 술에 의존해서 생활한다. 창수가 영자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면서 둘이 잘 되는가 싶더니, “영자는 플러스 1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이너스 1이 되는 사람”이라는 창수 지인의 충고(?)를 들은 영자가 창수를 떠나고야 만다. 
 
영자는 왜 마이너스 1인 여자가 된 것일까. 젊은 빈곤 여성에게 안전한(성폭력으로부터, 산업재해로부터) 노동환경과 적정 보수가 제공되는 일자리가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는 몸 누일 방 한 칸 없는 상황에서도 집에 돈 먼저 부쳐주며 장녀의 의무를 다하려 한 영자의 판단착오 때문일까.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성매매 일의 특성 때문일까. 이 영화의 포스터에 적힌 문구에서는 영자를 “우리가 만난 여자. 우리가 사랑한 여자. 우리가 버린 여자”라고 표현한다. 그래, 우리가 버렸지. 당시 붕괴되어가는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와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온몸으로 버텼던 그 수많은 여공들, 성매매 여성들을 우리는 버렸다. ‘시대의 한계’라며, 개발과 성장의 논리 아래 부차시했던 다른 수많은 소수자들의 인권과 함께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도록 버려버렸다. 
 
영자가 그래도 살아남기를, 그래서 그 시대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말이 안 되었었는지를 이 시대에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바랬다.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자의 마지막 모습은 뜬금없게 느껴졌다. 자신처럼 신체 장애를 가진 남성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허름한 빈민촌에서나마 건강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집창촌에서의 원인 모를 화재로 사망하는 원작 소설의 결말과는 매우 다른… 원작의 결말이 더 사실성있게 다가오는 것은 나의 편견일까?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영화는 기대보다는 훨씬 당시 시대 상황과 성매매 여성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전성시대’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역설적인 의도였던 것 같다. 아니면, 영자같은 사람들을 저버린, 개발과 성장에 동참하여 계층 상승을 이루고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한 나머지 우리들의 전성시대였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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