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사건에 부쳐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사건에 부쳐

– 페이를 지불하고 찍는 남성과 페이를 받고 찍히는 여성의 관계에 대해

혜진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한 사진 커뮤니티에 올라온 촬영회 사진에 달린 댓글들. 흔히 사진사들이 담고자 하는 것이 사회의 규범 상의 ‘여성스러움’ 임을, 그 시선으로 모델을 평가함을 보여준다.

갖은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사진을 찍는 것은 즐거운 취미였다. 취미를 즐기면서, 모델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너무 좋은 아르바이트다!’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모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업종은 쇼핑몰 피팅모델이었는데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출사모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쇼핑몰 피팅촬영은 옷을 예쁘게 보이는 사진을 목적으로 쇼핑몰에서 모델과 사진사를 고용해서 찍는 사진이라고 하면, 출사촬영은 사진사들의 인물사진촬영을 목적으로 사진사 혹은 스튜디오가 모델을 고용하여 찍는 사진이다. 사진사 개인이나 사진 동호회에서 페이를 지급하고 모델을 고용하기도 하고,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고용해서 참가 사진사들에게 참가비를 받기도 한다.

지난 5월, 한 유튜버의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공론화가 화제가 되었다.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여러 컨셉의 촬영을 하게 될 것이다’는 정도의 안내를 받고 계약서를 작성했고, 촬영 당일이 되자 문이 잠긴 상태에서 20여명의 남성들에게 둘러 쌓여 협의되지 않은 포르노와 다름없는 노출촬영을 하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그 촬영물이 유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위협을 받으며 느꼈던 공포와,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면 받을 손가락질에 대한 걱정과, 가해자들의 지시에 의해 행동해야 했던 상황에 대한 절망감 같은 감정들이 꾹꾹 눌려있는 전문은,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해지는 폭로였다. 한구석에 치워두고 있었던 내 경험과 감정들이 폭로된 사건과 연결 지어져 하나둘 떠올랐다. 마음 아픈 폭로였지만, 너무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에,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공론화된 사건을 보며 떠올렸던 나의 촬영회 모델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공론화된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과 나의 경험은 분명 다른 사건이고 다른 맥락이 있지만, 연결된 지점 또한 있다.

 

페이를 지불하고 찍는 남성과 페이를 받고 찍히는 여성의 관계

페이 지불관계 없이 모델과 사진사가 촬영을 기획할 때에는 다양하게 서로가 원하는 컨셉과 이를 위한 의상과 연출에 대해서 의논하고 협의하게 되지만, 페이를 받고 모델로서 고용될 때 협의하게 되는 사진의 컨셉은 ‘일반(캐쥬얼, 청순)/섹시/세미누드/누드’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다. 내가 접한 대부분의 사진사와 사진 관련 커뮤니티의 구성원은 남성이었고, 대부분의 모델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사진사들이 여성 모델을 찍음으로서 사진에 담고자 하는 것, 여성 모델이 표현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게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슴․허리 라인과 각선미가 드러나는 의상과 포즈, 혹은 침대에 누워 애정을 구하는 듯한 눈빛과 표정, 혹은 귀여움, 청순함과 단아함 같은 것들 말이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남성의 기준으로 형성된) 이 사회가 인정하는 예쁜 여성이 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았다. 많은 사진사들이 선호하는, ‘잘 팔리는’ 모델이 되고자 했던 욕구는 이의 연장선상인 동시에, 여기에 ‘돈을 더 벌고 싶다’라는 실질적 이해가 더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 다이어트를 했고, 외모를 꾸몄고, 그들의 욕망을 잘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욕망을 연구했다.

그럼에도 내가 출사모델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불쾌감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불쾌감, 얼마나 ‘원하는 전형’에 부합하는 모델인지를 평가받는 위치가 되면서 느끼는 ‘무시당한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메커니즘 안에서 의상이나 화장에 대해 지적받고, 사진의 퀄리티를 이유로 노출이 더한 의상과 포즈를 요구받고, 포즈교정을 이유로 터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협의되지 않은 노출 촬영, 촬영장에서의 포즈교정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성추행, 혹은 작정하고 이루어지는 성폭행과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관련 구인․구직을 하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여러 차례의 고발이 이루어진다. 이를 없애기 위해 범죄자의 정보를 공개하며 해당 사진사와 촬영을 하지 않을 것을 공지한다던가, 터치 없는 ‘매너있는’ 촬영을 할 것을 권고한다던가 하는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한다. 범죄행위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만으로 내가 느꼈던 불쾌감을 발생시키는, 범죄행위들을 발생시키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끔 하는 그 구조는 흔들릴 수 있을까. 평가받는 위치가 됨으로 인한 불쾌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의 열등감, 을의 위치이기에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 거절할 수 없는 무력감, 갑의 위치이기에 권리로 여겨지는 ‘부당한 요구’ 그 자체. 이러한 것들은 나의 몸을 매개로 타인의 욕망(남성중심적 구조에서 만들어진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페이를 지급 받는 일에서 없어질 수 있을까.

 

대국민사기극? 제발 자발/비자발이 아닌 권력관계를 사유하자

공론화가 있고 얼마 후, 실장과 모델이 대화를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되면서,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촬영을 어쩔 수없이 해야했다’는 기존의 공론화 내용과 다르다며,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자의 눈물은 믿을 수 없다’(지긋지긋하게 여성을 괴롭히는 꽃뱀논리)는 등의 말들이 주를 이뤘다. 해당 사건이 ‘문제’가 되기 위해서 ‘자발적이지 않은 것’, ‘강제에 의한 것’이 중요한 요건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에는 단순히 결과적 ‘자발/비자발’, ‘물리적 강제의 유/무’로는 판단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개입한다. 위계를 장악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협감, 위협감을 느끼는 관계에서의 순응과 내재화 같은 것들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물리적 강제 없이도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적 맥락으로 인해 한다.

그렇기에 ‘문제’가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결과적 ‘자발/비자발’, ‘물리적 강제의 유/무’ 따위가 아니라, 폭력행위를 가능케 하는, 심리적 강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그 안과 밖의 권력관계이다. 해당 사건에서 협의되지 않은 촬영을 강제할 수 있도록 실장이 모델에게 행했던 위압과 그로 인한 그 안의 위계관계, 사진이 유포되었을 때 사진 속 여성만이 비난받는 밖의 위계관계 말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같은 의도적 위압 없이도 위계관계를 형성하는, 여성의 몸을 매개로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페이를 지급 받는 ‘일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진 일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남성의 욕망을 여성의 몸으로 표현하는, 많은 유료 촬영회에서의 여성인물사진에 대한 얘기다.

어떤 면에서는 성판매와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몸을 매개로 타인의 욕망을 실현시킨다는 것, 성적대상화의 대상이 됨으로서 느껴지는 불쾌감과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각, 성추행․폭행이 그 안에서는 당연하고 이를 감내하는 것이 프로페셔널한 것이 된다는 면에서. 

 

 

논평성명서

[상담한꼭지] 성매매와 미투

성매매와 #미투 _차차

이룸에서 만난 한 내담자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구매자들이 업소에 와서 종사 여성들을 괴롭히며 미투 운동을 대놓고 조롱 했다고 한다.(https://www.facebook.com/eloom2003/posts/1954062308256189)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구매 남성은 미투운동으로 인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남자도 살기 힘든 세상이라며 업소에 와서 징징대고 있다고 했다. 종사자 여성들은 미투 운동 참여자/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얼마나 남성 구매자와 실장과 웨이터같은 남성 영업진들의 성폭력에 무감각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도 했고, 혹자는 원치 않는 터치를 하는 진상 손님에게 미투를 언급하면서 자기방어를 시전하고 기죽이기에 성공했다고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2년 여 전, 2016년 6월 아이돌 출신 한류스타 유명연예인 박00에게 유흥업소 화장실에서 강간피해를 입어 고소한 뒤 무고 역고소 지원을 했던 사건을 떠올렸다. 더하여 작년 이룸에서 박00 성폭력 사건 외 성산업 종사 과정 성폭력 피해 법률지원 과정에서 내담자가 성매매, 무고, 명예훼손 피의자가 되는 과정을 계속 목도했던 경험을 곱씹어 보았다. 지원 과정에서 나는 꽤나 소진되었고 무기력하기도 했고, 기를 쓰며 버틴 시기도 있었다.

과정에서 내가 느낀 감정들은 성산업 종사라는 다중의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위치에서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의 어려움으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성폭력이 법적으로 문제제기 되는 비율, 고소율은 10%도 채 되지 않고, 기소율도 40%대인 현실과 성별 권력 관계 속 성판매자에 대한 편견, 폭력이 성산업 속에서 구매와 금전 지불로 정당화되고 강화되고 구조는 성판매자들이 겪는 업소 내 차별, 정의, 권력의 문제로 인식하기 어렵게 한다. 특히 성폭력은 위계나 권력 관계의 문제임에도 금전 매개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며 정의나 평등의 문제보다는 성판매자가 몸을 자원으로 돈을 바란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통념, 이를 뒷받침하는 성매매 방지법 상 판매자에 대한 처벌 문제는 성매매피해 지원 현장에서 형사 사건을 진행할 때 항상 마주치는 큰 무게의 걸림돌이다.

이 걸림돌은 생각보다 공고할 것이고, 계속 현장에서는 성판매 당사자들이 성폭력을 제기하기 어렵게 하는 모순과 딜레마 속에서 함께 씨름하면서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새삼 다시 마주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다. 또한 개별 싸움 더불어 성판매 과정에서의 성폭력이라는 이슈에 대한 많은 사회적 관심과 연구, 정치적 의제화, 당사자의 목소리가 꾸준하게 필요한 영역임을 더 절실히 느낀다.

앞으로 성산업 내 가시화된 성폭력을 제기한 당사자의 목소리와 싸움의 과정을 함께 기억하며 성판매 당사자들의 성폭력 문제제기가 역고소라는 장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앞으로 가해자들의 백래쉬/저항에 적극 방어할 수 있는 움직임, 지지 실천, 여론전과 함께 #미투 운동이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끝으로 몇 중의 압력 속에서 잘 버텨주신, 현장에서 만난 내담자 분들께 법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가해자들이 수사 기관에 나오고 시험대에 올라오게 만든 말하기의 힘과 그 정당함, 법적인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워하였지만 상담소를 믿고 이야기해준 목소리 또한 기억하고 활동 과정에서 이를 꾸준하게 잘 풀어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고 싶다.

 

 

활동

[활동한꼭지] 영화 <공동정범> 그리고 청량리 반상회 –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함께 있는 곳 _별

한국도시연구소,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 초청 공동정범 상영회와 GV를 다녀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뒀던 글을 씁니다.
공동정범 꼭 보세요! (관객 1인의 입소문)
이룸의 청량리 반상회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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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의 시간

 

작년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대응이 한창이었을때 gate 22의 이태원 상영회에 갔던적이 있었고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찾아갔다. 내가 이 공간을 둘러싼 상황을 단편적이고 납작한 몇개의 말들 외에는 이해할 역량이 없다고 느꼈다. 매일 상황은, 사건은, 장소는 쏟아져들어오는데 나는 터져나가고 넘치고 우그러졌다. 목격자라는 역할, 활동가라는 위치는 나에게 어떤 책무를 주었지만 그걸 수행할 나라는 자리는 계속해서 좁아지는 핀조명 같았고 나는 한발로 서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내 발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속에 있는 발.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목격자의 윤리에 관해서 였다. 이태원의 세 여성들을 보듯, 평택의 마마상과, 그리고 청량리의 우리들. 김일란 감독님은 질문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그 과정들을 다 겪고 나서 버티고 나서 질문들을. 질문을 부르는 질문들을. “마음을 앞지르지 않”아 시간이 필요한.

 

졸업전 학교에서 몸담았던 공간을 잃고 뒤이어 리모델링이 시작되었고 거칠게 페인트로 그림이 그려져있던 갈라진 나무문은 유리문으로 교체되었다. 여닫이였나 미닫이였나 아니면 자동문이었는지.. 그 문의 소거는 그 시기 우리들에게 퇴거를 선언하는 확실한 증거였다. 오래되고 낡았기에 바뀌어야한다. 낡고 오래되어 불이 잘 붙는 물질들 틈에서 조심조심 살아서는 안된다. 불이 난다면 소방차는 좁은 골목길에 가로막혀 제때 도착하지 못할것이다. 안전 미관 편리성 우리는 그런 가치들이 우리를 소거한다는 듯 더욱 엉망으로 살아져야 했다. 더 얼기 쉬운 곳으로 물이 배어나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청량리에서 작년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파쇄된 종이위의 글자들처럼 잘게 나뉘어 의미를 표면에 고정시킬수 없는 말로 되어갔다. 철거가 진행중인 청량리를 배회하는 일을 했다.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 마지막 물품을 전해주려고. 마지막 남은 유리방 맞은편 마지막으로 고립된 여성들이 거주하는 달방 모텔에서 타로로 점을 쳤다. 카드위에 각자가 어디로 가게될지 적혀있었을까.

 

 

증언의 모순, 모순의 증언

 

그 시기 이룸은 갈등을 겪었고 소진이 왔다. 다 타고 남은 잿불로 움직였다.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공간의 사람들 – 쪽방 여성들과 제주 먼 섬의 바다에 갔다. 바닷가의 그림같이 잔디밭이 깔리고 흔들그네가 있는 숙소에서 십년전 청량리의 사진들과 그날 우리의 얼굴들을 찍은 사진들을 같이 펼쳐놓고 기억을 얘기했다.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있는 곳이야 라고 말하듯. 우리는 그 모진 곳에서 살아남았고 이렇게 만났다고 기억을 얘기했다. 아이를 낳았었고 늙었다고. 숲이 된 남일당 터의 운명과 청량리 588의 운명은 고층 타워팰리스를 향해 간다. 빈 땅을 차지하며 쇠락하는 것들. 철거와 강제퇴거 이후의 폐허, 그곳을 저도 압니다. 저도 그곳에 살았어요. 살고 걸었어요. 네개의 큰 지류로 나뉘는 길, 넷째 골목 초입의 유리방과 그 다음 길로 연결되는 여관골목, 그 입구에 서있던 큰 나무와 고양이, 택시로 메워져있는 두번째 길과, 청과시장 옆의 붉고 컴컴한 불빛, 굴다리를 끼고 올라가면 만나는 쪽방 언니들의 믹스커피. 좋은일 하느라 수고가 많네요 하는 인사.

 

현장활동가들에게 청량리 집결지 공간은 그리움이나 아쉬움 안타까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그려져야 하기에 우리는 수렁에 빠진다. 고립된다. 여성들을 동원하는 철거투쟁에 각을 세우며 빈민/철거민/노동자화의 남성중심성에 반대했고 바뀌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들만이 피해를 보게 되는 재개발과 폐쇄 정책에 반대했기에 이룸은 계속해서 결정을 유보했고 할수 있는 일을 했고 청량리 반상회라는 소규모의 쪽방 여성 그룹만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의 장소는 이곳이다. 우리가 겪은 일로 우리는 국가에 의한 폭력을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내밀하게 알게되었고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곳, 벌어질 곳에서 함께할수 있다는 바람을 가진다. 우리가 수렁으로 빠지는것은 그 감정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이. 망루위의 감정들이 산란하듯 그 화염 이후의 감정이 화염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집결지라는 트라우마의 공간을 상실하며 여성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절대적 빈곤의 불안을 어떻게 묘사할수 있는가. 사고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트라우마는 상실될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이건 그런 이상한 주장이야? 그렇지 않다. 삶의 관점에서, 공간과 인권의 관점에서, 모순되는것은 다른 문턱을 암시한다. 우리는 여성들이 집결지에서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함께 할수 없었고 그런 운동은 없다고 여겼다. 공간의 관성이었을뿐. 그러나 여성들이 대책없이 쫓겨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며 단속의 형태로 이뤄지는 퇴거 – 퇴거로 완성되는 단속을 증오했다.

 

그러므로 딜레마, 모순을 드러내는 것까지. 그게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모순에 집요하다. 우리는 증언의 모순이 아닌 모순의 증언으로 다음의 폭력을, 재난을 다른 방식으로 견딜 것이다. 폭력의 핵심으로 더 뚫고 들어갈 것이다.

 

ⓒ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불량언니 작업장

[활동한꼭지]좋은 상상을 해보자

안녕하세요 이룸 회원님들. 2017년이 저물고 있어요. 저물.. 저물… 어젯밤 늦은 퇴근길 지하철에는 월요일임에도 술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연말 송년회가 정말 많은가봐요. 과음하지 마시고 가까운 사람들과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작년 연말에 제가 세웠던 새해다짐은 ‘좋은 사람이 되어보자’는 거였습니다.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그냥 막연하게요. 그런데 아마 제가 저런 다짐을 한 이유가 있었나봐요. 누군가 저에 대해 아주 별로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모질고 허탈한 방법으로 알게 되었고 이런저런 풍파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버티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어서, 정말로 이룸을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었었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는데 어찌저찌 12월에도 같은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네요. 왜 때문이죠?… 어쨌든 이 일로 인해 이룸 사람들 모두 큰 부침을 겪어야 했고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비 맞은 강아지들처럼 덜덜 떨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올 한해 지나왔네요. 큰 난리통을 겪은 이후라서일까요. 어떤 종류의 신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쟤가 지금 나한테 이상하게 굴어도 내가 싫어서라거나, 미워서라거나가 아니고, 그냥 잠시 잠깐이고 내일 또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거요.(아니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이룸은 요즘 정신이 없습니다. 모두들 많이 지쳐있어요. 근데 지쳐서 가라앉아 있는 건 아니고 또 힘내서 각자 할 일들 챙겨서 잘 하고 있습니다. 진짜 대단해요. 누가 칭찬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 누가 없으니까 제가 직접 칭찬해주겠어요. 작년에, 12월에 사업이 몰리면서 ‘내년엔 11월까지 사업을 마무리하고 12월에는 정리하고 새해 계획도 미리 세우는 이룸이 되자!’ 라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저 혼자 속으로 ‘그게 잘 될까?..’ 라고 생각해서 부정탄 걸까요. 이번 주에만 2개의 행사가 있네요. 훗. 그리고 오늘 회의를 했더니 그 다음 2차, 3차 회의 일정으로 1월 달력이 빼곡이 채워졌습니다. 읽고 정리해가야할 각종 자료들은 물론이고요!

<안녕 선물이야>

내년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랑가요. 이룸은 내년 계획도 이미 꽉 차있습니다. 쨘쨘! 모두모두 착착 잘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노년 여성들과 함께 북적일 작업장이 간절한데 떡하니 생기면 좋겠습니다. 아직 마무리할 일이 산더미인데 내년을 얘기할 일인가 싶습니다만, 그래도 잠깐이라도 좋은 상상으로 내년을 그려봅니다. 왜냐면 잠깐 이런 시간이라도 있어야 이따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헉헉. 회원 여러분도 잠시 잠깐 내년을 좋은 상상으로 채워보시길 바랍니다. 아무거도 좋을 게 없다고요? 저도 한 부정하는 사람인데 저도 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생각해봅시다……..(상상중…………………..)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 공감의 조건

공감의 조건_차차

나는 때때로 나의 감정과 신체 상태를 자각하지 못한 채, 외부의 상황에 최대한 맞추고 맹목적으로 따라간다. 허리가 아픈데 병원을 미루고 맡은 일을 무리하게 밀어 부친다든가, 꿰맬 정도로 상처가 났는데 참으면서 해야 하는 공부를 한다든가, 맡은 일에 매달리고 휴가를 거의 쓰지 않은 채 일을 하다 몸에 피가 안통하고 담이 걸려서야 휴가를 쓴다든가, 부담스럽고 버겁지만 옮다고 생각하기에 감행한다든가.

그러면 대개 주변과 일에 악영향을 끼치는 결과에 이른다. 생각과 의지로만 밀어붙이니 몸은 안 따라 주고 일의 결과는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신체에 갑자기 증상이 오기도 하고, 아픈 곳은 더 곪게 된다. 주위사람들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몰랐기 때문에 오해나 걱정을 한다. 그럴 때 나는 주변에 민폐가 되기 싫어, 혹은 무능하다 평가받기 싫어서 또다시 힘든 것을 억압 또는 은폐하고 방어하고 회피하려 한다. 솔직하게 내 상태를 인정하고 수용하면 되는데도, 결국 못 참아서 티가 날 때까지 참으려 한다.

상담 현장에서도 성매매 경험에서 겪은 다양한 문제를 호소하는 내담자의 다급한 상황이나, 힘든 감정, 욕구를 듣고 마음이 조급하고 분주해지거나 머리가 엉켜버릴 때, 한 숨 돌리지도 못하고 가슴이 답답한 채로 전전긍긍하면서 문제 해결이 가능한 것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자신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내담자의 목소리를 잘 듣고 감정에 공명하기도 하지만 의문이 들거나 순간적으로 내가 버겁다고 느꼈을 때 나에게 얼마나 솔직했나 갸우뚱 해진다. 이루머들과 사례 회의를 할 때에도 지원자로서 느낀 고충이나 딜레마를 내놓기 보다는 어떻게 지원이 잘 이뤄지는지 이야기하며 알게 모르게 속앓이를 해왔던 것 같다.

이렇게 내 마음에 스치는 생각이나 감정과 몸의 컨디션을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과 원인 분석과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이는 차치하더라도, 처방은 자기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몸의 감각과 욕구를 고려하는 나의 마음 읽기를 한 뒤 상대의 말을 고려하여 판단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내가 누군가와 만날 때, 건강한 경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니.

우선은 이루머들과 언니들을 만나면서 활동하면서 들었던 부담, 고민, 고충을 더 편하게 나눌 거고, 틈틈이 사무실에 있는 케어링과 요가 매트를 가지고 순간 뭉치고 답답한 신체를 풀어주고 숨 돌리는 여유와 자기 돌봄 시간을 더 가지고 싶다. 끝으로 이런 일련의 통찰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나를 공감해주려 애써준 이루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활동이야기

[활동 한꼭지]성별이분법을 해체하고 싶었는데 성별을 강조하고 싶어질 때

성별이분법을 해체하고 싶었는데 성별을 강조하고 싶어질 때_유나

‘호스트바에 가는 여자들도 있는데 왜 성매매가 여성문제/폭력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데이트성폭력에 행동통제가 포함된다는 기사에 ‘행동통제는 여자가 더 많이 하’므로 ‘서로 데이트폭력 중’이라는 댓글이 인기를 끌 때,
여성가족부 가정폭력 통계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의 가정폭력 가해율이 비등하다는데 가정폭력 상담소 통계로는 피해자의 99.5%가 여성이라는 아이러니함을 목격할 때,
이와 같이 남성 피해자의 존재를 드러내며 여성을 가해자의 위치에 둠으로써 젠더권력이 없는 양하는 시도들을 만나면 위기감을 느낀다. 최근에는 몰카 피해자 중 남성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해 불법 촬영을 가능케 하는 젠더권력을 삭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실재하는 성별권력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면 어떡하지?’ ‘성별이 그릇일 뿐이건 어쨌건 성별이라는 걸 기준으로 차별하고 배제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규범과 장치들이 아직도 공고한데 이게 없는 것처럼 운동이 흘러가면 안 되는데…’ 와 같은 경계심이 올라온다. 그러면 젠더 딱 박아놓고 말해야할 것 같고, 남성과 여성 있다고 말해야할 것 같다. 성별이란 게 이렇게 명확하게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해야만 할 것 같은 위기감.. 성별이란 게 명확하게 있는 것처럼 성역할을 부여하고 편견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에 문제제기해야 하는데 이상한 함정으로 빠져버린다. 보라뮤직페스티벌 추가서식 논란을 보면서도 함정에 빠졌었다. 다행히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와 <평등의 몰락>, <부모와 다른 아이들> 같은 책과 성폭력 판례뒤집기 토론회, 이루머들과의 대화, 친구들과의 세미나를 거쳐 함정에서 벗어났다. 맥락을 훑을 여유가 생겼다. 또 다른 논쟁이 생기고, 위기감을 느끼면 나는 아마 다시 함정으로 들어갈 것이다. 내 스스로가 맥락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유지하길 바란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다잡고 고민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준 부분 중 몇 개를 소개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여성주의는 젠더라는 사회적 모순을 독해함으로써 비가시화된 젠더를 드러내고 저항하지만, 그 과정이 젠더를 당연시하고 고정하는 몰역사적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젠더의 개념과 위치를 이동시키는 사유 방식이 필요하다. 11쪽

여성주의는 남성과 대립하고, 남성을 대체하고, 남성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제안하는 사유이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제의 반담론이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다양한 인식자의 위치를 드러내고 그 입장과 조건을 경합하는 사유이다. 12쪽

나는 여성주의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인식자의 위치를 드러내고 입장과 조건을 경합할 수 있지 않나? 여성주의가 왜 가부장제의 반담론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친구는 반담론으로만 남지 않고 인식론으로서의 여성주의를 강조하는 문장으로 읽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싶기도 한데 반담론이면서 인식론이면 안 되는 건가? 철학적으로는 이 둘이 동시에 불가능한 뭐가 있는 걸까?) 현재의 모순을 드러내고 독해하면서 동시에 이를 역사적 구성체로 생각하고 개념과 위치를 이동시킨다는 문장에 동의한다. 기억하고 싶다.

<평등의 몰락>
이 조직, 활동가, 작가들은 ‘몰인종적’* 으로 소수자 우대정책에 반대하는 인종적, 보수적-자유지상주의적 ‘평등 페미니즘’, 게이 ‘규범성’을 추구했다.
*각주) 인종을 인지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인종적 위계와 억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결국 차별을 간과하는 효과를 낳는다. 112쪽

나는 문장에서 ‘인종’의 자리에 성별을 넣어도 의미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성별을 인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별적 위계와 억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결국 차별을 간과하는 효과를 낳는다.’ 지금은 ‘인종’, ‘성별’ 등 사회가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정체성A’ 의 정체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경합하는 시기인 것 같다.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인종’ 이슈가 겹쳐진다. 2015년 미국 흑인인권단체 ‘전미유색인지위향성협회’에서 활동하던 레이첼 돌레잘이 흑인이 아님이 폭로되었다. 돌레잘은 스스로를 흑인으로 생각하며, 자신은 결코 백인이 아니고 자신을 백인이라고 규정할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정체성A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된다면 정체성은 고정적이기 보다 유동적이다. 사회 제도, 장치, 억압이 유동적으로 뗐다 붙였다 할 수 있어야 할 나를 설명하는 여러 부분 중에 하나를 나 자체인 것처럼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필요에 따라 정체성으로 나를 묶거나 묶이길 거부한다.

필요에 따라 동일한 정체성으로 묶고 묶이되 상호작용하는 계급, 성별, 지역, 인종, 성적지향, 성정체성, 종교와 같은 복합적인 조건/정체성들을 어떻게 하면 섬세하게 다룰까? 어렵지만 맥락을 살피기 위해 노력해본다. (지만 어렵다. 지만 노력하고..)

활동이야기

[활동한꼭지] 성형대출 사건과 <호스트네이션> 겹쳐읽기

2017.8월 소식지 – 활동 한 꼭지

 

성형대출 사건과 <호스트 네이션> 겹쳐 읽기

: 한국, 아시아 여성들의 삶과 성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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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에서는 지난 7월, 성형대출 브로커 구속 형사사건 관련 언론보도 인터뷰를 하고, 피고인 처벌과 관련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성형대출 피해자 지원, 그리고 작년의 대출-성형-성산업의 공모와 관련한 사업 활동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언론대응 이었다.
언론과 법을 통한 가시화에 국한하지 않고 이룸이 이 과정에 임한 목적과 과제들을 나누고자 활동한꼭지를 쓰려던 중, NEMAF(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상영한 다큐 <호스트 네이션> (이고운, 2016) 을 보게 되었다.
내겐 이 다큐의 장면들 위로 성형대출 사건이 겹쳐져 보였다. 필리핀의 한 ‘연예기획사’가 한국의 기지촌 ㅡ  군산 아메리카 타운으로 여성들을 수출하는 과정과, 한국의 성형대출 브로커 사무실이 여성의 몸을 성형이라는 의료기술과 대출이라는 금융기술로 기획하여 한국적 유흥업 공간 룸살롱에 공급하는 과정이 겹쳐져 읽혔다.
미국과 호스트 국가들 간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둔 군사들에게 로컬한 여흥을 제공하는 데에, 한국의 남성 지배 카르텔을 유지하는 유흥/접대문화를 지속시키는 데에 여성들이 공급된다. 젠더화 된 성산업이 제국-군사-자본-남성 이해관계로 형성된 구조를 지탱하며 구매자를 위한 상품으로서의 여성들을 인입하고, 동원하고, 기획하고, 소진시킨다. 필리핀에서 군산으로, 지역에서 서울로, 안 팔리는 몸에서 잘 팔리는 몸으로, 퍼블릭에서 ‘진짜’ 텐프로로, 성산업 내외부를 가로지르는 이주의 경로는 여성들에게 최선의 기회이자 방법으로 제시된다.
공급책들은 2차는 없다, 성매매는 없다, 인신매매도, 감금도, 강제로 하는 것도 없다, 요즘이 어떤 시댄데, 너는 돈을 잘 벌기만 하면(벌어서 잘 갚기만 하면) 된다, 라고 말한다. 이들은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필리핀 연예기획사 운영자는 자신이 아니면 누가 이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겠느냐고 반문한다. 필리핀 경제상황은 엉망진창이고, 제아무리 대학 나온 여자라도 먹고살 길은 없다고 한다. 군산 아메리카 타운의 업주는 자신은 순전히 술을 팔아서 돈을 벌 뿐 ‘쥬스’를 판돈은 여성들에게 모두 돌아간다고 말한다. 성형대출 브로커 사무실 이름은 ‘뉴라이프’ 였다. 촌스럽고, 못생기고, 지방에서 올라온, 신용 낮은 너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세련되어진 탓일까, 아님 늘 그래왔을까, 사람들은 성산업을 젠더라는 심급으로 사유하기를 거부하고 또 실패한다.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에서 ‘성매매와 성형대출, 그리고 여성부채’ 라는 주제를 다루었을 때, 진행자 중 한 사람인 손희정 씨는 ‘성형대출이 자기관리이자 자기계발이라면, 그것이 특별히 더 문제시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를 물었다. 여성주의저널[일다] 에서 보도한 성형대출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성노동 종사 여성으로서 재테크적 차원에서 성형대출을 고민하고 있을 뿐이고 대부업은 업주로서의 계산에 따른 투자일 뿐인데, 이런 보도는 여자애들이 몸 파는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여성들의 성산업 종사 경험을 다른 여성 노동 경험들과 다른 차원을 갖는 억압으로, 성적 피해로 사유하는 것은 ‘창녀 혐오’, ‘불법적 존재들에 대한 혐오’ 인가. 그러나 성매매를 ‘헬조선’을 살아가는 모두의 똑같은 노동으로 만들 때 비판의 거점을 잃는다. 여성 저임금 서비스 직종의 열악한, 성차별적 노동 현실 ㅡ  감정노동과 모욕, 성희롱과 성폭력, 성역할 강요 등 ㅡ 이 있다. 그리고 성산업의 일 경험, 상품화 경험은 바로 그 ‘여성적’ 인 것 자체를 판매한다. 성산업이 지극히 ‘합법적’ ‘합리적’으로 건재하며 성매매를 하는 빈자들에 대한 처벌을 성산업 그리고 성차별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도하는 상황을 직시한다면, ‘비범죄화’ 가 복원시킬 수 없는 ‘창녀’ 그리고 ‘불법적 존재’ 의 문제와 우리가 정말 무엇을 타격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한편 경찰과 언론은 성형대출을 ‘취업을 준비하는 사회초년생 그리고 유흥업소종사여성을 타겟으로 한 성형외과와 대부업체에 의한 범죄’로 다뤘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고리와 추심으로 인해 성매매나 음란 방송까지 해야 했다는 것이다. 유흥업소가 이 범죄 구조의 일부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구속된 브로커와 대부업자의 기소 죄목에서도 성매매는 빠져있었다. 성매매를 모든 여성의 삶의 조건 문제가 아닌 일부 여성의 문제로 축소하는 한, 이 공모에는 접근할 수 없다. 이 공모와 무관하게 성매매를 단속하고, 인신매매를 뿌리 뽑자 한들, 알선자들은 그 혐의를 부인할 것이고 새로운 공급의 루트를 찾을 것이다.
이룸은 성형대출이 성산업 일의 ‘속성’과 직결된, 성산업 지형 속 장치라는 점을 밝히는 것을 관건으로 본다. 성형대출이라는 말뚝에 단단히 묶인 밧줄들을 추적하며 천착하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E6 비자를 받기 위한 영등위의 비디오 심사 과정도 유사하다. 왜 아시아의 여성들에게 엔터테이너 비자가 합법적 이주의 루트로 존재하는가. 성산업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포착하고 연결시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 그림 속에서 ‘자기계발’ 계획과 ‘성매매/인신매매 피해’ 사이의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드러난다.
빚을 지거나 성형을 하게 만드는 방식의 ‘재여성화’, 상품화의 경로 바로 그 자체가 성산업이 이윤을 벌어들이고 지속되게 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성산업은 ‘성서비스가 거래된다’고 가정되는 임의의 순간 혹은 법적 정의 상의 ‘성매매’가 이뤄지는 순간에만 있지 않다. 구매 수요를 비롯, ‘여성’이라는 상품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각종 이득이 필리핀에서 군산, 서울의 강남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여성’으로서의 삶과 몸을 기획하고 가공하는 성산업의 힘을 젠더 관점으로 해석하기를 거부하고 또 실패한다면, 성산업 구조와 지형에 놓인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의 시선을 전환하지도, 이 경험을 이야기하고 기억할 목소리를 길어내지도 못한다.
내담자들은 대부업자나 유흥업소보다는 성형외과의 책임을 묻는 것을 상대적으로 더 상상하기 쉬워했다. 대부업자가 피부에 닿는 직접적인 가해를 했기에 두려움이 커서이기도 했지만, 성형외과 ‘소비자’로서의 피해를 이야기한다는 것에 더 익숙했던 것이다. 브로커 사무실 직원들이 전부 유흥업소의 실장들이었다는 점, 나에게 잘해줬던 그 언니가 내가 낸 돈의 20%를 받아갔다는 점, 처음 면접을 볼 때부터 칠판 가득 적혀있던 업소의 이름들, 걔는 수술하고 어디서 일해서 금방 돈을 갚았다는 이야기들, 매직미러라는 들어본 적 없는 초이스 방식에 놀라 이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 싶었던 순간, 초이스가 되지 않아 하루치 일수를 못 찍게 될까봐 황급히 택시를 타고 다른 룸보도 일을 하러 갔던 일, 집결지에서 다방에서 선불금을 끌어와 돈을 갚았던 이야기들 또한 동시에 일어난 현실이지만, 낯설고 가려진 현실이다.
그러므로 다시,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들을 왜,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호스트 네이션> 의 중요한 요소는 음악이었다. 수 년에 걸쳐 촬영된, 지극히 일상적이고 불연속적으로 비춰지는 순간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내기 위해서 음악을 그 자리에 두었다. GV 시간 어떤 관객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냐고도 물었지만, 나는 좋았다. 우리는 이룸에서 자주 성매매가 ‘모순’이라는 말을 한다. 자못 평범하게 흘러가는 순간들 속에서 내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이 음악이 뮤트 된 장면들이 왜 그리도 불편한지, 이 다큐가 들려주는 듯 했다.
참고.
활동이야기

[활동한꼭지] 신입활동가 차차의 공판 참관기 셀프인터뷰

* 15시간 동안 진행된 아이돌출신 한류스타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사건 2차 고소인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 국민참여재판 참관 후기를 전합니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A. 활동한 지 4개월 된 신입 활동가 차차라고 한다. 일전에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했고 성매매와 연동된 사건을 지원한 경험이 쌓이고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 사건으로 성매매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계속하여 여성인권과 관련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박00 성폭력 사건 피해 여성들을 만나고 지원하면서 반성매매 운동에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Q.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 사건 2차 고소인에 대한 무고와 명예훼손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어떤 기분이었나?

A. 사실 나는 무죄가 나온 것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당연한 결과였다. 접견을 갔을 때 첫 번째로 고소한 피해 여성분도 본인 건도 참여재판을 했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면밀하게 모든 상황과 맥락을 펼쳐 지형을 본다면, 4명 여성들의 피해 양상이 너무나 비슷하고(실제 공판 과정에서도 2차 고소인 변호인이 브리핑도 하면서 유사점과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데다 유흥업소에 종사했다는 것을 감수하고 고소를 했다는 사실 만으로 도 허위 사실을 수사기관에 이야기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Q. 담당 검사가 성폭력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드러내 방청석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고 들었다.

A. 15시간 동안 정말 순간순간 답답하고 한숨이 푹푹 쉬어졌는데, 또 막상 예상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드니 정신이 번쩍 차려지기도 했고 다른 사건들도 생각 나더라.
1988년 대구 파출소 경찰들에게 다방 종업원인 여성이 성폭력피해를 입었으나 무고와 간통으로 역고소를 당하여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사건, 2011년 노래방도우미 경험이 있었던 성폭력 피해자에게 판사와 검사가 ‘화간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등의 2차 피해로 피해자가 자살에 이른 사건 등 현장에서 만난 비슷한 피해를 입은 분들을 떠올라 답답함과 분노가 역류했다.
유흥업소라는 공간은 구매자들과 관리자 남성에 의하여 성희롱이든 성폭력 발생가능성이 높은 공간이고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고소에 이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종사 여성은 소위 돈 받고 몸 파는 여성이라는 편견으로 인하여 성적 피해를 상상할 수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공판도 검찰과 경찰이 정확한 직접증거나 정황증거에 기반하기 보다 피해자다움이라는 성역할에 맞지 않는 여성일 경우 일부분의 증거에 골몰하고 편향된 확증을 기반으로 의심의 꼬리에 물고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도 받았다.
부장 판사는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위가 발생하는 중간지대의 피해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실정이었고, 2차 고소인은 피해와 관련한 정황 증거들이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기소를 하고 구속 재판까지 하려고 한 것이다.
Q. 사실 공판 내용을 다시 복기하는 것 자체도 진이 빠지는 일이겠지만 혹시 인터뷰를 통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이 있다면?

A. 재판 과정에서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위험을 상시적으로 고려하면서 주변의 조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알아서 각개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재판을 보면서 텐카페라는 공간의 특성도 주목하게 되었다.

검사 측 증인 중에는 2차 고소인이 피해를 입은 날, 박00과 일행이 있던 룸에 들어갔던 여성도 있었다. 그 여성은 룸 화장실(남자 화장실만 있다.)에 구매 남성이랑 들어갈 일이 없고 위험하지 않다고 하다가, 구매자가 원치 않는 성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어 들어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여성의 경험에 근거했을 때에는 크게 위험성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공간일 수도 있다. 실제 2차 고소인에게 박00으로부터 피해를 입기 전까지 룸 내 화장실은 위험한 공간이 아니었다.
2차나 초이스가 없는 고급 (고액을 지불하는 구매자가 오는) 업소라고 알음알음 텐카페를 홍보하겠지만 박00 성폭력 사건 같은 문제를 피해 여성이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업소에서 과연 어떻게 여성들을 보호해줄까?
텐카페에서는 여성들이 테이블을 도는 시간 자체가 매출이고 수익이기에 여성들이 화장실에 갈 때에도 허락받고 가고, 오래 있으면 안 되고 관리자가 화장실 앞에 서 있는다. 새벽 3시 전에는 퇴근이 어렵고 여성들 간 서로 친분을 맺기도 어렵게 운영을 하더라. 구매자들이 고액을 지불하기에 여성입장에서는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심기를 거스르면 누가 불리할지 알고,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하여 업소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면 누가 가장 해를 입을지 너무 잘 알기에 업소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 어려웠다는 점은 공판을 보면서 더욱 자명해졌다. 그럼에도 검사는 왜 도움을 구하지 않았냐고 집요하게 물어봤다.

Q. 성폭력의 경우 해결 과정에서 주변의 역할이 참 큰 것 같다. 이번 공판에서 2차 고소인 인터뷰를 한 언론인이 도움을 주었고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A.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자원과 연결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다. 2차 고소인을 인터뷰했던 한 언론인이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어떻게 여성폭력지원 기관을 연계하였는지 이야기하더라. 아마 그 언론인의 조력이 없었다면 박00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반면 2차 고소인이 피해 직후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같은 방에 있던 종사 여성들은 고개를 돌리고, 구매 남성들은 일부 웃고 있었다고 했던 증언을 들으니 소름이 돋았다. 가해행위를 한 사람과 공모하고 방조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피해자들은 ‘조용하게’,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피해 당시 2차 고소인이 신고할까 고민했고 경찰까지 출동하여 성폭력으로 상황을 인지하였지만 결국 고소를 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찾아간 심리상담 기관도 사건 직후 성폭력 사건으로 인지하지 못했고 위기개입을 하거나 성폭력상담소 같은 여성폭력지원 전문 기관 을 안내하지도 않았더라.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재판 막바지에 2차 고소인 변호를 맡은 이은의 변호사가 성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비참함을 느끼게 하기에 더 이상 일하지 않는 것이냐고 하자 그렇다고 하면서 너무나 서럽게 울었던 2차 고소했던 당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소 이후에 계속 하여 장벽을 만나 마음고생도 엄청 했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울컥하면서 눈물도 나더라. 2차 고소인이 재판에서 절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증언했던 과정, 풍부한 정황증거들, 마지막 최후 진술 때 감정에 호소하고 싶지 않다며 절절이 외친 말들이 배심원 전원의 마음을 움직여 만장일치 무죄가 선고되지 않았나 싶다.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되도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

활동이야기

[활동한꼭지] 청량리 왁자지껄 반상회_고진달래

 [청량리 왁자지껄 반상회]
-고진달래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는 이제 어둠만이 내려앉아 죽음의 도시같은 을싸함이 느껴진다. 언제 강제집행 될지 몰라 발 동동 구르며 재개발 상황을 지켜보던 불과 2개월 전과 다르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개발 이야기는 조용하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재개발은 올 10월로 미뤄졌다는 소식만이 들린다.

 

‘우린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어 내가 가족이 있길해 친구가 있길해. 30년을 여기서 살았는데 여기가 고향이나 다름없어. 나를 누가 받아줘. 이 나이에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야’ 쪽방 여성들의 한결같은 푸념이였다. 푸념을 듣고도 ‘그렇지요. 그러게요’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그녀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이 곳에 있었던 이유 자체가 흩어지는 느낌이라 내 마음 또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하지….

 

2009년 청량리 집결지 현장지원센터를 할 때 우린 그녀들과 반상회를 했었다. 그 때는 집결지 안에 사무실이 있었던 터라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여성들이 사무실을 찾았고, 사무실 평상은 그녀들의 담배 연기와 시끌벅적한 수다 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잠든 아이를 등에 지고 사무실로 오는 그녀,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사무실 계단을 오르던 그녀, 그녀의 손을 잡고 드나들던 사무실이 든든했던지 학교 수업 마치고 숙제를 가지고 오던 아이, 가게 골목에서 원수로 소문이 난 두 사람이 사무실에서 딱하니 마주치며 싸우던 그녀들….그 풍경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면서 이번에도 흩어진 여성들을 모아내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반상회가 떠올랐다. 우리가 매달 모인다는 소문이 돌면 여성들이 모이겠지.

 

2017년 1월, 재개발로 심란해하던 여성들에게 무작정 밥을 먹자고 했다. 누가 시간을 내서 여길 올라나…. 청량리 시계탑 아래에서 넋놓고 기다리던 우리에게 저기 멀리 그녀들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래 모였다!’ 3명이 모였다. 그 뒤 우리는 매달 한번씩 반상회를 하면서 밥을 먹고 안부를 나누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3명이던 여성이 4명이 되고 5명이 되면서 처음으로 청량리를 떠나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사전 모임을 두 번이나 했고 그 안에서 반장도 뽑고, 준비물도 나누고, 일정도 미리 공유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필요하거나 제안할 것이 있으면 언제든 자유롭게 그녀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반장이 선출되고, 그녀들끼리 만나는 시간을 정해서 청량리에서 김포공항까지 지하철을 타고 제 시간에 도착을 했다. 아침 식사도 같이 준비하고, 여행 하는 동안 누가 다리가 아픈지, 걷는 속도가 빠르진 않은지 서로 서로 챙기면서 우리는 한껏 가까워졌고 편안해졌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반상회에 또 한 명의 여성이 함께 했다. 의례 한 달에 한 번씩은 얼굴 보면서 밥을 먹는다고 알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청량리 재개발 관련 이룸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공유하였고, 제주도 여행 평가나 그 후 우리 모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묻고 논의하고 결정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이 우리를 더욱 깊게 연결했고 결속력을 만들어주면서 그녀들은 우리에게 먼저 두 번째 여름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녀들과 반상회를 함께 하면서 공을 들이면 만들어진다는 것도 배웠고, 어떻게 하면 이 모임이 한발한발 더 자발적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활동가인 우리들의 정체성은 이 모임에 어떻게 녹아내릴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 누가 아픈지, 누가 밥을 못 먹고 있는지, 누가 지금 경찰서에 가 있는지, 누가 가족 때문에 마음이 아픈지, 누가 잠을 잘 못 자고 있는지, 누가 당뇨로 고생하고 잇는지….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버팀목이 되어주는 온기가 있는 반상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내부에서 작은 문제가 발생하면 발생하는대로 이야기하면서 같이 결정되었으면 좋겠고 이 모임이 살아가면서 뒷심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자원을 끌어들여 판은 만들고, 작은 바람과 최소한의 개입으로 이 반상회를 즐겁게 지켜볼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활동

[활동한꼭지] 성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성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에게

성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성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에 하고 싶은 말

유나

유럽 최초의 ‘섹스돌 성매매 업소’가 등장했다. 기사에 따르면 신체적 특징이 다른 섹스돌에 원하는 의상복장을 요청할 수 있다. (2/28/2017, 박송이 기자, 인사이트 뉴스) 얼굴, 몸매, 성기까지 ‘완전한’형태를 갖춘 섹스로봇의 출시 역시 기사화되었다.(11/1/2016, 조현경 인턴, 조선닷컴) 여성의 하체부분만 본 뜬 상품이 판매되기도 한다.(기사에 따르면 리얼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체부분이다. 04/25/2016, 헤럴드경제)

 

어떤 이들은 이런 상품이 혹은 성매매업소가 굉장히 새로운 경향처럼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이미 인형을 통한 남성성욕배출업소는 한국에서 유행이 지나간 성산업 업태 중 하나다. 로봇 기술의 발달에 발맞춰 발전을 거듭하는 해당 ‘상품’들은 여성의 몸 형태는 기본이고 다양한 신체조건과 피부색을 고를 수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와 남성중심적사회의 콜라보레이션. 성차별의 체계를 타며 특정한 욕구를 고안하고 개발한 남성성욕배출상품들은 진부하고 무궁무진하다.

 

왜 여성의 몸을 본 뜬 상품들이 ‘섹스’를 위해 만들어지는 걸까? 남성들에게 ‘섹스’는 어떤 것이기에 이런 상품이 필요한 걸까? 인형과 섹스를 하기 위해 1시간에 14만원을 지불하는 남성들의 성욕은 어떻게 구성된 걸까? 남자들은 인간과의 섹스에서 뭘 못 하기에 인형과의 섹스를 돈을 주고 하는 걸까? 왜 남성들이 더 성욕배출인형을 많이 살까? 혹은 살 것이라 예상되는 걸까?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남성의 성욕이 참지 못할 정도로 흘러넘쳐서 범죄까지 저질러야 해소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 폭력을 비롯한 다양한 폭력을 행사하는 배경에는 여성은 종속되어야 한다는 착각, 여성을 성적으로 굴복시키면 여성을 종속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이러한 착각과 믿음을 옳다고 추켜 세워주며 공고히 하고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남성중심적인 사회, 여성의 목소리를 성적이중규범으로 옥죄고 들리지 않게 하는 이 사회의 성차별, 남성의 기준에 맞는 피해가 아니라면 ‘꽃뱀’, ‘예민해서 공동체 분위기를 저해하는 여자’로 낙인찍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한 몫 한다.

 

그럼에도 남성을 구매자/소비자로 두는 다양한 성산업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한 목소리를 낸다. ‘성범죄율이 높다. 어딘가 남성 성욕의 배출구가 필요해’, ‘남성의 성욕을 풀도록 기술을 개발하자.’ ‘성욕을 인형이나 로봇을 통해 풀도록 하면 성범죄율이 감소할 거야.’
남성의 성욕만을 신성시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여성을 남성 성욕의 배출구로 대상화하는 남성성욕신화를 수많은 여성주의자들은 격파해왔고, 그 과정에서 여성 인권은 성장해왔다. 이렇게 여성인권이 성장하자 남성성욕배출상품(리얼돌/섹스돌 등)을 더 잘 팔리게 하려는 이들은 드디어 이러한 상품들이 성범죄율을 낮출 것이며 여성인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속지 말자. 아무 상관없다. 성범죄율을 감소하기 위해 섹스로봇, 섹스돌이 확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위에 언급했듯 성범죄의 원인을 남성의 참을 수 없는 성욕이라 헛다리 짚은 주장일 뿐이다. 성산업의 유지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렇게 기이한 주장을 해왔는가?
성범죄율을 줄이고 싶다면 남성의 성욕신화, 성욕과 통제/지배욕의 해체를 고민하면 된다. 여성인권을 향상시키면 된다. 섹스돌, 섹스로봇 만드는 데 돈 쓰고 힘쓰지 말고 여성주의 운동을 하자.

 

한편 섹스돌, 섹스로봇에 대한 기사들에 따르면 한국은 이와 같은 상품의 수입이 관세법상 금지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찾아보니 한국 관세법 243조 제1호는 ‘풍속을 해치는’ 물품반입을 금지하고 ‘풍속을 해치는’ 이라는 기준을 ‘음란함’에 둔다. 음란함이 뭐가 문제지? 풍속을 해쳐서. 풍속을 해치면 왜 안 되는데? … 인권과 폭력, 억압의 역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보수적인 성담론과 짝꿍인 이러한 용어들을 폐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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