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한꼭지]성매매 문제를 빼고 여성인권 논할 수 없어_완두

성매매 문제를 빼고 여성인권 논할 수 없어
[완두의 젠더 프리즘] 성매매 현장에서 목격하는 일들

완두

 

“콜센터에서도 일해 봤고… 다른 일반적인 일도 여럿 해봤어요. 한 번은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는데 쪽팔려서 그냥 바로 나와 버렸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가겠어요. 저는 이 일이 저한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내가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으니까. 내가 이런 상태라도 ‘나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 없고, 주변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요….”

 
나는 그녀와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신경정신과와 산부인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서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그때마다 그녀는 길을 잃고 헤맸다고 말했다. 그녀의 집 앞으로 마중을 나간 날, 서른 살의 그녀는 자신이 성매매를 하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그녀는 그 뒤로도 몇 차례 길을 잃었다.

 

그녀가 진료실에서 나오면, 병원 로비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수납처 간호사에게 결제할 카드를 내밀었다. 간혹 병원 관계자는 그녀와 함께 온 나에게 둘의 관계를 물었다. 나는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며, 현재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상담을 매개로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의료 지원을 목적으로 내담자와 방문한 병원에서 정확하게 내 소속을 밝힌 적이 없다. 그녀 역시 꽤 여러 달 만난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본인의 성매매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전국 2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 현장 방문과 더불어 여성들에게 법률, 의료 지원을 하고 심리상담, 자활센터, 쉼터 등 필요한 자원을 연계한다.)

나는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며, 상담을 매개로 성매매 여성들과 만나고 있다. ⓒ완두

 

강요 vs 자발, 성매매 여성에 대해 틀에 박힌 이미지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일하지만 스스로를 ‘성매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내담자의 피해 회복을 지원하고 관련자를 고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법적 개념이자, 사람들에게 각인된 ‘피해자’라는 개념이 성매매 여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기엔 너무나 협소하다고 느낀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 피해자’를 위계, 위력,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에게 성매매 여성을 만나는 일은, 그 여성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원을 이용할 때 겪는 차별과 구체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지원 내용도 그와 연관된 것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는 폭행, 감금으로 대표되는 ‘강요에 의한 성매매’나, 소위 텐프로와 명품백 이미지를 근거로 하는 ‘자발적 성매매’가 성매매 여성의 맥락을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 그로 인한 낙인은 성매매 여성의 심리적, 신체적 증상을 단일한 경험의 결과로 ‘피해자화’한다. 또, 범죄 피해자로서 권리의 회복을 시도할 때는 극악한 폭력과 그에 무력해진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

 

때문에 많은 내담자들은 경찰서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택시에서 ‘성매매(했거나 하고 있는)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성매매 경험이 노출됐을 때 마치 ‘나에 대해 다 안다’는 듯, ‘무시해도 되는 사람’으로 볼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과거 그리고 현재의 성매매 경험은 사회적 낙인이기 때문에 성폭력, 몰카, 데이트 폭력, 사기 등의 피해를 겪어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협박이 된다. 친구, 연인, 가족, 동료에게 비난을 받고 배제당하는 이유가 된다. 탈성매매를 해도 업주나 사채업자에게 위치가 발각될까봐 결혼, 주민등록, 주소 이전을 미루게 된다. 남성에겐 성을 사는 경험이 사회생활의 일부로 별 문제될 것이 없는 반면, 여성에겐 성을 판 경험이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공백으로 남아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성매매 여성의 ‘피해’는 물리적 폭행, 감금 때문만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으로 파고드는 구체적인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누적된다.

 

내담자를 조력하기 위해 공적 자원을 이용하는 상담원 역시, 내담자의 성매매 경험이 노출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린 때때로 서로의 친척, 동료, 지인이 된다. 사실, 나는 내담자 옆에 서서 간호사에게 나를 지인이라고 소개할 때 이것이 내담자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내담자를 위하는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에 대한 회피는 회복과 자기 긍정의 기회를 늦추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에서, 여성으로서 연결된 억압을 목격한다

성매매 여성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여성이라면 공통적으로 겪는 차별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 <씨네21> 대담에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홍미리는 “폭력이란 누군가의 삶의 반경을 점점 좁히는 것”([스페셜] 영화계 내 성폭력 다섯 번째 대담: 여성학자와 활동가 – 조혜영·송란희·권김현영·김홍미리, 2016년 12월 7일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또한 ‘가해’는 당사자 간의 폭력을 포함해 “내 말을 무시하는 것,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 나를 눈치 보게 하고, 왜 신고했냐고 얘기하는 것” 등 성차별 사회에서 가해 행위를 부추기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 자체가 다 독립적인 가해”라고 말했다. 그러니 개별 사례에 대한 대응 지침을 넘어 “전반적인 폭력과 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와 구제의 대상을 질병이나 침해된 권리가 아닌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이 살아가는 삶의 반경이 좁아지는 건 당연하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여성은 십대부터 노년까지 다양하다. 상담 과정에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은 원치 않은 성적 요구와 외모와 나이에 따른 멸시부터 자원에 대한 통제권이 결여되는 일까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밀접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차별을 가시화하는 일은 전체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일과 닿아 있다.

 

그러나 가시화해야 하는 영역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법에 근거해 정해진 범위 안에서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지원 내용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상담원과 내담자의 관계 맺기는 내담자가 경험한 ‘피해’ 내용을 우선으로 파악하며 시작한다. 법률, 의료, 자활 등 관련 지원을 필요로 하는 내담자에게 정해진 지원금을 기준으로 자원을 연계하는 식으로 만나기 때문에, 상담원이자 활동가인 우리의 위치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이 상담과 지원을 받는 것은, 여성이 오직 피해로만 점철된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행위에는 비용을 마련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찾고, 미용실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예약 시간에 맞춰 나가는 등 다양한 자원과 접촉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주변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의 일상을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상담자인 나는 내담자를 ‘돕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담자와 내담자로 만나는 우리는 각자의 ‘말하기’를 통해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겪는 연결된 고통을 목격한다. 서로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목격하면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공통의 억압을 확인하고, 그에 대항해 다른 사회를 만드는 일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성매매 여성이 자기 몸 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도록 도움이 될 만한 병원을 알아보고, 수면의 어려움이나 복용약물을 살피고 조절할 수 있게 조력하는 일은 내가 생각하는 의료 지원의 목표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성매매 여성 개인이 호소하는 지금 당장의 문제를 지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으려 한다. “내가 이런 상태라도 나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 없”다는 내담자의 말은,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여건이 잘 고려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그 여성이 어떤 상태든 여성이기만 하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성매매라는 ‘일’의 성격을 알게 해준다.

 

고통을 강조하지 않고도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나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관심이 있다. 개개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통을 가하는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매매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고통을 강조하지 않고도 권리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앞으로는 고통을 느끼는 나와 고통을 가하는 세계에 어떻게 반응하고 말하고 행동할지 더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목격하고 질문하고자, 상담을 매개로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나고 싶다. 지금의 남성 사회를 최전방에서 마주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과 연결되지 않고는 페미니즘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본 글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www.ildaro.com/sub_read.html?uid=7753)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활동가의무기력_고진달래

활동가의 무기력
 
 고진달래
 

 
이십대 난 활동가라면 완벽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자기 관리에서부터 활동량, 도덕성까지 그 높은 수준을 상정해놓고 나에게 또는 동료 활동가에게 참으로 엄격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은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부딪치게 되는데 그럴 때도 이게 현실적인 한계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쩔수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 그것은 나의 무엇을 자극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죄의식과 수치심이였다. 그녀들에 비해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내겐 늘 죄의식이 밑바탕에 있었고, 할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 같은 내 능력에 대한 수치심이였다. 이 강한 감정들이 밑바탕에 깔려있었으니 내 활동은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활동가들의 삶이 그런것 같다. 내가 더 움직이면 뭔가 더 변할것 같은,  찬 바닥에 있으면서도 얼음물로 들어가야할 것 같은, 내가 쉬면 내가 웃으면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무슨 물건을 살라치면 이 돈이면 00는 지금 농성중인데 싶은..나의 욕구는 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파닥거리면서 생동감있게 살고 싶은  자유에 대한 갈망 뒤에 함께 따라붙는 묵직한 죄책감은 20대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것 같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과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이 크나큰 괴리때문에 활동가들은 이중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괴리만큼 그래서 마음의 병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곳저곳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다는 활동가들의 소식들이 들려온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등은 자신을 향한 분노라면 난 밖으로 타인을 향해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이들 또한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올 3월에 복귀를 했으니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요즘 만난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난 우리가 왜 이렇게 정신적으로 지치고 피곤한지를 생각해봤다.
 
철거를 앞두고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는 어수선하다. 진작에 다른 곳으로 떠난 이들도 있고 남아 있는 여성들 중에는 끝까지 악으로 싸우겠다는 이들이 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보상도 없을 뿐더러 강제철거를 당할 불안을 안고 일을 할수 없다며 끝까지 남겠다는 이들을 위해, 철거 관련해서 무엇을 할수 있을까 몇 단체에게 문의를 해보았다.  여성들의 억울함과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만히 있을수 없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할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다른 철거 투쟁과정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여성들에게 실질적으로 할수 있는 일은 다른 철거투쟁의 과정들을 알려주고 실질적인 정보를 줄 뿐이다.  함께 싸우려고 동지동맹을 맺고 있는 업주와 여성들의 사이에 어떤 결과를 주게 될지 알수 없지만 여성들에게 해줄수 있는 '그만큼'을 인정하는게 힘이 빠졌다. 
 
정신분열을 안고 있는 중년 성판매 여성의 경우, 업소를 나와 거리 생활을 하면서도 쉼터 입소나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우리가 제안할수 있는 대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차례 쉼터를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병원을 거부한다고 하면 우린 무엇을 할수 있을까, 이 복지 시스템 안에서 실제로 우리가 건넬수 있는 패는 없다. 그게 답답하다. 
 
성매매 업소 안에서 일어날수 있는 성폭력 사건들이, (경찰/검찰)조사가 진행되면서 성매매 사건으로 되면서 여성들이 겪은 폭력은 어느 순간 없어지는 일들을 피해받은 여성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 것일까. 성매매를 전제했어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상황을 왜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게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법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가 증명해내야하는 일들은 일상통념과의 싸움이다. 
 
이번주에만도 이 몇건의 사건들을 통해서 이룸 활동가들은 우리가 할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들로 혼동스러워했다. 한숨을 쉬면서 지랄같은 현실을 개탄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 것일까 한탄하면서.. 
 
이건 무기력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앵간하게 단단하지 않고서는 버틸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지쳐가면서 아프든지 아니면 내면의 버거움을 억압한채 무장을 한다. 둘다 위험한 방식이다. 다들 어떻게 버티면서 활동가의 존심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을까? 
 
 
언제 각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 한번 만나야하지 않을까. 


활동이야기

[활동한꼭지]왜 나한테 빌려줬어요?_기용

[활동한꼭지]
 
왜 나한테 빌려줬어요?

기용

대출은 추심!
올해 내내 이룸이 열심히 하고 있는 사업이다.
함께 외쳐보자.
대출은 추심!
(평화로운) 대출 뒤에는 반드시 (살벌한) 추심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 왠지 대추라는 줄임말도 입에 쫙쫙 붙고.
그리고 이제 ‘왜 나한테 빌려줬어요?’ 사업이 되었다.
10월 27일에는 강남으로 나가서 약탈적 대출에 대해, 여성특화대출에 대해, 성형대출에 대해 알리려고 한다. 유흥업소와, 성형외과와, 대부업체가 아주아주 많은 강남에서!
게다가 애꿎은 강남을 불러다 호통을 칠 예정도 하고 있다. 강남 니가 아주 죄가 많구나! 라며.

 한겨레 21, 하어영 기자, 피도 눈물도 없는 추심의 세계에 뛰어들다
<한겨레 21, 하어영 기자, 피도 눈물도 없는 추심의 세계에 뛰어들다>

왜 반성매매 단체가 대출, 금융, 돈 얘기를 하려 하는 걸까?
내가 이룸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방문한 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법정이다. 그리고 언니들은 선불금 사기죄로 많이 걸린다. 경제사범이다. 

“빌렸으면 갚아야지” “내가 쓴 건데 어떻게 안 갚나”
언니들이 참 많이 하는 말들이다. 우리는 이 말을 절대 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돈을 갚지 못한 사람에게 왜 갚지 못할 돈을 빌렸냐며 비난한다. 질문을 바꿔보자. 돈을 빌려주는 곳에서는 채무자의 소득, 신용등급, 재산상황 등을 모두 샅샅히 조사했다. 빌려주는 입장에서 그 계산을 안 하고 빌려줬을 리 없다. 못 받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 왜 빌려줬을까?
 
채권자가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일종의 투자행위라고 생각해보자. 주식이나 부동산을 살 때는 주식이 떨어지든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든 모두 투자한 사람의 책임이다. 그런데 왜 채권자가 돌려받지 못할 돈을 빌려준 것에 대해서는 채무자만을 비난할까. 돌려받을 수 있을 만큼만 빌려주었어야 한다. 그 이상 빌려주었다면 돌려받지 못 하는 게 그냥 당연한거다.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금리와 비인간적인 채권 추심, 높은 중개수수료, 담보권 실행 등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약탈에 다름없다. 잘 갚으면 이자수입을 챙기고 안 되면 집을 빼앗으면 그만이라는 속셈이다. 또한 소득수준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준다는 건 ‘어떻게든’ 받아내겠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어떻게? 돈이 없는데? 채무자를 그야말로 쥐어짜내는 것이다. 이 ‘어떻게든’에는 우리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그림들이 펼쳐진다.
 
살다보면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갑자기 실직을 할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가족이 아프거나, 내가 아파서 월급은 없는 채로 몇 달간의 병원비를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생활비 몇 백만원에 업소를 찾게 된 언니들이 떠오른다. 언니는 처음에 금방 손 털고 나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테이블비가 얼마고, 2차비가 얼마이니 몇 달 눈 딱 감고 일하면 금방 정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다만 언니는 하필 손님이 별로 없었고, 술을 잘 못 마셔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다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빚은 쉬지 않고 불어났다. 빚은 채무자가 아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채무자는 쉬어서도, 아파서도 안 되며 다만 돈을 갚아야 한다. 급하게 빌렸던, 고마웠던 단돈 300만원이 천 만원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제 1금융권(시중 은행)에서 빌릴 수 있다. 거기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제2금융권(캐피탈, 저축은행), 그마저도 안 되면 제3금융권(대부업체)을 이용하게 된다. 그리고 알다시피 제3금융권으로 갈수록 이자가 높다. 돈이 없어서 돈을 빌리는 것인데 돈이 없을수록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왜 돈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자를 내고 있을까?
 

 

*많은 참고 <약탈적 금융사회, 제윤경 이헌욱, 2012>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독에서 힘으로_유나

상담-독에서 힘으로
                                                                      유나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과 폭력인데 ‘성적’인 차별과 폭력은 아니어서 법적 대응이 힘들다거나,
서로의 가난을 데이트라는 사랑스러운 사건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성매매를 한다거나,
같이 업소를 운영해 놓고는 재개발이 시작되자 재개발사업편을 들며 불법영업으로 신고하겠다고 아가씨들을 협박한다거나
성매매를 하는 날이면 술을 먹어야 하지만 그래서 속이 상하고 치아가 부식되고 손도 떨리지만 계속 성매매를 한다거나,
부모로부터 자립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자리를 찾지만 모두 부당한 노동조건을 들이밀거나,
무턱대고 돈부터 빌려주곤 성매매를 하라기에 도망 나왔더니 성매매를 한 적이 없어서 채무부존재 인정을 못 받거나,
어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당사자 동의 없이 조건만남하는 십대를 신고하려 한다거나,
‘보호’하기 위하여 병원에 강제 입원 시키려 한다거나…
 

나에게 성매매 상담은 결과적으로 ‘딜레마와 함께 버티는 힘’을 익히는 과정이다. 마치 필라테스에서 코어근육을 강하게 만들 듯이 나의 일은 우리네 삶을 구성하는 딜레마를 견뎌내도록 코어-중심부의 힘을 담금질한다. 삶의 딜레마들이 힘으로 자리 잡기 전에 나는 이것들이 독처럼 느껴지곤 했다. 딜레마의 진액이 뼈를 삭게 하는 것만 같았다.
 
상담을 하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사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방관하지도 침범하지도 않으면서 탄력적으로 서야 한다. 어떤 진실을 눈 아프도록 마주해야 했다. 딜레마의 무게들 때문인지 입이 수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초, 입을 열어 밖으로 말하는 것이 상담활동을 ‘힘’으로 전환하는 계기임을 배웠다. 특히 상담활동과 사업활동의 병행은 그 뼈아픈 진실을 이룸 안으로, 상담원 안으로, 성산업 안으로 고이거나 맴돌지 않고 밖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담자들의 사례를 인간 생의 보편적인 딜레마와 연결시키면서도 동시에 성산업의 특수성을 문제 삼을 수 있었고,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뭐.’하며 회의감에 휩싸이더라도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하는지 제시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지랄까 낙관이랄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나는 요즘 딜레마를 겪어내는 트레이닝에 더해 딜레마를 드러내는 트레이닝을 열심히 받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성산업에서 여성들이 겪는 경험을 사회적 차별과 인권, 여성주의 언어로 해석하고 드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경험들이 특별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같이 고민할 수 있을까? 잘 드러내고 싶다. 최대한 공유하고 싶다.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입을 열고 싶다.
 
이번 상담 한꼭지에서도 최근 상담을 통해 배우고 알고 고민하게 된 부분을 적어보려다 실패해서 ‘상담’ 자체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지만… 언젠가 이것들이 영글면 이룸 밖으로 풀어낼 수 있기를…!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조건만남_완두

조건만남
 

완두
 
 
 
우리는 상담원과 내담자로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아래의 내용들을 나누고 지키며 만날 것을 함께 약속합니다.
 
상담원은 내담자가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내담자의 동의를 얻어 상담을 진행합니다. 
 
상담원의 위치에서 취득한 개인정보와 상담내용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상담원과 내담자는 현물과 현금 등의 거래를 하지 않으며, 
선물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상담시간은 진술서 작성 등의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1시간을 넘기지 않으며, 
상담 시간을 변경할 경우에는 최소 2~3일 전에 연락을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상담과정 중 내담자에게 긴급상황(사고, 자해, 자살시도 등)이 발생할 경우에는 상담원이 그 내용을 가족 및 관련인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상담원과 내담자는 상담소내의 업무 변경이나 각자의 사유로 인해 
상담을 지속 할 수 없을 때 상담원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상담 시 인권침해를 당하거나 상담소 이용에 있어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 
국가인권위원회(국번없이1331), 여성긴급전화1336(국번없이1336), 동대문구청 가정복지과(02-2127-5084)로 민원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며칠이죠?”
“2016년 8월 16일이요”
“제가 먼저 서명 할게요” 
 
상담원          완두              (인)
“내용 다시 천천히 읽어 보신 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내담자                                (인)
“여기에는 저랑 공유하고 싶은 이름을 쓰신 후 서명해주시면 돼요.”
 
내담자 다른이름으로 저장 (인)

 
오셨어요

 

 

 

  나는 요즘 다수의 여성과 ‘조건만남’을 한다. 만남은 상대 쪽에서 원할 때 시작한다.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내 쪽에서 카드를 긁으면 끝나는 식이다. 비용 없는 만남을 하기도 하는데, 주로 첫 만남이 그렇다. 여성들은 첫 만남에서 지나온 이야기를 꺼내고 그 이후론 앞날이 지나온 이야기와 닮지 않기를 소원한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처럼.


  “축하해.”
  
후- 촛불을 끈다. “소원 빌었어?” 누군가 내 오른손에 흰색 플라스틱 칼을 쥐어준다. 가진 주의를 죄다 끌어 모아 생일케이크를 자른다. 빵과 크림과 과일이 갈라지고 부서진다. “와아-” 여자는 태어난 이래 줄곧, 결코 서로가 납득할 수 없는 조각으로 갈라지고 부서진다.* “축하해”
 
   “축하해, 성적이 많이 올랐네.” 학창시절 선생님은 내게 ‘지금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그 말이 어떤 여성에겐, 학비를 벌기 위해 밤낮으로 남의 남편들 얼굴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아빠는 내가 미스코리아가 되길 바랐다. 나는 종종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 물론 팔리는 가슴과 엉덩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나에겐 감추는 것만이 허락된 나의 젖꼭지를 사람들은 잠갔다 틀었다 비틀었다 했다. 해가 넘어갈수록 늘어나는 초의 개수만큼 나를 단속하는 시선들이 내 과거-현재-미래에 촘촘하게 꽂혔다. 
 
   나는 여성들과의 조건만남에서 뭉텅뭉텅 잘려나간(혹은 내 의지로 자른) 기억들과 조우하곤 한다. 여성들이 서로의 어머니가 다름에도 한 달에 한 번 검은 봉지 속에서 숨죽인 피의 기억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그날, 나는 한 여자와의 조건만남을 끝내고 반숙 상태의 눈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비할 수 없는 경험으로 위로 하려 했던 부끄러움 혹은, 쌩까고 싶은 온갖 것들에 대한 환멸이 감자탕 집까지 따라왔다. 여름이라 유난히 눈에 잘 보였다. 여자와 같이 사는 진상의 엄지손가락 크기를 가늠하게 하는 손톱자국. 여자의 빚을 갚아준다고, 여자의 눈물을 닦아준다고,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핸드폰 자판을 꾹꾹 눌렀을 그 엄지손가락. 
 
   감자탕 집에서 여자와 같이 사는 진상인 양 힘주어 감자를 씹었다. 왈칵 노른자가 터졌다. 감자는 잘 익었고, 따뜻했고, 달았다. 여자는 같이 사는 진상이 밖에서 상대하는 진상과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 했었다. 그래서 여자는 몇 번이고 같이 사는 진상을 상대했다고 했다. 여자는 지금쯤 집으로 돌아가 같이 사는 진상과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입 안에서 짓이겨진 감자를 삼켰다. 사실 사람은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 보다, 이미 쌓은 신뢰를 거두는 것이 두려워 ‘도무지 사람을 신뢰할 수가 없다’고 둘러대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우린 한 번 맛 본 것을 쉽게 뱉지 못하니까.

 

 
   지난 6월, 이룸에 방문했던 우에노 치즈코는 말했다. “페미니즘의 기본은 타자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제하는 것이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출발이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자신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만 오는 게 아닌가? 자기를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것이고 그 사람들만 바꿀 수 있다. 나는 그게 페미니즘이 이전의 자선활동과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여기 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뿐이다.”
 
   우리의 조건만남에서 여성들은 울고, 침묵하고, 잠들고, 잠들지 못하고, 병들고, 두려워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화내고, 억울해하고, 미안해하고, 이별하고, 짜증내고, 먹고, 웃고, 꿈꾸고, 계획하고, 노력하고, 만나고, 고마워하고, 배우고, 나누고, 욕망하고, 사랑한다. 
 
   한 여자는 말했다. 
   “엄마의 기억을 지우개로 지울 수 있으면 빡빡 지우고 싶어요.”  
 
   한 여자는 말했다.
   “이름 바꾸려고요. 팔자가 이런 게 이름 때문인가 해서.”
 
   우리의 조건만남으로는 기억을 지울 수도, 다시 태어날 수도 없다. 대신 그것이 무엇이든 ‘타락’으로 명명된 여성의 욕구, 여성의 관계, 여성의 소비를 ‘다른 이름으로 저장’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진 않을까. 나는 우리의 만남이 한 여성이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조건에 변화를 주는 시도로 남길 바란다.

 


 

*“여자로 산다는 것은 곤경에 처하는 것 짜증나는 것 언제나 화가 나는 것 나 자신이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둘로 갈라지는 것.”(에리카 종, <비행공포>, 이진 역, 비채, 2013, 300쪽) 문장 차용.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성판매 여성이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_별

 성판매 여성이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_

 

1. 단순 성매매

 

박유천 사건 봤죠? 무고로 된 거. 이 사건도 그렇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이 말을 들은 건 조건만남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몰카 유포 협박)의 가해자를 특정하려고 수사를 받던 도중이었다. 내담자는 가해자가 이런 수법에 능숙해 보였다고 했다. 지금까지 수차례 해봤을 것 같고 앞으로도 할 사람일게 너무 예상이 되는.

 

진술서 작성을 마친 수사관은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CCTV 상에 찍힌 모습이 평범한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며 강제성 입증이 희박해 성폭력이 아닌 단순 성매매로 처리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어쨌든 행위자 처벌을 감수하고 신고한 점도 있고 하니 자기는 피해자를 믿고 싶다, 대신 대질조사에서 강하게 어필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 말끝에박유천 사건 무고를 덧붙였던 것. 조사동행 나가기 전 사무실에서박유천 사건 무고되면 앞으로 언니들이 더 불리해질텐데라는 얘기를 나눈 게 스쳐지나갔다.

 

2. 말이 안 되니까 불리하다

 

분명 일련의 무고 사건들의 쟁점은 여성들의 거짓 진술 여부가 아니라 여성들의 진술에 대한 사법 기관의 해석에 놓여있다. 성매매 공간에서 발생한 법률 사건에 여성주의로 개입하여동의 아닌 강제를 입증하는 일, 여성 개개인이 아닌 다른 장소에다 사건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일은 어떤 부당한 인식과 부딪치는가.

 

성별 권력관계가 문제인 사건을 이야기할 때, 여성의 위치에 놓였던 사람이 당시 그렇게 행위 한 이유나 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통상말이 되는인과의 나열은 피상적이고 빈약하여 실제와는 맞지 않는다. 이해의 공백, ‘말이 안 되는것들의 목록이 가부장제 사회의 내용이자 반증으로서 남녀 관계의 회로 구석구석을 순환하고 있다. 사건의 객관을 벌충하거나 진위 여부를 따져본들 여성은 자주 불리하다. 애초에 저울의 한쪽이 크게 기울어진 협상 아닌 협상이었다는 걸 입증하기에 통상의 언어는 무디어 좋은 도구가 되어주질 못한다. 잘해봐야 본전을 못 뽑는 협상을 엎어버리고 협상 자체를 문제 삼는 여성들에게 사회는 어디가 모자라다거나 아니면 대가를 바란다는 혐의를 덧씌워 말할 자격을, 말의 의미를 차단한다.

 

웃는 것, 순순히 응하는 것, 정보를 제공하는 것, 다시 만나는 것, 따라가는 것, 술을 먹거나 옷을 벗는 것, 성관계를 하는 것, 애교를 부리거나 친근하게 부르는 것, 부탁을 들어주는 것, 신뢰하는 것 등 여성에게는 치열한 줄다리기의 언어였던 행위들이 막상 수사의 심사대에 오르면 전부 동의의 사인으로 퉁쳐진다. 실제로는 이러한 행동들과 동의의 의사를 매끈하게 연결 짓는 상상, 정말 원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행동이 가능했을 거라는 상상 자체가 굉장히 편협한 것인데도 그렇게 된다. 여성의 몸으로 관계 맺는 행동들은 조밀하게, 그의 삶이 가능했던 한계 내에서의 감정과 판단, 줄곧 여성이어야 했던 경험의 영향을 수반한다. 그 몸이 놓인 성매매 공간이라는 배경과, 이 관계에 약속된 대가는 가부장제의 면피로서의 여성의 동의라는 가설을 더욱 강화하고 정당화해주기에 수사를 받는 성판매 여성들은 한층 더 불리하다.

 

3. 여성의 권리, 여성이 아닐 권리

 

여기선 여성을 특정해서 칼로 찔러도 여성혐오가 아니고, 성판매의 자발성이라는 관념이 여성의 법적 책임과 처벌의 근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선 여성으로서의 인간이 주로 불리하다. 여성의 인권과 시민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새겨 넣는 과정이다. 여성의 권리는 잘 짜인 법의 실행으로서가 아니라 법에 들어맞지 않는 여성이라는 이질이 만들어내는 잡음 속에서 그나마 그 형체를 가늠할 수 있는 어떤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의와 강제, 그러니까 성폭력과 성매매의 경계 따위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남성에게 여성의 동의는 당연하고, 여성의 거절은 불가능할 뿐, 여성은 섹스에 동의하거나 화대를 받을 수 있을 뿐 섹스를 거절할 역량이나 권리를 지닌 몸이 아니었을 거다. 여성의 몸은 그런 기능이나 역할을 할당받지 못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성으로 된다. 그렇기에 그 여성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가 남성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되어 무고’ '명예훼손' 아님 '성매매 행위자' 라는 처벌을 받는 거다. 나와 섹스해주지 않는 여성, 섹스 해놓고 딴소리하는 여성에 대한 불만과 비난은 말이 되는 소리로 인정이 되고 여성에게 있어서 섹스가 함의하는 근본적인 비대칭성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애초에 법이 남성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닐 진데 성폭력과 성매매의 경계를 깔끔하게 읽어내어 여기까진 성매매, 저기까진 성폭력으로 분류, 처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언가 에러가 생길 것이고 성판매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으로 의미화하고자 할 때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야말로 가부장제가 여성에 덧씌우고 있는 편견을 드러내는 과정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매매와 성폭력을 함께 이야기 할 때 성범죄율 같은 걸로 연관 짓는 게 아니라 성매매 공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동의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의 경계에 주목할 때, 이 여성의 몸이 넘어가는 경계에 대한 가부장제의 평가와 시선을 드러낼 때 무언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성판매 여성의 성폭력을 이야기 할 때, 성매매 과정에서 동의할 수 있는 것의 분기점으로서의 성폭력을 분리해 내는 것을 넘어서 그 경계가 법적, 통념적으로만 존재하면서 여성을 불리하게 만들 뿐 실제 권리로는 기능하지 않음을 설명해 내어야 한다. 성판매자들은 성매매의 연장선상에서 성폭력을 경험하고, 성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성매매를 경험한다. 화대를 받지 않아서 성폭력이 되기도 하고, 화대를 받았기 때문에 성매매가 되기도 하는데, 근데 법적으로는 모두 단순/자발적 성매매, 동의한 성관계가 되나, 이 동의를 결정한 것,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성일 수 없다. “시키는 대로 하면 대가를 줄게(=중간에 그만두면 넌 이 대가를 못 받아.)”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수치스럽지 않은, 과도하지 않은, 모욕적이지 않은, 할 만한 서비스를 결정할 협상력, 권리를 부여받은 '여성', 현행 법의 강제성 기준을 만족시킬만큼 저항할 수 있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우리들의, ‘소진’_고진달래

[상담한꼭지] 우리들의, ‘소진’_ 고진달래

어느 순간, 갑작스레 활동가로서 자긍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활동에 대한 열정은 활활 태워져 허공을 떠돌고, 여성주의자를 지탱시켰던 에너지는 바닥을 칠 때가 온다. 한때는 나를 살아있게 했다고 믿었던 공간은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어지고, 나에게 삶을 드러내는 여성들의 사연들이 지겨워질 때, 활동가로서의 수명은 다 했다고  느껴진, 7년 전  난 그렇게 이룸을 떠났다.

어느 순간 모든게 지겨워졌었다.

그때 난 뭐에 그렇게 지쳐있었을까.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때 난 성판매경험 여성들의 삶에 많이 짓눌려 있었다.

집결지에 있는 여성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25살에 처음 시작한 이 일은, 그때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들로 내 가슴을 한 가득 메웠다. 버겁지 않은 척하며 애써 담담하게 그녀들의 사연들을 들었고, 그 처연함과 슬픔이 늘 나를 지배했다. 순간순간 이유없이 복받치는 눈물로 난 당황해했다. 아마 그 눈물들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싸인이였던거 같다.  

집안을 돕기 위해 악착같이 손님을 받으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수줍음 많은 내 또래의 그녀, 전전하면서 집결지, 안마, 집결지, 안마를 돌고 도는 떠돌이 친구 그녀, 약을 먹고 정신줄을 놓은 그녀, 죽겠다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던 그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그녀, 정신지체로 아저씨가 억지로 시킨 일을 사랑이라고 믿던 그녀, 아이를 데리고 옆방에서 남자를 받아야했던 그녀, 젊은 시절부터 성매매 집결지를 떠나지 못하던 내 엄마 또래의 그녀… 그녀들과 오랜 시간을 만나왔기 때문에 난 어쩌면 그녀들의 삶에  빠져있었다. 그녀와 비교되던 내 삶을 미워하고 자책하면서… 내가 그녀들에게 남긴 말들에 상처 되는 것들은 없는지 반성하면서…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한계들을 떠안고 있으면서 그게 내 능력의 탓인양 늘 나를 들들 볶았다. 그리고 더 잘 만나야한다고 몰아부쳤던거 같다.

지금 시간이 지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난 나를 자학하듯 대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을 몰랐었다. 나를 탓하지 않고도 나를 괴롭히지 않고도 그녀들의 삶을 마주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웃으면서 서로를 토닥여 줄 방법을 몰랐던거 같다. 그랬던 난 같이 일하는 이루머들에게도 참으로 박했던거 같다.

지금의 난 조금은 가벼워지고 싶다. 마음의 공간 하나는 남겨두면서 여유롭고 싶다.

우리가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아남았을 때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찾아오는 그녀들 또한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싶다. 비록 어느 실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자책할 일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의 것들은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일이였음을 인정하고 싶다. 그 일로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울면서 자책하지 않고 싶다.

그리고 난 그녀들과 슬픔과 고통으로만 연결된 것이 아님을, 그녀들에게 웃음과 기쁨과 유머를 주고 싶다. 우리의 삶이라는 건, 슬픔이 승화되어 결국은 이 곳이 살만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런 웃음과 유머는  늘 준비해두고 싶다.

상담한꼭지, 의 주제로 뭐가 좋을까 했을 때 딱 ‘소진’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글은 아마 활동으로 건강하게 살아남고 싶은 나의 다짐이지 않을까.

그렇게, 가볍게….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고백하건데 규제가 좋아졌습니다._유나

고백하건데 규제가 좋아졌습니다.
유나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나는 규제가 좋아졌다. 규제를 원한다.
 
                           
이번 주에만 초소형몰래카메라 상담이 두 건이었다. 여성들을 몰래 찍어대는 몰래카메라를 규제해야 한다. 몰래카메라는 ‘예방법’으로 피할 수 없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초소형카메라는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2015년 워터파크 몰래카메라 사건 이후로 몰래카메라를 제조, 유통하는 업체들을 규제하는 법안이 상정되었다고 하는데 올해 얼른 통과되어 적용되길 간절히 바란다. 구매자(새끼)가 몰래카메라로 성행위를 찍은 것 같다는 상담전화가 오면 미쳐버릴 것 같다. 상대방의 연락처와 실명을 모르면 이건 고소를 할 수도 없다. 안경 등에 숨겨진 초소형카메라는 진짜 찍은 건지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할 수도 없다.
아니 대체 살면서 이게 뭐 그렇게 필요해? 아예 이런 건 팔면 안 된다. 진짜 내가 원하는 건 위장 가능한 초소형카메라를 아예 못 팔게 하는 거다.
 
지난 주 열망한 규제는 금융 규제! 최고이자율이 27.3%가 된 날, 나는 축배를 들고 싶었다. 더 낮아져야 한다. 가파르게 낮아져야 한다. 한국의 금융을 연구한다는 어떤 자들은 이자율이 낮아져서 제1금융권의 대출기준은 높아지고, 가난한 서민의 불법 사금융 이용도가 높아질 거라던데, 가난한 사람들이 사금융을 이용하는 이유는 제1금융권의 대출기준이 높아서가 아니잖아? 그런 식으로 호도를 해대니 짜증이 났다. 대부업체들을 더더욱 규제해야 한다. 등록 기준을 엄격하게 해서, 많은 대부업자들이 대부업을 그만두면 좋겠다. 대부업이 조금이라도 목돈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사업처럼 되어 버렸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금융을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 아니 내 진심은, 금융 사업은 없어져야 한다. 돈이 없는데(‘돈이 없다’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와 동일한 의미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그걸 빌려준다는 이유로 돈 없는 사람들에게 이자까지 받아먹는 돈놀이가 대체 왜 필요해?

                                             
톡 터놓고 말하자면, 정말 내가 바라는 건 다 없애버리는 거다. 합법적인 대부업, 합법적인 초소형카메라의 영역을 따로 두는 게 아니라 다 뒤집어 버리고 싶다. 똑같이 돈놀이 하면서 ‘리볼빙 상품’이라느니 ‘마이너스통장’이라느니 포장해대는 은행도, 똑같이 돈놀이 하면서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학비부담’을 줄인다는 학자금대출도(그니까 이 나라도) 모두 위선적이다. 성희롱/성추행이랑 똑같은 행위를 할 수 있게 해놓고선 여성들 성병검사나 시키고, 2차는 안시키니까 합법적이라는 식품위생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얘기 하면 하나도 안 먹히고 전략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고, 이상적이라고 하니까 그나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행정규제, 법 규제 얘기만 줄창 한다. 이렇게 나는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흑심을 계속 품은 채 규제빠로 탈바꿈하여 규제규제 한다.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성매매 현장 연구 좀 해 주세요._가루


성매매 현장 연구 좀 해 주세요

 

박혜정(가루)

 
 
성매매 현장 단체로 돌아온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이룸에서 활동하면서 성매매 현장에 대한 내 열정을 다시 찾은 것 같다. 성매매 지긋지긋하다고 가끔씩 툭툭 던지곤 하지만, 성매매 현장은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이 말은 참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게다가 나는 6년 이상 성매매 현장에서 일했기에 현장을 잘 알게 되었고, 그만큼 성매매 여성들을 이해하는 시각도 깊어지고 성매매 문제를 보는 시각도 넓고 첨예해졌다. 자랑 같지만, 나는 제법 훌륭한 현장 활동가인 것 같다. 한 마디로 성매매 현장 활동가라는 내 직업은, 내 적성에 잘 맞으면서 내가 잘 하는 분야인 것 같다.
 
그런데 현장에 있다 보면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왠지 학교에 가서 공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을 때가 그렇다. 내가 하는 업무에서 그런 필요가 느껴지는 건 아닌데, 성매매에 대해서 사회에 잘 알리고 싶을 때 그런 답답함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성매매 현장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다. 성매매 행위가 성판매자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매매 공간에서 성판매자를 통제하는 방식과 그 영향 같은 주제들은 아직 한국에서 깊이 탐구되지 않았다. 우리가 현장에서 여성들을 지원하며 느끼는 문제점들이 있고, 보이는 증상과 징후들이 있다. 이런 경험과 관찰, 느낌을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에다 대고 이야기하지만, 활동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 느낌인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나 스스로도 그런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우리만 이렇게 느끼나? 우리가 만나는 여성들만 이런 것일까? 다른 여성들도 다 이렇나? 같은 일을 하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경험과 느낌들이 다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경험과 느낌을 좀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과 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갑갑함도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갑갑함을 느끼니 가끔은 내가 대학원 가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공부를 더 해서 직접 연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난 현장 활동이 더 좋은데. 그리고 현장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데. 연구는 연구자들이 좀 하면 안 되나? 심리학, 여성학, 사회복지학 분야에서 좀 더 성매매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달 표면처럼 연구 주제가 무궁무진한, 미개척의 성매매.

활동이야기

[상담한꼭지]오늘을 변호하기_별


오늘을 변호하기

_별


 
<2015년 이룸 상담현황과 분석>(클릭!)을 읽어 보면 ‘의료 지속 상담’이 증가했다고 나온다. ‘꾸준히 병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룸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 갈 약속을 매개로 이룸이 만나는 사람들이다. 노년에 이르러 당뇨, 신경정신과 등 여러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있는 분, 자학과 피학 이외의 방법으로 몸을 어떻게 돌볼 수 있는지 알고자 하는 십대, 정착할 수 없던 시간들 속에서 상해버린 치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분, 몸이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술을 마시고 반복해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그래도 기어이 그 순간의 절망을 누르고 119를 부르는데 성공하는 분 등.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의료지원 약속을 잡았고 제시간에 만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보내고 있으리라 반추한다. 그중에는 한번 만나기기까지가 너무 힘든, 당장 오늘 살아남아 있기는 한지 걱정스러운 사람도 있다. 
 
다르크 여성 하우스(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 약물의존재활센터) 대표로 약물 의존 당사자/지원자인 가미오카 하루에 씨는 의존을 겪고 있는 폭력피해생존자들에게 있어 요리와 청소, 억압되고 왜곡된 신체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심호흡과 스트레칭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함께 하고 알려주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담소에서는 일상의 기본 단위를 스스로 반복할 힘과 자원이 없는 경우 상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쉼터 입소를 권하게 된다.
 
이러한 수순에 따라 A 언니에게 몇 달 전부터 너무 당연해 보이는 입소를 권했고 그녀는 저울질 끝에 다시 자신의 원룸에서 혼자 지내기를 선택한다. 한 개인이 사적인 공간, 사생활의 자유, 이대로 조금만 버티면 삶이 나아질 거다, 어떻게든 굴러갈 거다, 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은 이전 삶과의 큰 단절을 경험하는 일이었고 자기를 상처 입히는 일이었다. 입소를 더 긴 미래 계획 속에서 일시적인 단절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검정고시랄지 직업훈련, 개인회생에 대한 희망도 별달리 보이지 않는 상태, 질병이나 노화로 죽음과 가까운 상태인 경우 더욱 그렇다. 
 
그녀는 생명이 위험하지만, 오히려 위험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나의 원룸을 유지하기를 선택한다. 그녀가 놓지 않으려는 것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녀에게는 매 끼니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쓰러졌을 때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는 나의 방이 의미 있는 현실이다. 저 혼자 생존해온 이, 자신의 경계 안에 고립된 이가 외부와 연결되기란 크나큰 행운과 특권을 필요로 함을 확인한다.
 
우리는 다음 의료지원 약속을 잡는 것으로 서로를 향한 모든 바람을 함축한다. 의료지속상담은 할 수 있는 게 의료지원뿐인 상담소의 궁여지책이고 그녀의 불안정한 시간 속에 한 점 고정된 일상을 만들어내 보려는 시도이다. 그 잠깐의 만남 동안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내 삶과 거리를 두어보는 대화, 농담과 웃음이 일어나고, 그래서 우리가 오늘을 변호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16.3.14 '소통과 치유' 가 추죄한 가미오카 하루에 씨의 강연 '여성 약물의존자에 대한 젠더관점의 이해와 효과적 지원' 내용 중에서. 통역을 맡으신 이룸 후원회원 승짱님이 초대해주셔서 다녀왔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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