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룸의 시대한탄⑤] 차별적인 분노를 보며 드는 생각들 :N번방과 ‘벗방’산업에 대한 차등화된 분노를 목격하며

[2020 이룸의 시대한탄⑤] 차별적인 분노를 보며 드는 생각들
:N번방과 ‘벗방’산업에 대한 차등화된 분노를 목격하며
N번방 공모자들에 대한 분노와 벗방BJ에 대한 비아냥을 동시에 목격한다. 왜 어떤 이들은 N번방 사안에는 분노하면서, 벗방 산업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또 ‘여자탓’하고 있나? 이 둘은 다르지 않다. 둘 다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행위를 쾌락으로 욕망하고 그 ‘남성’ 욕망을 전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장려하며 ‘여성’을 창녀와 성녀로 이분화해 낙인찍는 사회의 성별화된 섹슈얼리티 구성성에 의지하고 상호 작용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한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왜?
지난 토요일 <그것이 알고싶다>는 소위 ‘벗방’ 콘텐츠가 사기와 기망으로 여성BJ를 섭외하고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과정이 착취적이고 불평등하며 이를 상품으로 제작-유통-판매하는 자본이 ‘일간베스트’를 비롯한 남성들의 여성혐오적인 문화를 등에 업고 있음을 지적했다. ‘벗방’ 산업이 여성을 모집하고 콘텐츠를 생산하고 남성 구매자를 주조하는 경로는 성매매 산업의 경로와 일치한다. N번방과 ‘벗방’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폭력이라는 공통요소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했지만 이 두 사안을 향한 사회적 분노 정도와 여파는 전혀 달라 보인다. 당신은 N번방의 어떤 점에 분노하는지 묻고 싶다. 여전히 ‘순진하고 약한’ 피해자상에 기댄 분노는 아닌지?
N번방 ‘박사’방의 ‘박사’가 잡히면서 N번방을 통한 폭력행위들에 대한 공분이 일고 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활용한 성폭력의 공모자가 25만명을 넘어서는 한국 남성 사회 문화에 대한 분노는 지금까지 얼마나 남성중심 기득권 정치가 여성을 향한 폭력에 관대했는지를 꼬집으며 관용없는 수사와 처벌, 이를 가능하게 할 입법, 사회공동체의 변화를 촉구하는 힘으로 모이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다시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폭력이 남성 문화에서 유희거리로 여겨져 온 역사는 유구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폭력을 돈벌이로 삼아 온 산업의 역사 역시 유구하다. “남자라면 그럴 수 있지”, “그런 놀이 한 번 안 해본 남자가 어디있냐”며 한국 남성의 폭력적인 ‘쾌락’을 용인해 온 역사는 성매매 산업과 포르노 산업,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되었던 ‘리얼돌’산업까지 이어져왔다. N번방은 그 연결선에 있다. 여성으로 가입하기만 하면, 어릴수록 더 많은 성매매 제안 쪽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조건만남 어플리케이션(0톡, 00톡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의 연장선에 있다. 유흥업소에서의 성추행과 성폭력이 남성집단의 놀이문화로 공고히 자리 잡은 연장선에 있다. 그 놀이문화를 남자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그 놀이문화를 양산하며 돈을 벌고 축적하고 세금으로 걷고 여성의 몸을 관리해 온 한반도 유흥산업의 연장선에 있다. 여성에게 돈을 ‘대가’로 성적 행위를 요구하고 집단으로 관람하는 인터넷 벗방의 연장선에 있다. N번방은 남성 성욕의 절대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창녀’ 낙인, 이것들에 의존해야만 유지 가능한 거대한 성산업의 한 부분이다.
N번방을 향한 공분은 여성 폭력에 기반한 성산업에 대한 공분으로 이어져야 한다. 타인을 구속하고 지배하고 통제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남성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장되어야 한다. 역시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N번방은 한국 남성문화의 토양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여성을 성산업으로 내몰고 이를 양성해 돈을 벌어 온 역사에 이미 N번방은 배태되어 있었다. N번방 가해자/공모자들에 대한 분노가 한국 남성 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N번방은 외피만 바꾼 채 당연히 다시 만들어진다. 여성을 착취하고 혐오 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남성‘쾌락’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져야 한다. 자주 우리의 분노는 공론장에서 휘발되어 왔다. 그 휘발성에는 여전한 창녀/성녀 이분법이, 그리고 남성 ‘쾌락’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 차단이 작동했다.
N번방의 자양분이 된 남성‘쾌락’산업 전반을 끈질기게 추적하기를 제안한다. 남성 ‘쾌락’ 산업을 공고히 유지해 온 한국 사회 권력의 축들로 시선을 확장하기를 제안한다. 왜 어떤 사안에는 모두가 공분하고, 어떤 사안에는 또 다시 여성 탓으로 돌아가는지 그 배경을 같이 추적하자. 90년대 다방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십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구매와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되는 조건만남 어플리케이션, 4만개가 넘는 남성구매자 대상 유흥업소와 N번방, 그리고 ‘벗방’ 산업을 연결해서 고민하자. 보호해 마땅한 여성과 처벌받아 마땅한 여성으로 분리하여 이 분노의 연결지점을 끊어내려는 의도를 의심하자. N번방은 한국남성문화의 특이점이 아니라 한국 남성 섹슈얼리티의 전형이다.
논평성명서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③ 성매매 집결지 종사 여성의 시민권을 박탈한 판결을 규탄한다! – 인천시 ‘옐로하우스’ 명도소송 결과에 부쳐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③ 성매매 집결지 종사 여성의 시민권을 박탈한 판결을 규탄한다!

– 인천시 ‘옐로하우스’ 명도소송 결과에 부쳐

 

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성매매여성 역시 불법이라는 현행 성매매처벌법 처벌조항은 틀렸습니다. ‘성매매’는 여성을 물화하고 통제할 권한을 상품화한 산업으로 그 권력관계가 명백히 불평등한 기울어진 장입니다. 그러나 현행 성매매처벌법은 이 권력관계를 부정하며 성을 파는, 사는, 알선하는 이들을 “행위자”로 퉁쳐 이들 모두를 처벌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이룸은 성매매산업을 규제하고 금지하는 발상과 성매매여성을 규제하고 범죄화하는 사회적 통제를 구별하여 법정책이 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는 성매매여성을 범죄화하고, 낙인찍고, 통제함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산업 규제와 여성 처벌을 분리하지 않고 이 둘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있었던 인천시 ‘옐로하우스’ 4호집에 대한 명도소송 결과가 딱 이 꼴입니다. 인천지법 형사9단독 이해빈 판사는 성매매 여성들이 업주에게 월세를 지불하며 살아온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성매매가 법적으로 처벌대상이므로 임대 계약이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재개발 조합에서 임대차계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나 강행법류에 위반돼 무효”라며 명도소송을 걸어 온 주장이 옳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법적으로 같은 처벌대상이면서도 성매매 여성들을 착취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유지해 온 지역사회의 책임은 묻지 않습니다.

 

보상금을 받고 이미 다른 지역으로 떠난 업주나 건물주의 책임 역시 묻지 않습니다. 아마도 ‘옐로하우스’의 건물주와 업주들은 상당히 높은 월세(깔세)를 받으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 월세는 집결지 여성들이 쉴 수 없는 이유였을 것이고 빚이 늘어나는 이유였을 것이며 건물주와 업주들이 집결지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전혀 개조하거나 점검하지 않고도 잘~사는 원천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성들을 못 쉬게 하고 빚 갚게 하던 업주와 건물주는 당당하게 재개발에 따른 보상금을 받았겠지요. 재개발 조합에 들어가 또 다른 돈벌이를 위해 성매매를 금지하고 집결지를 폐쇄하라고 소리 높이고 있겠지요.

 

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이들이 여성을 착취하며 부당하게 쌓아온 재산은 몰수하지 않고 오직 임대차계약만 성매매를 목적으로 했으니 민법상 무효라니요. 여성이 그 공간에서 실제로 살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재산의 소유권은 인정하면서도 그 공간에 대한 여성의 권리는 부정하는 데에 성매매처벌법이 활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뼈아픈 죽음으로 만들어진 성매매 방지법을 성매매 집결지 여성을 불법화하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할 근거로 거론한 인천지법 형사9단독 이해빈 판사의 판결은 성매매에 이해 없이 반지법의 모든 맥락을 탈각시킨 최악의 판결입니다.

 

이룸은 인천시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 과정을 보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를 떠올립니다. 집결지에서 오랜 기간 실질적인 거주자이자 세입자로 생활해왔지만 여성들은 재개발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 권한이 제한되었습니다. 시공사는 재개발 조합으로 보상금을 내려보냈고, 재개발 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다수가 집결지에서 여성들을 착취하며 이익을 착복해 온 업주들이었기에 이들은 제멋대로 보상금을 분배했습니다. 업주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성들은 보상금을 받거나, 받을 수 없었고 그 어떤 결정권한도 갖지 못했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 재개발 과정이 인천에서도 반복되는 중입니다.

 

여성들로부터 특정한 공간에서 실제로 거주하고 생활해온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하지 마십시오. 성매매 집결지에서 생활해온 종사 여성들이야말로 실거주자이며 공간의 주인입니다. 지역 주민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낙인과 편견, 빈곤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제대로 목소리 내기 어려운 성매매 여성들의 조건을 악용한 자본과 지역사회의 돈벌이를 규탄합니다. 명백한 실거주자인 여성들에게 너희는 이 지역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재개발 조합을, 보상금은 재개발 조합에서 알아서 분배하기로 했다며 분쟁 과정에서 실종되는 시공사를, 그 동안 집결지 여성들을 착취하는 데에 동조하고 관망해 놓곤 민간 자본의 문제라며 발 빼는 지자체와 정부를 공론장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자신들이 성매매 알선으로 돈 벌어놓고 성매매 불법이라며 여성들을 압박하는 업주들의 뻔뻔함은 불법이 아닌가봅니다. 이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명도소송’만 남았습니까?

성매매집결지 재개발 과정에 업주, 재개발조합, 시공사, 지자체,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들이 제 배 불리겠다고 여성들을 착취해 온 역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논평성명서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② “혐오의 시대”를 통탄한다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② “혐오의 시대”를 통탄한다

최근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 복무와 여대 입학에 반대하는 인종차별, 분리주의, 혐오 정치를 옹호하는 근거로 반성착취 피해가 제시되는 글들을 보고 충격에 빠져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기 직전 저는 이주여성 쉼터에서 성매매 피해 이주여성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는 여성 청소년 쉼터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매매를 한 여성이 어떻게 감히 일반 여성들과 생활 할 수 있느냐는 전형적인 낙인입니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요? 여군, 여대, 여성쉼터, 여성화장실, 여성목욕탕, 여성감옥 등에 트랜스젠더 여성이 출입권을 얻는 것이 시스젠더 여성들의 오염과 강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일까요? 생물학적으로 남성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요? 자지권력을 누리다가 여자인척 한다고 해서 여자가 될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을 향해 현재 한국사회의 성착취 문제가 생물학적 성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진단하는지 되묻고자 합니다. 이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인들의 구체적인 트라우마들이 소환되고 있습니다. 성착취 피해 여성들이 전 생애의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증상들이 실재하며 공적이고 구조적인 인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성착취 문제 원인의 전부를 이러한 증상으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성착취의 원인이 남성에게 내재한 성욕을 해소하려는 생물학적 특성, 즉 남근과 남성호르몬 등 남성 육체의 존재 때문이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여성 타자화 논리와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성착취는 노동, 주거, 안전 등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빈곤과 폭력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경제적인 사안입니다. 이를 남성 개인에 의한 여성 개인에 대한, 섹스로서의 성폭력으로 접근할때 그 귀결은 “서로 사고 팔겠다는 것들이 하는게 뭐가 문제냐?” 라는 성매매 합법화가 됩니다. 래디컬과 보수가 만나는 지점이지요. 전혀 래디컬하지 않습니다. 중국인은 중국에서, 동양인과 난민과 이주노동자와 빈민은 정해진 국경과 거주지역 안쪽에서, 성매매 여성은 업소에서 그러니까 정해진 자리에서 살아가라는 가장 보수적인 해결책입니다. 이 방법론을 그대로 이식하여 여성들의 해방공간을 만드려는 투쟁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설 자리는 없으니 남성성을 본질화하고 위협을 과장할수 밖에 없게 됩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교육이나 지원 체계같은 당연한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을 목숨걸고 막습니다. 이것이 여성운동 입니까? 아닙니다.

성착취 피해 여성 역시 성에 대한 정상 규범의 경계를 넘는 존재입니다. 가부장제 사회는 정조를 잃었다는 가당찮은 명목으로 피해 여성들에게 폭력의 원인이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지금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합니까, 경계를 넘는 존재들을 공격하고 포섭해 경계로 다시 구획하고자 합니까? 트랜스젠더 여성도 남성사회의 억압을 받아왔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첨언은 위와 같은 실천을 덮을 수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못가립니다.

퀴어 운동 내부의 게이, 트랜스젠더 여성 등이 남성중심성을 배태하고 이로 인해 성노동을 옹호한다는 점이 트랜스젠더 인권과 여성 인권이 함께 갈 수 없다는 논거로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퀴어와 성노동, 포르노, 대리모 산업의 친연성이 있되 여기에는 정말 여러가지 맥락, 한국에는 또 그만큼의 복잡한 맥락이 있음을 차치하고요. 저는 그렇다면 반성착취 운동이 트랜스젠더 혐오 진영의 대표주자로 부각하는 상황은 문제가 아닌가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반성착취 운동은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성인권과 퀴어 인권은 같이 갈수 없다며 성별이분법에 의한 차별과 소수자성 개념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여성이야말로 성별이분법에 의한 억압을 몸으로 견뎌온 소수자이므로, 이 억압을 부정하는 순간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래디컬한 힘을 잃고 여성 개개인 혹은 상상된 여성 범주를 “피해자”로서 법제도에 기입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가부장제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들의 곁에서 헌신해온,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억압과 차별의 최종심급이었던 “반성착취”에 저항하고자 하는 여성운동이 가장 보수적인 혐오정치의 선봉에 서게 된 상황에 분노합니다.

 

 

논평성명서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① 반성매매 운동과 혐오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① 반성매매 운동과 혐오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탐욕스러운 자본은 성매매종사자가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착취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은 사회가 낙인찍고 배제해 빈곤으로 내몰린, 부당함을 아무리 호소해도 개인의 책임으로만 귀결되는, 비난받아 마땅한 특정 집단을 만들어내고 이 차별을 유지하는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낙인, 차별, 혐오가 유지되어야만 착취와 폭력이 정당화•사소화되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먹고 성매매 산업은 몸집을 키웁니다.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은 성매매산업을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핵심입니다.

따라서 성매매에 반대하는 활동은 착취와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권력관계에 반대하는 활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성매매는 반대하면서 이 끔찍하게 탐욕스러운 ‘혐오의 시대’에 편승하고 있습니까? 왜 자본에게 힘을 실어주는지요? 언제부터 반성매매운동이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선별할 권한을 주장했습니까? “피해자와 꽃뱀을 구별해 전자는 보호하고 후자는 처벌하겠다”는 가부장사회에 철퇴를 가하는 운동, 그것이 반성매매 운동 아닙니까?

“누가 누구의 성을 살까요?

다수가 소수의 성을, 남성이 여성의 성을,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의 성을,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이 없는 사람의 성을,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더 적은 사람의 성을, 사회적 힘이 있는 사람이 사회적 힘이 없는 사람의 성을, 사회적 자원이 많은 사람이 사회적 자원이 없는 사람의 성을…

성산업의 뿌리는 성차별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권력관계”

이룸 강의안의 한 부분입니다.

이룸은 성매매가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이자 착취이기 때문에 성매매에 반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반성매매 활동은 사람을 상품으로 환원하는 촘촘하고 복합적인 권력관계의 역동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고리를 끊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트랜스젠더여성에 대한 배제는 혐오와 차별일 뿐입니다. 혐오 그만하고, 운동을 합시다.

논평성명서

2019 이룸의 시대한탄?!④ 남성집단(feat.수사기관)의 성구매자, 알선자 연대 심각하다.

2019 이룸의 시대한탄?!④ 남성집단(feat.수사기관)의 성구매자, 알선자 연대 심각하다.

 

9월 24일 있었던 <서울시 성매매 피해 지원 현황과 과제_산업형 성매매 현장을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발표된 연구물의 일부가 기사화되었습니다. 성매매 현장의 여성들이 경찰을 믿을 수 없는 이유로는 업추 유착 의혹, 경찰이 성구매 남성으로 방문하기 때문 등이 있습니다. 이 남성연대 어쩌면 좋을까요?

(“성매매 여성 82% “경찰 안 믿는다””, 문화일보, 2019-10-21,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2101071021336001)

 

수사기관인 검찰, 경찰과 성매매알선자의 유착은 성매매 여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일조할뿐더러 성매매산업을 유지하고 양성함으로써 남성들의 카르텔을 공고히 하고 착취를 영속하고자 하는 남성중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성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성매매 현장의 여성들은 직간접적으로 한국사회가, 수사기관으로 대표되는 국가가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 남성 업주 및 손님의 편이라는 현실을 경험하고 확인합니다. 어떻게 해야 수사기관과 성매매 산업 알선자 및 손님과의 유착을 끊어낼 수 있을까요?

 

버닝썬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는 강남 클럽과 수사기관의 카르텔이 어떻게 여성폭력을 당연시하고 방임, 방조하였는지 그 단면을 볼 수 있었고 이에 문제제기했지만 지금도 그 카르텔은 공고해보입니다. 내부 감찰에 적발된 유착경찰이 5년 간 30명이라면, 감찰에 걸리지 않은 유착 경찰은 훨씬 많을 것입니다.

( “단속 나간다” 성매매·유흥업소 ‘유착 경찰’…5년간 30명, 노컷뉴스, 2019-7-2,
https://www.nocutnews.co.kr/news/5175802)

 

한편 ‘유착’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돈 받고 뒤를 봐주면 유착일까요? 최근 인천 미추홀구 사건을 보면 돈이 오고간 사실과 상관없이 남성들은 서로의 뒤를 봐주고 유착된 채 성매매하고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인천도시공사에서 미추홀구 소속 5급 공무원 1명, 6급 2명, 7급 1명과 인천도시공사 소속 직원 3명의 성매매대금 및 술값 300만원을 지출한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는 주대 및 성매매대금을 각자 지불했다며 뇌물 청탁도 아니게 되었고 성매매초범이라며 기소유예로 끝났다고 합니다.

(“‘집단 성매매’ 적발된 인천 미추홀구 공무원들 기소유예”, 연합뉴스, 2019-10-17,
https://www.yna.co.kr/view/AKR20191017111900065)
(“미추홀구ㆍ인천도시공사 성매매 직원들 복직”, 인천투데이, 2019-10-25,
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615)

 

수사기관 내부는 또 어떠합니까? 스폰서가 검사를 접대하라며 돈을 지불하고 검사는 여성과 호텔방을 들어갔지만 검찰은 “성관계 자체가 인정되어야만 성매매로 처벌할 수 있는데, 돈만 주고받고 호텔까지 올라갔다고 해서 이게 성매매가 기소되는 게 아닙니다.” 라며 발뺌합니다.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법의 해석이 제멋대로입니다. 양현석 성매매 알선 혐의를 불기소 의견으로 처리한 수사기관의 판단도 겹쳐지네요.

(“검사 기소율은 0.13%…’검사 성매매법’ 따로 있나”, MBC뉴스, 2019-10-16,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9832_24634.html)

 

수사기관의 성매매 수사가 제멋대로임은 현장에서 자주 접합니다. 동일한 형태의 사건이 구매자에 따라 다른 부서로 찢어지고(성매매는 전담부서가 없고 아동청소년계에서 처리하지 않습니다. 단속은 풍속이나 생활질서계, 조사는 지능으로 가기도 하고 중구난방입니다.) 그 부서 담당 수사관의 인식에 따라 여성은 참고인이 되기도 하고 피의자가 되기도 합니다. 남자들끼리 공무원, 경찰, 검사, 업주 모두 너그럽게 봐주고 성매매 여성은 필요에 따라 처벌하거나 처벌하지 않습니다. 아마 성매매여성 처벌조항이 존재하는 한 수사기관은 제입맛에 따라 피해자와 행위자를 구별하고 성매매 여성을 관리할 것입니다.

 

성매매를 하는 게 안 하는 것 보다 나쁠게 없다면 계속 성매매하겠죠. 성매매 하다 걸려도 별다른 타격이 없고 성매매 같이 하면 ‘비즈니스’관계가 두터워지는데 왜 안 하겠습니까. 업주들 몰수추징 안하면 업주들이 성매매알선 왜 그만두겠습니까. 성매매대금 지불해도 처벌안받는데 성접대 왜 멈추겠습니까. 성매매 알선자 솜방망이 처벌해도 아무 문제 없는데 이걸 수사기관이 중요하게 다룰 이유가 뭐겠습니까. 여성을 무시해도 문제가 없는데 왜 존중하겠어요. 문제를 문제로 만들고 처벌을 처벌답게 만들어야 그놈의 유착, 서로 뒤봐주기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을까 싶네요.

 

논평성명서

[2019 이룸의 시대한탄③] ‘리얼돌’, ‘힐링돌’, 섹스돌’

[2019 이룸의 시대한탄③] ‘리얼돌’, ‘힐링돌’, 섹스돌’

음.. ‘리얼돌’.. 판매금지를 요구하는 청원인이 20만명을 돌파해 청와대에서는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합니다. 언론에서는 ‘개인의 자유’ vs ‘존엄성훼손’ 운운하는 이분법 프레임을 반복하고 있네요. 판매처에서는 이 물건을 ‘힐링돌’이라 부르기도 한다죠? 몇 년 전 해외토픽 수준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이 물건은 ‘섹스돌’로 칭해지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특정한 신체적 이미지가 성적 대상으로만 박제되고 이와 같은 인종화가 ‘남성’의 자유와 힐링, 자위를 위한 상품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현실에 분노합니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남성자위용 기구인 이 물건의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던 이유는 이 물건의 ‘음란성’ 때문이었습니다. ‘리얼돌 산업’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 산업이 여성을 ‘음란’하게 재현해서가 아닙니다. 남성의 자위 대상으로 특정한 여성의 신체적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성차별적 사고를 반영할 뿐 아니라, 남성의 ‘성욕’을 위해 여성의 성적대상화는 당연하다는 반인권적 통념을 정상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명분 하에 리얼돌 수입을 허가했습니다. 소위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서 어떤 ‘개인’들은 여성을 성적으로 물화하고 자위대상으로 보고 있나봐요. 구입하는 사람이 없으면 상품은 그 상품성이 사라지겠죠? 어떤 ‘개인’들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이 상상을 넘어 이렇게까지 보장되어 마땅한 상식처럼 다뤄지는 현실이 생경하네요. 게다가 섹스는 역사상 단 한번도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 공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으로 구성되어 온 섹스를 매 번 이렇게 ‘남성’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인 양 (성적 권리의 보장이 아닌, 성적 폭력에 대한 회피가 필요할 때는 ‘여성’ ‘개인’의 ‘선택’인 양) 후려치네요.
대법원이 한국 사회의 특정한 성별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 이렇게 확인시켜 주니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 물건의 수입과 유통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과 동시에 ‘사지 마세요’. 상품은, 돈이 되지 않으면 그 가치를 잃습니다. 성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이 물건을 불매하세요. 개개인을 성별로 후려치는 일반화에 반기를 듭시다. 누군가 샀다면 낙후시킵시다.
누군가 성범죄율 운운하며 이 물건이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물건 옹호하지 말고 여성운동에 동참하라 말합시다.

  • 2017년, 유럽최초의 ‘섹스돌 성매매 업소’에 대한 이룸의 활동한꼭지를 덧붙입니다.
    “[활동한꼭지] 성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성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에게”
    https://e-loom.org/%ED%99%9C%EB%8F%99%ED%95%9C%EA%BC%AD%EC%A7%80-%EC%84%B1%EB%B2%94%EC%A3%84%EC%9C%A8%EC%9D%84-%EC%A4%84%EC%9D%B4%EA%B8%B0-%EC%9C%84%ED%95%B4-%EB%8D%94-%EB%A7%8E%EC%9D%80-%EC%84%B1%EC%82%B0%EC%97%85%EC%9D%B4-%ED%95%84%EC%9A%94%ED%95%98%EB%8B%A4%EB%8A%94-%EC%A3%BC%EC%9E%A5%EB%93%A4%EC%97%90%EA%B2%8C/
논평성명서

[2019 이룸의 시대한탄 ②] ‘낙태가 죄’이던 날들이 끝났다.

[2019 이룸의 시대한탄 ②] 낙태가 죄이던 날들이 끝났다.

 

낙태가 죄이던 날들이 끝났다.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임신을 중단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 포문을 열었다. 위헌 판결이 아닌 헌법 불합치 판결이라는 점, 그래서 2020년까지의 유예 기간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낙태죄에 전면적인 종지부를 찍지는 못한 아쉬운 판결이지만 낙태죄 없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음은 명징하다. 완전한 낙태죄 폐지를 위해 힘을 모은 서로 다른 우리들이 어떤 주수 제한 없이, 안전하게, 여성 재생산권의 관점에서 임신 중단이 가능 할 날을 만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매매 과정에서의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수 없었던 날들도 끝날 때가 되었다. 구매자 남성의 피임 거부와 이로 인한 원치 않는 임신은 성매매 산업 내 압도적인 권력 차이의 결과이다. 돈으로 상대방을 통제할 권리를 ‘샀다’고 착각하는 남성 구매자들은 성매매 과정에서 서슴없이 강제적이다. 경제적 이유로 성매매에 인입되는 여성들에게 ‘불법’ 시술인 임신 중단 수술비용은 감당할만한 비용이 아니고, 그래서 이를 감당하기 위해 빚을 져야 하며 이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성매매 현장으로 인입되는 악순환을 명확히 알면서도 성매매피해를 지원하는 상담소는 이를 지원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므로 성폭력 과정에서의 원치 않는 임신은 중단할 수 있지만, 성매매는 여성이 책임져야 할 여성의 ‘죄’이므로 그 과정에서의 원치 않는 임신은 ‘죄를 지은 여성’이 감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작동한다.

 

국가는 낙태를 죄로 간주하면서도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낙태를 국가 차원에서 실시, 장려해왔다. 그리고 이는 국가가 성매매를 죄로 명시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흥업소를 합법으로 명시하며 관리하고 (‘성병’을 ‘전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성산업 여성들의 몸을 검진해 온 행태와 유사하다.

 

이처럼 국가는 오랜 기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성들의 몸을 활용하며, 구조적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비난해 왔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가부장성은 낙태죄 폐지로 새로운 세계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세계는 낙태죄 폐지에 힘입어 성판매 여성 비범죄화를 요구한다. 더 이상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이 처벌받는 일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성매매는 여성의 죄가 아니다.

논평성명서

[2019 이룸의 시대한탄 ①] 청량리 588, 웹하드, 버닝썬 : 성산업 카르텔을 말한다는 것

2019 시대한탄 1

청량리 588, 웹하드, 버닝썬
성산업 카르텔을 말한다는 것

 

이 현안들에서 우리는 “카르텔” 이라는 말로 통용해온 모종의 구조를 발견한다.

 

1.

 

성산업은 통념의 배후에 있는 구조를 장악한다. 부동산, 건설, 광고, 도박, 주식, 약물, 몰래카메라, 웹, 성형, 연예, 대부업,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술과 제도를 적극 활용해서 확장하고 병합하고 재편한다. ‘청량리 588’을 운영한 토착 조폭/업주세력은 재개발 비리를 경유, 시행 및 보상 주체를 넘나들며 집결지 이후 부동산 수익 추구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몰래카메라 판매와 촬영부터 유통, 삭제 기술까지가 한 산업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웹하드와 클린 업체가 동일함이 밝혀졌다. 지금 강남 화류계는 유흥업소와 클럽, 파출소와 공공기관을 망라하는 지역 전체를 통칭한다. 클럽 ‘버닝썬’ 사건에서 드러난 것은 클럽 경영의 핵심이 유흥업소와 클럽 간 구매자들을 연동하는 것, 강간 약물을 사용해 여성을 상납함으로서 VIP 고객을 대우하고 파출소와 유착관계가 형성된 가드를 영입해 뒷탈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공론화된 유명연예인 성폭력 사건은 강남 ‘텐프로’ 업장 안에서 발생했다. 당시 공식적으로는 2차가 없는 업종의 성판매여성 여러명을 똑같은 수법으로 강간한 가해자를 업장 마담, 실장, 웨이터들은 비호했다. 그들에게 강간이란 업장이 판매하는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는 일이었다. 피해자 여성은 가게 안의 기물과 마찬가지로 잘 달래어 다시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클럽과 유흥업소라는 공간을 해석하는 사회적 맥락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 공간에 입장하는 여성의 통행권에는 자의적으로 경계가 변동되는 지위가 쓰여있다. 클럽에 놀러간 여성인지, 유흥업소 종사자인지의 여부는 전체적인 영업의 기획안에서 여성의 신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업진은 강간의 순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약물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며 불합리한 TC(Table Charge)비 분배 규정 등 역시 사용된다. 강간으로부터 안전한 여성과 강간해도 죄질이 낮은 여성이 있다는 환상이 이 기획을 성립시킨다. 그리고 이 공간에는 강간 당했으므로 강간 당할 수 있는 여성만이 있다.

 

2.

 

공권력과 대중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성산업을 방관하고 조장한다. 여성을 불법화하고 낙인찍으며 이중으로 처벌, 부도덕성과 반사회성을 전가할 수 있는 희생양으로 탄생시킨다. 이 역동이야말로 사회의 정상성을 위반하지 않는 영역에 성산업을 은폐한다. 물론 대중적으로 가시화된 성매매나 포르노를 규제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주장이 있지만 그 출처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집결지 업주 연합 한터로 대표되는 집결지 재개발 및 폐쇄 정책으로 인한 실질적인 축소 위협에 처한 이익집단이다. 오피스텔, 마사지, 룸살롱, 노래방, 키스방, 티켓다방 업소 연합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합법화가 성노동자의 권리 향상으로 이어지리라 낙관하는 이들 또는 이런 선동으로 이익을 보는 이들이다. 셋째, 그 어떤 법규제 없이 ‘성적 자유’를 향유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할 것이다. 성산업은 이러한 역동의 이면을 타고 움직인다. 성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성산업인들이 규제 철폐를 외치기 전에 규제를 피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거나 규제에 돈을 쥐어주어 침묵하게 함으로서 최종적으로 ‘사회적인 것’의 인식범위에서 벗어나기를 택할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에게 사회란 어떤 공간인가. 인천자활지원조례는 불평등에 공적자원을 분배하기 위한 의도로 인천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기로 하였으나 (남성) 청년들에 대한 형평성에 어긋나는 혈세 낭비라는 뭇매를 맞아야했다. 국가에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내려지자 기지촌의 존재로 먹고 살아온 지역사회는 여성들에 대한 보상이 미군들의 구매욕구를 떨어뜨리고 지역경제를 위협할 것이라 항의했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와 약물강간 피해자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사이,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제 겨우 몰카 범죄를 규제할 한가지 효과적인 방식을 채택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음을 해명하는 카드뉴스를 배포하고 있다.

이 모든 역동이 낙인으로 인한다면, 그 낙인은 시장 경제의 가부장적 질서에 내재해있다. 낙인이 이윤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3.

 

도시는 어떤 장소인가. 이곳은 성착취 기술이 실현되는 장이다. 남성 – 소비자는 죄책감 없는 놀이로서 성을 구매하고 유통한다. 그는 성착취 기술을 확장하고 운반하는 관음과 사정의 기계이다. 여성 – 상품은 성애화된 노동과 상품으로서의 몸을 제공하며 소비의 대상이 됨으로서, 또 그 자신 상품 되기를 위한 소비를 수행함으로서 시민이자 주체가 된다. 성산업은 소비자와 상품의 성별을 특정할 수 있을 극도로 젠더화된 산업이다. 번역하자면, 남성과 여성의 규범적 신체 역할 및 권력관계에 입각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가부장적 권력이 성산업을 경유하나 성산업 자체는 사회문제로 구성되지 않음으로서 권력이 계승된다.

소위 성폭력과 성매매의 구분, 성노동과 성매매 피해의 구분은 실상 컨텐츠를 팔고 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상품이고 놀이이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사이버 성폭력, 성매매 과정에서의 성폭력, 성매매 후기와 여친 인증, 그루밍을 통한 아동성착취 사이에 아무런 변곡점이 없다. 사건들은 피해자다움과 꽃뱀/창녀의 이분법, 성폭력과 무고의 이분법이라는 동일하게 왜곡된 법적 쟁점으로 비호받는다. 누구도 피해자를 강간하진 않았다고 말한다. 여성의 동의와 행실, 화대의 유무가 쟁점이 되는 동안 컨텐츠 소비자들에게 윤리적 법적 안전망이 제공되고, 생존자들을 엮어줄 연대의 인식론은 지연된다. 그렇게 성산업 위에 세워진 국가와 도시는 굴러간다.

성산업에서 거래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각종 컨텐츠로 제작된 성적 이미지들, 이것의 체현과 수행이다. 여성들은 특정 사이즈 및 업종에 기대되는 복장과 태도를 갖춘다. 강남 룸살롱에서는 성형하여 ‘와꾸’를 갖추고 키스방에서는 일반인과 구분되지 않는 ‘여대생’ 스타일을 수행하며 조건만남에선 교복을 갖고 오라고 주문을 받는다. 여성들은 섹스와 로맨스에 대한 일방적인 판타지를 충족시켜야 하며 그것을 위반할 시  “내상 입었다”라는 컴플레인을 받거나 꽃뱀으로 몰린다. 고통은, 상품성의 체현과 불화하는 실제하는 몸, 서사를 지니고 감정을 느끼는 몸을 지녔다는 조건에서 발생한다. 성산업에서 거래되는 체현들과 실존하는 몸 사이를 메꾸는 소진과 트라우마는 성이 구체적으로 상품화되면서 어떻게 그토록 특정 성별에게 착취적인 방식으로 구축되는지를 보인다. 성이 거래되는 순간 실존하는 몸을 살해하려는 의도가 관철된다. 여성으로부터 자아를 가지고 고통을 느끼며 관계 맺는 자리를 박탈하고, 남성 – 소비자의 각본대로 기능하는 상품의 자리에 위치짓기가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좀비의 도시, 인터넷 댓글창에는 미투 운동에서 터져나온 목소리들을 적대하고, 피해자의 죽음을 조롱하며 인간 대신 구매자가 되기를 거듭 택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4.

 

이제는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일상과 노동을 의심한다. 성적 착취를 본능적인 쾌락으로 전환하고 상품가치를 획득하도록 하기 위해, 자연화된 폭력으로서 쾌락을 생산하고 거래하도록 추동하기 위해 제공되는 것인가 하고 의심한다. 판매자-구매자간의 거래로 오인된 남성성의 거래, 젠더화된 권력과 자본간의 거래를 의심한다.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세상이 파괴되지 않는가 하고 의심한다. 세상이 고통을 의도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카르텔이라는 말은 국가와 법, 질서라는 가치의 피라미드가 뒤집어져 있다고 적시한다. 연일 터져나오는 공무원, 의원, 검경의 성산업 비리유착과 성상납, 여성 혐오 발언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것임을 확인사살한다. 진보와 보수 같은 남성중심적 진영론이 성산업을 사회적인 문제로 해결하는데 있어 아무런 정치적 지표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의 각종 경제 영역에서 성산업 수익이 발생한다. 성매매포털사이트는 몰카를 미끼로 던져 업소 광고 수익을 올리고, 유흥탐정은 단속전화를 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성구매자 데이터베이스가 시초였다. 유흥업소와 대부업체, 성형외과의 합작인 성형대출상품의 이윤은 오롯이 여성들의 부풀려진 수술비 그리고 터무니없는 이자를 성립시키는 성매매 일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종주국이며 ‘엔터테이너’에게는 비자를 주지만 폭력 피해자는 추방한다.

방대한 이윤 그리고 권력과 고통 사이의 낙차가 착취의 크기이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는 불가능하다. 여성이 안전하다면 현재와 같은 사회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여성들의 몸으로 살아낸 지옥 같은 현실을 부수기 위해 카르텔을 말한다. 카르텔을 명명함으로서 현실을 포착하지 못하는 통념에 기반한 언어들을 깨트린다. 사소화 된 고통에 존엄을 부여한다. 성산업 카르텔을 말한다는 것, 착취를 도려내고자 함은 다른 사회와 주체성을 말하기 위함이고, 개인의 일상과 노동, 섹슈얼리티의 회복과 탐구로 저항하기 위함이다.

활동이야기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⑥]일간베스트 “32살 일게이 용돈 아껴서 74살 바카스 할매 먹고왓다” 게시글에 부쳐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⑥]일간베스트 “32살 일게이 용돈 아껴서 74살 바카스 할매 먹고왓다” 게시글에 부쳐

유나

 

어제 ‘박카스 할머니’라고 불리는 종로지역 성매매에 대한 불법 촬영물을 게시한 일간베스트의 글이 문제가 되었다. 불법촬영임이 확실시되고 게시글의 내용이 여성을 비하, 폄하하는 폭력적 내용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를 조속히 수사하고 엄격히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중이다.

 

일간베스트 성매매 불법촬영 사건은 성매수를 했음이 명확히 드러나는 게시글이었고 사진에 성기가 드러났으며 촬영물을 게시 즉 유포하였으므로 경찰에서 수사 의지를 갖고 임할 시 성매매처벌법 상의 성구매, 성폭력 처벌법 상의 불법촬영 및 유포, 형법 상의 모욕죄 및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법 상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 건이다.

 

나는 일간베스트 게시글에 대한 문제제기에 공감하며 동시에 온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업소 후기 사이트의 후기게시글과 일간베스트 게시글의 차이는 무엇일지 자문해보았다. 예를 들어 성매수를 했음이 명확히 드러나되, ‘성기’가 드러난 촬영물은 없지만, 동의(했다고 여겨지는)한 여성의 신체 사진을 첨부했고, 해당 사진에 찍힌 여성(이라 여겨지는)의 신체를 평가하는 글은 어떠한가? 널리 알려져 있는 후기사이트의 한 인기게시글을 보자. 100% 올탈의 인증샷을 게시하였고 후기게시글에는 해당 업소의 연락처가 적시되어 있으며 인증샷은 동의받은 나체이다. 여성의 신체는 점수와 각종 비유로 평가되고 활어라 칭찬받는다. 댓글에는 업소 관리자를 포함한 이들이 감사를 표한다.

 

이와 같은 업소 후기 사이트의 게시글 역시 문제시 될 수 있다면, 성구매를 하는 업종임이 명확하니 업소 연락처를 통해 업소를 검거할 수 있겠다. 구매 후기를 올린 자 역시 성구매자임이 분명하므로 성매매처벌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여성의 신체를 평가하며 게시 된 사진들은 업소 홍보를 위해 합의된 사진이므로 불법촬영은 아닐테다. 그러면 이는 정보통신망법 제 44조의 7항 ‘불법정보의 유통금지’에 해당될 수 있을까? 성구매 후기 게시글의 내용 중 정보통신망법상 유통이 금지되어 있는 ‘불법정보’에는 ‘ 1. 음란한 부호, 문언, 음향, 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 판매, 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의 정보 2.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이나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가 있다. 이 중 ‘음란’함의 기준은 성기 노출 혹은 음모노출이라고 한다. 하지만 업소 후기 게시글의 ‘문제’는 음란함, 야함, 문란함, 성기노출 등 현 사회의 ‘성기중심적’이고 풍기를 단속하고자 하는 기준과는 다른 것이다.

 

즉 후기 게시글이 문제가 되는 건, 혹은 일간베스트 글이 문제가 되는 건 이 게시물이 ‘음란’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야한 사진을 게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물건처럼 품평하는 태도,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불평등한 권력구조 때문이다. 성기나 음모가 노출되어 있지 않은 게시글 일지라도 이러한 품평, 사진 게시, 유통이 가능한 권력관계, 이를 강화하고 활용하는 성산업,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후기 사이트의 구매자들은 아마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를 게시”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후기사이트는 성매매업장과의 공조 속에서 운영되며 상당수의 후기 게시글이 업장 홍보를 위해 작성된다는 의혹이 있다. 여성들은 구매자들의 좋은 평가가 있을 때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후기 게시글 작성에 협조한다. 후기에 구매자가 ‘내상'(만족스럽지 않아 상처를 입었다)을 입었다는 평이 올라올 경우 여성의 수익은 급감하고 이러한 후기에 기반을 둔 관리자의 통제 역시 심해진다. 키스방이나 안마 등 특히 후기 사이트를 통한 홍보가 활발한 업종을 경험한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협조한 후기 게시글에 달리는 댓글의 대상화와 폭력적, 반인권적인 언행에 의한 스트레스 및 사진촬영물이 계속 유포되거나 온라인 공간에 남아있을 가능성으로 인한 사후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곤 한다. (참고로 동의한 촬영물일지라도 동의하지 않은 유포는 문제적이며 처벌가능하다.)

 

사이버 성폭력이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이자 사회문화적 시선으로 구성된 성폭력이라면 후기사이트는 그 자체로 사이버 성폭력의 장이다. 지금까지 후기 사이트는 크게 문제되지 않아 왔다. 그나마 사이버 수사대에서 음란물 유포 등을 이유로 사이트를 차단하곤 하는데 운영자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주소를 바꿔가며 활발히 운영한다. 수사기관이 음란물 차단을 넘어 후기 사이트에 후기를 게시하는 이들을 성구매로, 후기 사이트에 게시 된 수많은 업소 실장들을 성매매 알선으로 수사하는 방향을 택한다면 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함정수사보다 덜 반인권적이며 또한 성산업 축소에 효과적일 것이다. 후기 사이트에 게시되는 촬영물과 게시 글의 수준은 공론화 된 일간베스트 게시글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시된 사진이 불법촬영물이 아닐(아닌 것으로 보일) 뿐 후기에 사용되는 언어와 단어는 성적 폭력에 가깝고 촬영 대상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에 사진을 게시하고 후기에서 여성을 품평하는 행위에 전혀 문제가 없는 양 교묘해졌을 뿐이다.

 

성폭력적인 온라인 공간의 글은 일간베스트에만 있지 않다. 한 예로 일간베스트에 유포된 여성의 얼굴을 이모티콘으로 제작하여 ‘재미’로 활용한 곳은 디시인사이드이다. 후기사이트에는 일간베스트 게시글과 유사한 성폭력적인 글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공유되는 중이다. 일간베스트 게시글에 대한 분노는 일간베스트 뿐 아니라 언제 어느순간이라도 성폭력적으로 구성되기 쉬운 온라인 공간을 향한 분노이기도 하다. 일간베스트 게시글 작성자의 엄중한 처벌이 ‘일베’로 대표되는 몇몇 이상한 남성에 대한 처벌로 그치지 않고 온갖 온라인 공간을 사이버 성폭력의 장으로 구성해내는 현 사회의 권력구조에 대한 일침으로 작동해야 한다.

 

온라인 공간의 사이버 성폭력은 동의와 비동의의 문제가 아니고, 불법과 합법의 문제도 아니다.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의 문제이며 사회적 약자를 폄하하고 비하하는 행동이 ‘재미’이고 자랑할 만한 일로 둔갑하는 공간 구성방식의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사후 처벌이 아니라 사전 예방이 가능할까? 성차별적이고 소수자 배제적인 온라인 공간문화가 이렇게 만개할 수 있는 데에는 그러한 문화를 바탕으로 수익을 얻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자체에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사이버성폭력 대응의 중요한 지점으로 꼽는다. 온라인 공간은 현 사회의 거울이다. 온라인 공간의 놀라운 폭력성은 현 사회 폭력성의 반영이기도 하다. 노년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비하, 모욕적인 행동들에 문제제기하는 우리의 저항이 온라인_오프라인 공간의 일상적인 성폭력/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참고글:

‘성구매’ 누가하나 봤더니… 그도 있었다

[새로고침 F5 : 성매매 다시 생각하기④] 온라인 속의 ‘숨은 성구매자’ 찾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55089

 

논평성명서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사건에 부쳐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사건에 부쳐

– 페이를 지불하고 찍는 남성과 페이를 받고 찍히는 여성의 관계에 대해

혜진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한 사진 커뮤니티에 올라온 촬영회 사진에 달린 댓글들. 흔히 사진사들이 담고자 하는 것이 사회의 규범 상의 ‘여성스러움’ 임을, 그 시선으로 모델을 평가함을 보여준다.

갖은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사진을 찍는 것은 즐거운 취미였다. 취미를 즐기면서, 모델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너무 좋은 아르바이트다!’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모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업종은 쇼핑몰 피팅모델이었는데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출사모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쇼핑몰 피팅촬영은 옷을 예쁘게 보이는 사진을 목적으로 쇼핑몰에서 모델과 사진사를 고용해서 찍는 사진이라고 하면, 출사촬영은 사진사들의 인물사진촬영을 목적으로 사진사 혹은 스튜디오가 모델을 고용하여 찍는 사진이다. 사진사 개인이나 사진 동호회에서 페이를 지급하고 모델을 고용하기도 하고,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고용해서 참가 사진사들에게 참가비를 받기도 한다.

지난 5월, 한 유튜버의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공론화가 화제가 되었다.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여러 컨셉의 촬영을 하게 될 것이다’는 정도의 안내를 받고 계약서를 작성했고, 촬영 당일이 되자 문이 잠긴 상태에서 20여명의 남성들에게 둘러 쌓여 협의되지 않은 포르노와 다름없는 노출촬영을 하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그 촬영물이 유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위협을 받으며 느꼈던 공포와,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면 받을 손가락질에 대한 걱정과, 가해자들의 지시에 의해 행동해야 했던 상황에 대한 절망감 같은 감정들이 꾹꾹 눌려있는 전문은,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해지는 폭로였다. 한구석에 치워두고 있었던 내 경험과 감정들이 폭로된 사건과 연결 지어져 하나둘 떠올랐다. 마음 아픈 폭로였지만, 너무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에,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공론화된 사건을 보며 떠올렸던 나의 촬영회 모델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공론화된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과 나의 경험은 분명 다른 사건이고 다른 맥락이 있지만, 연결된 지점 또한 있다.

 

페이를 지불하고 찍는 남성과 페이를 받고 찍히는 여성의 관계

페이 지불관계 없이 모델과 사진사가 촬영을 기획할 때에는 다양하게 서로가 원하는 컨셉과 이를 위한 의상과 연출에 대해서 의논하고 협의하게 되지만, 페이를 받고 모델로서 고용될 때 협의하게 되는 사진의 컨셉은 ‘일반(캐쥬얼, 청순)/섹시/세미누드/누드’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다. 내가 접한 대부분의 사진사와 사진 관련 커뮤니티의 구성원은 남성이었고, 대부분의 모델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사진사들이 여성 모델을 찍음으로서 사진에 담고자 하는 것, 여성 모델이 표현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게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슴․허리 라인과 각선미가 드러나는 의상과 포즈, 혹은 침대에 누워 애정을 구하는 듯한 눈빛과 표정, 혹은 귀여움, 청순함과 단아함 같은 것들 말이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남성의 기준으로 형성된) 이 사회가 인정하는 예쁜 여성이 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았다. 많은 사진사들이 선호하는, ‘잘 팔리는’ 모델이 되고자 했던 욕구는 이의 연장선상인 동시에, 여기에 ‘돈을 더 벌고 싶다’라는 실질적 이해가 더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 다이어트를 했고, 외모를 꾸몄고, 그들의 욕망을 잘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욕망을 연구했다.

그럼에도 내가 출사모델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불쾌감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불쾌감, 얼마나 ‘원하는 전형’에 부합하는 모델인지를 평가받는 위치가 되면서 느끼는 ‘무시당한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메커니즘 안에서 의상이나 화장에 대해 지적받고, 사진의 퀄리티를 이유로 노출이 더한 의상과 포즈를 요구받고, 포즈교정을 이유로 터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협의되지 않은 노출 촬영, 촬영장에서의 포즈교정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성추행, 혹은 작정하고 이루어지는 성폭행과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관련 구인․구직을 하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여러 차례의 고발이 이루어진다. 이를 없애기 위해 범죄자의 정보를 공개하며 해당 사진사와 촬영을 하지 않을 것을 공지한다던가, 터치 없는 ‘매너있는’ 촬영을 할 것을 권고한다던가 하는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한다. 범죄행위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만으로 내가 느꼈던 불쾌감을 발생시키는, 범죄행위들을 발생시키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끔 하는 그 구조는 흔들릴 수 있을까. 평가받는 위치가 됨으로 인한 불쾌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의 열등감, 을의 위치이기에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 거절할 수 없는 무력감, 갑의 위치이기에 권리로 여겨지는 ‘부당한 요구’ 그 자체. 이러한 것들은 나의 몸을 매개로 타인의 욕망(남성중심적 구조에서 만들어진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페이를 지급 받는 일에서 없어질 수 있을까.

 

대국민사기극? 제발 자발/비자발이 아닌 권력관계를 사유하자

공론화가 있고 얼마 후, 실장과 모델이 대화를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되면서,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촬영을 어쩔 수없이 해야했다’는 기존의 공론화 내용과 다르다며,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자의 눈물은 믿을 수 없다’(지긋지긋하게 여성을 괴롭히는 꽃뱀논리)는 등의 말들이 주를 이뤘다. 해당 사건이 ‘문제’가 되기 위해서 ‘자발적이지 않은 것’, ‘강제에 의한 것’이 중요한 요건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에는 단순히 결과적 ‘자발/비자발’, ‘물리적 강제의 유/무’로는 판단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개입한다. 위계를 장악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협감, 위협감을 느끼는 관계에서의 순응과 내재화 같은 것들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물리적 강제 없이도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적 맥락으로 인해 한다.

그렇기에 ‘문제’가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결과적 ‘자발/비자발’, ‘물리적 강제의 유/무’ 따위가 아니라, 폭력행위를 가능케 하는, 심리적 강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그 안과 밖의 권력관계이다. 해당 사건에서 협의되지 않은 촬영을 강제할 수 있도록 실장이 모델에게 행했던 위압과 그로 인한 그 안의 위계관계, 사진이 유포되었을 때 사진 속 여성만이 비난받는 밖의 위계관계 말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같은 의도적 위압 없이도 위계관계를 형성하는, 여성의 몸을 매개로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페이를 지급 받는 ‘일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진 일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남성의 욕망을 여성의 몸으로 표현하는, 많은 유료 촬영회에서의 여성인물사진에 대한 얘기다.

어떤 면에서는 성판매와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몸을 매개로 타인의 욕망을 실현시킨다는 것, 성적대상화의 대상이 됨으로서 느껴지는 불쾌감과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각, 성추행․폭행이 그 안에서는 당연하고 이를 감내하는 것이 프로페셔널한 것이 된다는 면에서. 

 

 

논평성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