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꼭지]독에서 힘으로_유나

상담-독에서 힘으로
                                                                      유나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과 폭력인데 ‘성적’인 차별과 폭력은 아니어서 법적 대응이 힘들다거나,
서로의 가난을 데이트라는 사랑스러운 사건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성매매를 한다거나,
같이 업소를 운영해 놓고는 재개발이 시작되자 재개발사업편을 들며 불법영업으로 신고하겠다고 아가씨들을 협박한다거나
성매매를 하는 날이면 술을 먹어야 하지만 그래서 속이 상하고 치아가 부식되고 손도 떨리지만 계속 성매매를 한다거나,
부모로부터 자립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자리를 찾지만 모두 부당한 노동조건을 들이밀거나,
무턱대고 돈부터 빌려주곤 성매매를 하라기에 도망 나왔더니 성매매를 한 적이 없어서 채무부존재 인정을 못 받거나,
어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당사자 동의 없이 조건만남하는 십대를 신고하려 한다거나,
‘보호’하기 위하여 병원에 강제 입원 시키려 한다거나…
 

나에게 성매매 상담은 결과적으로 ‘딜레마와 함께 버티는 힘’을 익히는 과정이다. 마치 필라테스에서 코어근육을 강하게 만들 듯이 나의 일은 우리네 삶을 구성하는 딜레마를 견뎌내도록 코어-중심부의 힘을 담금질한다. 삶의 딜레마들이 힘으로 자리 잡기 전에 나는 이것들이 독처럼 느껴지곤 했다. 딜레마의 진액이 뼈를 삭게 하는 것만 같았다.
 
상담을 하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사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방관하지도 침범하지도 않으면서 탄력적으로 서야 한다. 어떤 진실을 눈 아프도록 마주해야 했다. 딜레마의 무게들 때문인지 입이 수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초, 입을 열어 밖으로 말하는 것이 상담활동을 ‘힘’으로 전환하는 계기임을 배웠다. 특히 상담활동과 사업활동의 병행은 그 뼈아픈 진실을 이룸 안으로, 상담원 안으로, 성산업 안으로 고이거나 맴돌지 않고 밖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담자들의 사례를 인간 생의 보편적인 딜레마와 연결시키면서도 동시에 성산업의 특수성을 문제 삼을 수 있었고,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뭐.’하며 회의감에 휩싸이더라도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하는지 제시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지랄까 낙관이랄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나는 요즘 딜레마를 겪어내는 트레이닝에 더해 딜레마를 드러내는 트레이닝을 열심히 받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성산업에서 여성들이 겪는 경험을 사회적 차별과 인권, 여성주의 언어로 해석하고 드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경험들이 특별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같이 고민할 수 있을까? 잘 드러내고 싶다. 최대한 공유하고 싶다.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입을 열고 싶다.
 
이번 상담 한꼭지에서도 최근 상담을 통해 배우고 알고 고민하게 된 부분을 적어보려다 실패해서 ‘상담’ 자체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지만… 언젠가 이것들이 영글면 이룸 밖으로 풀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