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칼럼]임신중절을 許하라_유나

임신중절을 許하라

유나

 
내담자의 출산을 지원한다. 내담자는 누군지도 모르는 구매자와의 아이를 출산한다. 뭣 같은 세상이여.
누구 말대로 신은 정말 남자인가.
 
성매매 상담소는 구매자에 의한 임신이어도 내담자의 임신 중절 비용은 지원이 안 된다.
임신중절을 제외한, 임신 및 출산과 관련한 비용은 지원할 수 있다.
당연히(!) 성구매자들은 콘돔을 끼지 않는다. 성판매자는 이를 협상하고 싶더라도 구매자를 ‘썽’나게 하면 안 되는 을(乙)의 위치이기 때문에 구매자와 제대로 된 협상은 가능하지 않다.성구매자는 우기면 그만이다. 여성들 스스로 구강피임약을 복용하기도 하지만 모든 피임은 100%가 아닌데다가 구강피임약으로는 성병 예방은 전혀 할 수 없다. 이렇게 반쪽짜리 피임에만 의지하는 성매매 현장의 여성들에게 임신은 먼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은 지원할 수 없되 출산은 지원할 수 있는 현재의 지원 지침은 성매매과정에서 구매자로 인해 임신하더라도 출산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매매여성지원단체들은 이런 지원에 관한 지침은 성매매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하니 임신 중절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최근 여성가족부는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이기 때문에 여성가족부에서 독자적으로 이를 처리할 수 없다고 답했다.
 
주변에 임신 사실을 말 할 수도, 출산 후를 책임질 수도 없다. 임신 및 출산 과정 동안 누군가의 돌봄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에서의 출산은 개인에게 너무 큰 부담이다. 내담자는 여러 병원을 방문했지만 지원 없이 감당하기엔 비싼 중절 비용에 어쩔 수 없이 출산을 택했다. 그는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와 첫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출산에 대해 뭣도 모르는 나에게 공유하며 버티고 있다. 사정이 있어서 미혼모 시설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야 하는데 서울의 미혼모 시설 두 군데는 6월 말에 폐쇄란다. 어찌저찌 가능한 다른 곳을 찾기는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는 내담자의 고됨과 복잡한 심정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임신중절 불법은 성차별적이다. 지금도 콘돔 없이 성구매를 하고 있을 남성은 임신중절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상관이 없다. 자기 몸으로 겪을 일이 아니니까 콘돔 없이 성구매를 하고 돌아다닌다. 그러면 임신중절이 불법이어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원치 않는 임신, 책임질 수 없는 출산,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는 여성이다. 남자중심적인 법/사회/문화/제도는 제 몸인데도 불구하고 여성 스스로 자기 몸의 경험을 주도하며 살 권한을 박탈한다.
 
참고로, 임신중절은 태아를 위해 금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입에 올리지도 말라. 그 태아가 자신의 돌봄을 온전히 운에만 맡겨야 하는 이 무책임한 사회에서 그건 그렇게 가볍게 올릴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