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후기] 4/13 연세대 <페미니즘의 이해> 성매매 특강 후기

처음 연세대학교 교양과목으로 개설된 [페미니즘의 이해] 과목에서 성매매에 관련된 강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원했다. 기존에 두어 번 정도 강의했던 내용에 요즘 핫이슈인 성매매특별법(이하 특별법) 위헌소송과 관련된 내용을 약간만 버무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화해보니 한 시간 강의에, 한 시간은 특별법 위헌소송과 관련된 토론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때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토론이라…"

내가 대학교 1,2학년 때 들었던 페미니즘 관련 교양과목들의 토론시간 분위기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했다. 토론 시간에 일부러(?) 말도 안되는 얘기로 훼방을 놓던 학생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에 맞서 논리를 펼치다가 정신적 타격을 받곤 하던 나를 포함한 페미페미 학생들이 떠올라 그때의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그 학생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토론이 산으로 가면 나는 언제쯤 개입을 해야 하나. 적절한 개입은 무엇일까. 토론이 잘 될 수 있도록 잘 가이드를 해주기 위해서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하나…” 등등 끝나지 않는 고민에 시달리며 예측되지 않는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렸다. 하지만 웬걸, 학생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흥미 있게 수업에 참여했고, 쏟아지던 질문도 너무 훌륭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만 상상하다가 갔던 내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한시간의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 한 학생은 상기된 얼굴로 나와서 강의 중에 내가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들었던 사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 사례는 성매매 과정에서 성구매자에 의한 폭력이 일어났으나 법적인 판결이 너무 터무니없이 가해자의 편을 든 것이었는데 “한국의 판결이 설마 이렇게까지 말도 안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분통이랄지 의심이랄지 살짝 헷갈리는 감정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래서 노래방 도우미 여성 살해 사건 등에 대한 얘기를 더하면서 많은 법적인 판결들이 성판매 여성에게 너무나도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찾아보시라고 하자 수긍하며 자리로 돌아갔는데… 과연 찾아봤을까…?

 

두번째 시간은 원래 위헌소송 관련 토론을 하려고했으나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라서 그날 다 진행하긴 무리일 것 같다는 교수님과의 합의(?)아래, 준비해간 위헌소송 부분은 짧게 강의식으로 진행하고, 그대신 질문을 받았다. 한 학생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도 있지 않은가, 이들을 피해자화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든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 부분에 대해 딱 답을 낼 수 없는 고민에 대해 공감하고 나의 고민을 더했는데, 여전히 갸우뚱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더 적절한 이야기로 끌어갈 수 있으려면 어떤 얘기를 하면 좋을까, 여전히 고민된다. 그 외에도 많은 질문이 나왔고, 수업시간이 끝나고도 네다섯명의 학생이 앞으로 나와 질문들을 쏟아냈다. 다들 관심도 많고 고민도 많은 것 같았다.  오오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과 같이 밥을 먹었는데 2년 여 전에도 똑같이 <페미니즘의 이해> 수업을 했는데, 이번 수업 학생들이 유난히 열정이 있고 관심이 많아서 수업이 재미있다고 하셨다. 내가 느낀 그 기이한(!) 열정이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구나. 아마도 올해 2월쯤 SNS를 뜨겁게 달궜던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논쟁 덕분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신기했다.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암튼 강의 덕분에 나도 (강의가 아니었음 안했을)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고, 예상치 못한 학생들의 열정을 마주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얻게 되었던 고민거리는 숙성과 발효를 시켜서 다음 강의에서 더 잘 풀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봄날의 캠퍼스의 향기도 좋았고,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었다.

by.송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