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칼럼]내 인생의 강아지들_송이송

[4월의 칼럼] 내 인생의 강아지들

 

송이송

 

어린 시절, 강원도 산골의 군부대 안에서 살았다. 총 4채의 군인가족을 위한 관사와 시커먼 군인들이 전부였던 곳. 또래 친구 하나 없고, 유치원도 멀어서 갈 수 없던 그 곳에 그래도 나에게 위안이 되는 유일한 친구, 얼룩 점박이 강아지 아롱이가 있었다.

아롱이를 챙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롱이가 2-3일 정도 안 보이면, 부대 철조망을 따라 ‘아롱아~아롱아~’ 부르면서 산길을 헤집고 다녀 보초를 서던 군인 아저씨들에게 위험하다고 꾸중을 듣곤 했다. 하지만 아롱이는 며칠 뒤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나타나 부대 안을 휘적휘적 유유히 돌아다녔다.

언젠가는 임신을 해서 돌아와서는 혼자 아기 강아지 몇 마리를 낳았는데 으르렁대며 못 오게 하는 통에 멀리서 꼬물대는 아기 강아지들을 바라보곤 했다. 아롱이가 입으로 강아지들을 옮기던 그 모습이 너무도 신기하고 경이로워서 한참을 쳐다보던 기억,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너무도 오래 아롱이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부대 아저씨들이 잡아먹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그다지 슬프거나 개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거나 하진 않았고 꽤 담담했던 것 같다. 부대에서 키워진 개의 운명을 어느 정도 짐작하기라도 한 듯이.

 

작년 6월,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딱 한 달간 임시보호가 필요한 강아지가 있다는 얘기에 홀려 ‘부우’라는 이름의 아주 아주 못생긴 강아지를 집에 들였다. 아주 심한 피부병에 걸렸었고 같은 병에 걸렸던 자매는 하늘나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아픈 강아지는 (돈도 없고, 미래도 불안정한) 내가 키우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나는 이 아이를 돌려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게다가 부우는 전혀 내 이상형의 강아지가 아니었다. 털 색깔도, 생긴 모양새도, 크기도, 심지어 성격까지도!!! 난 정말 자신 있었다. 난 정에 이끌려 몹쓸 선택을 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나중에 삶이 더 안정되면 그 때 내 추억의 강아지 ‘아롱이’를 닮은 개를 들일 거라고.

그땐 미처 몰랐다. 애교도 하나도 없고 못~쉥기고 몸도 아팠던 못난이 강아지가 날이 갈수록 예뻐지고 애교도 늘어가 결국엔 이렇게 이쁜 ‘애완견’이 될 줄은. 부우가 처음부터 애교가 많고 이뻤다면 이런 쾌감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엉덩이가 들어갈리 없는 거실 끝 책장 구석에 엉덩이를 꾸겨넣으며 달달 떨던 아이가, 아주 조금씩 마음을 여는 이 과정에서 오는 쾌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먼저 다가와서 툭 하고 앞발로 나를 치던 날 온몸에 돋던 소름, 처음으로 웃던 날의 희열, 몇 달이 지나 겨우 허락하신 동침의 달콤함, 아무리 위로 올려도 발밑에서만 자던 아이가 먼저 위로 올라와 우리 사이로 파고들어 배를 뒤집고 잘 때 온 몸에 퍼지던 행복함…이런 것들이 결국 부우를 가족으로 들이게 했다.

삼실 옆 자리 기용이는 두 마리 유기묘의 반려인으로서 내가 부우 입양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야, 입양해. 무조건 좋아. 좋을 거야.” 라며 날 부추겨주면서 자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냥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면서 이게 얼마나 좋은 지에 대해 설파해주곤 했다.

정말이지, 아침에 눈을 깨는 순간부터 사랑이 퐁퐁 솟아날 일만 가득하다. 부우가 앞발을 굽히고 자고 있으면 굽힌 대로, 펴고 있으면 펴고 있는 대로, 몸을 어느 각도로 비틀고 있는가에 따라 그 귀여움의 맛이 다 달라서 매번 꺄악거리며 뽀뽀를 하게 되고, 그것을 신호로 부우가 잠에서 깨서 보여주는 하품+기지개 세트는 매번 보아도 심쿵이다.

옆자리 기용이는 뜬금없이 일하다 말고 자기네 냥이 두 마리가 겹쳐져 있는 극강의 귀여움 사진을 들이밀며 “두 마리는 비주얼이 다르다구~홍홍” 하며 내 약을 올린다. “한 마리 더…?” 라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언젠가 인연이 된다면 부우가 왔듯이 마치 우연처럼 내게로 올거라 믿으며 은근히 그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