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⑥] 빈곤과 낙인으로 이 몸들을 해치지 말라 – 낙태죄 위헌 판결 1주기에 부쳐

빈곤과 낙인으로 이 몸들을 해치지 말라

– 낙태죄 위헌 판결 1주기에 부쳐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난지 1년이 지난 지금, ‘낙태죄 폐지’ 라는 구호로부터 어떠한 사회를 도출해내야 하는 순간인가. 각자에게 오롯이 고유해야할 몸을 오로지 성별화된 경제를 떠받칠 착취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여 소모하는 철저하게 시장화된 한국 사회에 맞서 페미니스트는 어떠한 사회적 관계로서의 정의를 창안해내야 할 것인가. 집단적인 투쟁의 결과로 담보한 2020년까지의 유예기간동안 ‘낙태죄 폐지’ 의 구호는 착취와 축적으로 마비된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나가는 지시어여야 할 뿐이다. 여성의 건강, 안전을 규정해온 낡은 법과 제도의 단물을 짜내려는 변명에도, 임신중지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배제한 채 몰계급적 몰젠더적인 개인의 행위로 치부해 구조적 변화에의 요구를 사소화하고 거부하려는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낙태죄 폐지 위헌 판결 이후, 임신중지를 죄로 살아온 여성들의 삶을 복원하는 시간은 이제 시작일뿐이다. 가장 계급적인 이유로 가장 젠더화된 위치에서 임신중지를 경험하는 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할 때이다. 빈곤에서 비롯한 경제적인 이유로 성판매를 선택한 여성들이 경험하는 반복적인 임신중지의 생애사적 구체성을 공감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정치적 장을 구성해야 한다. 의료접근성의 확대 속에서도 가장 늦게 가장 위험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해왔고 하게될 배제당한 여성들의 삶을 보편적인 사회문제로 설득할 수 있는 운동을 함께 고안해내야 한다. 언제까지 여성으로 지정되어 성적 권력관계와 불평등에 정박돼 신체적 심리적 실존을 침해 당하는 조건화된 경로로서의 삶을 감내해야 하는가?

‘낙태죄 폐지’ 가 올해에도 급진적인 구호로 갱신되기 위하여, 반드시 여성 신체를 도구화하며 자행되어온 여성의 상품화와 거래, 성애화된 노동의 정상화,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여성의 빈곤이 문제삼아져야 한다. 임신중지가 오롯이 여성의 선택일 수 있는 사회에서 여성은 더이상 빈곤으로 인해 성판매를 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런 사회에서 재생산 역량은 가부장제 자본주의의 끝없는 폐쇄회로를 탈출해 다시 그 자신과 그 자신이 사랑하는 관계들을 돌보며 살아가는데 쓰여질 것이다. 국가도 자본도 빈곤과 낙인으로 이 몸들을 사고팔지 못할 것이다. 해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