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룸의 시대한탄⑤] 차별적인 분노를 보며 드는 생각들 :N번방과 ‘벗방’산업에 대한 차등화된 분노를 목격하며

[2020 이룸의 시대한탄⑤] 차별적인 분노를 보며 드는 생각들
:N번방과 ‘벗방’산업에 대한 차등화된 분노를 목격하며
N번방 공모자들에 대한 분노와 벗방BJ에 대한 비아냥을 동시에 목격한다. 왜 어떤 이들은 N번방 사안에는 분노하면서, 벗방 산업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또 ‘여자탓’하고 있나? 이 둘은 다르지 않다. 둘 다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행위를 쾌락으로 욕망하고 그 ‘남성’ 욕망을 전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장려하며 ‘여성’을 창녀와 성녀로 이분화해 낙인찍는 사회의 성별화된 섹슈얼리티 구성성에 의지하고 상호 작용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한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왜?
지난 토요일 <그것이 알고싶다>는 소위 ‘벗방’ 콘텐츠가 사기와 기망으로 여성BJ를 섭외하고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과정이 착취적이고 불평등하며 이를 상품으로 제작-유통-판매하는 자본이 ‘일간베스트’를 비롯한 남성들의 여성혐오적인 문화를 등에 업고 있음을 지적했다. ‘벗방’ 산업이 여성을 모집하고 콘텐츠를 생산하고 남성 구매자를 주조하는 경로는 성매매 산업의 경로와 일치한다. N번방과 ‘벗방’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폭력이라는 공통요소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했지만 이 두 사안을 향한 사회적 분노 정도와 여파는 전혀 달라 보인다. 당신은 N번방의 어떤 점에 분노하는지 묻고 싶다. 여전히 ‘순진하고 약한’ 피해자상에 기댄 분노는 아닌지?
N번방 ‘박사’방의 ‘박사’가 잡히면서 N번방을 통한 폭력행위들에 대한 공분이 일고 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활용한 성폭력의 공모자가 25만명을 넘어서는 한국 남성 사회 문화에 대한 분노는 지금까지 얼마나 남성중심 기득권 정치가 여성을 향한 폭력에 관대했는지를 꼬집으며 관용없는 수사와 처벌, 이를 가능하게 할 입법, 사회공동체의 변화를 촉구하는 힘으로 모이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다시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폭력이 남성 문화에서 유희거리로 여겨져 온 역사는 유구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폭력을 돈벌이로 삼아 온 산업의 역사 역시 유구하다. “남자라면 그럴 수 있지”, “그런 놀이 한 번 안 해본 남자가 어디있냐”며 한국 남성의 폭력적인 ‘쾌락’을 용인해 온 역사는 성매매 산업과 포르노 산업,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되었던 ‘리얼돌’산업까지 이어져왔다. N번방은 그 연결선에 있다. 여성으로 가입하기만 하면, 어릴수록 더 많은 성매매 제안 쪽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조건만남 어플리케이션(0톡, 00톡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의 연장선에 있다. 유흥업소에서의 성추행과 성폭력이 남성집단의 놀이문화로 공고히 자리 잡은 연장선에 있다. 그 놀이문화를 남자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그 놀이문화를 양산하며 돈을 벌고 축적하고 세금으로 걷고 여성의 몸을 관리해 온 한반도 유흥산업의 연장선에 있다. 여성에게 돈을 ‘대가’로 성적 행위를 요구하고 집단으로 관람하는 인터넷 벗방의 연장선에 있다. N번방은 남성 성욕의 절대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창녀’ 낙인, 이것들에 의존해야만 유지 가능한 거대한 성산업의 한 부분이다.
N번방을 향한 공분은 여성 폭력에 기반한 성산업에 대한 공분으로 이어져야 한다. 타인을 구속하고 지배하고 통제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남성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장되어야 한다. 역시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N번방은 한국 남성문화의 토양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여성을 성산업으로 내몰고 이를 양성해 돈을 벌어 온 역사에 이미 N번방은 배태되어 있었다. N번방 가해자/공모자들에 대한 분노가 한국 남성 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N번방은 외피만 바꾼 채 당연히 다시 만들어진다. 여성을 착취하고 혐오 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남성‘쾌락’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져야 한다. 자주 우리의 분노는 공론장에서 휘발되어 왔다. 그 휘발성에는 여전한 창녀/성녀 이분법이, 그리고 남성 ‘쾌락’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 차단이 작동했다.
N번방의 자양분이 된 남성‘쾌락’산업 전반을 끈질기게 추적하기를 제안한다. 남성 ‘쾌락’ 산업을 공고히 유지해 온 한국 사회 권력의 축들로 시선을 확장하기를 제안한다. 왜 어떤 사안에는 모두가 공분하고, 어떤 사안에는 또 다시 여성 탓으로 돌아가는지 그 배경을 같이 추적하자. 90년대 다방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십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구매와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되는 조건만남 어플리케이션, 4만개가 넘는 남성구매자 대상 유흥업소와 N번방, 그리고 ‘벗방’ 산업을 연결해서 고민하자. 보호해 마땅한 여성과 처벌받아 마땅한 여성으로 분리하여 이 분노의 연결지점을 끊어내려는 의도를 의심하자. N번방은 한국남성문화의 특이점이 아니라 한국 남성 섹슈얼리티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