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8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2. 제이

10월 18일 스페이스청에서 열린 [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당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해주셨는데요,

그 날의 후끈후끈 열기를 전해줄 두 번째 후기를  ‘제이’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성매매 산업을 여성주의적으로 고민하는 데에 서로 기댈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공유합니다.

 

<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참여 후기

– 제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X 김주희 X 정희진>?! 천재적 콜라보잖아, 이건 꼭 가야 해! 그렇게 병원 예약 시간까지 조정해가며 북토크 현장에 뛰어갔습니다. 역시 그런 생각을 저만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꽤 넓은 행사장이 꽉 차 있었습니다. 고진달래 활동가의 매끄럽고 여유로운 진행으로, 이룸의 별 활동가, 연구자 김주희 선생님, 정희진 선생님이 각각 패널로서 1부에서는 책 <페이드 포>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꼽으며 이야기했고, 2부에서는 <페이드 포>가 아일랜드 성매매 현장에 대한 이야기이니만큼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생각으로 넓혀가게 도와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순서무관 후기로 적어보려 합니다.

 

“극심한 우울증의 손아귀에 놓여있을 때, 사람들은 현실에서 비롯된 수치심과 우울증에서 기인한 수치심을 구별할 수 없다.”, “성 구매자 중에서 ‘변태’가 ‘일반적인’ 구매자들보다 상대하기 좀 더 수월했다.” 정희진 선생님이 <페이드 포>에서 짚은 구절입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과 여성 및 사회적 약자들의 경험을 연결하여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성애 성기결합 섹스 자체의 폭력성과 찝찝함, 그것이 정상이 되는 세계 안에서 여성이 겪게 되는 우울, 그리고 그 우울을 둘러싼 혼란(이건 병에 의한 증상일까, 끔찍한 세상에 대한 윤리적 반응일까?)에 대한 지적에 공감했습니다.

또 성구매자들의 습성과 ‘일반 남성’들의 일상 문화와의 연결선도 부각되었는데요. 한국 성매매 산업과 담론의 특성으로서 소위 ‘양남’, ‘일남’에게 굽신거리고 ‘여자’를 제공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과정,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일부 한국 남성이 구매자가 될 수 있었고 자국 남성을 타겟으로 한 성산업이 형성되었던 역사가 거론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한국 남자들이 더 ‘잘나가는’ 남자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나도 성매매할 권리(또는 나도 강간할 권리)’를 평등에 대한 요구처럼 들먹이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정희진 선생님이 ‘식민지 남성성’이라고 명명한, 외세에 억압됐고 그에 대항하는 주체로서의 자의식을 고수하면서 여성 성 착취의 문제에서 자기를 쏙 빼거나 오히려 자국 여성의 위로를 정당한 자기 몫으로 요구하는 남성들. 정말이지 한심하지만 어떻게 하면 더 격렬하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심하고 비겁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만들 수 있을지가 개인적으로 고민입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이 거래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별성’과 ‘일시성’이라고 짚은 김주희 선생님의 말에 몇 번이고 내적 무릎을 쳤습니다(의자 구조상 실제 무릎을 치기 어려웠음). 항상 성매매라는 문제를 다룰 때 ‘남성’의 돈으로 ‘여성’의 성을 산다는 점을 차치하고 관념적 ‘성의 거래’를 중심에 두는 게 현실을 왜곡하는 것 같다고 느껴왔거든요. 레이첼 모렌이 성구매자가 성매매 여성에게 통제권을 주고 복종하는 상황을 즐기는 거래에서도 권력은 전적으로 구매자에게 있음을 적은 대목을 소개하며, 김주희 선생님은 흔히 ‘여자도 호스트바에서 남자 성 살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현상을 대칭적인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지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성산업에서 ‘남성의 돈으로 여성을 산다’는 것의 또 다른 핵심은 남성이 비용 지불 이외의 어떠한 감정노동도, 관계적 노동도 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여성을 쓴다는 것임을 짚어주셨어요. 비용을 지불한 이는 그 ‘비인격적 관계맺기’ 자체를 구입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돈 낸 만큼을 뽑아낼 수 있을지를 궁리하게 되는 게 자연스런 수순일 것입니다. 그러니 성매매 현장에서 구매자가 사람을 비인격적 존재로 ‘막 다루는 것’은 월권의 영역이 아닌 상품에 포함된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일 거 같습니다. 이 ‘막 다룸’에는 물리적이고 명시적인 폭력만 해당하지 않을 거고요.

 

이 이야기는 별 활동가님이 발언한, 성구매자가 ‘구매하고자 욕망하는 것은 섹스가 아닌 성폭력’이라는 말과 연결되었습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는 “Paid for ______”, 과연 무엇에 대한 지불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별 활동가님은 성매매 여성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해 오면서, 바로 이렇게 그 자체로 비인격적인 거래의 경험이 누적됨으로써 그 당사자 개인들에게, 또 사회에 무엇을 남기는가- ‘그 고통과 효과를 언어화하고 문제화하기’라는 과제를 수행해오며 알게 된 것들, 고민한 것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여성주의자들은 늘 어떤 문제가 ‘왜’, ‘누구에게’ 그 문제의 ‘무엇이’ 문제적인지를 깊이 고민합니다. 돈을 받고 성을 제공하는 과정에 폭력이 추가되어서, 또 그 행위에 낙인이 추가되어서 문제라기보다는- 그러니까 폭력과 낙인이 제거된다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곧 (남성을 위한) 몸이고 열등한 존재라는 자아인식을 체화하게 만드는 과정으로서의 성매매 행위라는 점을 폭력이나 착취의 문제로 제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납득하게 만드는, 당사자에게 특히 은폐되어 있는 구조들이 있고, 그 구조 바깥엔 최저시급 이하의 임금으로 근근이 사는 것만이 대안으로 존재하는 상황- 이것 역시 그 자체로 폭력이나 착취의 문제로, 심각한 사회적 고통의 문제로 제기할 수 있을까. 별 활동가님의 이야기는 다시금 성매매를 밀실 폭력이 발생하는 ‘특수한 영역’으로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의해 뒷받침되고 또 그 둘을 지속하게 하는 구조로서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주희 선생님이 여자들 사이에 소위 “끕”의 차이(위계)가 있다는 환상을 재생산하면서 구매합리성을 만들어내는 업계의 논리가 얼마나 성매매 바깥에 있는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위계와 조응하는지를 짚어주셨던 점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고진달래 활동가님은 끝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셨어요. 여성주의 활동가로서 깊이 공감되는 고민이었습니다. 당사자를 피해자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발화를 할 것인가- 항상 고심하게 되고, 자주 후회하게 되곤 합니다. 이날 자리에서 뚜렷한 해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정희진 선생님이 레이첼 모렌은 자기가 경험하거나 생각한 것의 약 10퍼센트 정도를 썼을 거라며 “표현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협상력”이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것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당사자의 증언이 당사자의 삶을 포함하여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그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별 활동가님이 북토크 중간쯤 여성들이 자기 경험을 그 업계 밖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자기 경험에 대해 다르게 의미화하거나 이해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게 다시 생각났습니다. 정답이나 힌트 같은 건 아마 없는 거 같아요. 더 말할 수 있는, 더 많이 귀 기울여 듣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윤리적 매개자’, ‘듣기의 공동체’로서의 고민을 지속할 수밖에요. (하지만 힌트나 정답이 혹 있다면 언제나 대환영..)

 

두 시간에 어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쏙쏙 담았지 싶다가도, 한 시간쯤 더 들었으면 좋겠다 하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패널들 각자의 서로 다른 관심사와 ‘케미’가 두드러지면서 책 내용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이 고민하며 행사를 준비했을 이룸 활동가들에게 고마웠어요. 북토크 현장에선 사실 의자에서 떨어질 뻔할 정도로 웃긴 순간들이 꽤 있었는데 ‘오프더레코드’였던 터라 이 후기에 적을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행사장을 나오면서는 홀린 듯이 <페이드 포>를 구입했습니다. 근데 아직 못 읽었네요… 조만간 꼭 읽고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