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호]자해, “아프다는 것을 느껴야 안심이 돼요.”

 




아프다는 것을 느껴야 안심이 돼요.”


 


자해는 더 이상 위안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말이 없다. 물어봐도 다 괜찮다고 하는데 얼굴 표정은 그렇지 않다. 경직된 몸짓, 벽만 뚫어지게 응시하는 불안한 눈, 마음을 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듯 굳게 닫힌 듯한 말투. 그녀는 분명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지만 상담시간을 잘 지키고, 와서 앉아있는 것은 그녀 마음 안의 갈등을 보여준다. 말을 할까 말까 , 그래도 언젠가는 말을 하고 싶다는 마음.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적막한 공기를 함께 버틸 수가 있다.


그 날도 그녀는 별 말이 없이 있다가 돌아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선생님 저 자해하고 있어요란 문자를 보내왔다. 상담에서 자해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떤 식의 자해를 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안심을 시켜서 빨리 자해를 멈추게 하는것이 우선이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속이 탄다. 그녀는 왜 내게 자해를 한다고 알렸을까. 분명 그녀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문자를 했던 것이다. 전화를 받지 않은 그녀에게 난 메시지를 보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어서 문자를 남긴 것 같은데,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통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질 거에요 연락주세요라고 보냈고 그녀의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답문을 보내왔다. 그녀가 내 도움을 받아들인 것이다. 몇 통의 문자를 주고 받은 후에야 그녀와 전화가 되었고, 난 그 순간에 그녀 곁에서 자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 힘듦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자해는 중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녀는 늘 참고 지내야만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다 내 탓이니까, 상황은 바뀌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늘 무기력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회사에 있을 때는 밝은 척 해야 했고 그들에게 받은 상처와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혼자 집에 와서 자해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해가 아닌 방식으로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과 화를 드러내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해를 하면서 화를 드러내지만 그 후에는 밀려드는 자책감, 왠지 모를 자신에 대한 미움,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들과 싸우면서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이 고리를 끊는 것은 그녀 자신에게 달렸고,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오랜 상담을 통해서 배워나갔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롭다고 느끼거나 문제의 해결이 보이지 않아서 막막할 때 해오던 자해는 중독이 되기 쉽다. 심지어는 술을 마시거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해의 습관이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벌하는 방식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해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받고, 내가 어떤 문제로 힘들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직접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 그리고 자해 대신 다른 즐거운 쾌감을 주고 만족하게 하는 것들을 찾으면서 그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도를 이제, 시작해보자![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