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8월 29일 자원활동가로 이태원 아웃리치에 참여한 현지수입니다. 8월 아웃리치는 두 팀으로 나누어져 시작했습니다. 불량언니 작업장에서 만든 손뜨개 수세미와 라이터, 별별신문을 들고 언니들을 만나러 갔어요. 비싸고 화려한 물건이라기 보다는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세미여서 언니들이 잘 받아줄까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금방 동이 나서 마지막 업소에는 물품을 전달하지 못 했습니다. 정성은, 마음은 통하는 가봐요.

첫 아웃리치인 만큼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불안과 걱정으로 빠릿빠릿하게 별별신문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기고 신문부수를 세는데 여념이 없어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요. 그런 와중에도 선명하게 보였던 것은 이루머들이 똑똑 노크를 했을 때 ‘누가 문을 열 수 있는지’ 입니다. 문을 연 사람의 옷차림과 매너. 노출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고급진 롱 드레스를 입고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짓 혹은 손짓을 하는 사람과. 그리고 그 안에는 미니 기장의 원피스를 입고 몸을 둥글게 말아 어둠 속 쇼파에 기대있거나 목을 길게 빼고 눈이 마주쳤을 때 어색하게 웃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마 내 앞에 살갑게 서있는 저 긴 옷을 입은 분이 관리자격인 사람인 거겠지? 그리고 저 안에 자신을 숨겨야 하는지 혹은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고용인 격인 사람인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루머들에게 반갑게 웃으면서 고생한다고 물 챙겨가라고 하는 사람이 문서에서만 보아왔던 ‘마담’인 걸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은 걸까. 이 사람은 자신의 아가씨를 책임지기 위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이 있는 사회에서 외부와 접촉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방어하기 위해 이 공간의 책임자로 나온 걸까. 아니면 외부와의 연결을 끊기 위해 나온 걸까. 여성단체가 아가씨들을 빼앗아가는 걸 막기 위해? 어떤 의도건 간에, 그 사람의 인품과 별개로,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역할의 사람은 어떤 위치의 사람인지, 이 역할의 구분 혹은 위치의 구분이 업소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고 있는지. 이 권력관계를 봐야하는 거겠죠.

아가씨 일을 하다가 나이 들며 마담이 된다지만 알선하는 사람이 나를 환대할 때 이 부대낌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나. 이 별별신문은 전달되는 걸까. 전달된다 하더라도 어떤 맥락으로 어떤 언어로 전달될까.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나를 환대해도 문제. 환대하지 않아도 문제. 이 물품들이 전달되어도, 되지 않아도 문제가 아닐 수는 없겠다. 현장과 관계맺는다는 건 이런 모순과 막막함을 끌어안겠다는 걸까. 내가 머리 싸매도 소용없는 질문들로 전문가 선생님들, 이루머들을 옆에 두고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졌었네요.

그런데도 아웃리치를 나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어떤 결의였을까. 질문이 생깁니다.

아웃리치란 단순히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 물품을 전달하는 적선, 시혜의 구호 활동도 아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적 관계도 아니다. 삶의 자리에 파고들어 연루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데 친구나 동료,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게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다. 울고 싶지 않고 울리고 싶지 않은데 울릴 수 있을만큼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개입의 여지가 생긴다.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 같은데 이태원으로 찾아가는 사람들도 찾아짐을 당하는 사람들도 그런데도 놓지 않겠다. 찾아가겠다. 말을 걸겠다. 문을 열겠다. 응답하겠다. 는 어떤 결의일까.

아웃리치 생각없이 갔는데 갑자기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아웃리치, 아웃리치 그런데도 왜 해야하지? 스스로한테 질문을 던져보면.. “그렇다고 안 할 건가?” 에 “네” 라고 할 수도 없다…

집결지라는 공간은 규제해봤자 소용없다고 국가가 개입하기를 포기하고 혹은 눈감아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윤을 위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등 돌린 맥락이 있잖아요.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한다고 법이 닿지 않는 공간에 법 외에 지배 주체들과 규칙이 만들어져 다방면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옭아매었던 공간에 더 이상 그렇게는 안 될 거라고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 공간이 그대로 닫혀 매듭지어지지 않도록 찾아가 틈을 만들어야 하는 거겠죠? 이전에 그 공간을 지배했던 질서를 깨고 다른 가치로 공간을, 관계를 다시 짜기 위해서.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잘할 자신, 똑똑하고 싶고 올바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다면 잘 망하고 잘 상처받아보고 싶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