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06 이룸공부방 1기 4회차 후기 by.소윤

180906 이룸공부방 1기 4회차 후기 by.소윤


이룸 공부방 네번째 모임의 주제는 ‘소수자 성매매’였다. 나는 이번 주제가 굉장히 기다려졌는데, 그 이유는 지난 7월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참가 준비를 하며 시작된 고민 때문이었다. 당시 부스참가를 앞두고 주변 친구들한테 “나 이룸 부스 참여하니까 놀러와!”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긴했으나, ‘성매매문제’와 ‘성소수자인권’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설명하려니 어딘가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참고할만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오마이뉴스에 이룸이 연속기고했던 기획기사(‘새로고침 F5: 성매매 다시 생각하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총 다섯편의 연재글 중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기사는 MTF 트랜스젠더의 성판매 경험을 중심으로 성판매자이면서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복합차별’의 현실을 다루는 글이었다.

MTF트랜스젠더 성판매여성들이 경험하는 복합차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었다. 기사에 의하면, “MTF 트랜스젠더의 다수는 주민등록 변경이 되지 않으면 취직 활동이 어렵다. 성전환 수술비 마련과 생계를 위해 대다수의 MTF트랜스젠더가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트랜스젠더바에 취직하는 것도 경쟁이 심하고 취직한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젊은 MTF에게 밀려나기도 한다.” 실제로 2001년-2006년 사이 성전환수술을 완료한 105명을 대상으로 직업현황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MTF트랜스젠더의 90프로가 유흥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MTF 트랜스젠더의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매우 제한되어있으며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택지가 성산업-성매매라는, 강요된 현실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다.

이번에 이룸공부방에서 함께 읽은 자료집(‘소수자 성매매 포럼 자료집(2014)’과 후기)에는 위와 같은 현실의 문제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는 연구결과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료집은 “‘성적소수 자이면서 성판매자인 사람들에게 성매매는 무엇인지, 어떤 맥락과 어떤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성판매자로서 게이, 레즈비언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질적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우리의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제기되었던 쟁점과 질문을 기억나는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구매자의 비율 중 ‘여성의 성을 구매하고자하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이 압도적이고, 여성의 몸을 교환-거래대상으로 만들어온 남성중심적 경제 시스템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한국사회에서, ‘소수자 성매매’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성구매자가 시스젠더-이성애자 남성이 아닐때, 그들이 구매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의 내용(남성간 성매매에서 삽입이 아닌 사정이 중심이 된다거나, 남성간 성매매에서 판매자는 ‘성적 대상’이 될뿐 대상화 되지는 않는다는 점, 여성간 성매매에서 펨/부치관계가 판매/구매관계와 대응되지 않는다거나, 트랜스젠더 성구매가 여성성을 체현하는 외모+남성 외성기를 동시에 성적 욕망/판타지/페티쉬로 구성한다거나 하는 지점)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한편으로, 성판매자의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성에 따라서 ‘일반 성매매/소수자 성매매’라는 경계를 구분짓는 것이라면, 이러한 경계 구분은 은연중에 성판매자로서 성소수자의 삶을 ‘예외적인 것’, ‘특수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판매자로서 성소수자 내부에서 발견되는 경험의 차이와 이질성(폭력과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의미화 하는 방식 등)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일반 성매매/소수자 성매매’라는 이분법으로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현실의 어떤 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록하고, 또한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토론이 끝나고 나누었던 대화들도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이론과 삶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중요한건 구체적인 ‘현장’에서 ‘지금, 여기’를 살만한 삶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론의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실을 이론에 끼워맞추려는 시도야말로 인식론적 폭력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룸 공부방에 참여할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정말이지 ‘답도 없는 질문’들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렇게 한 가지 방향으로 결론나지 않는 답변과 불확실한 의문들이 오고가는 상황이 불편하지가 않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왜냐하면, 이룸 공부방에는 누구 한명 나서서 논쟁을 ‘종결’하려고 하거나 질문이 벌려놓은 틈을 ‘봉합’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왜 나만큼 이해하지 못했냐’며 답답해하는 사람도 없고, ‘너는 뭐 그런걸 물어봐?’라며 눈치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다음달에 만나요’라는 인사가 ‘말뿐인 말’이 아닐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인 이유다.

ps. 발제문 쓰느라 고생한 혜진님과 토론내용 정리해준 별님, 모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