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16 피아노학원 2차 모임 후기_by 소희

180816 피아노학원 2차 모임후기_by 소희

 

‘나의 연애, 성소수자로 일한다는 것’

 

20대 당사자모임 ‘피아노학원’이 두 번째 모임을 맞았다. 신기하게도 어쩌다보니 모인 멤버들이 다 성소수자여서 ‘나의 연애, 성소수자로 일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눴다.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했어. 아가씨라는 건 출근해서 퇴근까지 일을 하는 그 시간만 아가씨로 사는 게 아니라 삶의 전반을 아가씨로 조직해야 하는 일이야. 일을 하는 시간이 아니어도 몸 자체가 자원이기에 ‘초이스’가 되는 몸으로 성형을 하고 머리를 기르고 식단 조절과 약물 복용을 통해 몸을 만들어야 해. 내가 무엇을 먹고 싶고 어떻게 나를 표현하고 싶은지 보다는 일을 할 수 있는 몸이 되기 위해 생활 루틴을 만들고 그걸 유지해야 했어.

또 아무리 병원을 자주 다녀도 손님과의 잦은 성관계로 어떤 균에 감염되어있을지 모르고 콘돔 없이 하려는 손님들과의 몸싸움으로 내가 모르는 곳에 어느 순간 모르는 상처가 생기기도 해. 업소에서 로맨스를 찾는 손님들 때문에 키스마크 같은 성관계의 흔적이 남기도 하고 몸의 안팎으로 삶의 방식에까지 아가씨인 내가 묻어있어.

그러니까 아가씨라는 사실은 저를 너무나 꽉 옥죄고 있어. 하지만 연애는 보통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일대일 독점적 연애관계를 상정하고 시작하잖아요. 그렇다면 타인의 침범이 짙게 남은 몸으로 어떻게 연애라는 걸 하는 것이 가능한지. 남성 이성을 상대로 몸을 파는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이 무슨 소용인지. 이런 억하심정이 들기도 했어. 이런 억하심정이 들기 때문에 이 주제가 우리에게 필요했던 거겠죠?

 

저의 연애. 연애를 하더라도 상대에게 성병을 옮길까봐 성병에 감염되어 크게 앓은 후부터 키스는 하지 않았어. 성기는 콘돔을 쓴다 해도 구강으로 무언가 전염될지도 모르니까 키스도 오럴섹스도 하지 말라고 했어. 상대와 함께 하는 행복한 미래를 그린 적은 없는 것 같애. 그리다가도 몰려오는 죄책감에 미안함을 보상하기 위해 얼마를 모아서 주면 좋을까 몇 천 만원 모아서 주고 잠적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해봤어.

누군가에게 플러팅을 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려는 노력 대신에 가끔 밖에서 원나잇을 했어. 그러다 최근, 이반바에 가서 여자를 만났다. 어느 때처럼 호기롭게 언니한테 원하는 건 몸 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섹스만 했는데 원나잇이 섹파가 되고 깊이 정들어버렸어.

하지만 언니에게 “우리의 관계를 발전시키자” 라고 하기에는 ‘저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란 생각으로 빠져버리는 거예요. 저는 언니에게 헌신할 수 없는데 언니한테 혹시나 성병을 옮겨서 옷 벗는 것도 싫어하는 온깁 부치 언니를 산부인과 의자에 앉힌다고 생각하면 저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요. 여자와 바람나면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남자와 바람나면 레즈비언으로서의 패배감, 이성애자들에게 증오를 느낀다는 언니에게, 집안에서 반대해서 좋아하는 여자의 결혼식을 도와줬다는 언니에게 페니스를 받음으로써 돈을 번다고 이런 나라도 사랑해달라고 내가 무슨 염치로 어떻게 말할 수 있어?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언니는 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고 좀 더 귀하게 자란 사람 만나서 언니가 원하는 대로 밥 차려주는 조신한 팸 만나서 집 밥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저는 성병이 있을 수도 있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상한 일에 언니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고 도저히 언니를 책임질 자신이 없고. 언니에게 헌신하지 못할 것이고.

하지만 언니가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언니가 길거리에 다른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속이 홧홧해졌어. 나랑 좀 더 깊게 만났으면 좋겠고 하지만 죄책감 느끼고 싶진 않으니까 나랑 너무 깊게 만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독점욕과 죄책감, 안 된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언니를 향해 활활 불타는 마음으로 반년을 보냈다.

이걸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 ‘애프터 나가지 말고 테이블만 볼까, 일을 그만둘까. 그럼 이제 뭐하고 살지. 돈은 어쩌지.’ 혼자 머리를 쥐어뜯었네. 몇 달 일을 쉬기는 했지만 돈이 떨어지면 손님을 받았어. “언니를 사랑해요. 언니와만 만나고 싶어요. 우리 깊게 만나 봐요.” 말 한번 해보지도 못 했다. 그저 다른 여자와 술 마시고 새벽에 찾아온 언니를 집에서 재우고 밥도 차려주고 술상도 차려주고 사달라는 대로 사줬어. 이거로 서로 쌤쌤인 거라고 언니가 못되게 굴수록 아파하면서도 사실은 편안함을 느꼈다.

돈 씀씀이 때문인지 언니는 저를 돈 나올 곳으로 봤나봐. 자기가 얼마나 금전적으로 쪼들리는지 얼마가 필요한지를 저에게 푸념하기 시작했어. 정말 돈 백이라도 쥐어줄까 고민하다가 이루머들과 친구들의 만류로 돈을 주지는 않았지만 저는.. 차라리 돈은 주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마음이 들어버리네요. 그게 내가 언니에게 줄 수 있는 단 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호구력 만렙 소희, 그 언니는 아니야. 좋은 사람을 만나야 돼’ 라는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저는 좋은 사람을 만나도 될 정도의 좋은 사람인가 이 생각이 드네요. 좋은 사람 만나도 괜찮을까?

요새 레즈비언 연애시장에서는 ‘일틱’이 잘 팔린다고 하지만 저는 일틱 같은 게 아니야. 긴 머리, 긴 속눈썹, 붉은 입술, 코르셋 브라로 억지로 모은 가슴과 스커트에 킬 힐, 팔리기 위해 내가 원하는 젠더표현과는 다른 ‘여성적인’ 기호들을 몸에 얹는다.

성소수자인 나에게 자긍심을 느끼기에는 저는 너무 쉽게 이성애자로 패싱되고 손님들은 저에게 남자와의 경험담을 요구해. 너는 가슴이 커서 남자들이 가만 안 뒀겠다든가 남자친구가 없다니 말도 안 된다. 언제 처음 자봤냐. 너 자지 잘빤다. 그렇게 맛있냐. 등등. 페니스를 두려워하거나 욕망하는 아가씨를 요구해. 페니스에 무관심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싫어서 나는 페니스를 욕망하지 않는다고 여성과의 경험을 꺼내면 나의 역사, 마음들이 그저 관음거리로 떨어지고 말아. 소중한 사람과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마음을 나누던 시간을 딸감으로 소비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데. 저에게는 나를 부정하고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거나 내 여자 하나도 지키지 못 하고 맨몸으로 내던져지거나 이 두 가지 밖에 남은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애.

‘나’로 살기 위해 집을 나왔고 ‘나’로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있는데 그럴수록 ‘나’가 산산히 부서지고 있는 것 같다. 손님들이, 사람들이 증오스러운 날이 있어. 다른 사람의 삶의 궤적마저도 딸감으로 소비해버리는 뻔뻔한 이성애자들, 이성애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는 상상도 못한다고 속으로 비웃어보지만 비웃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라는 게 저를 슬프게 하네요.

동성애자들은 일상에서 인연을 찾기 어렵다고 하잖아.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더라도 이 사람에게 플러팅 해도 괜찮은지 이 마음이 나에게 위협으로 돌아오지는 않을지를 걱정하고 어떻게 마음이 통하더라도 멀쩡히 잘 살던 애를 꼬셔서 이쪽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 내지는 이 관계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이 사람이 언제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끼며 사는데 말이야.

그에 비해 이성애는 무려 제도로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잖아요. 결혼제도가 있고 결혼을 하면 세금혜택을 주고 신혼부부를 위한 대출서비스도 마련되어 있고 주거나 모든 상품 서비스들이 이성애 정상 가족을 겨냥해 나오고 있어. 심지어는 현행 식품위생법상에는 유흥주점에 유흥종사자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이를 ‘부녀자’에 한정하고 있어. 남자들이 잘 놀지 못 할까봐 국가가 나서서 여자를 수급해주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이 성산업에서는 누구의 욕망이 유통되고 이 욕망은 무엇을 수호하고 모든 욕망은 충족되어야 하는가. 정말로 성적 쾌락을 판매하는 것이라면 이 압도적으로 불균형한 이성애 남성을 손님으로 하는 업소의 숫자는 무엇을 뜻하는가.

아프다. 언니와 마음이 닿지 못 해서, 언니에게 제대로 매달려 보지도 못 해서, 이걸 누구한테 얘기할 수도 없어서, 언니와의 일이 손님들의 관음거리가 될까봐, 내 여자 한 명 지킬 힘도 없어서, 이런 인연을 또 만날 수 있을지 불안해서, 생긴들 나를 믿어달라고 할 수 없어서, 아무 걱정 없이 어딜 가든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이 부러워서, 국가가 나서서 밀어주는 굳건한 이성애제도에 원통해서 마음이 아파.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척 굴었지만 더 이상 쿨 한 척할 자신이 없어서,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내가 싫어서 글 쓰는 걸 놓고 있었는데 피아노모임 후기를 핑계로 계기로 오랜만에 제 마음을 꺼내어 봐요. 이룸은, 피아노학원은 그런 곳이에요. 억지로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나를 지키기 위해 쌓아뒀던 둑을 따뜻한 환대로 무너뜨려버려요.

문을 열면 계단 올라오느라 고생했다고 재잘재잘 맞아주고 슬리퍼는 신었는지, 숨은 골랐는지, 시원한 음료를 내주는 곳이야. 반가운 얼굴들과 하나하나 인사하고 시선을 돌리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져있는 간식이 기다리고 있어요. 얘기하다 힘이 빠지면 “잠시 담배 좀 피워도 될까요?” 묻고 지쳐서 누우면 머리를 벨 방석을 쥐어주고 여기 모인 사람을 믿고 힘든 얘기도 부담 없이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타인과의 경계, 거리감을 어느샌가 훌쩍 뛰어넘어버려.

‘깊게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우울해지면 내일 일 못 해. 돈 벌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넘겨야해. 별 거 아니야. 나는 괜찮아. 괜찮다. 별 거 아니다.’ 끝없이 묵히고 삭여야 했던 걸 꺼내도 괜찮다고 아프고 싶을 때는 아파하자고 하는 곳. “보지 판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죠.” 내가 나를 방치하고 있을 때 “닳아요. 소희 멘탈이 닳잖아요.” 대신 저를 챙겨줘서 고마워요. “짬뽕을 얻어먹고 간장게장을 사줬단 말이야?!”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타인이 나를 대우하지 않을 때 그건 부당하다고 대신 분개해줘서 고마워요. “내 동생”이라고 마음써줘서 고마워요. 눈물 콧물 질질 짤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타인을 환대하는 법을 알려주는 이룸을 피아노학원을 우리 멤버들을 좋아해요. 덕분에 언니와의 문자내역을 삭제할 힘을 얻어요. 마음을 정산하고 내일을 맞을 용기를 채우며 우리가 오래오래 만날 수 있길.

그럴 수 있도록 이 글 읽은 사람들은 이룸 cms 정기 후원 신청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