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10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_조이스

 

딱 9년 전 가을, 저녁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즈음 나는 이룸에서 실습하면서 청량리 ‘588’ 집결지 라운딩을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기지촌이 아닌, 선주민들이 있는 집결지를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기도 했었고, 고립된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긴장을 많이 한 기억이 난다. 이루머들이 별별신문을 나누며 청량리 언니들이랑 이야기 나누면서 나는 뒤에서 인사만 하고 조용히 쫓아다니기만 했다. 집결지 가운데에 교회가 있었고, 그날 라운딩 담당인 깡통 활동가가 미리 말해준 것처럼, 밖에서 업소를 지켜보는 ‘삼촌’들(업주들)이 있었다. 긴장해서 그랬는지, 그 외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청량리 아웃리치 경험 9년 후, 지난 10월 20일에 이루머 두 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여인터) 허오영숙 대표님, 백소윤 변호사님이랑 이태원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활동가로서 이태원을 생각하면 기지촌, 성매매, 퀴어/트랜스, 이주민,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관광 등의 키워드들이 떠오르는 곳인데 이룸, 공감, 이여인터, 두레방이 함께 갈 수 있어서 뜻깊었다. 이태원은 가끔 가는 동네라 청량리처럼 낯선 곳은 아니지만 TG바에 가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긴장되었다. 이루머들이 이태원 지도를 보여주면서 라운딩 계획, 펜대믹 상황, 주의 사항을 설명해주면서 긴장이 조금 풀렸다. 이번에 이룸에서 발간한 책 <불처벌: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선언>을 홍보하는 별별신문과 예쁜 양말을 챙기고 밤 9시에 이태원 윗동네에서 아웃리치를 시작했다.

 

아웃리치 중에 업소 26개 정도를 방문하였고 그중에 3~4 군데가 문이 닫혀 있거나 영업 중지 중이었다. 이태원 동네를 한 바퀴 돌면 TG바 간판들을 많이 볼 수 있긴 한데 업소가 생각보다 많았다. 업소명은 주로 영어 이름이었지만 한국, 일본 이름도 있었다. 기지촌에서 활동하면서 가끔 주한미군 용산기지의 오프리밋 (미군 업소 출입금지조치) 명단을 확인하였는데 낯이 익은 업소명들을 실물로 보게 되었다.

 

TG업소에 들어가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관계자들은 다양하게 언니들, 웨이터, 사장언니였다. 업소를 지켜보고 있는 한국남성 업주는 못 보았다. 이룸은 몇 년간 정기적으로 아웃리치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언니들은 이룸이 방문하는 것이 익숙하고 거부감 없이 별별신문과 양말을 받았다. 한편, 몇몇 업소의 언니들이 이룸이 어떤 곳이고 물품을 왜 나누는지 묻는 언니들도 있었다. 언니들이 접객 중인 업소가 있어 바로 나온 경우가 있었고, 출입이 어려운 업소도 있었다. 아랫동네 업소에서 만난 여성 한 분은 이룸이 지난 9월초에 이태원 언니의 거주지 침수 피해 복구를 위한 특별 후원 모금 캠페인에 후원하였는데 그 언니의 안부를 물었다.

 

한편, 나는 성산업 내 인종 또는 국적을 선별하는 현상에 대한 관심이 많다. 두레방에서 활동하면서 외국인만 출입할 수 있는 외국인전용업소에서 아웃리치를 한다. 또한 기지촌 인근 유리방 집결지 중에서 외국인 구매자를 거부하는 몇 개의 가게를 본 적이 있었다. 두레방 언니들이 일했던 기지촌 클럽들이 손님들의 인종별로 분리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날 이태원 아웃리치를 다니면서 ‘외국인 출입금지’ 표시를 보았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비틀거리는 백인 남성이 한 작은 업소 앞에서 벨을 계속 눌렀지만 TG언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이태원 TG바에서 여성들이 선주민, 이주민, 해외관광객 구매자들로부터 어떠한 문제들을 경험해왔는지, 언니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외국인을 거부하게 되었는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이룸과 많은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의 활동들을 함께 하게 되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다시 9년만에 이루머들과 이태원 아웃리치를 나가본 결과, 이룸은 역시나 현장을 꼼꼼이 잘 알고 현장과 현장에 있는 언니들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여전히 큰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11월부터 날이 확 추워질테고, 이태원 참사 이후 지금 현장에 계신 언니들도 많은 상심이 있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모쪼록 건강하시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