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김주희
오랜만에 이룸의 이태원 아웃리치에 함께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직 시간이 이른 저녁 9시라서인지, 문을 닫은 업소가 많았다. 보고 싶은 여성들이 몇 명 있었지만, 얼마 전 가게에서 해고되었거나, 아직 출근 전이거나, 혹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성은 결국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몇몇 여성들이 곁을 내어주어 잠시 앉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덕담을 건네고, 준비해 온 아웃리치 물품과 소식지를 건네면서 비교적 여유롭게 이태원의 클럽들을 돌았다. 이날의 주요 화두는 ‘건강’이었다. 최근 이룸에서는 이태원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의료 접근성과 건강권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활동가들은 여성들에게 국민건강보험이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지, 검진 시 불편한 점은 없는지,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필요한 의료지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등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3평 남짓한 ‘반잔 바’에서 홀로 있던 50대 트랜스젠더 여성은 우리를 앉혀놓고 한참 동안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이야기의 요지는 ‘젠더고 뭐고 가난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젊었을 땐 몰랐던 가난을 이제야 실질적으로, 그야말로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일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위내시경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면내시경을 받으려면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결국 검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거 독한 년 아니면 못 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녀에게 건강을 돌본다는 것은 그악스러운 ‘독한 년’이 되거나, 아니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10평 남짓 되는, 다른 클럽에서 만난 50대 트랜스젠더 여성은 건강에 대해 별다른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여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사려 깊은 의견을 내놓는 것과 비교되는 태도였다. 어릴 적엔 호르몬을 구하거나 주사를 맞는 게 문제였지만, 지금은 호르몬을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사라졌다고 했다. ‘이태원 바닥’에서는 트랜스젠더로서 특별한 문제를 겪지 않는다는 듯, 이태원 거주민 특유의 여유와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태원에 위치한 병원에서는 간호사, 내원 환자, 의사 모두 적당한 감수성을 갖고 있어 소수자 친화적인 환경이 대략 조성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성형외과와 관련해서는 어떠냐고 묻자 그녀는 “그건 우리가 도사지~”라며 크게 웃었다. 트랜스젠더인 본인에게 성형수술이 누군가의 상담이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부작용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대구에서 얼마 전 올라왔다는, 20대로 보이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말을 거들었다. 호르몬 주사, 성확정 수술 등에 관해 한참을 설명하며 “그게 다 부작용이잖아.”라고 말을 맺었다. 트랜스젠더로 살겠다는 결심은 사회적으로 ‘부작용’으로 분류되는 의료와 약물의 효과를 삶의 일부로 포함하는 것이기에 트랜스젠더에게 ‘건강’ 문제는 포기해야 하거나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부작용’이라는 말에 대해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성확정 수술, 성형수술, 호르몬 주사를 포함해 자신이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부작용’으로 설명하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우리가 나누는 ‘건강’이라는 대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지하다시피,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건강이란 개인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권리이자, 사회적으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추구하는 편안한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날 아웃리치에서 만난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건강은 애초에 포기해야 할 무언가였기에, 그나마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자, 억척스러워야 추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건강을 ‘정상성’의 범주 안에서만 상상한다면,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언제까지나 ‘부작용’을 치료해야 하는 혹은 다스려야 하는 존재로 남게 된다. 건강이 특정한 일부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나 특정한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 소수자와 빈민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면, 의료지원은 이들의 ‘부작용’을 관리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작용’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날 아웃리치를 통해 이룸이 이태원에서 건강권과 관련된 활동을 어떻게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더욱 기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