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이룸토론회] “사회적 재난과 성매매-코로나19 상황에서 성매매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참여자 후기, 세번째

 

K-(가부장)-방역이 외면한 ‘위험한’ 종사자의 증언을 기록하다 

작성: 판이

 

토론회를 들으며, 긴급하고 절박한 이 조사 결과의 곳곳에 ‘생존’/‘돈’/‘자살’/‘마스크’/‘모순’ 같은 말이 스며 있음을 본다. 조사 규모 등 여러 한계가 있다곤 하지만 오히려 높은 낙인과 위험도에 비해 현황 파악과 사회적 이슈화는 어려운 상황 ― 모처럼 가능해 보인 특수고용/프리랜서 재난지원금도 낙인 때문에 접근이 어렵고, 기자회견도 각종 딜레마로 준비 단계에서 철회해야 했을 정도의 ― 에서, 각 응답에 맺힌 절절하고 무겁고 집약적인 고통 호소는 오히려 큰 규모의 조사 결과들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당사자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이미 들어갔는데 손님이 기침 좀 한다고 무섭다고 나올 수도 없다.”(21쪽)

“내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걸릴지 몰라 겁이 났다. 나 때문에 걸리게 될까 봐 친구도 못 만나고”(23쪽)

“죽었다는 언니들 [소식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한두 명이 아니고 좀 많이 그랬나 봐요. … 일수 같은 경우는 무자비하게 그냥 [채권 추심을] 해버리니까.”(24쪽)

 

단호하고 (선택적으로) 관대한 K-(가부장)-방역이 업주들의 ‘생존권’ 요구에 재난지원금을 집행하는 동안, 그 손길과 관심이 선택적으로 사라진 곳 즉 업주들의 바로 옆, 그들과 같은 시공간에 분명히 살아 있(었)으나 투명인간처럼 취급된 종사자들은 전국에서 여럿씩 이동하고, 죽고, 앓고, 빈곤과 절망으로 착취되며 말 그대로 파괴되어 왔던 것이다. 전염병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가 바이러스와 사실상 동일시되는 일, 이로 인한 조용한 사회적, 경제적 살인 등 폭력이 여러 물리적 수용시설에서처럼 성매매 산업 현장에서도 소리 없이 일어나 온 것이다.

 

‘마스크 시민권’을 마스크를 자유롭게 쓰고 벗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생각으로 넓힌 한 토론(김주희)의 지적에서처럼, 자기 목소리 내는 집회 등에서 ‘안전’을 위해 마스크로 가려야 하는 여성의 얼굴은 구매자와 바이러스의 위험 앞에서는 적극 마스크를 벗어 호흡기를 노출해야만 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2020년 12월 이룸 불량언니작업장 비대면 공연 때 참여자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한 이룸의 여러 노력, 그리고 저마다의 인생 노래로 무대에 서면서도 정작 자기 지인은 한 명도 초대할 수 없다는 일에 마음 먹먹해 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존재, 이름, 얼굴의 ‘값’, 무엇을 의미 있는 통계로 치고 주의를 기울이고 보호할 가치 있는 것으로 삼는지, 재난 지원금 대상으로 이름이 불린 이들은 있던 것(‘정상’ ‘가족’ 임금)을 잃은 경우에 해당했다는 점에서 무엇이 공인된 자원인지 등… 정말 토론회에서 나온 말처럼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가 뚜렷해진 것이라, 문제의 큰 근원에 다시 와 닿는 막막함을 실감하였다.

 

이처럼 ‘탈가정, 탈학교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존재, 없는 존재인 듯 숫자로조차 쳐지지 않는 비공식청소년’, 성소수자 청소년, 홈리스와 노점상 등 비공식 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었다. ‘정상’ 사회 궤도에서 ‘낙오’되었거나 애초에 그 궤도에 진입할 수도 없었던 사회적 난민. 토론에서 성매매가 그 자체로 돌봄노동의 내용과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과 가족 또는 친밀한 사람 등을 부양하기 위한 돌봄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은 대목도 와 닿았다. 빈곤뿐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없는 셈 치게 가려진 비공식적 돌봄 노동이기도 한 것을 또 하나의 축으로 봐야 할 테다. 이 두 축 사이, 그리고 ‘불법’과 ‘불법 아닌 것’ 사이, 위험을 무릅쓰며 중노동하는 종사자와 ‘업주’의 이해관계 사이, 특수고용/프리랜서 재난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확인된 낙인과 한 줄기 희망(고문) 사이, 엇갈리는 창과 방패 사이, … 그 사이들에 마스크는 벗고 입에는 재갈 물린 사람 몸이 끼어 있는 이미지(점선으로 투명 처리하고 소리도 소거한)가 떠올라 힘겨웠다. 그러나 늘 실감하듯 한계점이야말로 변화 시작점이니, 제도의 틈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거나 정보 주고받음만 해도 숨통이 트였다는 증언들의 대목을 떠올린다. 사방 막힌 데서 제자리걸음을 하더라도 그게 오늘의 나를 유지하는 걸음인 것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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