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이룸토론회] “사회적 재난과 성매매-코로나19 상황에서 성매매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참여자 후기, 네번째

 

작은 날갯짓과 거대한 전환

작성: 현미

 

마스크 너머로 서로의 안녕을 묻는 나날이 어느덧 1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모두들 어찌 지내시나요, 저는 이룸 회원 소모임인 공부방1기 참여자이자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현미입니다. 진영논리나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 이룸의 사유와 실천에 깊은 지지를 보내며 곁에 있은 지 3년차, 감염병의 시대를 겪어오며 견뎌오며 쌓인 현장의 문제의식을 나눈 귀중한 토론회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열흘이나 지난 지금에도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은 디지털 너머로 느껴지던 참여자들의 열기와 진지함인데요. 3시간 가까운 행사가 끝날 때까지 동시접속 100명 이상이 유지되며 계속된 토론회에 있으니, 얼굴과 표정을 볼 수 없음에도 다들 관심과 고민을 갖고 함께 모여 있다는 느낌에 제가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이 모여 있음에서 출발하는 사회, 거기에서 적절히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현실에서 출발함으로써 모여 있음의 구성 원리를 다르게 바꾸어 내려는 이룸의 담론화 작업은 언제나 급진적입니다.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을 직면한다는 점에서요. 성매매를 금지하면서도 묵인하고 관리해온 한국 성산업의 오래된 이중 구조는 이윤은 국가와 사회에, 쾌락은 남성에게, 후과(後果)는 여성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어왔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유흥업소 업주들은 자영업자로서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이성애 정상가족 형태의 ‘가구(주)’, ‘세대(주)’를 기본값으로 설계된 지원체계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배제는 국가나 사회의 명시적 방해보다는, ‘화밍아웃’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 속에서, 피해와 자격 있음을 끊임없이 ‘증빙’하라는 관료제의 문턱 앞에 체득된 주저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백영경 님은 토론에서 ‘사회적 고통’이란 개념틀을 소개해주시면서, 국가와 전문가 집단들이 고통의 정당성을 심사하며 지원 대상을 선별함으로써 고통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가중시키는 이 맥락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또다른 토론자인 김주희 님은 ‘재난 시민권’이란 인식틀로 개인적 위험을 무릅씀(risk taking)으로써 사회적 재난 시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박탈된 시민으로서 성매매 여성들의 얼굴을, 이 “맨살과 맨몸으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을 시민권의 명명으로 다시 그려내야 할 책무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관련하여 이룸은 유흥종사자 대책 마련 요구 기자회견 조직의 불발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낙인과 혐오를 이유로 물밑에서만 움직이는 방법”의 한계에 대해서 다룹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적극적으로 국가의 책무를 요구하지 않은/못한 주저함은 여성들만의 것이 아니었는데요. 여성들을 고려한 지원책 설계나 권리 주장이 오히려 여성들의 낙인 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을 고려한 타당한 것이면서도, 사회가 소수자에게 요구하는 위축과 검열을 내재화한 수세적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최선의 대응일 수는 없다는 고민입니다. 두드려봐야 문인지 벽인지 알 수 있다고, 그래야 열지 부술지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두드리지 않은 너희 탓이라는 목소리가 우리의 살갗 안과 밖으로 진동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절박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이성애 가족/근로 능력 여부/직업 지위 중심의) 정주와 소속을 기준으로 성기게 짜놓은 한국 사회 안전망의 그물을 빠져나간 존재들은 비단 성매매 여성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저는 김윤영 님과 아델 님, 한낱 님의 토론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노동시장과 경제 구조를 공식과 비공식으로 나눠, 비공식 부문을 전근대적인 것, 불법, 지하로 간주해 사회적 개입의 대상에서 삭제하는 현실은 노점상과 성매매 여성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지되지 않는 ‘수면 아래의 존재’로 만듭니다. ‘숨죽여 살아가라’, ‘티내지 말아라’라는 커버링의 요구는 성소수자 청소년, 탈가정 청소년들에도 부과되어 삶의 자리와 의미를 찾지 못하는 부유하는 삶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분의 토론 내용은 현재 사회의 그물망 속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들이 어떻게 새로운 그물망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는지도 이야기 나눠주었다는 점에서 제게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성소수자와 탈가정 청소년을 위한 긴급 생계비 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모금한 ‘띵동’과 ‘청소년 자립팸 이상한나라’의 활동은 특히 참여자들에게 스스로 돈의 용처를 계획하고 짜는 자기결정 능력을 길러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소속집단으로부터 돌봄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감각”을 주었다는 점에서 경제적 지원이나 분배정의로만 포섭될 수 없는 코로나 시대, 사회 정의와 전환을 위한 대안적 모색으로 읽혔습니다.

잊혀지지 않았다는 감각, 물어보고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코멘트는 이룸이 시도했던 설문조사 반응에서도 나왔는데요. 새롭고도 촘촘한 그물망 짜기는 아마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설문조사 표본의 부족이나, 한계, 대표성 문제를 고민하는 세심함은 이룸의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연구한다는 수많은 연구자들, 사회과학자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가 아닐까 또한 생각해봤습니다. 제게는 AI, 비대면 기술 산업의 ‘동력’으로 코로나19 상황을 해석하고, 일자리와 고용 구조의 위기로만 경제 문제를 운위(云謂)하는 학계의 지배적인 담론의 문제점에 대해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감각하게 된 토론회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얕게 이해하기로, 시민(권) 개념은 국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정된 ‘국민’과는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시민들의 상호인정과 행위 속에 구성되는 시민다움의 문제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국가에 적실한 정책과 개입을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성매매 여성의 자리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다시 말해 성매매 이슈를 “이 시대의 여성문제(김주희 님의 박사논문 내용 중)”로 구성하려면 필요한 활동은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논쟁할 필요를 느꼈다는 점을 남기며 후기를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백영경 님은 토론문 마지막에서, 해외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위해 긴급 구호를 진행한 주체에는 정부, 공공기관 뿐 아니라 여성 단체나 여성들을 위한 재단도 있었는데, 한국에서 여성 단체들은 과연 성매매 여성들의 고통에 어떤 관심을 기울였는가 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착취냐 노동이냐는 공허한 입장론을 되풀이하기보다는 착취이면서 노동이기도 한 현실을 드러내는 “당사자의 구체적 경험과 목소리를 발굴하는 활동이 선행되어야”한다는 이룸의 평가와 공명하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불평등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자(일상 회복)는 이야기가 아닌, 누구의 어떤 일상인가를 되묻고 일상을 다시 짜는 사회 전환의 비전-예를 들어 대부업과 같은 빈곤산업 규제 및 해체-을 제시하는 이룸의 급진적인 목소리가 여성운동의 주류가 되는 날이 곧 젠더 주류화의 날이겠구나! 라는 상상을 펼쳐봅니다. 거대한 전환에는 거대한 상상력과 작은 시작의 날갯짓이 함께 필요한 법 아닐까요. 이룸이 시작한 날갯짓이 더 많은 파동을 낳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봐야겠다는 다짐을 남기며, 두서없는 후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