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대 당사자 모임 <피아노학원> ‘배움프로그램’ 소식

<피아노학원> 배움프로그램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

<불량언니 작업장> 이 올해부터 서울시 ‘사회적응프로그램’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 듣고 계시죠? 이 예산은 2017년 청량리 성매매집결지 재개발 이후, 2018-2019 2년간 이루어진 청량리 쪽방 여성들의 <불량언니 작업장> 활동을 모델로 하여, 성매매 일을 하고 있는 중장년 여성들의 상황을 반영한 복지 패러다임 만들기를 지향하는 정책적 개입의 일환으로 편성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시내 5개 기관에서 해당 예산을 받고 있습니다. 이 예산이 다른 성매매 자활 예산과 구별되는 점은 참여자들이 현재 성매매를 하고 있더라도 참여에 제한이 없다는 점, 탈성매매나 취업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반면 중복수급이 안된다는 점, 시간당 참여비가 8,590원으로 낮다는 점, 월세와 인건비 집행에 제약이 있어 상담소 활동가들이 이중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점, 당장 내년에라도 없어질 수 있을 만큼 그 합의에 있어 취약하다는 점 등은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우발적인 예산을 사용하여, 올 하반기 9월부터 2018년 만들어져 느슨하게 만나온 이룸의 2-30대 당사자 모임 <피아노학원> 과 연계한 배움프로그램도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회적응프로그램’ 이라는 명칭에서 사회가 무엇인지, 적응은 무엇인지, 프로그램은 무엇인지에 대한 비판적 고민을 장기적으로 안고 가되, 젠더화된 빈곤과 성매매 피해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뜻할 서울시 예산을 당장 한푼이라도 더 사용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작은 시공간을 만들자는 소박한 목적을 세웠습니다.

<피아노학원> 배움프로그램에서는 무엇을 하였나

시작은 ‘프로그램’ 의 형태로 구성이 가능하면서 ‘사회적응’ ‘배움’ 의 규범으로 묶일 수 있는 다소 부드러운 내용의, 그러면서도 이룸의 정치에 동의하며 성매매를 비롯한 사회적 배제와 트라우마 경험이 있는 여성이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실제적인 강의를 운영해주실 강사 선생님들을 네트워킹 하는 일이었습니다. 참여자 사전 욕구조사와 활동가 회의를 통해 몇가지 프로그램을 추렸고 알음알음 소개소개를 받아 개략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실제 진행하면서 당연히 일어날 긴장들을 예상하면서 조율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참여자들이 각자 바쁜 일상을 살면서 하루 짬을 내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체적, 심리적 건강상의 이유나 돈을 버는 일, 당면한 위기나 삶의 우선순위, 지리적 거리의 이유 등으로 아쉽게 참여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습니다. 변화하는 일상과 몸 속에서 당일에 참여를 취소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수급자라는 이유로 참여비 집행을 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도 있습니다. 사실 아예 상담소 문턱을 넘지 못한 분들은 더더욱 이 프로그램에 접근성이 제한될 것이고요. 이 공간에 누가 올 수 있고 올 수 없는지를 소상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 현장을 개괄할 수 있을것 같을 정도입니다. 우선 일주일에 하루, 각자도생 큰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게, 못오면 또 못오는데로 문을 꾸준히 열어둘 수 있게, 또 이룸에서도 실제 운영을 할 수 있는 규모로 시작을 했습니다.

현재 이룸 사무실은 상담과 사무공간, 불량언니 작업장 공간 만으로도 꽉 차 있기 때문에, 피아노학원 만을 위한 외부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운 좋게도 지금 이룸 사무실을 얻을때 중개해주신 부동산에서 단기월세임대계약이 가능한 오피스텔을 소개해주셔서 계약과 이사를 마쳤습니다. 작은 컵, 포크, 휴지,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스피커, 노트북 등을 장만하고 렌탈하여 필요한 집기들을 갖추었습니다.

1주차

첫 시간에는 <마음충전소 결> 유결 선생님이 MBTI formQ 워크샵을 해주셨습니다. 이룸의 오랜 회원이시자 활동가들의 소진을 예방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나온 분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섭외를 했습니다. 참여자분들 중에는 오래 내담자로 만나온 분도 계시고 아닌 분도 계셨고, 서로 아는 사이도 있고 아닌 사이도 있었는데, 성격유형 검사라는 도구를 빌려 나를 타인에게 설명하고  타인을 알 수 있는, 나와 타인이 만날때 도드라지는 지점을 내가 이해할수 있는,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차이의 단어들을 빌려 서로를 만나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딱 이 자리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장소나 관계들에 속해있고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힘받고 무엇에 스트레스를 받는지가 틈틈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각자의 울타리들이 겹치고 묶이면서 잠시잠깐 그려내는 모양들이 재미 있었습니다.

2주차

두번째 시간에는 역시 <마음충전소 결>의 싸리 선생님이 꽃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인간의 기쁨을 위해 인위적으로 재배된 절화를 다뤄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기도 했지만, 식물 다발들이 뿜어내는 색과 호흡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서로의 표정이 달라지며 감탄을 자아낸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참여자중 한분이 많이 힘들었던 날이어서 프로그램 중간중간 상담하고 조언하는 시간을 가졌고 꽃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불안해진 마음을 밀어붙이거나 사람들을 떠나버리기 보단 같이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고 쉬어가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누군가 오기 힘들땐 그를 기다리며 쉬는 시간을 좀 길게 가지기도 하고, 중간중간 나가 오고 계신지 통화를 하기도 하고, 아까와 비교해 몸상태가 어떤지 체크하기도 하는 과정 전체가 모임의 일부인듯 합니다. 식물을 손질하고, 자르고, 이름을 부르고, 원하는 모양으로 배열해 꽂고,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지, 어디에 둘것인지를 상상했습니다. 한분은 꽃바구니를 거리에 두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고 한분은 직업이 플로리스트여서 늘 꽃을 선물하기만 하는 친구가 꽃을 받아보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수업이 끝나고 실제 그렇게 하셨는데, 친구가 너무 기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셨습니다.

3-5주차

<마음챙김연구소> 주혜명 선생님이 진행해주셨습니다.  휘발하고 스며들며 몸을 진단하고 영향을 미치는 아로마 자체의 물질성이 자연스럽게 몸의 경험을 나누게 했고, 수면과 식이, 몸의 불편함, 감정상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에 머물고 끌어올리게 했습니다. 수업은 약국 같기도 했고, 심리상담소 같기도 했고, 때로는 한의원이, 마사지 샵이, 명상처소가, 울수 있고 투덜거릴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가볍게 시작해보자, 했던 수업이 참여자분들과 강사선생님의 열의로 본격 이론수업을 병행하게 되었고 한회기를 연장하여 자격증 시험도 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어요. 아로마 수업을 하면서 나눈 몸 경험에서 촉발해서 10월 한달은 몸일지 기록을 해보기도 하였고, 이후 10-12주차에 이어질 <바디이미지수업> 워크샵의 즉흥적인 기획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6-8주차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의 저자이기도 한, 여성주의 예술활동가 이충열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이 몸에 배이신 선생님이 같이 컵을 씻고 달걀을 삶아오시며 본인의 페미니즘 역사와 작업을 들려주시기도 하는 순간들이 편안했습니다. 어린시절에나 손에 쥐어보았던 4B 연필, 붓펜, 파스텔 등을 하얀 스케치북에 마찰시켜, 소리, 기억 등으로 일으킨 몸의 떨림을 시각적 결과물로 옮기는 일이 좋았습니다. 각자가 그려내는 선이 다르고, 택하는 색이 다르고, 지면을 어떻게 채워나가는지가 다름을 확인하는 일도 좋았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해가 짧아져 각자의 역사가 남긴 우울과 고통, 상실, 견뎌냄이 되살아나는 시기, 수업 시작에는 지치고 피곤하다가도 끝날 무렵에는 조금의 따뜻함을 챙겨갈 수 있었다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9주차

프로그램 앞뒤로 틈틈이 진행한 짧은 회의에서 한해의 끝을 앞두고 선물같은 무엇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뒤척이는 밤을 위로해줄만한 무엇을 남기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드림캐쳐를 떠올렸고, 역시 활동가 네트워크를 경유해 <버밀라마크라메공방>의 까밀라 선생님을 소개받아 초청했습니다. 드림캐쳐는 거미여신이 떠나며, 돌보던 아이들의 잠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가르쳐준 지식에서 탄생했다고 해요. 인디언 신화, 강제이주의 역사, 공예와 컬러테라피, 만다라의 치유적 효과를 엮어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무, 실, 비즈, 깃털로 만든 드림캐쳐는 언뜻 연꽃같기도, 우주같기도 했어요. 아로마와 드림캐쳐를 한데 모아 푹 잘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습니다.

<피아노학원> 배움프로그램에서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우선 올해는 <바디이미지수업> 워크샵, 수지애니어그램, 송년회까지 한 사이클을 종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14주차의 장기전이다보니 주차가 늘어날수록 참여도 줄어들었는데, 송년회에서는 많은 얼굴들이 모일 수 있었으면 한다는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계속 배움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회적응프로그램 예산이 사라질수 있고, 불량언니 작업장과 피아노학원을 병행한다는것이 쉬운일이 아닐지라  진행할수 있는 활동가가 없을수 있고, 참여자들의 상황도 변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이 시도들에서 여러가지를 건져올려, 언제 또 반복하며, 정책의 전제들을 변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적확한 내용으로 연결되고 만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쉬운 점은 사전욕구조사 내용중에 있었던 ‘당사자 아웃리치 컨텐츠 제작’ 을 하지 못한 점이에요. <피아노학원> 시작때부터 하고싶어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꾸준한 만남과 에너지가 담보되기 어려워 늘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느슨하지만 멈추지 않고 만나며, 언젠가 이룸의 정치 그리고 성매매와 연동하는 배제와 불안의 경험을 해석하고 목소리내는 당사자들의 시너지가 폭발하는 한 순간이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