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노년 성판매여성 인터뷰 : 내 목소리를 들어라 자료집 후기 by.서룡

얼마전 이룸의 회원이 되어주신 서룡님께서 노년성판매여성 인터뷰집 <내 목소리를 들어라>를 읽고 후기를 남겨주셨어요 서룡님이 써주신 후기를 공유합니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를 읽고 싶으신 분들은 이룸 홈페이지의 활동>발간물 카테고리에서 PDF 파일을 보실 수 있구요,

종이책을 받아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불량언니작업장의 각종 물품을 구매해주시면 함께 드리고 있어요~ 

 

노년성판매여성 인터뷰집 <내 목소리를 들어라> 후기

서룡

1.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는 비슷한 시공간에서 후원이나 기부를 핑계로 구걸하는 사람들, 위생과 거리가 먼 차림과 행색으로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술집에 들어와 떡이나 껌 같은 것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 때때로 그들을 마주할 때가 있는데 그들은 모두 노년의 삶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열정과 생기가 넘친다는 대학가에서 그러한 존재들은 굉장히 낯설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익숙해져서 하나의 풍경으로 기능한다. 지금 당장 강남역만 가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다. 늘 같은 장소에서 껌 파는 할머니, 다리 혹은 팔을 하나 잃은 채 구걸하는 노숙인. 바쁘고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로 그 사람들은 병풍처럼 존재한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현금이 있다면 선뜻 내기도 하지만 그 행위로 내 마음에 남는 불편함을 온전히 씻어내고자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왜냐면 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빈곤이라는 삶의 굴레에서 살아가야 하고. 저 장소에서 머무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2.
투명인간과 같은 저들의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떨까 고민해봤다. 순전히 내 경험에 의한 추측이지만 단순히 사람들이 그 사람들의 존재를 이질적으로만 느끼기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감정이 있을 것 같다. 저들에 대한 동정심, 불편함 또는 부끄러움. 그래서 그들을 빨리 지나쳤으면 하는 생각도 들 것이고.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자료집인 “내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성을 파는 노년 여성의 구술 자료집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닿았다. 나 스스로가 그들을 마주했을 때 느낀 불편함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생각하자면 그들의 존재, 그들이 삶을 사는 모습이 일순간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한 한국 사회에서 노년의 빈곤은 미래의 내가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 실존의 문제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겨우내 피했던 사회의 빈곤을 노골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마주한 탓이기도 하다. 또 저들의 생존의 절박함에 비하면 지금 내 실존과 고민들은 너무 사치처럼 느껴지고, 내 불평과 불만이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나보다 더욱 좋지 않은 조건에서 사는 존재를 보면 발화 혹은 사유의 자격이 박탈되는 느낌이랄까. 많은 이들이 저 존재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봤다. 하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일순간 죄의식이나 불편함은 느끼지만 이내 휘발시킬 것 같다. 왜냐면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해결 되지 않고 본인 스스로만 아플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도 직관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3.
한국의 노년빈곤층이 수백만이라는 수치를 봤고, 우리는 그 중의 극히 일부만을 일상 속에서 직접적으로 마주한다. 아마 대부분은 88올림픽 때 미관을 근거로 철거된 판자촌처럼 도시 사람들의 죄의식을 건드리지 않을 정도의 시야로 사라질 것이다. 산속으로, 높은 언덕으로, 외진 곳으로 사라졌을 것이고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분명히 산다. 성을 파는 노년 여성이든, 낙후된 환경에서 홀로 사는 노년 빈곤층이든 분명 생활하고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그들의 흔적과 목소리와 삶은 지워지고 사회에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부정된다. 근래 선거철인지 온갖 구호가 난무한다. 국가가 어쩌니 정당이 어쩌니. 이런 사람들의 삶을 지워버린 혹은 모른척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자격이 있을까 싶다. 뭐 북반구의 복지국가 이야기하면서 그 구성원의 윤택하고, 행복한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비슷한 생각이 든다. 주변부 민중의 수탈. 당장 가깝게 존재하는 중국의 노동자들이나 인도네시아의 아동 노동.. 사람들이 받는 착취와 빈곤이라는 제국주의 문제에 대해서 싹 입 닫는 사람들 느낌이랄까

4.
얼마 전 한 네이트 기사를 봤다. 자신의 성을 파는 사람들, 사회적 시선으로는 “몸을 파는 여성”들이 미투 운동의 흐름에도 차마 자신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발화하지 못한다고 토로하는 기사였다.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댓글을 찾아봤다. 베스트 댓글 모두 “몸 파는 창년들이 어디서 말이 많냐”는 그 입을 닥치라는 댓글이었다. 그걸 보면서 이 사회에서는 인간이 그런 취급 받아도 되는가 싶었다. 상품으로서 팔린다면 누군가 성폭력을 당하든, 팔이 잘리든, 어떤 모욕을 당하든. 그런데 당장 자료만 봐도 한국의 성산업 규모는 굉장히 크고 그 산업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근데 대부분 단지 거기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로 수 많은 존재들을 없는 존재로 취급하거나 그저 혐오한다. 이러한 현실의 괴리가 뭘까 고민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본인들이 보기 싫은 불편한 것에 대해서 치열하게 사유하기보다는 그냥 쉽게 표백하고, 지워버린다고 느꼈다. 다들 꼴보기 싫은 것들 싹 다 치워버리고,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들로 가득한 걸까 왜. 여하튼 자료집 읽으면서 그 기사에 무수하게 달린 댓글들과 공감들이 떠올라서 막막하고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5.
자료집의 성을 파는 노년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남 탓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에서 그렇지만 일상적인 가정 폭력과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 과정에서 직업 상실 및 공동체 해체, 사회 안전망의 부재,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존재와 같은 요인들이 너무 많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 스스로 다 제 팔자고, 제 탓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 분들은 분명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과 판단대로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치밀하게 계산해서 움직이고, 때로는 누굴 이용하기도 했다. 그들의 삶의 주체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복잡하게 얽힌 이 정치적인 계기들인 사회적 지원과 제도, 시스템의 부재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분들은 전혀 의문 갖지 않으셨지만 그분들이 표현하신 삶속에 이미 분명 존재했다. 또 그분들에게 성매매라는 업종은 억압과 폭력으로 얼룩진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지옥과 같은 사회에서 그 업종으로 인해서 먹고 살 수 있었고, 집결지라는 공간은 마찬가지로 폭력과 억압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애환과 슬픔과 기쁨 그리고 일상과 재생산의 공간이라는 참 모순적인 곳이었다. 이 모순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 없고 이걸 단선적으로 이해한다면 그 이해에서 근거한 해결은 또 다른 폭력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6.
가정이라는 공간도 그렇고, 내가 몸담고 있는 군대라는 공간도 그렇다. 참 양가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폭력과 억압이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대로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존재해서 사람을 아주 당황스럽고, 난감하게 만든다. 또 의식의 흐름대로라서 글이 뒤죽박죽이지만 하고 싶었던 말 중에 하나는 이런 생각들과 고민들의 귀결은 결국 사회적 책임, 그리고 사회적 해결이라는 것이다. 노년, 빈곤, 여성, 삶, 폭력. 이런 키워드는 결코 개인적 차원의 해결로 이뤄질 수 없다. 공부가 부족해서 딱 딱 떨어지게 구체적인 답변은 못하지만 지금 이런 고민들을 놓지 않을 거다. 극복할건 극복하고 이어갈 건 이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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