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세미나 후기 2

19. 05. 22 열한번째 세미나 후기

_안홍

 

“미안해요. 전화를 안받아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내담자들이 잠수를 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참 뒤에 다시 연락이 되면 사과를 하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여러가지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고, 미안해하며 서먹해하기도 했다. 11번 째 세미나를 하면서 생활의 변화를 꿈꿔보던 성매매 여성들과의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대체 왜 그만두지 못하는 거지? 라고 여성들을 비난하는 암묵적인 사회의 시선과 목소리는 성매매를 벗어난 삶을 꿈꾸며 시행착오를 겪는 여성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성매매를 경험하고 있거나 아직 성매매 경험의 여파로 고통을 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현재 성매매 경험 당사자이자 생존자인 반성매매 운동 활동가 레이첼 모랜의 모습은 극명하게 달라 보일 수도 있겠다. 7년 간의 성매매 경험이 있는 레이첼 모랜은 현재 여러 반성매매 단체 및 활동가, 학자들과 연대하며 반성매매 운동을 하고 있으며, 생존자 연대 단체 Space International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저자의 회고록 Paid for(페이드 포)는 대표적인 성매매 경험 당사자의 회고록으로 소개되며, 여러 학자 및 페미니스트들이 추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유년기와 성매매 유입 배경, 2부는 성매매 경험, 3부는 탈성매매 과정과 그 후의 경험을 서술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저자가 성매매를 어떻게 떠났는지 그 동기와 과정, 이후의 경험에 대해 다룬 22장, 23장을 살펴보았다. 레이첼은 십대일 때 성매매에 유입되어 7년 간 성매매를 경험했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탈성매매 당시 어린 아이가 있었고, 헤로인 중독과 진단받지 않은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탈성매매 과정과 그 후에 겪게되는 휴우증을 다루는 이 장들을 보며 이루머들과 나는 지원했던 여성들이 떠올라 먹먹해졌다. 앞 장에서 저자가 성매매에 유입되는 요인들이 ‘얽히고설킨 거미줄’ 같다고 비유했듯이 탈성매매의 동기와 그 과정, 그로 인한 심리적, 신체적, 경제적 여파들 또한 한 가지로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저자가 탈성매매하였고 반성매매 활동가로 활발히 활동하기에 이 회고록이 표면적으로 하나의 성공 사례처럼 인식이 될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놓치지 말아야할 점은 이 책의 3부에서 성매매가 결부되지 않은 다른 삶을 꿈꾸는 그리고 그 삶을 실행하려는 여성이 그 여정 속에서 수없이 미끄러지는 과정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다. 탈성매매했다고 탈성매매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탈성매매 후 정규 교육을 받고 일하며 삶을 꾸려오던 10년이 되는 시간까지 내면 깊숙이 느껴지던 슬픔과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 그제서야 상담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크없이 찾아오는 성매매의 기억들로 계속해서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밀하게 관찰한 심리상태를 독자와 공유한다. 탈성매매에 초점이 맞춰진 반성매매 정책에서 안하면 되는 의지의 문제로 탈성매매를 단층적으로 해석할 때 불쑥불쑥 찾아오는 학대된 몸에 대한 혐오, 사회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 탈성매매해도 탈성매매가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질문들이 대답될 수 있을까? 사회가 정의하는 ‘완벽한 피해자’란 무엇인지, 성매매 내의 학대는 왜 침묵되어지는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성매매를 통해 어떻게 억압되는지를 레이첼 모랜은 이 책을 통해 상세히 밝히며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구매자 처벌을 주장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생각 뿐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지닌 다양한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 또한 공유하며 성매매 경험도, 경험하는 당사자도 각기 다른 맥락에 놓여있으며 동일한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면을 용기있게 드러낸다. 세미나를 하면 할수록 활동가나 연구자들 뿐 아니라 성매매 당사자 여성들이 직접 이 책을 접하고 다층적 맥락에 놓인 한국의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담론의 물꼬가 터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페이드 포의 텍스트는 그 담론의 시작점이기에 영미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혹여나 저자의 의도가 곡해되지 않도록 저자와의 상의하에 원 텍스트에 충실한 번역을 하고 있다. 6월 5일을 마지막으로 세미나를 마쳤다. 번역과 세미나 이후 이루머들과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고, 페이드 포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담론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맹렬하게 하게될테다. 왜일까라고 질문하며, “망설이는 용기”를 내는 이룸과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어서 감사하고 든든하다. 함께 할 작업들이 더욱더 기대된다.

 

콜라주 이미지 ⓒ 안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