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회원 소모임 :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이룸의 다양한 도전기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이룸의 다양한 도전기>

 

 

0. 들어가며

성매매는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면서도, 음지의 영역처럼 치부된다. 성매매 피해여성을 지원하고 반성매매 운동을 하고 싶은 이룸은,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고 함께 이루고 싶었다. 그 열망을 10년 동안 어떻게, 무엇을 시도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사람들을 직접 만나자! 거리캠페인

 

 

 

표를 보자. 세상에! 한 달에 5번의 캠페인을 진행한 적도 있다. 새삼스럽지만, 도대체 왜 저렇게 캠페인을 열심히 했던 것인가? 10년 동안의 것을 2년간 몰아서 했던 것일까? 여름이든 겨울이든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래서 단체로 일사병을 얻어 돌아오기도 했고, 얼어 죽기 딱 일보직전에 돌아올 때도 있었다. 또 캠페인 중에 비, , 폭풍우가 몰아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오히려 하늘이 우리에게 쉼을 주는 구나~라며 감동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서울 시내 곳곳을 책상까지 손수 들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진행했던 캠페인. 그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1-1. 대학을 순회한 이유

서울안의 대학교는 대부분 한 번 이상 다닌 것 같다. 캠페인을 대학교 한 것은 동아리, 총여학생회, 모임 등과 함께 진행함으로써 이룸의 지지풀 형성, 인맥 형성, 자원 활동가 모집 등의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당시는 이룸에서 인건비를 못받던 시절(2004년부터 2005년까지)이라 교내 학생식당의 저렴한 밥값 때문이 아니냐, 어느 대학이 가장 맛있는가를 가려 보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농담도 하곤 했다.

 

1-2. 여관촌 집결지 신림역?

신림역은 여관발이 성매매로 유명하여 그 주변에만 모텔이 50개 남짓 몰려 있었다. 성구매를 하지 말자는 캠페인이므로 여관촌 주변에서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그래서 신림역을 선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사실 캠페인을 신림역에서 자주 했던 이유는, 매주 하다 보니 슬슬 지쳐가던 활동가들이 덜 덥고 덜 추운 곳, 변화무쌍한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 지하철 역사 안이라는 생각을 해냈고(정말, 캠페인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당시 이룸 사무실이 신림역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1-3. 캠페인 때 받은 서명은 효과가 있었을까?

 

캠페인 때 지나는 사람들에게 <나부터 성매매 안하기>에 동의하는 서명을 받았다. 캠페인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서명 받은 명단을 입력하고, 메일링에 추가하여 이룸 소식지나 성매매 관련한 소식을 전했다. 그때 서명했던 사람들은 서명을 함으로써, 우리의 메일을 받음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았을까? 10년이 지난 지금, 궁금하다.

 

1-4. 초창기 매주 1(를 지향하려던) 캠페인 소회

2004년 시작하여 매주 한 번 씩 하려 했던 거리캠페인은 20051247회가 마지막이 되었다. 그때는 한 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 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고, 어떤 때는 하기 싫어서 몸부림을 쳤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니 가장 치열하고 꾸준하게 진행한 사업이다. 딱히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해내는 것만으로도, 하는 우리들이 신이 나서, 한 회 한 회씩 마치고 나면 마쳤다는 그 뿌듯함으로, 그렇게 이룸을 만들어 갔던 우리들을 지켜내지 않았을까 기억해본다.

 

 1-5. 2006년부터 현재까지의 캠페인

 

2006년부터 이룸 캠페인은 시기적, 사안적 주제에 따라 비주기적으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매해 세계 38여성대회에 참석하여 성매매 관련한 이슈를 홍보하고, 추석 귀향길 캠페인, 성매매 방지법 시행일인 923일에 맞춰서 하기도 했다. 법원에서 성매매 관련한 부당한 판결에 대해 항의하는 캠페인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달빛시위에 참가하여 성매매 여성의 안전한 귀갓길을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함께 하기도 했다.

 

이 모든 캠페인의 공통점은 바로 활동가들이 신나는 방식을 주로 택한다는 점. 몇 가지만 이야기 해보자. 이름하야 횡단보도 캠페인서울의 중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옆에 피켓 들고 서 있다가 초록 신호등 켜지면 반대편으로 갔다가, 또 반대편에 서 있다가 다시 장군님 옆으로 돌아오기를 반복. 집회신고 내야하는 거 아니냐며 사복경찰들도 졸졸 ?아 다니며 함께 했다는 후문이 있다.

 

추석 귀향길 캠페인. 2009년에는 행동요원의 복장을 차려입고 서울역에 나갔다. “미션파서블이룸 활동가 전원 검은색 옷과 선글라스를 차려입고 귀향길 대중에게, 성구매 하지 않는 추석명절의 임무를 수행하시오~라는 전단지와 사탕을 나눠준 캠페인 등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또, 어떤 방식으로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이룸의 캠페인, 기대해 보실래요?

 

2. 성매매가 아닌 일상을 나누기 위한 회원소모임

사람들과 성매매라는 주제 말고도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전! 성매매와 상관없는 회원소모임을 꾸렸다.

 

 

 

2-1. 글쓰기 모임 <글빨>

 

취지

글 쓰는 거 좋아하는 분아니그보다 사람 좋아하시는 분각자가 써 온 글 가지고 서로 지지격려하는 자리로 글의 형식이나 제한 없고또 안 써와도 모임이 좋은 사람들 모이기그저 다양한 삶의 경험과 소소한 일상고민들을 나누고 싶던 모임

진행

매월 둘째넷째 주 목()요일 7사무실

과정

4번의 모임 진행

 

후기

첫 번째 모임 후기

두 번째 모임 후기

세 번째 모임 후기

 


당시 담당자는
치유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를 소모임에서 풀려고 한다며 기획단계에서 짤리고, 두루뭉술 누구나 오세요~’로 홍보시작. 오호라~. 이 모임은 시작 전부터 전화나 메일로 문의가 있었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신청자가 3. 이게 어디냐 싶은 심정으로 이룸 활동가를 포함하여 5명으로 일단 시작했다.

 

 

반려동물에 관한 글을 써와서 함께 울기도 하고, 고부간의 갈등을 작성해 온 글을 보며 지지하기도 했으며, 택시운전을 하면서 느꼈던 자신의 오만함에 대한 글 등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에 대해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자리가 되었다. 문학가를 꿈꾸는 참여자는 자신의 첫 소설을 모임에 기증하는 감동도 있었다. 그렇게 글도 쌓이고, 온라인 카페도 개설하여 온라인 참여자도 생겼지만, 참여자들이 더 이상 나올 수 없게 되면서 4개월에 걸친 4회의 모임으로 <글빨>은 종료되었다.

 

2-2. 여행소모임 <날개달린 운동화>

 

취지

상업적인 여행을 배제하고적당히 걸으며 느낄 수 있는 곳을 다니기.

진행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과정

첫 모임

도심 속 숨은 비밀의 화원이라 불리는공기가 좋아서 도룡뇽버들치가 아직도 산다는 부암동 백사실 계곡과 그 근처.

첫모임 후기 보기

두 번째 모임

4대강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시행하고 있는 4대강 죽이기 정책그 실상을 직접 가서 보자는 취지여주 환경운동연합의 4대강걷기 프로그램 참여 후 여주생활세계도자관 방문예정

두 번째 모임 공지사항 보러가기

 


첫 모임은 서울 도심의 중심이라는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백사실 계곡에 갔다
. 근처 미술관 전시도 보고, 서울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 전망 좋은 카페도 들러만 보았다(비싸서 먹을 수는 없고). 바쁜 일상을 벗어나 한적하게 그저 슬슬 걸어만 다녀도 좋을 수 있음을 느꼈으나 참여자가 많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두 번째 모임은 담당자를 비롯한 이룸 활동가들 전원이 준비를 했다. 당시 4대강 삽질을 

한 참 시작하던 중이었으므로, 4대강 지역 중 한 곳을 가자! 당시에 진보적인 단체라고 하면 다들 한번쯤은 다녀온다는 4대강 지역 순회를 이룸도 한 번 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하루 만에 돌아올 수 있는 남한강으로 결정하고, 그 지역 환경단체와 일정과 실무를 조율했었다. 혹여나 경찰들과 대치하는 불미스런 사고까지 걱정하며 모임 공지를 올리고 신청자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신청자가 없었다. 그래서 계획철회. ~ 왜 이러는 걸까요? 그렇게 여행모임은 두 번의 시도로 문 닫았다.

 

2-3. 회원소모임 소회

이룸에서 첫 시도인 소모임 운영은 많은 준비과정과 열정이 있었지만 참여자들의 참여가 저조하거나 없게 되자 종결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이룸 활동가 내에서도 소모임에 대한 충분한 합의나 지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룸 안의 대부분의 사업방식이 그러했듯, 사업의 추진은 담당자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담당 활동가들도 그것을 끌고 가기에는 힘이 없었던 것같다. 그래도 조금 더 추진해 봤어야 했을까? 아니면, 사람들과 성매매의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로 이룸에서 만나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까. 정답은 다시 도전하는 사람에게 있을 것 같다.

 

3. 소통을 위한 다양한 도전들을 정리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려 했던 방식으로 보자면, 초반에는 거리캠페인이나 회원소모임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만났다. 최근 몇 년은 인터넷을 활용하거나 스마트폰의 활성화, SNS 시대답게 그 방식도 변한 듯하다. 동영상을 제작하여 홍보하고 있고, 트위터나 블로그를 운영, 웹진을 더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매체나 방식의 변화는 당연할테고, 이룸 활동가들 역시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아니면 활동가들이 재미있어 하는 방식을 추구해 온 결과다.

 

거리에서 사람을 직접 만나는 방법 외엔 별다른 방식이 없던 때는 지금의 트위터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떤 방식을 주되게 활용하여 사람들과 소통하였다고 서술하게 될까? 그나저나, 10년 뒤에도 이룸이 있을라나? 없을라나? 오래 살아 봅시다~

 

 

  

이룸10년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