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 및 행진 <동네북, 두드릴수록 크게 울리는>행진 발언문

 

이룸은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진행된 제8회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 및 행진 <동네북, 두드릴수록 크게 울리는>에 참여했습니다.

나나 활동가는 아는언니들 합창단으로서 축하공연을 하기도 했답니다.

노랑조아 활동가의 행진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는 노랑조아입니다.

저는 군중 속에 섞여있는 걸 좋아합니다. 별로 튀지 않고 특이하지도 않아서 있으나 마나한 사람, 드라마에서 별 대사 없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행인 1 같은 존재감, 눈에 띄지 않고 어느 장소에서나 조용히 잘 묻어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그만큼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성에 잘 들어맞아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남들과 다른, 특이한, 별난 사람을 가만히 보아 넘기지 못하니까요. 모두가 비슷한 톤의 옷을 입어야 하고, 모두가 비슷한 피부색깔을 가져야 하고, 일정한 키와 몸무게여야 하며,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하고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하는데 근데 이제 남성성을 과시하는 허세가 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계집애 같다는 말을 욕으로 듣는 사회, 군대에 다녀와야 진짜 남자인데 일정한 신체적 기준을 통과해야만 입대할 수 있고, 군 내에서도 성적 욕구가 활발한 이성애자임을 자꾸만 드러내야 안전한 존재라고 확인 받는 사회. 지독한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에 맞춰서 연기해야 눈총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지금의 한국사회입니다.

카페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어도, 규범적인 젠더표현에서 어긋나는 본인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차별적인 시선을 익숙하게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 다양성이니 개성이니 말들은 많이 하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히 하지 않으면 이상한 이물질 처럼 여겨지는 잔인한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잔인한 사회, 잔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우리 곁에 있었던 트랜스젠더를 추모하고, 트랜스젠더의 성원권과 인권,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 그대로 존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양보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해 싸우고자 모였습니다.

저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지난 10년 동안 이태원 유흥업소 골목으로 아웃리치를 나가며 반잔바와 트랜스젠더바의 여성들을 만나왔습니다. 시스젠더 여성이 그렇듯, 트랜스젠더의 삶의 경로에서 유흥업소는 뭐 엄청난 결심을 해야만 들어오게 되는 곳은 아닙니다. 그냥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분법적 젠더 표현에 꼭 맞는 사람만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아주 많이 침해되고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트랜스젠더 여성은 고등학교 때 이미 아, 나는 여기서 일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업소에서 일하며 만난 선후배 동료들에게서 젠더표현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다울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여성은 다른 곳에서 남자인 척 일하지 않고 내 모습으로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또 이태원은 나를 별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 안전한 곳, 동네 슈퍼와 약국에도 정겹게 다녀올 수 있는 내 동네라고 느낀다는 말도 했습니다.

문제는 유흥업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춰야 하는 과도한 여성성에 있습니다. 본인이 좀 이쁘장하다고 생각했더라도 현장의 분위기는 달라서, 젠더 여성들은 돈을 모아 성전환 수술이 아니라 성형수술을 먼저 고려하게 됩니다. 유흥업소가 원하는 몸은 특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더 예쁘고, 더 몸매가 좋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몸을 가꾸고 꾸미는 데에 비용이 들어가고, 접대에 따르는 감정노동 아가씨 노동을 수행하느라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매자에 의해 물리적 폭력이나 성폭력을 겪어도, 업소 여성들은 이른바 법 바깥의 존재이기 때문에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폭력피해를 신고했다가 오히려 성매매 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대부분의 업소여성, 성매매 여성이 겪는 곤경이기 때문입니다. 법적 처벌과 음란한 여성이라는 낙인으로 인한 고립, 이것은 성매매산업이 여성들을 끌어들이고 이윤을 창출해내 가져가는 작동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룸은 성매매여성 불처벌을 요구합니다. 인신매매로 어쩔 수 없이 일한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소위 자발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처벌 받지 않아야 합니다. 유흥업소를 포함한 성매매산업이 번성하는 저변에는 한 성이 다른 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착취할 수 있다는 가부장적인 남성문화와 경제적 불평등에 의한 억압, 무엇이든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공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매매산업이 지금처럼 번성한 것에는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원인과 책임이 있으며, 이룸은 이 성매매 산업을 타격해나가는 걸음으로서 성매매 여성 불처벌을 요구합니다.

저는 이 성매매 여성 불처벌을 여러분과 함께 이루어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종래에는, 성매매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에 의한 착취와 젠더 섹슈얼리티 권력관계로 인한 억압 없이 모두가 자기 자신 그대로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 어떤 성별이든, 특이하다 별나다 이상하다 차별 받지 않고, 다양한 모습 그대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싶은 만큼 하며 살아가도 지루하고 조용하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 날까지 함께 싸워갑시다. 서로를 지키고 살리고,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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