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이태원>을 함께 보았습니다 & 청량리 집결지 반상회 사진전

지난 2017년 12월 20일에 이룸과 강유가람 감독이 함께 주최한 영화 ‘이태원’ 상영회가 이룸의 이웃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있었습니다.

또한 이날은 이태원과 청량리에서 찍은 사진들의 전시도 있었는데요, 영화 시작 전에 마련된 전시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감독x활동가와의 대화시간도 30분을 훌쩍 넘겼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진지한 눈빛과 질문으로 하나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상영을 먼저 제안해주신 강유가람 감독님께 깊이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과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룸 활동가의 영화 이태원을 보고 드는 생각과 고민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영화 이태원을 보고.

 

작성 : 성지윤(기용)

 

청량리588과 후커힐은

나키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 70대시라는 얘길 들었고 나는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 혹시?…라고 물었다. 그분은 아니었고, 멀리서 걸어오는 나키언니를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보면서도 그전에 다른 분께 아는척 한게 괜히 머쓱해졌다. 난 너무 전형적인 70대 노인을 생각한거다. 영화에도 나오는, 공들여 손질한 앞머리와 쏟아질 것같이 빽빽한 속눈썹, 열손가락 파란 매니큐어까지. 청량리 언니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키 언니가 워낙에 특별한 사람인 것도 있지만, 괜히 ‘역시 이태원인가!’ 그랬다. 칙칙한 청량리와는 다르게 힙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이룸에서 처음 이태원 아웃리치를 가던 날도 조금은 그랬던 것 같다. 후커힐을 나와서 화려한 불빛을 보자 괜히 기분이 흥청망청해지는 것이 왠지 술을 마셔야할 것만 같은.

 

다양한 성매매 업종에 따른 여성들 사이에 선긋기, 혹은 위계가 존재한다. 룸살롱 여성들은 집결지 여성들에 대해 ‘거긴 진짜 막장’이라거나 반대로 집결지 여성들은 룸살롱 여성들에게 ‘나는 깔끔하게 연애만 하지 지저분하게 술 먹는 거 안 한다’라는 식이다. 이것의 이태원 버전이 ‘나는 드런 한국 놈들 상대 안 한다’ ‘미국은 한번 가봐야한다’일테다.

 

청량리588은 성매매를하는 것이 확실한 곳이고 이태원은 노골적으로 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이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어떤 분위기가 된다. 이태원이 덜 성매매적인 곳이라는 듯, 청량리의 청소년통행금지 푯말은 24시간인데 이태원의 통행금지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다. 이태원에 처음에 콘돔을 갖고 들어갔을 때, 마치 콘돔을 보며 키득거리는 중학생처럼 ‘어머 콘돔이야~’ 라며 웃으시는 통에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걸 우리에게 주냐는 거다.

 

청량리든 이태원이든 집결지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밖을 나가지 않고 모든 일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말 말 그대로 그 곳에 일하는 공간인 가게에서 숙식까지 모두 해결하거나 매우 가까운 곳에 주거를 두고 있다. 사는 동네와 직장이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것은 분명 특별한 상황이다. 집에서 자고 나와서 일하는 내내 가게에 있다가 지척거리의 집으로 돌아가고. 멀리 나가는 일 없이 안에서만 맴맴 도는 까닭에 여성들에게 이 동네가 주는 의미가 훨씬 더 특별해진다. ‘가정 동네’가 아닌, 일반적이지 않은 동네 안에서 살면서 ‘이태원이라면 택시기사도 드러운 소리만 하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척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입구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떤 착취를 견뎌야하는 곳이다. 이룸이 이태원 아웃리치를 3년째 나가면서 개별적으로 상담하는 여성이 있어도 가서도 여성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다. 사장의 눈치와 다른 아가씨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처음 상담이 연결될 때 절대 이태원 와서도 아는 척 하지 말 것을 몇 번이나 당부한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연결된 여성들의 많은 수가 정신과 약을 복용중이다. 그녀들의 일과 이 높은 유병률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부동산을 가진 자와 아닌 자

영화를 보고 나서 참 부적절하게도 ‘역시 한국에서는 집을 사야하나..’라는 생각을 한건 나뿐이었나. 나는 세 여성들의 공통점보다는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삼숙은 ‘웨이츄레스’가 아닌 사장님이고, ‘내가 양갈보가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해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다. 그리고 다만 외로울 뿐, 가게를 사두었던 덕에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머지 두 여성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인터뷰의 배경이 되는 그녀들이 살고 있는 집은 각자의 경제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 정부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기지촌을 적극적으로 관리·운영한 바 있다. 미군들에게 ‘깨끗한’ 여성들을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성병검진을 실시했고 여성들에게는 당신들이 외화벌이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에 대해 나키언니는 ‘엉덩이 국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 또한 그 동안 당신이 이 나라에 외화를 벌어다 준 공로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받는 복지 지원에 대해서도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다양한 이방인들이 드나드는, 왠지 좀 무섭고 위험한 우범지역이던 이태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그 다양성 때문에 매력적인 곳이 되었고 그 매력은 예술가들, 트렌디한 가게들을 끌어들였다. ‘나키’가 낮게 읊조렸듯 이미 이태원은 땅이 꺼질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리고 영화 속 젊은 예술가들은 이 동네가 더 유명해지질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영화’는 재개발 안 된다는 소문이 돈다고, 재개발되면 갈데없는 못 사는 사람은 어딜 가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건 그녀의 바람이고 당위일 뿐 개발은 사람의 사정을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할 뿐이다.

 

청량리도 그랬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헐린다는 소문만 있고 그대로 유지되어 왔지만 어느 순간 정말로 다 헐려지는 때가 왔다. 업주들은 보상금의 액수를 두고 서로 싸우고 등을 돌렸고 여성들은 오늘 당장이라도 나가라면 나가야되는 상황을 하루하루 버텼다. 아마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의 문제일 뿐 갈 곳도 없는데 밀려나야하는 때가 올 것이다.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 외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그 고민의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왜인지 ‘영화’님은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룸에서 노년 성매매 인터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순자 언니는 인터뷰가 끝나고 ‘그거 들춰보면 쓸만한 게 없을거다’라면서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다 하셨다. 언니의 낮은 한탄에 내가 좋은 대답을 찾지 못했던 그 순간이, 나에게 너무나 인상적이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으로 남아있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혹시 ‘영화’님도 순자언니와 비슷한 마음은 아니었을까. 이태원에 사는 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참 놀랐던 것이 모자이크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참 소중한 이 영화를 탄생하게 해준, 영화에 출연할 용기를 내준 여성 세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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