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성명서] 코로나19 지원정책에서 배제된 존재에 대한 적극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유흥시설 집합금지명령 상황에 부쳐

[연대성명서]

코로나19 지원정책에서 배제된 존재에 대한 적극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유흥시설 집합금지명령 상황에 부쳐

 

코로나19 상황은 사회 곳곳의 소수자와 약자가 얼마나 기존 사회제도모델로부터 배제되어 왔고, 코로나19 대응 정책에서도 누락되기 쉬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구주 중심의 재난지원금 분배는 이성애가족제도의 취약한 경계 바깥의 존재들을 고려하지 못했다. 소득과 재산상황에 대한 기계적 기준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증명해야 하는 ‘가난’은 가장 절실하게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양성해 온 비정규직, 계약직,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현장이야말로 코로나19로 인해 절박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제도는 생활자금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에 불과하다. 인터넷 사용이 어렵고 정보에 접근할 경로로부터 소외된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산발적으로 발표하는 지원정책을 파악하기도, 신청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선별적 사회복지제도가 조장한 드넓은 사각지대는 코로나19 지원정책에서도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현실이다.

빈곤과 복지,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던 유흥종사자들 역시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원받아 마땅한 시민, 국민의 자리 바깥에 놓여있다. 지난 5월 9일 서울시는 유흥시설 집합금지명령을 발동했다. 서울시에 이어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12개 시도가 동일한 조치를 취했고 그 기한은 제각기 다르다. 이는 불특정 다수가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하기 쉬운 유흥시설의 환경이 코로나19의 집단감염을 가속화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유흥시설은 클럽, 콜라텍 및 룸살롱 등의 유흥업소를 포함하고 각 업장마다 운영방식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룸살롱 등의 유흥주점은 식품위생법 시행령에 의거, 법적으로 “부녀자”인 유흥종사자를 둘 수 있는 업소이다.(제22조 1항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

대체로 유흥시설은 ‘사치성’ 공간으로 일컬어지지만 유흥주점의 유흥종사자는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유흥주점은 돈을 벌기 위해 여성을 적극적으로 상품화하고, 남성 손님들은 여성에 대한 침해와 희롱을 유흥거리로 일삼는다. 남성에 의한 성적 침해가 상품으로 탈바꿈하는 공간이다. 업주들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을 조장해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술값을 합리화한다. 이처럼 유흥주점의 시스템 상 유흥종사자는 유흥산업과 대부업의 카르텔 안에서 필요에 따라 상품처럼 소모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쉽게 돈을 버는’ ‘문란한’ ‘사치스러운’ 여성이라는 낙인을 부착하고 서슴없이 유흥종사자를 차별하거나 누락시킨다.

유흥종사자를 향한 사회적 낙인은 유흥종사자의 현실이 아닌 가부장적 성녀-창녀 이분법에 기반을 둔 가부장적 혐오에 불과하다. 유흥종사자의 다수는 경제적 이유로 유흥산업에 인입된다. 한국 사회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고리대금을 기반으로 한 빚, 전사회의 유흥종사자에 대한 낙인에 기댄 협박과 추심, 남성손님들에 의한 성적 폭력과 침해를 경험하면서 얻게 된 정서적·신체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유흥종사자의 빈곤은 심화된다. 강남 지역의 유흥업소 및 성형외과와 결탁하여 이자와 알선료만으로 19억 원의 돈을 챙긴 성형대출 사건은 강남을 중심으로 한 유흥산업-성형산업-대부업이 유흥종사자를 부품처럼 활용해 이윤을 착복한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코로나19로 취업이 어렵고 유흥시설 운영이 중단된 지금, 빈곤과 복지의 대상으로 유흥종사자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다시금 유흥종사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활용하는 대부업자들만 활개를 칠 것이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낙인의 이중고 속에서 지금 다수의 유흥종사자들은 연이자율만 60%를 초과하는 불법고리대금업자들의 추심과 협박을 마주해야 한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유흥종사자들은 치료법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감염사실이 확인되면 자신의 개인정보가 낱낱이 언론에 공개될까 두려운 , 일상을 중단해야 하는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안전한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오늘 일하지 않으면 당장 생활이 불가능하고, 이자를 상환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알리겠다는 추심이 빈번하다. 유흥종사자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해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은 유급으로 휴가를 쓸 수 있고 고용이 보장되어 있으며 안정적인 경제적 환경에 놓인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정책과 코로나19 검진 및 치료과정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음을 고려해야 적절한 지원과 효과적인 예방이 가능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소수자를 향한 낙인, 혐오 행위를 중단해야 적절한 진단,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성매매 여성들은 안전하게 진료받고 지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없음을 토로했다. 성매매 산업에 있었다는 사실이 가족과 친구, 주변 지역사회에 알려질 경우 쏟아질 낙인과 혐오의 힘은 자신의 생존을 포기할 정도로 강력하게 작동한다. 유흥종사자들은 불법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유흥종사자 여성에 대한 낙인, 혐오, 차별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때문에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지원에서 배제된다.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 특별지원금을 유흥종사자도 신청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발생하리라 여겨지는 폭력과 배제의 시나리오는 신청 자체를 포기하도록 만든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코로나19 지원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적으로 가능하기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이 정부 및 지자체에 요구한다.

첫째,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재난지원금이 집행되어야 한다. 가족 경제가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음에도 가구 중심의 기준으로 가구주에게 지급되는 정부 재난지원금은 가족 내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을 지원에서 자동적으로 배제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둘째, 소득이 끊긴 이들의 생활자금을 생활이 가능한정도로 지원하라. 10만, 40만, 50만원 모두 1인 생활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월세나 대출상환금을 정기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한 지원금액 책정과 배부가 필요하다. 또한 이 과정은 지원대상을 선별하는 방식으로 귀결되지 않아야 한다. 정부 및 지자체의 선별적 지원정책은 지원대상임을 입증할 수 없어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이 지원정책에 접근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자격 입증 절차는 지원 받는 과정에 수치심과 부족하고 결핍된 사람이라는 낙인을 덧칠한다. 소득이 없다는 간단한 자료로도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대부업의 이자율 및 추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 정부는 코로나19 지원정책에 금융시장을 활용하며 저리 대출상품을 장려하고 홍보해왔다. 지금 대출을 장려할 게 아니라 이미 대출을 받아 이자를 갚아야 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산업 전반의 어려움이 회복되기 전까지 이자 미지급에 따르는 불이익을 유보하고 추심행위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넷째, 지원정보의 오프라인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인터넷,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이들은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정책을 파악하고 신청하기 어렵다. 시시때때로 발표되는 지원정책을 주기적으로 망라하여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어만이 아닌 다양한 언어로 이와 같은 정보를 수합하고 배포해야 한다.

 

다섯째, 정부 및 지자체는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 낙인에 단호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정책 집행자들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을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로 대해야 한다. 내가 사회적 소수자임이 알려질까 두려운 마음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상황을 변화하기 위한 조치들은 장기적으로 지금까지 사회를 운영해왔던 방식의 전면적인 재고로 나아가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정책이 빚은 사각지대는 코로나19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성별, 계급, 인종, 성적지향 등 차별과 억압의 축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가 운영되어 왔기 때문에 발생한 영역이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정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 운영 방식을 구상하는 분기점이 되어야할 것이다.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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