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 2탄_성에 대한 헛소리를 넘어,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고민할 때, 역사 연구자 김대현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현실을 참을 수 없다! 뭐라도 해보자!” 는 마음으로 2020년 4월, 성매매 여성 불처벌 팀은 만났습니다. 불처벌팀은 3개의 팀으로 나누어 팀마다 논의를 발전시켜나갔고, 팀에서 발굴한 쟁점은 다시 전체 토론으로 풍성해졌습니다. 1팀은 <여성 처벌의 역사>를, 2팀은 <성판매 여성이 사법적/사회적으로 처벌받는 현실>을, 3팀은 <국내 논의 정리 및 해외 사례 비교분석>을 주제로 자료를 읽고, 쓰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매매 여성 불처벌은 무척 많은 쟁점을 안고 있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법에 대해 고민하되, 사유의 범위를 법으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룸은 최대한 넓게 펼친 문제의식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10월부터 매달 1편씩 발행되는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는 성매매 여성 불처벌을 고민할 때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통해 더 많은 분과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읽은 후, 또는 읽기 전 <불처벌: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선언>(휴머니스트, 2022)책을 같이 읽는다면 인터뷰와 책의 내용이 더욱 풍성하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성매매 여성 불처벌을 향한 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성매매 여성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 2탄_성에 대한 헛소리를 넘어,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고민할 때

인터뷰이: 김대현(역사문제연구소)

인터뷰어: 이룸

2018년 2월 발행된 친구사이의 인터뷰 <성매매와 성노동 사이>는 반성매매 VS 성노동 구도로 짜여진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는 이룸이 고심 끝에 참여한 인터뷰입니다. 그리고 김대현(터울)님은, 바로, 이 인터뷰를 기획하고 진행한 사람! 이룸이 고심하도록 한 사람! 이지요. 이렇게 연결된 김대현님은 이룸과 『청량리』를 함께 쓰고, 이룸의 행사에서 근사한 사진도 촬영해주며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김대현님은 「1950~60년대 유흥업 현장과 유흥업소 종업원에 대한 낙인」 「1950~60년대 ‘요보호’의 재구성과 ‘윤락여성선도사업’의 전개」, 이렇게 두 편의 국내 성매매 관련 연구물을 게재하기도 했는데요. 불처벌 세미나를 하면서 “대체 ‘사회’란 무엇일까?” “법정책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보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깊게 끌고 가는 듯한 이 연구자… 우짜다가 역사연구자이자 게이 인권 단체 활동가인 김대현님이 성매매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되었을까요?

김대현님과의 대화를 통해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사회를 꿈꿀 때, 우리의 질문과 논의가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지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매매를 둘러싼 질문과 이야기는 그 무엇도 과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 더 풍성한 질문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함께 김대현님의 인터뷰를 읽어보아요.

[순서]

  1. 성매매를 고민하는 퀴어, 현대사 연구자
  2. 페미니즘, 운동, 리부트, 게이 커뮤니티
  3. 불처벌 세미나: 노르딕 모델 숙고하기
  4. 불처벌 세미나: 사회란 무엇일까?
  5. 중층적 지배구조: [청량리]와 윤락여성선도사업
  6. “킹클럽”과 “버닝썬”은 어떻게 다를까?
  7. ‘성’을 말하는 방법을 고민하자

 

1.성매매를 고민하는 퀴어, 현대사 연구자

김대현: 저는 게이이자 시스젠더 남성인 터울이고요. 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했고, 한국 현대사 전공자이고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3년부터 활동했고, 2016년부터 소식지팀장,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그 무렵부터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 때의 인연으로 이룸과 청량리 기록화 사업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그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2014년 즈음에 포스트식민퀴어연구회라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 구성원이 굉장히 재밌었는데, 퀴어인 분들이 대다수였지만 아닌 분도 계셨고. 퀴어 관련한 공부를 하는 모임이었고, 거기는 트랜스젠더퀴어분도 계셨고, 저는 아주 늦게 들어갔었고, 저 말고 다른 게이 연구자도 있었고요. 연구회가 외부 펀딩도 받고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곳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곳이었는데요. 거기서 퀴어 이야기도 하고, 젠더 이야기도 하다가, 그때 제가 이룸의 <소수자 성매매 연구>(2011)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그 연구가 발표됐을 때 같이 연구회에 소속되어 있었던 이하영 선생님이 토론을 하셨고 자료집도 발간됐었고. 그리고 그 때 저는 마침 어떻게 퀴어를 연구에 담을 수 있을까, 연구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필요한 주제였기도 했고, 그렇게 만나게 됐죠.

그리고 친구사이 인터뷰를 빼놓을 수 없겠죠. 2018년 2월에,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측과 트랜스젠더퀴어 성노동자 당사자·활동가 도균님에게 ‘성매매와 성노동 사이’라는 표제로 커버스토리 인터뷰를 같은 호에 같이 싣고 싶다고 제안드린 거에요.1 지금 같았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 때는 뭣도 몰랐으니까, (웃음) 이 이슈에 대해 궁금하다, 여쭙고 싶다, 그저 그런 마음이었는데. 나중에 듣기로 그 때 이룸 측에서 그 제안을 받고 내부에서 엄청 논의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양측이 모두 인터뷰 수락을 해주신 다음에는 이 이슈에 대해 되게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2004년에 성매매특별법(성특법)이 제정되었을 때의 정황이라든가, 그 전의 윤락행위등방지법(윤방법)이라든가 이런 걸 알게 되었는데.

일단 놀랐던 건, 생각해보니까 성특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 거의 바로 성매매·성노동 문제가 나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특법 만들어지고 10~20년 지나서 현장에서 드러나는 패착이라든지 이런 것이 충분히 실험된 게 아니라 거의 동시에, 이걸 한번 시험해볼 겨를도 없이 그런 논쟁이 생기게 된 사정을 알게 되면서, 이게 진짜 파보면 다르구나, 성노동·성매매를 이야기할 때 윤방법 시절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지가 굉장히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성특법 체제를 비판할 때 그 이전 시절에 대한 평가가 간과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 감각을 좀 갖게 됐던 계기가 있었고. 그 다음에 이룸과 청량리 기록화 사업을 같이 하게 됐죠.

생각해보면 저는 그 인터뷰가, 반성매매인권행동이라는 이름을 단 곳에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가 ‘성매매와 성노동’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제의했을 때 거기에 응해 주신 것이 나중에 생각하니까 너무 감사한 거예요, 진짜. (웃음) 이건 제가 좀 빚이 있다, 그렇게 느꼈고. 그래서 그 빚을 지금도 열심히 갚고 있죠. (웃음) 이룸이랑 같이 한 『청량리 : 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이어간 역사』(2018)(이하 『청량리』)도 참 열심히 했었고. 그런 인연과 학은이 있는 거죠.

2. 페미니즘, 운동, 리부트, 게이 커뮤니티

이룸: 제가 김대현님 작업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아까 현대사 전공이라고 해주셨는데요, 특히나 50년대, 70년대 위주로 굉장히 많은 작업을 해오셨습니다. 그 관심사와 성매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합니다.

김대현: 어떻게 제 주제에 대해서 연구해 왔는지를 간단히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마디로 성매매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이론이나 연구를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은둔 생활’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30살 이전의 십몇년의 ‘은둔 생활’의 경험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 때의 분노와 경험으로 단행본을 두 권을 쓰고, (웃음) 아무튼 그랬는데. 그래서 20대 때는 퀴어는 물론이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관심이 그렇게 크지 않았었어요. 100인위 활동2이런 것도 잘 몰랐고, 총여학생회 근처도 안가봤고, 멀찍이서 저분들은 예민한 분이구나, (웃음) 그 정도의 생각만 있었고. 페미니즘 고전 한두권 정도 읽은 것 말고는 없었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그때 그렇게 공부 안해서 지금 벌받고 있는 거라고도 하던데, (웃음) 벌은 아니고 좋은 초대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하기는 해요. (웃음)

그랬었다가 이제 30살이 될 무렵에 굉장히 방황을 많이 했죠. 연구하기 싫다, 공부하기 싫다, 이러다가, ‘이제 게이로 살아야지, 그럼 게이로 살면 게이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내가 경험하고 수행하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의 문제를 그냥 성적 실천으로, 찜방에서 물고 빨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공공화된 어떤 형태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런 것들이 근본적으로는 섹슈얼리티가 삶과 어떻게 통합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퀴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과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려고 하다보니까, 페미니즘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왜 중요하냐면, 일단 첫 번째로 게이이자 퀴어로서 뭔가 학술을 하고 운동을 한다는 것은, 뭔가 나와 어떤 게 연결돼 있고 내 계보가 무엇이고 이런 것을 파헤쳐보고 연구하는 일이잖아요. 그걸 어떤 책에서는 계보적 성원권이라고 제가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늘 뭔가 역사 없는 자들로 불리잖아요. 퀴어도 그렇고, 여성도 마찬가지 취급을 받는 부분이 있고. 그리고 연구자이자 활동가라고 했을 때 연구자는 설명하는 사람이고, 활동가는 현장을 보는 사람인데, 활동가는 현장을 보는 게 급하니까 계보나 이런 것들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죠, 이룸처럼 역량있는 단체가 아니라면. 그리고 연구자는 설명하는 사람이거든요. 좋은 연구자라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으로 그 설명을 끝내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퀴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곧 내가 퀴어니까 내가 경험하는 게 중요해, 이런 차원을 넘어서, 그 퀴어가 과거와 현재, 혹은 동시대의 어떤 존재들과 연결되는지를 봐야 되고 그 연결들을 설명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연구자가 아닌 퀴어 당사자라면 그런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존재하고 살아내기에도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퀴어든 아니든 연구자들은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맥락을 설명해 주고, 남들과 내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이렇게 제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당위가 있었던 거죠.

그런 입장에서 페미니즘이 제게 어떤 거였냐면, 첫 번째로 페미니즘이란 학술적으로 성을 제대로 말하고자 한 선배격의 학제인 것이죠. 그래서 너무 중요했고, 안 배울 수가 없었고. 퀴어를 설명하려면, 퀴어 이론을 알려면 페미니즘을 당연히 알아야 되더라고요. 그리고 성소수자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런 게 있거든요. 여성운동과 여성가족부가 일단 있고, 아무리 부처가 없어진다 어쩐다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래도 몇십년간 이어온 부처로부터 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이 있잖아요. 성소수자 입장에서 ‘퀴어 가족부’가 생길 일은 당분간은 희박하기도 하고요. (웃음) 그러니까 여성가족부와 여성운동단체는 제 입장에서는 운동의 큰 선배 같은 존재였고.

두 번째는 운동판에서의 운동적 맥락이 있었는데, 한국의 퀴어 운동이나 성소수자 운동은 여성운동과의 아주 강고한 연대를 해왔고 젠더 감수성과 관련해서도 강렬한 규범을 가져요. 커뮤니티 레벨 얘기가 아니라, 커뮤니티에서는 빻은 사람도 많고 하죠. 근데 적어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라든지, 그런 운동단체와 연대체 안에서는 적어도 LGBT란 틀에서의 기계적 평등이 중요하고. 그러면 거기에는 당연히 젠더 위계(남성성·여성성, 시스젠더·트랜스젠더)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 규범성이 강해요, 제가 볼 때는. 많이들 이야기를 안 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 그냥 퀴어면 어떤 성적 자율성, 이원 젠더에서 초탈한 어떤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제가 경험한 운동판은 전혀 그렇지 않았었고. 그런 부분을 제가 자연스럽게 체득을 했던 부분이 있죠. 퀴어페미니스트 단체나, 이를테면 장애여성공감 일곱빛깔 무지개 합창단과 게이코러스 지보이스가 함께 무대에 올라간다든지 하는 걸 봤을 때, 책으로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런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세 번째는 시대적인 건데,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나온 다음에 ‘퀴어를 설명하라’는 사회적인 압력이 있었어요. 이건 연구자뿐만 아니라 정말 대중적으로, ‘너네는 뭐냐, ‘드랙’3은 뭐냐, ‘드랙’은 남성성·여성성 위계를 놀리는 것이냐.’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녀 위계가 핵심인 내 현장을 비웃는 것 같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드랙’이 젠더 위계를 무시하는 게 일단 아니고 젠더 위계란 애초에 너무 강고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드랙으로 젠더 위계를 비틀거나 비웃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젠더 위계가 절대 균열되지 않는다, 오히려 젠더 위계가 강고하기 때문에 그런 드랙이 더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뭐 이런 것들. 예를 들면 이런 설명을 전에는 할 필요가 적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을 설명을 해야 되게끔 하는 시대가 온 거죠. 그런 설명에 대한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당하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뭐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해야 해,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시야나 논리를 좀 더 일찍 틔워주게 만든 조건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요. 그렇게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니까, 어쩌다보니 게이인데 반성매매 관련 행사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고. (웃음)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게이이자 퀴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저의 중핵이 되는 문제의식이었고, 그걸 해명하려고 하다보니까 페미니즘이 너무 당연히 필요했던 게 있었어요.

그러면 이제 게이 당사자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필요를 느꼈냐고 했을 때는, 이를테면 게이커뮤니티가 실제 성매매라기보다는 장소, 낙인, 내지 은유로서의 성매매와 가까운 측면이 있거든요. 가령 게이들끼리 ‘년, 년’ 거리는 것, 어떤 비하적인 말을 다른 이성애자 여성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게이 당사자 서로에게 쓴다든지, 아니면 게이들이 성매매여성이 쓸 법한 ‘오늘 안 팔렸네’ 같은 말을 습관처럼 쓴다든지, 그런 문화적 관습들이 사실은 서울에서 게이들이 주로 모이는 종로·이태원이 다름아닌 성매매집결지였고, 거기에 성매매여성과 게이들이 함께 있었다는 어떤 장소의 맥락 위에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게이 역시 비규범적 여성성 수행의 당사자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단순히 ‘년을 쓰지 마라’가 아니라 그런 계보를 아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 게이들이 자기 안에 여성성 수행의 인자가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했을 때 여성성을 수행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여성성의 이름 하에 다른 여성을 이해할 수도 있는 여지가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봤고요(「게이와 페미니즘」, 『문화/과학』 104, 2020).

이를테면 그런 방식으로, 여성운동판을 하나도 모르는 퀴어라든가, 퀴어판을 하나도 모르는 여성들에게 뭔가 우리들이 퀴어페미니즘의 체계 안에서 우리가 서로 이렇게 배치되어있고, 그래서 서로 이런 점들을 좀 조심해야 되고, 이런 전체적인 지형을 그리는 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중요한 목표였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제들이 비단 학술이나 운동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대중적으로 요구됐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게이와 여성성을 연결시켜 설명하는, 예를 들면 게이가 어렸을 때 여성스럽다고 놀림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고, 그렇게 이어지는 감각들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제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와 성매매가 연결되어있음을 설명하고 싶었죠.

3. 불처벌 세미나: 노르딕 모델 숙고하기

이룸: 2020년에 불처벌 세미나 제안을 받으시면서 기대했던 것? 아니면 뭔가 어떤 동기로 하게 되셨다든지. 거기서 이런 걸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바가 있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대현: 이건 간단한데요. 일단 전 이룸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신뢰가 있었어요. 아까 마음빚이라고도 말씀드렸는데, 진짜 많이 배웠고. 그리고 제가 게이임을 커밍아웃하고 이런 곳에서 활동할 수 있고 말을 얹을 수 있다는 것이, 자칫 바깥에서는 이상하게 보인다든지 기이하다든지 특이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초대이고, 중요한 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되게 많고. 일단 이룸이 제한된 조건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와 보람과 성과를 뽑아내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웃음) 그래서 빡세긴 하겠구나, 그런데 의미가 있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함께하고 싶단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청량리』 집필 작업 하면서 그때 진짜 치열하게 작업했거든요. 한 줄 한 줄 같이 다 읽어 가면서. 이 문장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들을 보면서 느꼈던 진심이랄까 배움들이 저한테 컸고 임팩트가 있어서 함께 하게 되었죠.

이룸: 불처벌 팀 하시면서 기억이 남았던 논의나, 인상깊었다거나 혼란스러웠던 부분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었다면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대현: 핵심은 노르딕 모델과의 관계 설정이었죠. 노르딕의 핵심은 구매자 남성 처벌인 건데, 그것이 아니라 왜 여성 불처벌로 이야기를 하는가. 거기서 이제 중간에 성산업 축소의 대전제가 확립되는 과정이 있었잖아요, 원래는 없었다가. 그 과정이 그랬던 것 같아요, 노르딕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죠. 이 판에 이원 젠더 위계가 개입한다는 어떤 확고한 인식 하에서의 일정한 법정책적 대안이니까. 그런데 그걸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제껏 진행되어온 성매매 현장에서의 처벌이 굉장히 자의적이고, 그런 상황에서 노르딕 모델이 도입·적용된다고 그 처벌이 현장에서 잘 작동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성매매여성 당사자들이 처벌 자체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많은데, 노르딕 모델의 논의가 자칫 여성들이 겪는 현장과 유리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성노동 담론이 되묻는 지점들, 현장에서의 당사자성이 아주 강조되는 지점들이 다시 되짚어지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쨌든 성산업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로 돌아갔던 과정이 굉장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입장과 체계를 잡아 나갈 때, 중심을 잡고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게 되게 중요한데, 대안을 위해서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구나. 그래도 그 가운데 합의된 하나의 전제는, 구매자 남성 처벌이 중요하기는 한데 그 전에 처벌 자체를 먼저 봐야 한다, 처벌의 계보를 일단 확인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그러면서 사회적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거기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고요. 물론 사회적 처벌의 현실을 파악한 상태에서 법적 처벌을 기획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이제 앞으로 한국 사회나 이룸의 과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단 저는 근본적으로 법적 처벌 밑에 사회적 처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 큰 성과이지 않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사회가 법에 선행하니까. 사회가 어떻고 그 사회가 어떻게 법과 연결되는지를 보는 것이 법을 얘기하는 데도 너무 중요하다, 그 정도의 합의를 거친 것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4. 불처벌 세미나: 사회란 무엇일까?

이룸: 그것과 연장해서 비슷한 질문일 수 있는데요. 불처벌에 대한 관점이 이전에 생각해 오셨던 부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김대현: 제가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윤락여성선도사업’ 관련 논문에서 사회적 처벌을 강조해서 썼거든요(「1950~60년대 ‘요보호’의 재구성과 ‘윤락여성선도사업’의 전개」, 『사회와 역사』 129, 2021). 물론 거기에 국가 책임이 광범위하게 들어가 있는 것도 빠뜨리지 않고 쓰기는 했는데,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몸통은 사회다’ 라고 썼었어요. 그걸 철회할 생각은 없는데, 그 주장이 갖는 바의 함의에 대해 요새 생각을 새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법 너머의 사회가 있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이 굉장히 중요하죠. 사회가 기반이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역동을 봐야 되고, 그게 현장과 이어지고. 그런데 제가 역사 연구자로서 보통 사회사를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거든요. 그래서 사회 안에 뭐가 많고 사회가 중요하고, 그런 걸 강조하다보면 국가나 법정책과 분리된 어떤 사회상을 상상하게 돼요.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이걸 강조하는 게 어떤 정치적 효과를 갖는가를 요즘은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요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일본군 ‘위안부’가 조선총독부나 군에 의해서 강제로 징모되고 이송되어서 군에 의해 통제되고 그 안에서 전시 성폭력이 이루어지는데요. 거기에는 당연히 인신매매라든지 취업 사기라든지, 당시 성매매 여성들이 겪었을 법한 낙인들과 조건들이 존재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기에 되게 어려운 조건이 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그런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일본에서 ‘거봐, 그러니 정부 책임은 없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물론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연구서들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정부 책임이 너무 있고 군경이 개입했다는 얘기도 빠짐없이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일본측에 의해 정부 책임 회피의 근거로 사용되게 되니까, 거꾸로 이 문제에 대해 정부 책임만 유독 강조하게 되는 경향이 있죠.

물론 이 문제에 작용하는 제국·식민 구조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다보니 그것과 함께 존재했던 다른 사회적인 문제들이 지적되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 중에 정말 그냥 끌려가셨던 분들도 많으시지만, 몇몇 분들 중에는 심증상 유흥업소에 나가셨던 분도 계실 수 있단 말이죠. 그분들이 겪으셨던 것도 당연히 전시 성폭력일 것이고요. 일전의 박유천 사건4 때가 그렇듯이 성매매 여성이라고 해서 성폭력을 당해도 되는 게 당연히 아니잖아요. 그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는 성매매 관련 낙인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이 잘 얘기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거기에는 앞서 말씀드렸던 여러 조건들이 있는 거죠. 그런 걸 보면서, 사회를 이야기할 때 어떤 위협이 따르는가를 목격하는 계기가 됐어요. 사회적 책임을 따져물을 때 거기서 정부 책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구나, 안 그러면 그 주장이 남들한테 쉽게 전유당하는구나, ‘거봐, 정부 책임 없지?’ 이런 식으로.

이를테면 형제복지원 문제5 도 그래요. 물론 경찰이 거기에 소년들을 집어넣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복지재단의 문제란 말이예요. 그걸 진실화해위, 진화위 2기에서 조사 대상으로 올렸을 때 거기에 정부의 책임을 묻는 거죠. ‘사회뿐만 아니라 정부가 무엇을 못한 책임이 그 안에 있는 거다’라고 연구자가 성실하게 이야기해요(『절멸과 갱생 사이 : 형제복지원의 사회학』, 2021). 그래서 결론적으로 제가 불처벌을 사유하면서 느끼는 건, 정부와 법정책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구나, 절대 누락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이게 계속 사회가 근본이라고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있는 어떤 편향bias이 있는 것이 아닐까, 국가의 법정책이 사회를 재규정하거나 창출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것을 놓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던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강조와 사회적 처벌에 대한 강조가, 굉장히 좋은 시작이긴 하지만 여전히 좀 ‘뭉툭하다’, 내지는 맥락에 따라 ‘무책임한 지적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사회적 처벌이라고 했을 때 그 사회가 과연 어떤 사회냐를 봐야 하는데, 사회란 사실 그 내용과 외연이 너무나 많고 다양하고, 그렇기에 그 사회를 일의적으로 어떤 하나의 성격을 가졌다고 이야기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또 위험할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를 무작위 상태 놔두고 정부 책임을 강조한다든지, 그런 전략을 써온 것이 아닌가, 그것이 실은 사회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본래 뭉게구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사회적인 것들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방식으로 정부나 법정책을 이야기해왔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런 것들이 다 전제되고 나서 사회적 처벌을 지적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데, 너무 중요한 작업인데, 그 과정에서 정부나 법정책과 독립된 어떤 형태로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법적 처벌을 얘기할 때 거기에 상정되는 사회가 있는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그것들이 먼저 분석되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노르딕 모델도 그렇잖아요. 남성을 왜 처벌하는가, 라고 했을 때 성구매가 형법상 죄라는 걸 명토박고 싶은 거잖아요. 그리고 그걸 통해서 얻어지게 되는 사회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인식이 그 아래 깔려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맥락으로 사고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불처벌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있겠죠. 그로부터 생성되는 법과 사회가 동시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돼요.

5. 중층적 지배구조: [청량리]와 윤락여성선도사업

이룸: 사실 성매매 관련 법적 처벌 얘기를 하면 풍성하게 이야기되지 않고 뭔가 이 법이 맞냐, 저 법이 맞냐, 진영논리 속에서 이분화된 얘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불처벌은 그런 구도를 깨고 담론을 확장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 질문과 관련해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대현: 그래서 사회를 서술하는 건 매우 필요하죠, 앞에서 말씀드렸던 온갖 위험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비가시화되어 왔던 것일 테고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청량리』 작업이랑 연결해서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 때 제가 모태로 삼았던 작업은 박정미 선생님의 연구였죠(「한국 기지촌 성매매정책의 역사사회학, 1953~1995년」, 『한국사회학』 49(2), 2015)). 그분의 연구는 결국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왜 사문화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윤방법이 실제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잖아요.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그 논문이 입증한 바는 다음과 같죠. 그 문제에 관련해 국가의 법정책이 어떤 식으로 존재했는가를 봤을 때, 윤방법을 만들어놓고는 하위 법령에 뻔히 위안부, 접객부, 이런 조문이 있었고, 지금도 비슷한 개념이 법령에 있잖아요. 그런 방식으로 성매매여성이 공공연하게 관리되면서 동시에 묵인되어 왔다, 그래서 박정미 선생님의 연구는 그런 제도적·법정책적 테두리를 저한테 주신 거죠. 그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청량리』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법정책 안에서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사회는 어떤가, 그건 여성들께서 직접 경험하시는 사회상이니까요. 그러면 이런 법정책 안에서 대체 집결지는 어떻게 존재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학술적인 작업은 아니더라도 어디 내놓아도 딱히 부끄럽지 않은 작업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책에서 그 사회상을 평가할 때 ‘중층적 지배 구조’라고 임시적으로 규정했었어요. 집결지를 둘러싼 통치의 결이 굉장히 중층적이다, 경찰도 끼어있고 방범대도 끼어있고, 포주도 있고, 그리고 바깥에 가족들도 여러 가지로 문제고. 그런 결들을 다 이야기했던 건데, 그런 규정이 좀 시론적인 부분이 있었죠. 중층적이라고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결이 많다는 건데, 그걸 조금 더 학술의 레벨로 끌어올려서, 그럼 그 중층성이 대체 어디에서 왔고, 누가 그걸 떠들었고, 그런 것들을 좀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윤락여성선도사업’ 논문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경찰이 어떻게 했고, 주로 ‘윤락여성’들이 교도소 수감이나 기소보다는 즉결처분으로 처결되었고, 이게 일제 시대 때부터 온 것이고 그런 얘기들을 썼는데. 이게 사회적 처벌에 대한 메타적인 아주 다양한 층의 얘기들을 『청량리』에서 착안해서, 그것들을 과거의 사례이긴 하지만 굉장히 빼곡하게 봤던 것들이 일단 도움이 많이 됐어요. 자료 속에서 형사처벌과 사회적 처벌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관계맺는지,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형벌로만 보면 처벌이 가벼운 것 같지만, 절대 중벌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처벌의 양상이 달리 존재하고,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이 당대에 말하기를 차라리 교도소가 낫지, 직업소개소라고 해놓고는 거의 수용소나 다름없는 곳에 갇히는 걸 훨씬 싫어했다는 기록, 거기서 탈출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탈출할 때 다리 부러지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처벌이 아닌가, 처벌로 왜 명명되지 않는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하지만 저도 그 논문에서 형사처벌과 사회적 처벌의 관계를 아주 면밀하게 얘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청량리』에 연장된 시론적인 어떤 것이었을 거에요. 그 둘이 어느 정도 다르고, 이때까지 잘 주목되지 않았던 얘기들을 한 것은 사실인데, 그러면 그 사회적 처벌을 없애려면 어떻게 형사처벌을 해야 되고, 혹은 어떤 형사처벌을 어떻게 안 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물음표예요, 저도. 그건 지금 제가 당장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데, 그에 대해 이룸은 당장 필요한 입장이고. (웃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지혜를 모으는 중이고.

6. “킹클럽”과 “버닝썬”은 어떻게 다를까?

이룸: 흔히 성매매 하면 전업형 성매매를 생각하고 외국의 경우도 그런 업소들, 혹은 거리 성매매 위주로 정책이 수립되는데, 한국의 경우는 압도적 비율이 겸업형 성매매잖아요. 그것이 한국 성매매 산업의 아주 중요한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유흥업소에 주목하시게 된 이유와, 불처벌 세미나 문제의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대현: 사실 제 첫 논문이 유흥업소 관련 논문이고(「1950~60년대 유흥업 현장과 유흥업소 종업원에 대한 낙인」, 『역사문제연구』 39, 2018), 첫 논문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들이 많죠. (웃음) 왜냐하면 유흥업에 대해서 잠깐 전사를 이야기한 다음에 바로 종업원에 대한 낙인으로 넘어가는데, 그 둘 사이의 연결 지점이 뚜렷하지 않은 한계가 있어요. 일단 유흥업소 종사자라고 하면 거기에 포주가 끼어들게 되니까, 포주와 여성간의 위계를 의식해서 ‘종업원’이라 쓴 것인데, 용어 차원을 넘어서 정작 그 위계에 대해서는 논문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는 거죠. 유흥업소 업주에 대한 역사적 위치에 대해서 그 논문은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제가 게이 클럽을 다니면서 가졌던 것 같아요. 킹클럽이 지금도 존재하지만, 현재(2021년 9월 30일) 코로나 때문에 못 열고 있는데. 작년 5월 2일에 코로나 확진자가 그곳에 다녀갔을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저는 거기가 주한미군 대상 클럽에서 게이 클럽으로 바뀐 게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변화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주한미군 클럽은 당연히 아시다시피 연성화된 성매매 알선이 일어나는 공간이고, 바깥에 나가서 실제 성매매가 일어난다든지 하는 구조죠. 그래서 그런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던 게 첫 번째가 있었고.

2021년에 출간된 제 책에 쓴 내용인데(「명월관의 기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상과 은둔 사이 : 벽장 안팎에서 쓴 글들』, 2021), 한국의 유흥업소 법제는 버닝썬과 킹클럽을 구별해서 인지하고 설명할 역량이 없는 것 같아요, 너무너무 다른 클럽인데. 홍대에서 밴드나 일렉트로니카 나오는 인디 클럽과, 버닝썬으로 상징되는 호텔 지하에서 영업하는 클럽은 서로 계보가 너무 다르거든요. 후자는 워커힐부터 시작해서 미군 ‘위안’시설로서 만들어졌던 것이고, 킹클럽은 본래 후자였지만 지금은 전자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법제상으로는 그게 전혀 구분되지 않고 있는 거죠. 일례로 한국에서 클럽을 합법으로 영업하려면 룸살롱 허가가 있어야 돼요. 무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한국의 유흥업 허가는 말도 안돼요. 클럽을 사실상 합법으로 영업할 수 없고, 룸살롱 허가는 당연히 권리금이 엄청나고, 총량제로 관리되기 때문에 신규 허가가 거의 안 나고, 그러니까 다 일반음식점 허가로 클럽 영업을 하고, 그런 따위의 일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업소 안에서 어떤 젠더 권력에 기반한 폭력이 일어나는가와 살짝 분리되어서, 이 유흥업 자체가 대체 뭐냐를 탐구하고 싶었던 게 제 첫 번째 논문의 화두였었어요. 그래서 왜 업태위반으로 영업하는 것이 지극히 보편적 관행이 되었느냐의 얘기와 함께, 논문에서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유흥업소 관리의 핵심에는 유흥음식세를 징수하려는 목적이 있고, 유흥허가가 다 그 세율과 관련되어 있고, 그리고 유흥음식세는 일제 말기, 파시즘 시기에 만들어진 거거든요, 1939년에. 그래서 사실상 일제 잔재라고도 할 수 있어요. 윤명숙 선생님이 쓰시고 2015년에 한글로 번역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연구(『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랑, 2009년 박정애 선생님의 논문(「총동원체제기 조선총독부의 유흥업 억제정책과 조선의 접객업 변동」, 『한일민족문제연구』 17)에 나와요. 결과적으로는 유흥업소에 대해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세수 이상의 어떠한 관심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법제도상 난맥이 발생한 것이라 짐작하고 있고요.

지금(2021년 9월 현재) 홍대 클럽을 포함한 마포구 소재 클럽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반음식점 허가를 내고 합법으로 영업할 수 있는 클럽이에요.6 왜 그러냐면 지방의회에서 우회할 수 있는 조례를 하나 만들었어요. 조례에 명시된 어떤 양식의 서류를 하나 쓰면 되는 걸로. 왜냐하면 홍대 클럽은 더이상 성매매 문화와 직결되지 않는 문화적인 활력이 있는 거예요, 나름대로. 그런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도 있고, 그걸 주제로 연구한 연구자들도 있고, 클럽을 자주 갔던 공무원들도 계시고, 그 지방에서. 그런 게 쌓이고 클럽데이 행사 같은 것도 하면서 얘네들이 그렇게까지 과거처럼 퇴폐로 놀고 있지 않은 느낌도 있고. 저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클럽 문화가 어떻게 성매매 문화와 떨어져서 발달해 왔는가. 노골적으로 그 안에서 여성이 알선되는 식의, 주한미군 클럽이나 호텔 지하 클럽이 아닌 형태의 클럽으로 분기해 나가는 계보를 쌓는 것이 중요했고, 이것 자체가 제가 생각한 클럽 문화나 유흥문화에 대한 젠더링 작업인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데 유흥업소의 현장과 그것을 관장하는 법체계의 계보를 보다보면, 성노동자의 노동권 인정이라는 건 정말 요원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노동법이 아니라 애초에 식품위생법으로도 지금 뭐가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현실인데.

그리고 이 문제에 부딪쳤던 계기는, 제가 겪은 게이 클럽이, 버닝썬류의 클럽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야 할 의무를 부과받았을 때였어요. 처음에는 정말 둘이 비교당하는게 너무 모욕적인 거예요. (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기는 하더라는 거죠. 공간을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착각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여성들에게선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킹클럽 무대 위에 올라가서 예쁘장한 게이 남성들이 춤을 추는 게, 무대 밑의 게이 남성들에게 ‘초이스’를 받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너무, (웃음) 정말 모르는 거예요, 게이 클럽을. 그곳을 이해할 때 완전히 헤테로 성문화를 끼얹은 건데. 그들은 사실 소위 ‘안팔릴’ 각오를 하고 올라가는 거거든요. (웃음) 나는 매칭에서 배제되어도 좋으니까 나의 끼를 풀겠다, 이런 것에 가깝거든요. 그런데 그런 맥락을 모를 수 있죠. 그래서 설명이 필요하구나, 가도가도 설명을 해야 되는구나, 그리고 그런 설명의 맥락이 안팎으로 음미되는 것이 중요하겠다, 현재의 고민은 그렇고요.

거기서 성매매 여성과 그분들이 겪는 피해를 포함해, 이런 성산업 자체를 어떻게 재구성과 재편할 거냐의 문제는 진짜 큰 틀거리의 고민인 것 같아요, 정말로. 왜냐하면 그런 것을 따지기에는 기본적으로 너무 뭐가 안되어 있어요. 합법 영업을 할 수가 없는데 세는 뜯어가는 상황, 나아가 내가 아무리 건전한 클럽을 열고 싶다고 할지라도 타 업소로부터의 신고라든지 경찰에 대한 상납이나, 이런 관행과 그것을 만든 체계로부터 하나도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고, 그 안에서 뭔가 여성을 포함한 유흥업소 종업원을 착취하겠다고 마음먹은 인간이라면 이런 빈틈을 더더욱 잘 활용할 수 있을 법한 상황, 이 모든 것이 유흥업소를 둘러싼 법제도적이고 사회적인 환경이다, 이 정도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7. ‘성’을 말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김대현: 한국의 아주 독특한, 성을 비가시화하는 사회 안에서, 그 상황에서 법이라는 게, 올바로 담론이 쌓아질 리가 사실 없잖아요. 그걸 보충하기 위한 고민이 있어서 지금 이런 자리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 올바른 방식으로 떠들어야 되고, 압도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내는 게 아니라, 양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그런 상황인 것 같고, 그래서 계속 뭔가, 그런 로직을 느끼고 있으니까 다들 법만으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어요. 너무 기초가 안돼 있는 상태니까 기초부터 해야지, 뭐 이런 느낌. 불처벌팀의 활동은 그걸 직면해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성에 대한 헛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성에 대한 모든 소리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웃음) 이 이중의, 막말에 의한 비가시화와 침묵에 의한 비가시화가 동시에 횡행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성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성에 대한 법률을 어떻게 짤 건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상황 같아요.

왜 어떤 목소리는 끊임없이 안 들리는가에 대해서 사고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여성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사실은 잘 들린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목소리가 더 커지고 많아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니까 뭔가 성이 얽히는 순간 어떤 현실 왜곡장에 들어오는 느낌이잖아요. 멀쩡하던 사람이, (웃음) 성 얘기만 하면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는가,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묘사 충동이 있어요. 왜 다들 이렇게 성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가.

그리고 이건 2018년 2월 친구사이 인터뷰에서 이루머 유나님이 했던 얘기이기도 한데요 (https://chingusai.net/xe/index.php?mid=newsletter&category=525461&document_srl=525562). “성매매 여성들 만나면 다들 팔자 얘기한다, 근데 나는 이게 납득이 안된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여성들을 만날 때 우리가 왜 여가부를 통해서 이 돈을 받고, 왜 이런 사업을 하는지 다 얘기한다”,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게 자신과 현장의 여성을 연결지어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읽혔기 때문에 저는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나와 남을 너무 쉽게 팔자로 설명하지 말고, 우리는 21세기 사람이니까. 9천년 전 괴베클리 테페가 만들어질 때 신전에서 막 빌던 고대인처럼 살지 말고, 우리에겐 최소한의 학술도 있고 배움도 있고 뭐가 있잖아요. 그걸 마땅히 누리고 그 과실을 음미하고 살 권리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팔자가 아닌 방식으로 우리를 설명받는. 이것에 다가가려고 활동가들도 그렇고 연구자들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좀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관계맺고 있음을 설명받을 권리가 있고 그걸 체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어떤 옆에 있는 사람들을, 그냥 하루에 한 1분 정도라도 나와 같은 레벨의, 나와 같은 범주의 인간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사실은 제일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 엘리엇 페이지가 했던 말이 참 인상깊거든요. HRC(The Human Rights Campaign) 가 초대한 행사에 나와서, 낯선 인간을 딱 5분만 참고 그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아두려고 하는 것이 때론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어렵다는 말도 같이 했거든요, 절대 쉬운 게 아니라고. 그게 중요한 말인 것 같아요. 모든 소수자 운동이라든지, 모든 운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음미할 수 있는 말이지 않나. 하지만 그게 어렵죠, 어렵고. 늘 하라는게 아니라, 하루에 1분 정도만. (웃음)

 

 

  1. 친구사이 뉴스레터에 실린 이룸의 인터뷰는 https://chingusai.net/xe/newsletter/525588 참고[]
  2.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는 2020년~2003년 노동조합, 학생사회 등 운동사회의 성폭력 사례와 가해자들 명단을 공개하고 활동한 모임이다.[]
  3. 드랙(drag): 여장 혹은 남장. 드랙퀸 drag queen 은 여장한 사람, 드랙킹 drag king 은 남장한 사람을 이르며 이들의 노래 춤, 모창, 립싱크 등의 퍼포먼스를 드랙 쇼 drag show라고 한다. 성소수자 사회에서 드랙은 단순한 여장/남장이라기보다 과장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표현함으로써, 생물학적 성정체성의 경계를 흐리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포함시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https://chingusai.net/xe/term/116258 인용[]
  4. 2016년 유명연예인 박유천이 유흥주점에서 성폭력 가해를 했다는 혐의로 4명의 여성이 박유천을 고소한 사건으로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박유천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관련기사: 박유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 https://m.ildaro.com/9395 참고[]
  5.  박정희·전두환 정권 당시 부산 지역의 ‘형제복지원’이라는 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2012년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및 해결을 촉구해왔고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2022년 8월 23일 진실 규명 결정이 의결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362 참고[]
  6.  2016년 2월 식품위생법 시행규책 개정안에 따라 유흥주점으로 등록하지 않고 손님이 춤을 추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이에 지자체는 각기 조례를 제정하여 춤 영업을 허용하기도 했는데 이런 식의 운영 방식이 안전 사고를 발생시키고 지자체별 세금 차별을 유발한다는 문제제기가 있기도 하다. 관련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5090416940000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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