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꼭지] 재회 그리고 시작 _고진달래             

상담 한꼭지_ 재회 그리고 시작 

고진달래

 

10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눈에 띄게 달라져있었다.

 

내 기억 속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만큼 ‘쎈’ 언니였다. 도도한 말투와 표정으로 분위기를 제압했던 그녀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삶의 의욕은 남아있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 둔한 반응, 때에 맞지 않은 대답 등..이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면 왠지 그녀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서 살것만 같았다.

 

10년 사이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와 그렇게 재회를 한 후 위기 의식이 느껴졌다. 일상적인 끈을 계속 만들면서 사람과의 접촉 할 기회를 계속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청량리 주변에서 만나다가 차츰차츰 사무실로 초대하고, 여행하는 모임에 초대하면서 반상회 멤버가 될수 있도록 으쌰으쌰 펌프질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씩 그녀에게 이룸의 존재 도장을 찍었다.

 

2018년 이룸의 큰 사업중 하나로 이룸은, 청량리 중장년 여성들과 작업장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아이템으로 시작을 해볼까 하던 중에,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와 1대 1로 손뜨개를 해보자! 손뜨개를 한다고 일주일에 한번씩 사무실로 찾아오다보면,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손뜨개를 한다고 머리를 많이 쓰다보면,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우리가 팔고 그 돈으로 용돈을 벌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면…그녀는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잃어버린 사회성을 되찾을수 있지 않을까? 예전만큼의 도도함과 생기를 되찾을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드디어 첫 손뜨개 모임을 진행했다. 우리는 수세미를 만들어서 총회때 판매를 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손뜨개를 배우다 힘들어서 ‘나 이거 안하고 여기와서 청소하면 안돼?’라고 했지만 오늘의 이 시간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활동가들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포기할줄 알았는데도 ‘그래도 해야지’라면서 느릿하고 엉성하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엉성한 수세미가 만들어진다해도 어떠랴. 우리가 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내어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고, 애를 썼고, 공을 들였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왠지 하나의 수세미가 만들어지면 마음이 찡해질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