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자신을 책임지며 살아야하는 삶이란 _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고진달래

전국연대에서 기획한  맥양주집 중고령여성 생애사 기록집에 실린  이룸의 글입니다.

 

헬조선에서 자신을 책임지며 살아야하는 삶이란 _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고진달래

 

처음으로 마주한 쪽방이라는 공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삼촌이라고 불리는 건달들과 업주들이 삼엄하게 경계하면서 지켜보는 유리방과 달리 쪽방 여성들은 우리가 들고 오는 물건들에 관심을 보였고, 하나 더 줄 수 없는지를 항상 물으셨다. 유리방 여성들에게는 별 인기가 없는 작은 물품들도 쪽방에만 가면 동이 났다.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뭐 하나 도움이 되는 연결고리에 목 말라하는 것 같았다. 늘 긴장하고 동태를 살피면서 언제 치고 빠져야하는지를 계산해야하는 유리방과 달랐다. 쪽방 여성들은 잠시 방에 들렀다 가라면서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누추하지만 대접하는 것이 온당히 해야하는 일처럼 방 한구석을 내어주었다. 두 사람이 누우면 더 이상 공간이 없을만큼 작은 방에 3명~4명이서 따닥따닥 붙어 앉아 박하스를 받아 마셨다. 이불이 깔려 있는 공간 한 구석에는 여성의 살림살이와 함께 손님에게 줄 박하스와 물, 콘돔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일과 생활이 붙어있는 공간이었다.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사연은 다양했다. 혼자 몸으로 아이를 키우거나 몇 번의 이혼을 하고 가진 것 없이 나와야만 했거나,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홀로 살아야하거나, 업주가 아니면 자신을 거둘 사람이 없어서 오로지 업주 밑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있어야했다. 그녀들에게 여성단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의 인맥이고 끈이었다. 백이 없어서 서러웠던 그녀들에게 우리는 정보통이자 남들에게 자랑할수 있는 지원군이었다.

 

중고령 여성들을 지원하면서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를 현장으로 두면서 난 쪽방 여성들의 드셈과 삶에 대한 억척스러움이 좋았다. 누구한테도 지지않고 맞서는 패기도 좋았고 거친 욕을 달고 악을 쓰는 살아있는 에너지가 좋았다. 그녀들은 오십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걱정하였고, 자신의 손으로 병원비를 마련해야한다며 성매매로 일당을 벌어나가셨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몸을 건사해나가는 삶이 고단해보였지만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이 사회가 살아갈수 있는 자원들을 내어주지 않아도 악착같이 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 내가 아는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성들을 만난지 10년이 지나가면서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그 억세던 여성들도 아프기 시작하고,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살아갈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강점들은 현실 앞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재개발로 성매매 집결지는 페쇄되었고, 삶의 반절 이상을 그 곳에서 보냈던 그녀들은 한 순간에 어디 가야할지 혼란스러워하셨다. 내가 있어야할 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어진 것이다. 요즘 60살이면 인생 2막이 시작된다고, 진짜 인생을 즐기는 나이라고들 하는데 대체 한국에 어떤 노인들이 그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티비에서 유명한 남자 아나운서가 자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병원에 다니면서 생활을 하기 위한 노후 대책 자금으로 몇 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게스트들도 동의를 하며 맞장구를 쳤다. 노인들이 안심하고 살아갈수 있을만큼의 공적자원이 투여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각 개인들이 자신의 노후 대책을 알아서 마련해야한다.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부동산 투자가 유행이고, 주택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연금은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노동이 생존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인생의 여유란 사치일수 밖에 없고 이것은 정부가 책임져야하는 역할을 방기하고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술책일수 밖에 없다.

 

적은 돈이라도 일당을 정기적으로 벌어서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여성들은 성매매만이 유일한 경제 수단이었기에 집결지 폐쇄는 당장 밥벌이가 끊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오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의 혜택을 받을수 없는 여성은 한달에 들어가야하는 월세, 기본 통신료, 식대 등 고정 비용을 걱정하였고, 다른 성매매 지역으로 옮기셨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서 노심초사 하셨다. 체력도 좋고, 사회적 기술도 뛰어난 다른 여성은 몸이 허락하는 날이면 식당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여성이 지불해야하는 생활비를 감당할수 있는 정도가 아니였다. 큰 수술을 해서 경제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거나, 가족이 없는 여성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혜택이 끊길까봐 적극적인 일자리 찾기를 주저하셨다. 사회적 관계 맺을 기회가 줄어들수록 여성은 집 안에만 있게 되고, 몸과 정신이 둔화되면서 생기를 잃기 시작하였다. 어떤 여성은 이러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까봐 벽에 아는 사람의 연락처를 써놓았다고 한다. 그녀들은 이런 사회적인 고립감을 혼자 감당해내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결지가 폐쇄되고 이 3년동안 노년 성매매 여성 뿐 아니라 이 사회에 홀로 살아가야하는 노인들의 삶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되고 생각하게 된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집결지 생활이 지긋지긋한 탓인지, 살아온 모진 세월이 지겨운 탓인지 말을 잘 하지 않던 무뚝뚝한 여성이 있었다. 유일하게 나와 옆집 아저씨에게만 말을 섞었다. 아픈 몸 하나를 건사할수 있도록 노년을 준비해놓는다며 검소한 생활이 몸에 베였고, 깔끔하게 돈을 잘 관리하셨다. 아마도 피붙이 하나 없는 자신의 미래가 불안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전화를 받지 않고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매정하게 말씀하시고는 관계에 거리를 두셨다. ‘뭔가 서운하셨나 시간이 지나면 풀리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건너 건너, 조용히 ‘ 그 언니 있잖아 혼자 저기 살았던, 달래랑 만났던 그 언니 암이잖아’ 라는 말이 들렸고, 항암 치료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여성 집을 찾아가서 만났을 때는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힘이 없는 그 와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테잎으로 주우시며 우린 말없이 눈으로 이야기를 했다. 나도 울고 그녀도 울었다. 그리고 얼마 후 죽음 소식을 아주 조용히, 들었다. 장례식도 치러지지 않은 죽음, 혼자 맞이해야하는 죽음이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도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홀로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노인들이 이 한국 사회에 아주 많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하는가

 

여성들이 제일 절박하게 요청한 것이 일자리였다. 무슨 일이라도 좋으니 일이 있으면 연결해달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이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존재감을 느끼고 생기를 만들어줄 사회적 관계망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일의 개념은 바뀌어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받고 그것으로 교육과 의료, 생계 등을 알아서 유지해나가야한다. 그동안 난 당연히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가기에 필요한 제반들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의 노동력으로 살아가기 힘에 부칠수 밖에 없었고, 나의 삶은 일을 중심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다. 삶의 가치와 여유를 포기해야하는 삶을 이 사회는 강요하고 우린 노동의 부품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룸은 중장년 여성들의 작업장을 겁도 없이 만들었다. 갈 곳 없는 여성들끼리 앉아서 개성이 꺾이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끼리 기대면서 살아갈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업장을 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량의 멋진 물품들을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고정적인 수입을 여성들에게 줄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정부가 지원하는 자활지원센터 사업에 대한 기대를 일찍이 접었다. 정부가 말하는 자활이라는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과 자활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금액을 받을 경우, 기초생활수급의 금액이 깎인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지원금 외에 받는 돈을 허락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다른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꿈을 꿀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박제된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기를 강요하는 이 시스템이 원망스럽다.

 

내가 여성들을 만나면서 본 것은 ‘빈곤’이었고, 이 사회가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지켜내야하는 복지에 대한 철학과 정책이 부실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간이 비참해지지 않고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합의해나가면서 그 답을 찾아야한다. 사회 구성원으로 누려야할 권리를 천박한 경제논리로 교환되어서는 안된다. 노령, 질병, 실업 등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제공되는 사회적 급여나 재정지원은 아량이 아닌 시민으로 받아야하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사회는 지원받아 마땅한 시민임을 증명하라고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면서 결국 여성들의 빈곤 상태를 유지토록 하며 그 위험과 모욕을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라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내 손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아기로 태어나 내 몸을 내 손으로 건사할수 없는 상태에서 죽는 순간을 맞이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양육 될수 밖에 없는 시기를 거쳐 세월을 보낸 뒤 우린 다시 몸이 약한 노년기를 보낼수 밖에 없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불량언니작업장을 보면서 배우고 있다.

 

요원하겠지만 꿈꿔본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욕망에 맞춰 자원이 되어 돈으로 환산되지 않기를,

한 인간으로 누려야하는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노동에 인간성을 팔지 않기를,

그런 정책을 우리 손으로 지켜낼수 있는 튼튼한 정치적 힘을 가질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