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 프로그램 관객후기 3.

_쪼꼬(동북여성민우회)

 

 

너가 가서 진짜 행복했으면 좋겠어

 

영화에서 린과 연희가 바다를 앞에 두고 나누었던 격려와 지지, 그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린은 한국에 와서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캄보디아 가족에게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연희는 자신도 호주에 가서 겁먹지 않고 잘 해내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고 이에 린은 ‘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너가 가서 진짜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는 말과 함께 진심 어린 우정의 눈빛을 듬뿍 보낸다. 그리고 연희는 린의 손을 잡고 그 눈빛에 화답한다. 이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이룸 영화제가 끝나고 거의 일주일 동안은 머리가 띵했다. 첫 영화부터 내가 머물던 세계를 허물게 하더니 마지막까지 허물어진 세계에 발 디딜 곳 하나 없다는 절망과 동시에 현실을 직면하게 했다. 특히 야간근무 영화 상영 후 이루어진 라운드테이블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을 해석하고 설명해 내는 능력을 길러내는 것, 그것을 찾는 것’이라는 레나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흘러내렸다. 오.. 그렇구나! 현실, 또는 현재를 해석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신박한 장이었다.

 

 

빈곤(구조적 폭력)의 장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기

 

영화는 야간근무를 다룬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나도 한때 야간근무를 한 적이 있다. 몇 해전 가을에 생활비 부족으로 일당이 높은 알바를 찾다가 발견한 일이 택배물건을 분류하는 상하차 알바였다. 저녁8시부터 아침까지 1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추석과 같은 명절이 있는 경우에는 아침 10시나 11시까지 잔업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80%정도가 이주 노동자였고 나머지가 한국 사람이었는데 그 중에도 남성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나의 경험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 안에 중첩된 차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위치, 고된 노동을 유지하게 하는 기제로 사용되는 비하와 멸시, 그로 인한 불안함을 땔감으로 삼는 대기업 하청의 택배 상하차 분리업무는 다양한 위계와 위력 그리고 권력들이 서로 다른 얼굴로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당시 나는 연희와 같은 선주민이었고, 여성이지만 힘이 좋고 말을 잘 알아듣는 일꾼으로 위치되면서 얻는 권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권력을 누릴 수는 없었다. 기존에 형성된 선주민들의 이른바 ‘텃세’라고 불리는 온갖 폭력에 동참해야 얻을 수 있는 그 권력에 나는 숟가락을 얹을 수 없어 선주민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서 분노만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고정되지 않은 알바와 같은 일자리는 들고 나는 사람이 많고, 꾸준히 일 할 수 없는 구조에서 인간적으로 연결되거나 우정을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가장 힘들었던 지점은 자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고되고 정서적으로 고립되는 일들이 부여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타인을 고려하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여백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내가 가진 자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결국 ‘너만 힘든게 아니다. 나도 힘들다’는 천박한 프레임에 나를 가두며 동료들을 타자화 하게 된다. 처음에 얹고 싶지 않았던 나의 숟가락이 그들이 펼쳐놓은 폭력의 장에서 연신 밥을 퍼 나르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야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린과 연희(빈곤한 여성들)의 우정을 보여준다. 린에게 부여된 부당한 업무를 연희가 도와주고, 마지막 바다에서는 린이 연희를 격려한다. ‘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너가 진짜 행복하면 좋겠어’ 그 말이 나에게 와서 꽂혔다. 린이 경험한 한국에서 4년은 어땠을까? 사장의 노골적인 차별, 위계에서 오는 부당함, 자신이 좋아하던 한국인 친구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손에 쥐고도 다른 꿈을 향해 떠나려는 모습에서 오는 야속함을 마주한다. 연희는 어떠한가, 호주 이민을 꿈꾸며 어학원을 방문했을 때 전문직을 원한다는 연희에게 담당자는 말한다. 호주는 직업의 귀천이 없고, 개인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전문직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연희가 말하는 전문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주, 성별, 계급, 나이, 언어 구사력, 국적, 빈곤, 학력 등 그들을 위치시키는 수 많은 상황들이 교차되는 ‘야간근무’에서 우정을 나누는 린과 연희를 보며 그러지 못한 나를 생각한다.

 

 

이보다 더 윤리적이고 정치적일 수 없다

 

영화 야간근무가 상영된 후 라운드 테이블에서 레나와 소윤의 서사가 펼쳐졌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들을 톺아보며 매우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것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사회적 구조에 포박당한 우리들의 이야기 이기도 했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허물어진 세계를 대신할 새 판을 짜는데 필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별은 우리의 이야기가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무엇보다 윤리적이고 정치적으로 느껴졌다. 윤리라는 것은 내 경험의 다음을 생각 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경험을 톺아보면서 사회 구조를 파악하게 되고, 그 구조에서 만들어진 부정의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윤리를 생각한다. 소윤과 레나 그리고 별이 고민한 윤리적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그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욕망과 성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내보였다.

 

소윤은 스스로 소진시켰던 자신을 더 이상 학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성장의 시간에 대해 말했다. 성장의 주체가 개인만을 상정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윤의 이야기에서 페미니스트 지식생산으로서의 새로움과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레나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이 있었다.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아프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인 많은 이유 중에서 나에게 와 닿았던 지점은 지지하고 응원해준 동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기존의 문법과는 다르게 인간으로서 예의를 갖추며 윤리적으로 간을 본다는 표현이 좋았다. 바로 그것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소윤과 레나가 자신의 경험을 인식하고 그 다음을 사유하는 행위야 말로 가장 윤리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 보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욕망과 다르게 관계 맺기 위한 시간성의 사유는 인식을 생산해 내는 그 자체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스트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관계 속에서 엮어 나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시간

 

나는 야간근무(상하차 알바)에서 사람다운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확히 실패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그녀들이 들려준 경험에 대한 해석과 그 다음을 사유할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가난은 여성들로 하여금 경쟁하게 하고 통합할 수 없게’ 한다는 영화 프로그램 노트의 문장을 나름 해석해보면 가난은 돈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돈 버는데 쏟아 붓게 한다. 결국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사유할 시간을 빼앗게 함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사람다움을 생각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가난은 사람다움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것이 가부장제 국가와 자본의 전략으로 작동할 때 자원이 없는 빈곤한 여성들은 속수무책으로 사람다움을 잃게 된다. 나의 빈곤 경험은 바로 시간의 상실이다. 생계를 부양해야 하고, 필요한 돈을 버는 일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가 소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유할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영화제에서 느낀 점은 바로 관계다. 사람대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 린과 연희의 관계, 라운드 테이블의 여성들의 관계에서 획득되는 사람다움 말이다. 관계 속에서 엮어 나가는 시간이 바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시간임을 말해준 별(이룸)에게 고맙다.

 

이룸 영화제는 나에게 그 다음을 생각하는 사유의 힘을 주었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고,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각자의 말하기 방식으로 스스로의 경험을 해석하는 힘과 우리에게 무기가 되어준 찬란한 언어를 들려주었다. 이제 그 다음을 사유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엄청난 영화제를 기획하고 준비한 이룸 영화제 기획단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모두 고맙습니다!

 

 

관련영화

코쿤홀에 들어간 앨리스

코쿤홀에 들어간 앨리스

<야간근무> + 라운드테이블 + 드랙킹 아장맨 공연 프로그램 관객후기 _꽃분이 Q. <야간근무> 상영 후, 지하철을 한 정거장 걸어갔다며. 왜?...

계속 읽기
솔직함이 주는 힘으로, 감정을 이해하기

솔직함이 주는 힘으로, 감정을 이해하기

<야간근무> 프로그램 관객후기 _유결(마음충전소 결) 이룸이 영화제를 한다기에, 별 생각없이 스탭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이틀간의 영화제를 마치고 진행된...

계속 읽기
<야간근무> 영화읽기 2.

<야간근무> 영화읽기 2.

_레나(학벌을 비판하면서도 욕망하는 모순 덩어리) 연희는 한국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다니지만 졸업 하지 않은 상황에서 25세가 된 여성이다. 졸업을...

계속 읽기
카드뉴스 4. 야간근무

카드뉴스 4. 야간근무

프로그램 홍보 2. https://e-loom.org/film/야간근무-night-working/ https://e-loom.org/film/공연-드랙킹-퍼포머-아장맨/ “섹션 1. 새로운 배치 : 성매매에 대해 말하지 않기” 두번째 상영작 ...

계속 읽기
야간근무 Night Working

야간근무 Night Working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