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현미(이룸공부방 1기 회원)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고 하는데, 가난한 여자는 어디로 갈까? 가진 것이 없는 여자도 어디든 갈 수 있을까? 영화 <호스트 네이션>에는 이 질문에 “내가 도와준다면”이라고 대답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E6(예술흥행) 비자 산업의 브로커 정씨, 매니저 욜리, 클럽 업주 파파 정이다. 이들은 빈털터리에 사연 많은 필리핀 여자들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신들의 일(business)이라 말한다. 이들은 필리핀에서 여자들을 모아 합숙시키고 노래 훈련을 시킨 후, 영상을 찍고 서류를 준비해 비자를 발급받는다. 그리고 제3국을 경유해 한국에 입국시킨 후 전국 각지의 미군 클럽에 배치해 관리한다. 이러한 일들을 수행함으로써 여성들이 성공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는 얼굴들은 카메라를 피하지 않고, 서로를 소개하고 연결시켜 준다.

 

영화는 가난한 여자가 이동할 때 따라붙는 이 얼굴들의 네트워크를 전경화하면서 묻는다. 여성들이 삶의 주인(host)이 되도록 도와준다는 이들의 언어와 실천이, 숙주(host)를 활용해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도모하는 기생적 존재의 것은 아닌지 말이다.

 

지금까지 성산업에서 일의 성격과 인정 여부를 둘러싼 물음들은 주로 여성의 성판매 경험을 향해 왔다. 그런데 성형대출 이슈에서 드러나듯, 여성의 몸과 성을 판매할 수 있게 만드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 브로커 정, 파파 정, 마담 욜리는 이 비용을 창출하고 중개하며 대리하는 ‘빈곤 산업’의 운영자들이다. 가난한 여성들의 욕망과 꿈을 성산업의 국제적 분업구조의 회로에 위치시키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매춘부’가 아니라 연예인을 육성하는 일을 하며, 바 파인과 같은 ‘2차’는 과거의 일이거나 일탈적 예외, 여성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엔터테인먼트 사업·관광업에서 성산업의 속성을 끊임없이 삭제·축소하는 정당화 작업 자체가 이들의 사업 내용을 구성하며 성산업의 연쇄 고리를 만드는 장치다. 영화는 예를 들어 선발 시 노래실력보다 마른 몸매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주스 할당량을 “서로 맞춰주는” 아가씨들의 집결과 충원을 고려하는 이들의 비즈니스 전략을 포착함으로써 이러한 장치의 작동을 그린다.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산업 구조와 마찬가지로, 필리핀 여성을 엔터테이너로 만들어 이동시키는 이들의 ‘투자’는 여성들에게 회수하리라 기대하는 수익 계산에 기반해 있다. 수지타산을 맞추는 부담은 빚, 수수료, 벌금의 형태로 여성 개인에게 전가되거나 다음 여성에게 넘어가는 형태로 전이된다. 빈곤산업 운영자들은 이 전가와 전이의 메커니즘을 자의적으로 조절하면서 여성들에게 “가서 네 일을 해”라고 요구한다. 이주여성 조이는 여기에 도움의 요소는 없으며, 돈을 뜯어내는 착취적 요소가 가득함을 증언한다. 이 때 폭력과 노동,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성산업의 경계는 희미하고 무용해진다. 빈곤산업은 가난한 여성이 삶의 호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호스티스가 되라고 부추긴다.

 

영화는 미군 클럽에서 탈출해 쉼터 활동가가 된 조이의 상황과 막 한국에 입국한 마리아의 상황을 병치해 제시한다. 클럽 업주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마리아의 언급은 ‘주시걸(juicy girl)’로 미군에게 받은 모욕적 대우와 업주의 감시를 증언하는 조이의 증언과 교차한다. 이것은 모순일까? 나에게는 연결로 다가왔다. 불법/합법의 경계, 국경을 넘는 불안정한 상황은 빈곤산업 운영자들에 대한 여성들의 의존도를 높이며 운영자들의 기생적 성격을 탈각시킨다. 그러나 빈곤산업의 ‘Fly now, Pay later’ 구조는 숙주-기생 관계를 역전시키며 업주의 호의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환 압력을 점차 증대시킬 것이다. Pay later의 실천이 점차 펼쳐질 마리아의 미래는 점차 조이의 현재와 맞닿게 되지는 않을까?

 

더 나아가 영화는 필리핀에 귀국한 엔터테이너 여성이 새로운 여성을 모집하는 스카우터로 ‘비자산업의 세포’가 되는 모습도 담는다. 빈곤 산업에서 여러 행위자들은 시공간에 따라 엔터테이너, 매니저, 스카우터, 프로모터, 브로커, 클럽 가드, 클럽 업주의 역할을 넘나들고 서로 관계 맺으며 이 산업 생태계를 작동시킨다. 생태계에 들러붙은 주변인들과 그들의 일을 조망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르는 것은 가난한 여성들을 숙주 삼아 굴러가는 거대한 괴물로서 이 사회의 형상이었다.

 

그런데 괴물 사회를 만든 것은 빈곤 산업에 연루된 행위자들 만일까? 침묵과 승인과 금지로 산업을 형성하고 방조하는 또 다른 존재들이 마지막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는 필리핀 정부의 여성 모집 금지 정책과 무관하게 E6 비자를 발급하는데 관여하는 관료 기구들을 잠시 비춘다. 문체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브로커가 만든 여성들의 공연 영상을 심사해 추천서를 발급한다. 그러면 법무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비자를 발급하고 외교부 필리핀 영사관이 승인한다. 출국은 금지이지만 입국은 허가되는 국가 관료제 간 정책 차이와 경계에서 이주의 비용이 발생하고 이를 활용하는 빈곤 산업 운영자들의 일이 구성된다. 필리핀 경찰에 게 뒷돈을 챙겨주며 여성들을 출국시키는 ‘에스코트’ 비용은 상황에 따라 큰 폭으로 상승하며, 여성들의 채무 관계를 확대시킨다. 카메라가 이 관료 기구의 행위자들을 찾아가서 직접 담아봤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느껴졌다.

 

국가 간 관료제의 장벽을 타고 넘어 한국에 도착한 여성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한다. 호스트 네이션의 역설적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 여성들을 E6비자로 초청한 주최국(host nation)이면서 동시에 미군이 주둔하는 기지국가(host nation)로서 미군에게 여성들을 공급한다. 한미동맹과 여성을 교환하는 이 ‘협력 관계’를 모태로 국제문화마을, 특수관광협회 같은 지역사회와 조직의 생태계가 다양한 자기증식을 꾀하며 굴러간다. 빈곤 산업의 운영자들은 바로 이 지역사회의 주민이자 유지로서 ‘생존권’을 도모하고 주장하고, 가난한 여성들을 숙주 삼는 행태를 정상화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미군이 클럽 내 접대 활동을 인신매매 피해로 규정하며 금지하는 정책을 펴자 분통을 터트리며, 자신들이 알선자라면 ‘매수자’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당신들이 물을 질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 장병들의 좋은 건강, 안전, 복지’를 위해 특정 조건 제거에 협력해 달라는 미군의 통지서에는 실소가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역시 호스트 중의 호스트는 뻔뻔하다.

 

이 괴물적 생태계의 당사자가 아닌 자는 누구인가? 어디에서부터 이 생태계의 먹이사술을 끊을 것인가? 가난한 여성을 호스티스로 전환시키는 빈곤산업의 부산물이 누구에게 어떻게 가는지 구체적으로 직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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