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꾸지 않은 꿈> 프로그램 관객후기

_장비단

 

여기에 참여하려고 밤새 과제 마감하고 1시간 자고 과외 후 충무로까지 이동했다. 완전 기대하고 참여한 행사!! 바로 2019 이룸 영화제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만드는 도시>에 다녀왔다. 나는 섹션 1의 ‘아무도 꾸지 않은 꿈’을 보고 씨네톡을 들었다. 희망을 말하기보다 절망을 직시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기란 말이 참 어렵게 다가왔다. 김주희쌤 사회와 한국여노 임윤옥님, 이룸의 유나쌤, 홍효은 감독님이 패널로 진행된 씨네톡은 더 길지 않아 아쉬웠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영화제 첫 상영작이 성매매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아닌 여성공장노동자 빈곤과 열악한 환경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라니 더 좋았다. 성판매여성에게 가혹한 낙인을 부과하는 사회에서 과연 자발적 성판매란 어떤 의미인가. 빈곤의 굴레에 있는 여성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사회보장제도도, 다른 노동도 아닌 성매매산업이다. 이는 가장 취약한 빈곤여성, 거기에 아동청소년 여성을 파고든다. 단순히 성매매 합법화나 비범죄화 같은 논의로 이를 해결할 수는 없다. 여성이란 이유로 노동환경에서 성적대상화를 겪고, 노동자란 이유로 임금 착취와 기계화, 원하청 구조를 겪고, 여성노동자란 이유로 또 한번 비정규직화에 내몰리는 산업구조를 바라보아야 한다.

 

인터뷰 속 구미 공장노동자들은 여름엔 아침 7시에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고 12시간을 일하며 과로노동에 시달리다가 물량이 줄어드는 겨울엔 비정규직이라고 인원감축 당하고 뭔지도 모르는 종이에 사인한 후 퇴사처리가 되기도 한다. 오존이 나오는 작업환경이 무해하다고 말하는 회사와 일하다가 비염, 축농증, 폐기능 저하, 화학성 기관지염이 걸린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또한 모욕적인 말을 해야 물량이 뽑힌다고 공공연히 말하며 노동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고 부품처럼 사용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 걸이라고 얘기하며 문제를 개인화한다. 무서운 학습이다. 씨네톡에서 한국여노 임윤옥쌤이 하신 말 중 대졸이 정규직하면 당연한 거고 고졸이 10년 일해서 정규직 전환되면 불공정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요새 가장 크게 하는 생각이 이거다. 세습된 부, 축적되는 가난. 자유라는 허상과 신자유주의를 지원하며 불평등을 용인하고 사람이 죽거나 죽을 때까지 최소한 인간다운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걸 보고 있는 국가는 뭐하는 곳일까. 노동의 유연화와 자유로운 선택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을 못 본 척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성행하는 플랫폼 노동이 만나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이 삶을 운용할 시간을 뺏긴다.

 

이건 한 사람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분명 빈곤은 그 사슬에서 국민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의 잘못이다.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국가 때문에 여성은 여성이란 이유로 가장 가까이에서 손 내미는 성산업에 내몰린다. 여성이 빈곤에서 삶을 구제하기 위한 선택지가 공장 아니면 성판매라니 이건 분명히 사회적 문제다. 거기에 성산업은 정말 가까이에 있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을 깔았을 때 나한테도 몇 번이나 추천이 떴다. 터치 없는 술자리 알바로 위장한 유흥업소 알바는 시급이 정말 셌다. 유행하던 익명채팅 어플에서도 남성은 성구매자의 역할을 하고 여성은 그 반대였다. 특히 가난한 아동청소년 여성을 노리는 사람은 많고 그 아이들은 마치 자발적인 성판매자로 불법청소년처럼 낙인 찍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여성도 가족 등록금이 급해서, 당장 공과금과 핸드폰 요금 낼 돈조차 없어서, 계속 이어지는 가족 빈곤으로 인해 선택지가 없어서. 이럴 때 사회보장제도는 뭘하고 있나. 따라서 성산업을 철폐하기 위해선 성매매에 대해서만 논하면 안 되고 사회의 경제 불평등 구조도 함께 바꿔야 한다.

 

물론 여성의 성을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매력 자산이라고 하며 특권적 위치라고 말하는 남성중심사회도 바꿔야 하고.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자산은 남의 호의에 의존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빌려쓰는 것들이 아니다. 남성의 호의와 선택을 얻는 건 권력이 아니다. 그건 그저 남성사회에 자신을 억지로 맞춰서 아슬아슬한 예쁨을 받는 것, 언제라도 김치녀나 걸레로 낙인 찍혀 거기서 팽당할 수도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남성사회에선 여성이 인간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존재 정도로 여기기 때문에 성을 파는 것을 당연한 것, 남성이 성을 구매하는 것을 당연하고 의리 있는 것으로 여긴다. (아니라고 하지 말기를 설문조사에서 한국남자 50퍼가 성구매 경험이 있다고 했다. 거기에 소라넷, w2v, 웹하드 카르텔에서 불법촬영물 안 본 남자 얼마나 있을까. 일반화가 아니라 50퍼면 당연히 너 아니면 넌데 의심해야지.) 성판매 여성을 낙인 찍을 것이 아니라 성구매 남성을 처벌하고 성구매를 근절해야만 한다. 여성을 사고 팔 수 있는 존재, 성적으로 굴복시켜도 되는 존재로 여기고, 여성노동은 후려쳐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

 

사회를 바꾸는 건 절망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일단 이 절망이 현실이며 실존하는 불평등임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혹은 미래에 노동자일), 그리고 동시에 여성인 위치성에 대해 자각하고 이 현실이 어떻게 우리들을 착취하는 지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고 아, 대졸여성인 나의 삶은 그래도 조금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은 결국 다 이어져 있고 여성의 빈곤은 헤어나오긴 어려워도 빠지긴 너무 쉽다는 것을 자각해야만 했다. 언제나 희망을 말하고 싶었지만 희망은 이 절망을 직시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노동유연화와 불평등한 부의 축적, 그리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숭배하는 척 유인하는 성적대상화들을 직시해야만 한다. 나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싶다가도 나의 안위란 얼마나 위태로운가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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